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 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벤투 감독이 이끄는 성인 대표팀이 아우들과 비기자 여기 저기에서 말들이 많다.

벤투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성인 국가대표 팀은 9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하나은행컵 스페셜 매치 올림픽 대표팀과의 맞대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성인 대표팀은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을 압도하지 못했다. 후반 터진 이정협의 동점골이 아니었다면 무승부라는 결과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경기 후 벤투호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벤투호는 이 경기에서 산적한 많은 과제가 드러났다. 원두재의 중앙 수비수 기용도 다시 생각해 봐야할 문제고 공격 조합을 찾는 일도 더 해야한다. U-23의 어린 선수들과 격돌해서 이기지 못했다는 건 팬들에게 자극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한 경기로 벤투호를 비난하는 건 잘못됐다고 본다. 이건 그저 평가전 정도에 불과한 ‘스페셜 매치’였기 때문이다. 벤투호를 향한 변명을 해보려 한다.

벤투호, 실험에 초점 맞춘 경기였다

성인 대표팀이 모인 건 지난 해 12월 이후 처음이었다. 벤투호는 지난 해 12월 부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이후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한 번도 소집되지 못했다. 무려 10개월 만에 모여 이번에 처음으로 발을 맞췄다. 물론 지난 해 12월 소집됐던 선수 중 이번에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 스페셜 매치에 임하는 자세는 물론 올스타전처럼 설렁설렁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선수 구성이 K리그 올스타 형식이 아니라고도 말 못하겠다.

지난 해 12월에 차출됐던 선수 중에 해외에서 뛰고 있는 윤일록과 황인범, 김민재, 김영권, 김진수, 박지수 등은 이번 명단에서 제외됐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에 있는 선수들을 불러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박주호와 김보경, 김승대, 문선민 등도 이번 명단에 뽑히지 않았다. 대신 김지현과 윤빛가람, 원두재, 이현식, 이동준, 이동경, 김영빈, 심상민, 이주용, 이창근, 정승현 등의 새 얼굴이 발탁됐다. 이 중 그래도 대표팀 경험이 있는 선수는 윤빛가람과 정승현 정도다. 아예 성인 대표팀의 새 판을 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벤투 감독은 늘 K리그 현장에 왔다. 해외파를 소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외로 나가 선수들의 상태를 점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K리그 경기장을 찾아 새 얼굴을 발굴하고 조합을 찾는 일이었다. 벤투호의 김영민 코치를 비롯해 다른 코칭스태프 역시 K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 각지로 흩어져 선수들을 관찰했다. K리그 팬이 아니라면 익숙하지 않을 얼굴을 대거 발탁해 시도해 본 것만으로도 이번 스페셜 매치의 의미는 충분하다. 승패는 물론 성공적인 전략이 나오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한 경기였다. 선수의 한계를 실험하고 옥석을 가리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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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만의 소집, 바뀐 선수들, 사흘 훈련

성인 대표팀은 해외파 선수들이 전력의 상당 부분을 채우고 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손흥민이나 김민재, 김신욱, 황의조, 권창훈, 이재성, 황희찬 등이 누가 봐도 주축이다. 굳이 비중을 따지자면 대표팀 전력의 70%는 될 것이다. 아마도 어제 경기에 출전한 선수 중에 이들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기존 대표팀 선수들에게 이번 대표팀의 새 얼굴들이 도전하는 형국이다. 당연히 전략차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전후사정을 빼놓고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으니 곧바로 좋은 경기력을 기대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일이다.

이건 전성기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와도 안 되는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 대표팀은 10개월 만에 소집돼 사흘 훈련을 하고 이 경기에 임했다. 리그를 중단하고 프로팀처럼 합숙 훈련을 했던 과거 대표팀과는 비교할 수 없다. 벤투 사단이 할 수 있는 건 컨디션 좋은 선수들을 뽑아 조합을 맞추는 것이다. 코로나19로 해외 선수들을 불러올 수 없는 상황에서 새 얼굴들을 과감히 기용하고 거기에서 가능성을 보인 선수들에게 앞으로 더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이번 소집은 의미가 있다. 생전 처음 발을 맞춰보는 이들에게 사흘 간의 시간을 주고 전술, 전략적인 비판을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일방적으로 벤투호의 편을 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벤투호 못지 않게 내년 올림픽에 나가는 김학범호도 우리에게는 똑같이 응원해야 할 팀이다. 그런데 이번 대표팀은 오히려 김학범호가 더 나은 상황에서 소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은 올 1월 태국에서 열린 AFC U-23 챔피언십에 나갔던 이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 선수들 중 해외에서 뛰고 있는 정우영이 빠졌고 원두재, 이동경, 이동준 등을 벤투호에 양보했을 뿐 나머지 선수들은 그대로 이번에도 차출됐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면서 꾸준히 한 팀을 구성하고 있던 이들이 그대로 경기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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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범호, 절대 만만한 상대 아니었다

또한 지금이 과거 올림픽 대표 선수들은 대학생 신분이 많을 때와는 달라졌다. K리그에서 U-22 의무 차출 조항이 생기고 K리그2가 정착하면서 어린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서 뛸 기회가 많아졌다. 임대 제도도 활발해져서 기대주들은 K리그2에서 기회를 얻는 일도 정착됐다. 김학범호의 송민규와 엄원상은 포항과 광주의 주전 공격수로 뛰면서 K리그 전체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조규성은 전북에서 꾸준히 출장 중이고 정태욱은 대구의 주전 수비수다.

이상민과 김태현이 차출되자 서울이랜드 정정용 감독은 "우리는 어떻게 버티느냐"고 한숨 짓기도 했다. 김학범호의 선수들 중 소속 프로팀에서 주전 아닌 선수를 찾기가 더 어렵다. 아마추어 동생들이 프로 형들을 잡은 게 아니다. 나이 차이는 있지만 이제는 형들이 무조건 동생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 과거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 대다수가 대학교에서 축구를 하고 핵심 선수 한두 명이 프로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때가 아니다. 벤투호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보다 이렇게 어린 선수들이 프로에서 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걸 기쁘게 바라보는 건 어떨까.

나이는 어려도 조직력에서는 올림픽 대표팀이 성인 대표팀을 충분히 앞설 만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사실을 간과하고 단순히 선배들이 후배들을 이기지 못했다고 한 경기 만에 비난을 쏟아내서는 안 된다. 어차피 A매치 기간에 경기도 치를 수 없어 임시방편으로 만든 이벤트성 경기다. 비공식 연습경기에 꽤 그럴싸한 홍보와 포장, 방송 중계 등을 곁들였을 뿐이다. 벤투호는 이번 경기를 통해 해외파 선수들이 합류했을 때 함께 경쟁할 수 있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 포지션별로 경쟁자들을 추려내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 하는 거다.

비길 수도 있는 연습경기였을 뿐

오는 12일 열리는 2차전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으면 한다. 그게 한국 축구가 건강하게 발전하는 길이다. 엄원상과 송민규가 김학범호의 좌우 측면에 동시에 출격하고 이걸 김태환이 어떻게 스피드로 막아내느냐를 즐기는 게 더 흥미롭지 않을까. 벤투호의 새 얼굴 중에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게 이 경기를 정말 제대로 즐기는 일 아닐까. 연습경기 한 번에 호들갑 떨지는 않았으면 한다. 다가올 2차전도 그저 흥미롭게 즐기면 된다. 연습경기에서 거 좀 비길 수도 있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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