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국이 만든 동해안더비의 또다른 풍경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울산=조성룡 기자] 코로나19 시국에 동해안더비의 풍경도 제법 바뀌었다.

15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울산현대와 포항스틸러스의 하나원큐 K리그1 2020 경기는 우리가 잘 아는 동해안더비다. K리그1의 대표 흥행 카드 중 하나다. 역사적으로 양 팀은 우승컵 결정전이나 AFC 챔피언스리그 등 중요한 길목에서 만나 묵직한 한 방을 날리는 사이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우리가 생각해오던 더비의 느낌을 기대하고 경기장에 가기는 어려웠다.

사실 ‘더비’라는 것은 맞붙을 때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이는 선수 뿐만 아니라 팬들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싸울 때 포항 응원석에서는 “울산은 별이 두 개래”가 흘러나오고 울산 쪽에서는 “고철 X들에겐 미래가 없네”를 불러야 경기 종료 후 희비가 더욱 엇갈린다. 이긴 팀의 카타르시스와 패배한 팀의 쓰라림은 그만큼 커진다.

관중석의 분위기가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 포항 김기동 감독은 과거 동해안더비를 회상하면서 “우리가 밀리고 있을 때 관중들의 함성 소리에 선수들이 더 힘을 받아 이길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더비라서 더욱 그렇다. 더비이기에 관중들의 간절함은 더욱 커지고 이는 고스란히 선수들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동해안더비가 더욱 재밌는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 K리그 가이드라인 상 원정석은 운영하지 않는다. 원정팀 색상의 의류를 입거나 응원할 경우 경기장에서 퇴장 당할 수도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당연히 그래야 한다. 옳은 결정이다. 그러나 과거 우리가 알던 더비의 분위기를 100% 되살리기는 어렵다. ‘이 시국’에서는 꽤나 멀어보이는 꿈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경기장에 입장한 3천명 남짓의 관중들은 이 경기가 동해안더비라는 것을 증명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박수 소리 하나가 주는 위압감은 상당했다. 포항이 공을 잡으면 침묵과 함께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울산의 공격 때는 일사불란하고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그만큼 관중들이 경기에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마 이 경기가 포항의 홈이었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해안더비는 선수들 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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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팀 선수들도 여전했다. 이날 경기는 울산의 2-0 승리로 끝났다. 울산 김도훈 감독은 승리의 기쁨 중에도 “작년의 치욕을 되뇌이고 있다”라고 순간 날을 세웠고 포항 김기동 감독은 동해안더비에 대해 “항상 팬들 사이에서 예민하다”라면서 “올해는 감독 입장에서 압박감이 있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시국에서 동해안더비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후끈 달아올랐다면 이제는 꽤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겨야 한다는 열망까지 식은 것은 결코 아니다.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게 하는 응원전과 함성은 이제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박수 소리로 대체됐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원정팀 입장에서는 더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포항의 입장에서는 올 시즌 동해안더비가 더욱 골치 아플 것이다. 홈에서 열린 1차전은 무관중 경기였다. 그리고 2차전 원정에서 울산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에 맞서야 했다. 게다가 오는 10월 28일 예정되어 있는 FA컵 4강전 경기도 울산의 홈이다. 포항은 만일 파이널 라운드에서 한 번 더 맞붙는다면 홈 경기의 가능성이 생긴다. 동해안더비에서 관중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효과적으로 활용했던 김기동 감독은 꽤 고민이 많을 것이다.

어쨌든 지난 시즌 K리그에 충격적인 결과를 안겨줬던 동해안더비는 올 시즌에도 이렇게 조금씩 이야깃거리를 쌓아가고 있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동해안더비는 동해안더비다. 비록 낯선 풍경이지만 선수들과 팬들은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동해안더비를 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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