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신인’ 안양 김동수가 말하는 가장의 책임감과 독일 시절


[스포츠니어스|안양=전영민 기자] 올 여름 FC안양 유니폼을 입은 김동수는 한때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차세대 유망주로 평가받던 선수다. 영등포공업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20살이던 지난 2014년 독일 명문 함부르크와 계약을 맺으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함부르크 2군팀과 일본 오미야, 독일 VfB 뤼베크 등을 거치며 경력을 이어온 김동수는 이번 여름 안양 유니폼을 입으며 새 도전에 나서게 됐다. <스포츠니어스>는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을 수 있는 26세의 나이에 K리그에 입성한 ‘중고 신인’ 김동수를 29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 만났다.

안양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출전 기회를 잡고 있다.
팀에 온 후 두 경기를 뛰었다. 충남아산전에선 후반에 교체 투입되었고 수원FC전에선 첫 선발전을 치렀다. 수원전에서 오랜만에 풀타임 경기를 소화했다. 안양에 오기 전 독일 뤼베크라는 팀에서 뛰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3월 중순에 시즌이 중단됐다. 그러니 거의 서너 달 만에 풀타임 경기를 뛴 것이다. 수원전 내 경기력이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다. 준비한대로 잘할 수 있었는데 다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화가 많이 났다.

독일에 있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축구 스타일도 다르고 독일에서 배웠던 훈련 스타일과도 다르더라. 이곳에 적응을 하며 독일에서 배우면서 좋았던 부분들과 내 스타일을 융합해 많이 보완을 해나가야 할 것 같다. K리그만의 스타일이 있으니 거기에 맞춰가려면 훈련 때도 계속해서 내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리그 경기도 많이 보면서 스스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독일리그는 피지컬이 강하고 압박 속도가 빠르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빠르면서도 공을 잘 차는 스타일이다. 경기를 뛰면서 빨리 적응을 해야 한다.

한국에 온 지는 얼마나 됐나?
3월에 시즌이 중단되기 전 우리 팀이 리그 1위였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결국 시즌이 중단됐고 우리 팀은 3부리그로 승격했다. 원래 뤼베크와 내 계약 기간은 6월 30일까지였는데 처음에는 구단이 나와 재계약에 긍정적이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너랑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아서 한국으로 왔다. 6월 중순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우리 팀 선수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내 계약 여부가 결정됐다. 구단에서도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더라.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나도 “알겠다”고 하고 독일 생활을 정리했다. 그렇게 귀국해 2주간 자가격리를 했다.

독일에서 나오며 축구를 더 이상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군대도 가야 하는 나이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빨리 군대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독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내심 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그때 원하는 팀이 있으면 다시 독일로 나가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아무한테도 연락을 하지 않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감독님이 동생을 통해 연락이 오셔서 “경기 영상을 보내달라”고 하셨다. 이후에 K리그2 모 팀으로부터 “관심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1~2주 정도 같이 훈련을 하자”는 말을 듣고 그 팀에 합류해 대학교 팀과의 연습경기에서 풀타임으로 뛰었다. 분위기가 괜찮았던 것 같다. 경기도 준비한대로 잘 됐고 새롭게 만난 에이전트분도 “같이 해보자. 많이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결국 안양으로 왔다.
방금 말한 대학교 팀과의 연습 경기가 끝나고 에이전트분이 서울로 올라가시는 중에 “안양에서 연락을 해왔다. 내게 상당한 큰 관심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안양에서 정식 제안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래서 대표님도 “안양에서 이적 제안이 들어왔다”고 내가 연습경기를 뛰었던 팀에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그 팀에선 “수뇌부에서 승인이 나야 한다. 하루 정도 기다려달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안양은 나를 적극적으로 원했고 그런 모습에 나 역시 안양에 마음이 더 갔다. 에이전트,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깊이 고민했고 결국 안양으로 오게 됐다.

오랜만에 한국인 동료들과 공을 차게 됐다.
팀에 합류한지 한 2주 정도 된 것 같다. 원래 내 성격이 선수들한테 다가가는 성격이고 이야기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팀에 선배들이 많은데 형들이 다들 잘 챙겨주셔서 적응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모국어다 보니까 불편함 없이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는 점도 편하다. 표현하고 싶은 부분을 다 표현할 수 있으니까 편하고 집중도 된다. 독일은 선수가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문화다. 처음에 갔을 땐 그런 걸 잘 몰랐는데 나도 시간이 지나며 내 생각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표현하는 게 더 편해지더라. 개인적인 의견이 있거나 잘 안 맞는 게 있으면 감독님과 코치님, 선수들에게 바로바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까 100% 내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점이 아쉽고 답답했는데 이제는 한국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좋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벌써 결혼을 했는지는 몰랐다.
내가 빠른 95년생이다. 작년에 독일에서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 결혼식은 아직 올리지 않은 상태다. 나중에 결혼식을 하더라도 가족들만 모여서 할 생각이다. 아내와는 독일에서 2년 정도 같이 살았다. 내가 경희대학교를 나왔는데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아내가 3학년이었다. 나보다 두 살 많고 태권도 선수였다. 학교를 다닐 땐 서로 인사만 하는 정도였는데 이후에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락을 하다가 나는 함부르크로 이적하며 독일로 가게 됐다. 독일에서 휴가를 받아 한국으로 오면 아내와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했다. 진지하게 만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2014년 6월 8일부터 만났으니 벌써 6년이 넘었다.

장거리 연애라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계속 외국 생활을 하느라 길게 보지 못했을 땐 한 1년 정도 못 봤다. 힘들었지만 아내가 날 잘 기다려줬다. 날 많이 이해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직도 많이 고맙다. 내가 함부르크에서 뛰다가 잠시 일본을 거쳐 다시 독일에 갔을 때부터 같이 살게 됐다. 지금은 이 근처인 인덕원에서 함께 살고 있다. 안양은 처음이라 이곳에 대해서 잘 모른다. 원래 고향은 전주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어떻게 설득했는가?
아직 우리 부모님과 아내 부모님이 상견례도 하지 못했다. 우리 집이 전주고 아내 부모님 집이 평택이라 전주에 내려갈 시간이 없으면 아내 집에서 자고 밥도 먹고 그러며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많이 뵀다. 그렇게 날 지켜보시며 날 믿어주신 것 같다. 내가 가진 건 딱히 없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항상 자신감 있고 성실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허락했다”고 말씀하시더라. “같이 독일에 가서 살고 결혼도 해라”라고 허락해 주셨다. 이제 시작이다. 잘해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효도도 해야 한다.

성인 무대 생활을 독일에서 시작했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1학년 11월쯤으로 기억한다. 그때 태백에서 대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회를 하다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한 에이전트한테 온 전화였는데 “독일에서 너에게 관심이 있다. 독일로 나가볼 생각이 있니?”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버지랑 말씀해보세요”라고 했다. 당시엔 내가 에이전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꽤 많다고 들어서 ‘아 이 전화도 그런 걸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아버지한테 말씀드렸다. 아버지도 그 에이전트분의 전화를 받고 차단을 하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와서 “아버님이 전화를 안 받으시는데 잘 말씀드려달라”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학교 근처 카페에서 에이전트와 직접 만났는데 “독일로 나가서 한 번 테스트를 받아보자”고 하셔서 별 생각 없이 독일로 넘어갔다. 그렇게 독일에서 1주일 정도 훈련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독일 생활이 시작됐다.

함부르크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했나 보다.
그때 당시에 어떤 플레이를 하고 어떤 마음으로 테스트를 봤는지는 자세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처음이다 보니까 한국에서 배웠던 대로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19세 이하 팀에서 6개월 생활을 했고 이후에 2군팀으로 갔다. 구단에서 마련해준 집에서 살았다. 밥을 직접 해먹고 훈련을 했다. 외국에서 밥을 먹으며 생활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까 그냥 닥치는 대로 선수들과 부딪치며 이야기하고 책을 보며 독일어 공부를 했다. 통역사도 없었으니까 당장 훈련 때 “왼쪽” “오른쪽” 이런 말들도 직접 배워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독일어를 배우며 조금씩 적응을 했고 선수들과도 빨리 친해졌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지금 독일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잘하는 정도는 아니고 감독님과 일대일 이야기는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생활하는데 불편함은 크게 없는 정도라고 할까. 다만 독일어가 워낙 어렵다 보니까 나중에는 공부하는 게 귀찮아지더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같이 생활한 한국 선수들은 없었나?
권로안 선수가 나와 같이 함부르크와 계약을 맺었다. 지금 대전에서 뛰고 있는 (서)영재도 나중에 함부르크로 왔다. 확실히 혼자 있는 것보단 같이 있는 게 낫더라. 하지만 더 많이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점은 조금 아쉽다. 나는 주로 함부르크 2군팀에 있었는데 2군팀은 4부리그에 소속이 되어 있었다. 4부리그에서 1위를 하면 3부리그로 승격이 가능한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위 클럽들의 2군팀들은 3부리그까지만 승격이 가능하다. 2부리그로는 올라갈 수가 없다. 바이에른 뮌헨B 팀도 3부리그 소속이고 볼프스부르크도 옛날엔 B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함부르크에서 2017년까지 뛰다가 일본으로 가게 됐다.

원래 독일에 있을 때 내 에이전트가 티스라고 손흥민 선수의 에이전트였던 분이다.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고 에이전트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에이전트를 바꿨다. 지금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그때 일본에 가지 않고 독일에 더 있었으면…’ 이라는 생각은 든다. 당시에는 K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장 해외에서 데뷔를 하면 5년 동안 K리그에 돌아오지 못하는 룰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그러다 보니 갈 수 있는 곳이 일본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본 여러 팀에서 테스트를 보다가 오미야에 입단했다.

오미야는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명문이다.
내가 들어갔을 때 팀이 J1리그에서 J2리그로 강등이 된 상태였다. 원래는 이천수, 박원재 선수도 있었던 명문팀으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도 적응엔 큰 문제가 없었다. 원래 내 성격이 새로운 언어를 빨리 배우고 싶어하는 성격이라 통역사형이랑 같이 일본어 공부도 하고 선수들과 대화를 하며 일본어를 익혔다. 하지만 축구 스타일은 역시 독일과 많이 달랐다. 일본은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축구를 한다. 어떻게 공을 잡고 패스를 해야 하는지 이런 방법론에서 독일과는 많이 달랐다. 숙소 생활이 가능했다는 점 역시 독일과 달랐다. 일본에서도 따로 독립을 해 살 수가 있었지만 일본 생활이 처음이고 친구들과 친해질 겸 숙소에서 지냈다. 1인 1실이었고 훈련장과 클럽하우스가 바로 옆이라서 편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하고 훈련 시간이 되면 나와서 훈련을 하고 이런 방식이었다.

일본, 독일, 한국까지 세 나라에서 축구를 경험 중이다. 어떤 차이가 있나?
오미야에선 훈련을 강하게 했다. 반면 독일은 훈련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약간 짧고 굵게 하는 스타일이랄까? 힘들진 않았다. 하지만 이젠 한국에 왔고 나도 한국 사람이니 여기에 적응을 해야 한다. 처음엔 안양 훈련스타일을 잘 모르고 왔는데 하다 보니까 형들이 왜 “힘들다”고 하는지 조금씩 느껴지더라. 막상 할 때는 힘들긴 하다. 하지만 어쨌든 다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거니까 힘들어도 잘 적응을 해야 한다. 아직 체력도 많이 부족하고 몸 상태도 끌어올려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이 다 힘든 거라고 생각한다. 축구만 힘들겠나.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도 다 힘드실 것이다. 축구는 내 직업이다. 힘들어도 해야 한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멋진 마인드다.
일단 나는 가장이고 집에서도 장남이다. 집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다. 아내도 있고 나이 자체도 이제 스스로 자리를 잡고 무언가를 해야 할 나이다. 그럴 나이지 않나. 그러다 보니까 책임감이 많이 있다. 이제 시작인 만큼 이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할 것 같다. 나도 잘하고 안양도 잘되면 서로 좋은 것 아니겠나.

여담이지만 말을 굉장히 잘한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하고 많이 있었다. 축구를 하면 어린 나이에 학부모님들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냥 “어머니” “아버지”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 또 원래 내가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껄끄러움 없이 먼저 이야기를 건네고 다가가는 게 편하다. 외국에 있을 때도 적응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안양에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선수들에게 다가가다 보니 큰 어려움이 없었다.

축구선수지만 안경을 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오전, 오후 훈련 때는 안경을 끼지 않는데 친구들과 책을 보거나 비디오미팅을 할 때는 안경을 낀다. 저녁 경기 때는 렌즈를 착용한다.

나도 어릴 땐 렌즈를 꼈는데 한 번은 축구를 하다가 헤딩을 잘못해서 렌즈가 벗겨진 적이 있다.
나도 독일에서 그런 적이 한 번 있었다. 저녁 경기라 렌즈를 꼈는데 헤딩을 하다가 상대 선수랑 부딪치고 나서 렌즈가 빠진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손으로 만져봤는데 진짜 렌즈가 빠져있어서 심판한테 상황을 설명하고 빨리 다시 렌즈를 끼고 경기를 한 적이 있다. 그래도 공에 맞고 그러지 않는 이상 딱히 불편하진 않은 것 같다. 대학교 때 내 동기가 경기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았는데 렌즈가 돌아간 적이 있었다. 조금 무섭긴 했는데 공을 더 잘보고 헤딩을 확실하게 하려면 렌즈를 끼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렌즈를 끼고 하는 중이다.

난 라섹을 했는데 통증도 없었고 회복 기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라섹 수술을 추천한다.
나도 수술 생각이 있긴 한데 아직 자세히 알아보진 못했다. 시력이 좋아진다고 하면 수술을 할 생각이 있다.

프로 생활 처음으로 한국에서 뛰는 해다.
가족들이 안양에서 경기에 나가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좋아했다. 한국에 와서 프로 무대를 뛰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살에 외국에 나갔으니 5~6년이 걸린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특히 많이 좋아하셨다. 아내와 장인어른, 장모님, 할머니도 좋아해 주셨다. 그동안 내가 경기에 나서는 걸 보여드리지 못하니 답답하기도 했고 부모님도 주변에서 “아들 축구한다며? 동수 언제 TV 나오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으셨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기회가 와서 너무 감사했다. ‘내가 더 잘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계획이다.

내 장점은 몸을 사리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하는 스타일이다. 상대와 몸을 부딪치는 게 더 좋더라. 독일에서 그렇게 배우기도 했다. 아직 많이 보완해야 하긴 하지만 독일이 빌드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깐 빌드업도 많이 익혔다. 아직 더 나아져야 하지만 빌드업, 선수들을 독려하는 부분, 경기 조율, 리딩, 반대 전환 킥, 헤딩 싸움 등에 자신이 있다. 무엇보다 K리그엔 외국인 공격수들이 많기 때문에 피지컬적으로 더 보완을 하고 멘탈적인 부분에서도 준비를 해야 한다. 수원전에서 상대 공격수들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까 개인적으로 많이 화가 났다.

ⓒ FC안양

곧 유관중 경기가 열린다.
작년에 안양 홈관중이 K리그2에서 2위였다고 들었다. 영상을 보니깐 팬들이 굉장히 많이 찾아와주시더라. 코로나19 때문에 팬들이 못 오셔서 아쉬웠다. 팬들 역시 우리 팀 순위가 작년보다 많이 떨어져 있어서 화가 많이 나실 것이다. 팬들이 다시 경기장에 오시기 위해선 우리가 경기력으로 보여드려야 한다. 승리를 하는 게 정답이다. 우리가 승리를 하면 팬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팬들께 경기력으로 보답하는 게 우선이다. 나는 수비수다. K리그엔 VAR이 있기 때문에 감독님께서도 “태클이나 몸싸움 장면에서 확실한 건 해도 되는데 함부로 판단을 하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신다. 책임감을 갖고 플레이 해야 한다.

내가 처음 와서 순위표를 봤을 때 우리 팀이 꼴찌였다.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뭐 어때. 내가 열심히 잘해서 팀 순위를 올리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 순위를 플레이오프권까지는 올려보고 싶다. 수비진에서 골을 먹지 않다 보면 지지 않을 수 있다. 수원전 이후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다. 더 많은 준비를 하겠다. 여러 핑계를 대기 보다는 스스로 부족한 점을 훈련을 통해 보완하고 하다 보면 차근차근 팀 성적도 따라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 길을 돌고 돌아 K리그에 입성한 김동수는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더불어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이미 적응을 완료하며 부진에 빠진 팀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모습이었다. 과연 김동수는 부진에 빠진 안양 수비진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까. 안양 팬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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