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코로나19 이후 K리그에서 무관중 경기를 두 달 넘게 치르고 있다. 축구에 대한 갈증과 리그를 멈출 수 없다는 의지 등이 겹쳐 어렵게 어렵게 무관중 경기가 이어지는 중이다. 처음에는 무관중 경기가 생소했지만 인간이란 게 적응의 동물인가보다. 이제는 무관중 경기가 제법 익숙해졌다. 매 라운드 경기장으로 취재를 갈 때면 ‘그래도 관중이 있는 경기보다는 교통 체증이 덜하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삼고 있다.
경기장에 입장할 때도 많은 게 달라졌다. 사전에 프로축구연맹에 경기 취재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경기장에 도착하면 연맹에서 구단에 넘긴 취재 명단이 있다. 그리고는 체온을 재고 빼곡하게 신상을 기록해야 경기장에 입장할 수 있다. 체온이 정상 범위로 확인되면 구단에서 발부한 스티커나 팔찌를 착용해야 한다. FC서울에서는 최근 QR코드를 도입해 스마트폰으로 신상을 등록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지난 18일 서울-포항전에서는 선수 파악을 위해 온 올림픽 대표팀 김은중 코치와 이민성 코치가 QR코드 앞에서 한참 헤매고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무관중 경기가 열리고 있지만 취재 환경은 여전히 부족하다. 경기 전 기자들에게는 원래 양 팀 감독과 선수들을 만나는 시간이 보장돼 있었지만 이제는 아예 사전 접촉이 차단됐다. 경기 종료 후 공식적인 기자회견이 아니면 선수단을 마주할 수 없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는 오늘 점심 메뉴는 뭐였는지, 꿈은 잘 꿨는지, 어제 밤 드라마는 잘 봤는지 시시콜콜한 질문이 가능하지만 경기 후 기자회견은 꽤나 진중하다. 선수나 감독에게 까불 수 있는 기회가 확 줄었다.
그래도 축구가 열리고 있다는 건 다행이다. 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뛰고 그걸 현장에서 기자들이 취재하고 팬들은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지켜볼 수 있는 건 구단과 연맹의 숨은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축구 뿐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를 받으면서도 세상이 그래도 돌아가는 건 이렇게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선수단을 만날 수 없는 건 답답하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현장에서 취재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무관중 경기가 두 달 넘게 진행되면서 새삼 관중의 힘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무관중 경기라도 열려서 다행이지만 경기장에서 관중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크다는 걸 크게 느끼는 중이다. 관중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그립다. 강원 조재완이 회오리 감자슛을 할 때도, 이동국의 페널티킥이 골대를 맞고 튕길 때도, 문선민이 하프라인에서부터 단독 돌파로 골을 넣을 때도, 부천과 제주가 첫 맞대결을 할 때도, 충남아산이 시즌 첫 승을 할 때도 현장에서 함께 한 팬들이 있었으면 너무나도 좋았을 것 같다.
이 모든 장면이 수 많은 함성과 합쳐져야 진정한 드라마가 되는 데 그러지 못해 너무 아쉽다. 경기장에는 각 구단마다 관중의 함성을 입힌 음향을 틀고 있다. 처음에는 꽤 그럴싸했지만 기계적인 음향과 팬들의 진짜 함성은 큰 차이가 있다. 홈팀의 골이 터져도 경기장에서 장내 아나운서가 “골”이라는 함성을 크게 내지르지 않으면 곧장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선수들끼리 충돌하면 즉각 야유도 터지고 아까운 장면이 나오면 탄식도 나와야 하는데 기계적인 음향으로는 여기까지 담아낼 수가 없다.
축구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한다. 하지만 관중이 있어야 완성될 수 있다는 걸 무관중 시대에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때론 경기가 끝나면 공격 의지가 없는 팀에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경기장에서 관중이 보내는 야유와 지탄의 목소리가 그립기도 하다. 무관중 경기가 계속되면서 축구에서 관중은 필수요소라는 걸 점점 더 느껴가고 있다. 경기 전 양 팀 선수들이 몸을 풀 때 관중석에서 서서히 터져 나오는 설렘을 담은 응원 소리가 그립다. 아무리 멋진 내용의 축구 경기가 열려도 관중이 없으니 완전하지 않은 느낌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관중 없는 K리그에서 아직 팬들이 직접 보지 못한 게 많다. 인천유나이티드 임완섭 감독은 팬들이 현장에서 외치는 자신의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팀을 떠났다. 부산아이파크는 구덕운동장의 관중 앞에서 2002년 10월 20일 이후 아직 1부리그 승리를 선물하지 못했다. 수원삼성 수비수 헨리는 아직 K리그 현장에서 팬들에게 인사한 적이 없고 포항의 ‘1588’ 라인도 아직 경기장에서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함께 뛰어본 적이 없다. 전남 최효진과 서울 고요한의 400경기 출장, 성남 김영광의 500경기 출장이라는 대기록도 관중의 박수를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치러졌다. 안타깝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19 이후로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많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가 있기 전처럼 일상을 보내는 건 어려울 수도 있다.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텅 빈 경기장 기자석에 앉아 있을 때면 하루라도 빨리 이 경기장에서 관중의 함성 소리가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라운드엔 여전히 선수들이 있고 명승부가 있지만 관중이 없는 축구장은 참 쓸쓸하다. 하루라도 빨리 이 멋진 축구를 취재진이나 관계자들만이 아닌 모두가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주말 수원월드컵경기장에 가 앉아 있으니 이런 내용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한참 동안 이 가사를 곱씹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리를 걷고 친구를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은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힘껏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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