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의 2011년 3월 5일, 그리고 2020년 10월 17일


[스포츠니어스|상주=조성룡 기자] 10년의 세월이 이렇게 흘러간다.

2011년 3월 5일 처음으로 상주에 K리그를 알렸던 상주상무가 2020년 10월 17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하나원큐 K리그1 2020 파이널 라운드 대구FC와의 경기를 통해 마지막을 고했다. 10년의 세월 동안 상주상무는 상주 시민들, 그리고 팬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그리고 짧았던 여정을 이렇게 아쉬움 속에서 마무리했다.

취재 차 상주로 내려가는 차 안에서 나는 추억을 곱씹었다. 상주의 첫 경기를 지켜본 이후 약 10년이 지나 상주의 마지막 경기를 보러 간다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묘했다.

강렬한 인상 주며 ‘문화 충격’ 선사했던 상주의 첫 날
2011년 3월 5일, 이날은 상주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축구 불모지였고 K리그와 절대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상주시에 K리그가 처음으로 열린 날이었다. 광주광역시와의 연고 협약을 마친 국군체육부대는 새로운 둥지를 찾았고 상주시가 손을 잡아 성사됐다. 인구 10만 명도 되지 않는 소도시 상주에 프로축구가 탄생한 날이었다.

아직도 그 때를 잊을 수 없다. ‘초짜’ 기자였던 나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도시 상주로 향했다.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상주버스터미널에 내렸다.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경기장에 가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낮은 건물들이 사라지고 논밭이 본격적으로 보일 때쯤 갑작스럽게 상주시민운동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신세계가 펼쳐졌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다. 택시가 경기장으로 우회전 하자마자 군복을 입은 낯선 사람들이 차량을 막았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곳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다. 알고보니 주차 통제를 위해 지원 나온 상주시 해병대전우회 회원들이었다. 상주 시내가 조용했던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북새통이었다. 상주시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는 것 같았다.

경기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모든 것이 놀라웠다. 다른 경기장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경기장에는 60대 이상 어르신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상주상무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놀라서 물어보니 유니폼이 없는 한 할머니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저 쪽에 가면 나눠주던데 저 할망은 받았고 나는 못받았어!” 그 분들은 지금 잘 계실까.

그리고 한 쪽에서는 한우 불고기 시식회가 열려 있었다. 커다란 철판에 쉼없이 볶아내는 불고기의 냄새는 아찔할 정도로 강렬했다. 상주의 청소년들은 여기 다 몰려 있었다. 한 기자가 ‘상무가 와서 아쉽지 않냐’는 질문을 하자 한 학생은 희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이제 곧 박주영도 오고 지동원도 올 거에요! 그리고 기다리면 손흥민도 와요!” 아쉽게도 이후 박주영과 지동원은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손흥민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상주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프로축구연맹

상주는 많은 것이 처음이었다. 미디어 관계자용 출입구가 없어 철망이 반 이상 내려가있는 직4문 통로를 힘겹게 뚫어내야 했고 故이수철 감독과의 사전 인터뷰는 마땅한 장소가 없어 라커룸 옆 샤워실에서 해야했다. 잔디도 많은 비판을 받을 정도로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주는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뿜어내는 희망의 분위기는 금새 전염됐다. 이날 경기장에는 무려 16,400명의 관중이 찾아왔다.

이날 상주상무는 인천유나이티드를 맞아 한 수 위 실력을 뽐내며 2-0 승리를 거뒀다. 두 골 모두 김정우가 기록했다. 상주의 탄생과 함께 ‘뼈트라이커’의 탄생을 알린 날이었다. 기분이 좋았던 성백영 당시 상주시장은 선수단에게 한우 회식을 선사했다. 맛 좋은 상주 한우를 먹으며 한 선수는 “한 경기 이겼을 뿐인데 리그 우승한 것 같다. 이런 대접은 처음 받아본다”라고 놀라워했다.

아름다운 이별 속 어딘지 모르게 씁쓸했던 상주의 마지막 날
그리고 2020년 10월 17일, 상주시에서는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약 10년 동안 상주와 지지고 볶았던 상주상무는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상주를 떠난다. 이날 16,400명의 관중은 없었다. 하지만 경기장에는 꾸준히 차량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코로나19 시국에 무관중 경기가 계속됐지만 이날을 앞두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늘어가 제한적 관중 입장이 가능해진 덕분이었다.

10년의 세월은 많은 것을 바뀌게 했다. 구수한 인심이 느껴지는 한우 시식회는 더 이상 없다. 대신 ‘상상파크’라는 세련된 시설이 들어와 있었다. 상주상무의 여러가지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고 작게 조성된 축구장에서 놀 수도 있는 곳이다. 이곳도 이제 이날을 마지막으로 본래의 쓰임새가 사라질 예정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10년 전과 같이 활기찬 분위기는 없었다. 상주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조용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줄을 섰다.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모였다. 그 때와 같은 열기는 더이상 없다. 제한적 관중 입장인 탓도 있지만 마지막이라는 허탈감은 사람들의 발길을 쉽게 이끌지 못하는 법이다. 상주 경기장에 붙어있던 대형 엠블럼도 태풍으로 날아간 이후 보수되지 않은 채 덩그러니 있었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상주에는 더 이상 2011년 3월과 같은 어지러운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지역을 위해 투입된 해병대전우회 대신 스태프 조끼를 입은 보안요원들이 차량을 정리하고 있었고 골대 뒤에는 가변석이 생겼다. 잔디도 그 때를 생각한다면 상당히 훌륭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90분이 지나면 다 사라질 것들이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마지막이라 그랬던 것일까. 상주는 전반전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 경기했다. 이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선수들은 내년부터 김천이라는 새로운 곳에서 뛸 예정이다. 하지만 상주 선수들의 몸놀림은 열정적이었다. 이는 김태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한 관계자는 “김태완 감독이 전반전부터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도하는 것을 처음 본다”라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2-1 승리를 만들었다. 상주 선수들이 시민들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을 한 셈이다. 김정우가 시작한 상주의 골 행진은 안태현으로 끝났다. 물론 김재우의 자책골도 있었지만.

이날 경기에는 666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며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리는 마지막 K리그를 지켜봤다. ‘길리좌’로 유명한 신창우 군은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떠나는 기분이다”라고 안타까워했고 상주의 오랜 팬으로 유명한 박혜영 씨는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이 안난다. 조만간 또 상주 경기가 열릴 것 같은 기분이다”라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렇게 상주의 마지막 경기는 끝났다. 2011년의 그 때처럼 경기가 끝난 상주시민운동장은 조금씩 노을이 지고 있었다. 켜켜이 쌓여가던 상주상무의 10년 세월은 이렇게 허탈하게 끝났다. 관중들이 빠져나간 상주시민운동장은 곧바로 다음주에도 다시 K리그를 할 것처럼 평온했다. 상주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상주를 잊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곳에서 K리그는 없다. 안녕, 상주. 그리고 안녕, 우리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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