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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포항=조성룡 기자] 포항스틸러스가 '잘가세요'를 송출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18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포항스틸러스와 울산현대의 경기에서 홈팀 포항은 전반 3분 만에 일류첸코의 헤딩골로 앞서가더니 후반 들어 일류첸코의 추가골과 팔로세비치의 두 골을 보태 4-0 대승을 거뒀다. 상대 울산이 두 명 퇴장 당하는 악재를 만나는 동안 포항은 오랜만에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최고의 경기를 선사했다.

이날 포항의 하이라이트는 후반 35분 경이었다. 한창 포항이 신나게 공격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장내 아나운서는 관중들에게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함께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관중들은 모두가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육성응원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스틸야드의 핸드폰 플래시는 '소리 없는 아우성'과도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포항 스틸야드의 스피커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잘가세요'였다. 이 노래는 울산의 대표적인 응원가다. 울산의 승리가 확정되기 직전 울산 팬들은 상대 팀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잘가세요'를 부른다. 울산이 원정 경기를 떠났을 경우 '잘있어요'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노래가 포항의 스피커를 통해 나온 것이다.

후반 35분부터 송출된 '잘가세요'는 10분 넘게 이어졌다. 포항은 '잘가세요'의 중간에 미리 녹음해둔 해병대 응원가 등을 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관중들이 흔들고 있는 핸드폰 플래시를 끄지는 않았다. '잘가세요'는 잠시 뒤에 계속해서 송출됐고 포항 팬들은 완벽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울산 입장에서는 이보다 치욕적일 수 없었다.

그런데 포항은 어떻게 '잘가세요' 응원가를 준비했을까? 포항 구단 관계자는 "무관중 경기 때문에 관중 함성 소리 음향을 준비하면서 응원가도 재미있게 넣고 싶었다"면서 "포항 서포터스가 무관중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번 모여서 이런 저런 응원가를 녹음했다. 그 중에는 '잘가세요' 뿐 아니라 울산을 겨냥한 응원가가 더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잘가세요' 응원가는 올 시즌 초반부터 녹음까지 마치고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포항은 이 '잘가세요'를 틀 만한 상황이 펼쳐지지 않았다. 포항은 이번 맞대결 이전 두 차례 격돌에서 모두 패하면서 울산 팬들의 '잘있어요'와 '잘가세요'만 들어야 했다. 또한 안방에서는 관중 음향에 비해 소수가 녹음한 응원가가 어울리지 않아 틀기에도 부족한 면이 있었다. 포항은 울산을 상대로 안방에서 대량 득점하며 이기는 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야 이 '잘가세요'도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항 구단 관계자는 "아껴두고 있다가 우리가 녹음한 '잘가세요'를 오늘 틀기로 마음 먹었다"면서 "하지만 4-0으로 크게 이기고 있는데도 곧바로 틀지 못했다. 우리 선수단은 지난 강원전 4-5 대역전패 이후 이기고 있다고 절대 설레발을 떨지 않기로 했다. 고민하다가 상대가 두 명이 퇴장 당하고 4-0으로 앞서 있는 후반 35분 쯤에 '이제는 틀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고 전했다. 혹시라도 역전패를 당해 역풍을 맞지 않도록 끝까지 상황을 주시한 뒤 '잘가세요'가 스틸야드에 울려퍼졌다.

이 구단 관계자는 "동해안 더비에서 이기는 팀이 '잘가세요'를 트는 건 이제 예의이자 덕목이라고 생각한다"고 웃으면서 "울산도 매번 우리와 경기를 해서 이기면 이 노래를 튼다. 그래서 우리도 부를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정말 설레발을 떨지 않고 적절한 순간에 이 노래를 틀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역사가 쌓이면서 이 '잘가세요' 응원가도 점점 더 이야기가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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