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유스 출신’ 김우홍 “군 문제로 K4리그에서 뛰고 있어요”


[스포츠니어스|인천=전영민 기자] 지난 2009년 여름 한국축구계는 ‘슈퍼 유망주’의 등장에 술렁였다. 그의 이름은 김우홍이었다. 김우홍은 15살 이던 지난 2009년 레알마드리드 유소년 팀에 입단하며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김우홍의 축구 인생은 생각처럼 순탄하게 플리지 않았다.

비자 문제로 인해 지난 2011년 겨울 레알에서의 생활을 마친 김우홍은 이후 UD 알메리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B 팀 등을 거쳤고 2018년 1월엔 FC서울 유니폼을 입으며 한국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FC서울에서의 2년 반 동안 김우홍은 K리그1 한 경기에 나서는데 그쳤고 결국 올 여름 군 복무 해결을 위해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스포츠니어스>는 군 복무와 선수 생활을 병행하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김우홍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눠봤다.

반갑다. 근황 소개를 부탁한다.
6월 1일 훈련소에 입소해 한 달간 훈련을 받고 7월에 수료를 했다. 원래는 고향인 풍기에 있는 요양원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를 하다가 산업기능요원으로 옮기게 됐다. 오전에는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를 하고 퇴근을 하자마자 팀 훈련에 합류를 한다. K4리그 FC남동에는 7월 24일에 입단했다. 컨디션이 올라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100%가 아니다.

하루 일과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아침에 7시 50분쯤에 일어나 씻는다.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8시 40분까지는 출근을 한다. 그렇게 오후 6시 10분에 일이 끝나면 바로 숙소로 와 저녁을 먹고 또 저녁을 먹자마자 팀 운동에 참여한다.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저녁 10시 반 정도가 된다. 퇴근을 하고 나면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피곤하니까 바로 자게 된다. 이런 하루 일과가 계속 반복된다. 내 시간이 없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은 일요일 정도다. 평일에는 출근을 병행하고 K4리그 경기는 토요일에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은 화장품 공장이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라 힘들긴 하다. 화장품 출고도 하고 통 같은 것도 날라야 한다. 또 세척도 한다.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 근무지 위치가 경기장 근처에서 멀지 않다. 8분 정도 거리다. 나름대로 노력 중이긴 한데 아직까지는 적응이 안된다.

산업기능요원은 복무 기간이 어떻게 되나?
현역은 18개월, 사회복무요원은 21개월, 산업기능요원은 23개월이다. 6월부터 시작을 했으니 4개월 정도 됐다. 제대는 2022년 5월이다. 제대를 하면 원 소속팀인 FC서울로 돌아간다.

군 복무를 시작하며 FC서울과 관계가 정리된 줄 알았다.
아니다. 구단과 이야기를 잘했다. “FC남동에 와서 군 복무를 하겠다”고 말씀드렸고 군 생활이 끝나면 서울로 돌아가는 걸로 이야기가 정리됐다.

훈련소 생활은 어땠나?
원래 몸무게가 74kg~75kg 정도 나갔다. 훈련소에 들어가서는 ‘관리를 하자’는 생각으로 밥을 적게 먹었다. 야채 위주로 먹고 간식은 먹지 않았다. 따로 훈련도 했다. 마침 그곳에 계시는 간부님들이 내가 축구선수인 걸 알아서 융통성을 발휘해 주시기도 했다. 식단 조절도 하고 운동도 해서 수료했을 때는 살이 엄청 많이 빠졌다. 67kg가 됐다. 주위에 상주상무에 갔다 온 형들과 선배들이 “훈련소에 갔다 오면 네 몸이 아닌 남의 몸이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을 땐 느끼지 못했는데 정말로 훈련소에 갔다 오니 몸이 다 따로따로 놀더라. 처음에는 힘들었다. 지금은 점점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한 60~70% 됐다.

신체검사에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은 이유는 뭔가?
다친 곳이 있었던 건 아니다. 학력 때문에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초등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하고 스페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중학교 졸업을 하지 못했다.

지네딘 지단 감독의 아들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엔조 지단과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에서 같이 공을 찼다. 나하고 동갑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연락을 못했는데 엔조가 아버지와 똑같이 미드필더를 본다. 엔조가 경기를 하는 스타일을 보면 아버지만큼의 실력은 아니어도 아버지와 비슷한 면이 있다. 레알 유소년 팀에 있을 때 우리가 주말마다 경기를 하면 지단 감독님과 그 가족들이 경기를 보러 오셨다. 엔조가 프랑스, 스페인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때 당시에 엔조와 친했다.

엔조뿐만 아니라 그때 같이 레알에 있던 선수들 중에 지금 잘 된 선수들이 많다. 다니엘 카르바할, 알바로 모라타, 파블로 사라비아, PSG의 헤세 로드리게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마르코스 요렌테 등이 같이 레알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했던 친구들이다. 최근에는 애들이 워낙 상위 클래스로 올라가는 바람에 연락을 못했다. 특히 요렌테랑 많이 친했는데 요렌테와는 아직까지 연락을 하고 지낸다. 요렌테와 요렌테 부모님이 날 잘 챙겨줬다. 같이 만나기도 했었고 식사도 대접해 주셨다.

ⓒ EBS 방송화면 캡쳐

처음 스페인에 갔을 때 이야기를 듣고 싶다.
중1때 스페인을 갔는데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엄청 힘들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전지훈련에 가면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상당히 많이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경험을 많이했다고 느껴지지만 그때 당시엔 스페인에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국제전화도 엄청 많이했다. 처음 중1때 스페인에 갔을 땐 레알마드리드나 알메리아가 아닌 ‘빨렌시아’라는 팀에 입단했다. 발렌시아랑은 다른 알파벳 ‘P’로 시작하는 팀이었다. 그곳에서 뛰다가 레알마드리드에 스카우트가 되어서 레알로 갔다.

레알마드리드에 입단했을 때 나이가 몇 살인가?
한국 나이로 15살인가 16살이었다.

레알의 제안을 받았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그렇다. 처음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레알에서 제안이 왔다. 그때 기분은 뭐… 상상도 못한다. 하지만 이후에 1~2년 정도 뛰다가 비자 갱신을 하지 못해 레알에서 나왔다. 그때 많이 울었다. 학생 비자로 스페인에서 뛰는 거기 때문에 비자를 매년 갱신해야 했다. 하지만 실수가 있었다.

에이전시에서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건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레알에서 시즌을 잘 마쳤다. 주대표도 했고 그 시즌에 잘했다. 나는 당연히 ‘재계약을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구단에선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그때 당시 감독님과 코치님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봐 주시겠다”고 했는데 비자 갱신 문제였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왔다. 그때가 고1 정도였다. 정말 많이 울었다. 이후에 서류를 다시 준비해서 알메리아로 갔다. 알메리아에선 (김)영규랑 같이 있었다.

얼마전에 김영규와도 인터뷰를 했다.
영규는 중학교 졸업을 하고 스페인으로 왔다. 알메리아 시절 영규와 같은 방에서 지냈는데 영규하고 참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정말 아끼는 친구다.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매일 만난다. 고향도 풍기읍으로 같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끼리도 서로 알고 지냈던 둘도 없는 가족 같은 사이다. 우리 둘 모두 풍기 토박이다. 풍기가 ‘촌’이다. 본가는 아직도 풍기에 있다. 한 번씩 시간이 되면 내려가는데 이번 추석 때도 내려갈 예정이다.

풍기 공기가 정말 좋다. 부모님이 내가 축구하는 걸 거의 못 보셨다. 거의 영상으로 보셨지 실제는 못 보셨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는 가까이서 볼 수 있으니 좋아하신다. 스페인에 10년을 있었는데 10년 내내 나 혼자 지냈다. 아버지가 딱 한 번 오신 게 전부였다. 어머니는 스페인에 와보신 적이 없다. 시즌 끝나고 여름에 항상 한국으로 왔다. 1년에 딱 한 번씩이었다. 그때가 힐링하는 시간이었다. 그때밖에 시간이 나지 않았다.

레알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쉬웠던 점이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만약 그곳에 더 있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상상을 자주 하긴 한다. 하지만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더 노력을 해야 한다. 더 잘 준비해서 소속팀에 돌아가서도 잘해야 한다. 내 목표는 아직 정말 크다. 정말 잘해야 한다.

레알 시절 1군 선수들과 훈련을 함께해본 적도 있나?
같이 훈련을 해보진 못했다. 하지만 훈련장에서 1군 선수들의 모습을 매일 보긴 했다. 호날두도 매일 봤다. 처음 호날두를 봤을 땐 정말 윤기가 나더라. 신장도 크고 몸도 좋았다. 처음 레알에 갔을 때 좋은 선수들이 정말 많았다. 구티, 라울, 반니스텔루이 등 유명한 선수들이 굉장히 많았다. 인사만 하는 정도였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최근에도 엘 클라시코를 챙겨보나?
당연히 본다. 재밌는 경기이지 않나. 항상 챙겨볼 수 있으면 챙겨본다. 하지만 새벽에 해서 챙겨보기 힘들 때는 재방송으로라도 본다. 지금도 여전히 레알을 응원한다. 유소년 팀들도 엘 클라시코를 했었는데 우리가 이기기도 했다. 성인 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유소년 엘 클라시코도 정말 치열하다. 엘 클라시코 뿐만이 아니라 프리시즌 때는 다른 나라에 가서 유명한 팀들이랑 많이 경기를 해보기도 했다.

스페인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개성이 강하다고 들었다.
각 나라마다 축구 스타일이 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축구를 존중해야 한다. 초등학교 2학년 2학기부터 축구를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배웠던 축구랑 스페인에서 배웠던 축구가 달랐다. 스페인에 10년 동안 있었는데 스페인에 오래 있으면서 느낀 점이 바로 우리 한국 선수들이 어렸을 때는 축구를 잘한다는 거다. 기본기는 어디 내놔도 부족하지 않다. 물론 스페인 애들도 기본기가 좋다. 그런데 스페인 선수들은 크면 클수록 실력이 늘더라. 왜 그런지 계속 생각해봤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더라. 스페인 애들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성장을 한다.

스페인은 체력 운동을 많이 시키지 않는다. 대신 전술적인 부분에 집중하거나 패스게임, 슈팅게임을 많이 한다. 프리시즌 때는 뛰는 훈련을 어느 정도 하긴 하는데 그렇게 체력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선수들이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는 특징도 있다. 하지만 난 예의를 잘 지켰다. 열심히 하는 부분에 있어서 항상 감독님들께 인정받았다. 스페인 감독님들의 의견을 잘 수용했다. 어필을 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내가 잘못된 점이 있으니 감독님들이 말씀을 하시는 거다. 그런 걸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면 안된다.

‘레알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이 되진 않나?
내가 레알에 간 것이 이슈가 됐고 팬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다. 그 관심에 보답을 하기 위해 지금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잘 지켜봐 주시면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FC서울에서 뛰었다.
서울에 3년 가까이 있었다. 1군 경기에도 데뷔를 했다. 데뷔를 하고 나서 한창 몸이 좋았는데 그때 또 다쳤다. 훈련 도중에 팔꿈치를 다쳐 내측, 외측 부분 수술을 했다. 그때도 정말 많이 힘들었다. 1군 경기에서 뛰고 다음 경기까지 2주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팔꿈치가 180도 돌아가서 수술을 했다. 이후에 복귀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지금도 약간의 통증은 있지만 이젠 괜찮다.

성인 무대에서 아직 뚜렷한 실적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 아직 보여준 게 없다. 내가 부족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기회는 꼭 찾아올 거고 그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 중이다. 여기서 몸을 잘 만들어 제대하고 나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 중이다.

ⓒ mbc sports + 방송화면 캡쳐

앞으로 가지고 있는 목표는 뭔가?
큰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국가대표도 해보고 싶다. 축구인들이라면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마음을 가지는 건 어느 선수든 똑같지 않나. 잘해서 태극마크도 달고 한국 무대에서 잘 뛰고 싶다. 또 유럽으로 다시 한 번 가서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목표다. 남은 시즌 동안 득점도 많이 하고 도움도 많이 올려 팀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남동이 K4리그에서 K3리그로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팀에서 내가 고참이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야 한다. 우리 팀에 어린 선수들이 많다. 고참이다 보니 책임감도 있다.

남동에선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이전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봤던 적이 없는데 지금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고 있다. 원래는 측면 윙어나 섀도우 스트라이커처럼 공격적인 포지션에서 뛰었다. 서울에서도 그랬다. 아직까지 내 경기력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다. 앞으로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면서도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 거다.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배워놓으면 나중에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감독님이 주신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올 시즌 K4리그가 8경기 정도 남아있다. 적지 않은 경기 숫자다. ‘남동을 K3리그로 승격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팀에 헌신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곳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다. K4리그라고 무시하면 안될 것 같다.

ⓒ FC남동

어린 나이에 많은 주목을 받았던 김우홍은 이후 순탄치 않은 축구 인생을 살았다. 레알마드리드를 아쉽게 떠나야만 했고 의지를 갖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지만 불의의 부상 등이 겹치며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김우홍은 국가대표와 유럽 진출이라는 또 하나의 꿈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내는 중이었다. “늦게 핀 꽃이 아름답다”라는 말처럼 먼 길을 돌고 돌아온 김우홍이 다시 한 번 날갯질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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