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현대제철 정성천 감독이 그리는 여자축구와 WK리그의 꿈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인천현대제철 정성천 감독은 큰 꿈을 꾸고 있었다.

WK리그에서 대표적인 팀을 꼽으라고 한다면 모두가 인천현대제철을 꼽을 것이다. 이유가 다 있다. 인천현대제철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실업축구단이자 현재 가장 강한 팀이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WK리그 7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여자축구의 명가다. 게다가 가장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했던 팀이고 현재도 팀의 상당수가 국가대표의 부름을 받고 있다.

이 인천현대제철에 새로운 감독이 등장했다. 바로 정성천 감독이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정 감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알고보면 여자축구계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 바로 정 감독이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정 감독은 한국 여자축구 역사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스포츠니어스>는 최근 완공된 인천현대제철의 새 클럽하우스에서 정 감독을 만났다.

알고보면 대전의 창단 ’10번’이었던 정성천
정 감독의 선수 시절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다. 동북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실업축구팀인 할렐루야에 입단했고 1997년 대전시티즌이 창단하면서 팀을 옮겼다. 당시 그가 달았던 등번호는 에이스를 상징하는 10번이었다. “내가 10번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라고 수줍게 웃은 정 감독은 그 때의 기억을 조금씩 꺼내며 말했다.

“아무리 대전(당시는 시민구단이 아닌 컨소시엄 구단)이 열악하다고 하지만 실업축구의 환경보다는 훨씬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대전하나시티즌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전이 잘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정 감독은 2001년까지 대전에서 활약한 뒤 축구화를 벗었다. 할렐루야를 통해 성인 무대에 뛰어든지 불과 6년 만의 일이었다.

우연이 만든 정성천과 여자축구의 인연
정 감독이 여자축구와 인연을 맺게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은퇴 이후 거제고등학교 코치를 시작으로 고등학교 무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던 정 감독은 2010년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에 부임했다.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는 협회 내에서 활동하며 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연령별 대표팀 등에 파견된다. 그는 2010년 여자 U-20 월드컵을 앞두고 해당 대표팀의 코치 자리를 맡게 된다.

하지만 이 작은 우연은 정 감독에게 큰 계기가 된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예상을 깨고 승승장구하며 세계 3위를 차지한다. 이 때 활약했던 지소연, 정설빈, 이민아 등은 현재도 여자축구의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대회를 위해 떠날 때는 외로웠지만 돌아올 때 공항에 몰려온 취재진의 관심은 엄청났다. 지금도 그 때가 재현되기를 꿈꾸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후 정 감독은 본격적으로 여자축구에서 지도자 인생을 살았다. 2010년부터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의 수석코치를 맡아 아시안게임 3회 연속 동메달에 기여했고 2015년 여자 월드컵 16강 진출도 이뤄냈다. 2012년부터는 U-20 여자 대표팀 감독 또한 병행했다. U-20 대표팀에서 정 감독은 2012년과 2014년 월드컵 8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야말로 여자축구에서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너무나도 미안함에 사무친 2019 여자 월드컵
어찌보면 정 감독은 여자축구계에서 평온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잔잔한 물가에 작은 조약돌이 던져지는 일이 생긴다. 바로 정 감독의 모교인 성균관대에서 2018년 말 감독직 제의를 받은 것이다. 당시 성균관대는 설기현 감독의 후임을 찾고 있었다. 여자축구에서 10년 가까이 생활한 정 감독에게 대학 무대는 또다른 도전일 수 있었다.

“정말로 많은 고민을 했다. 모교의 부름에도 제자들 생각에 쉽게 응할 수 없었다.” 그가 이토록 고민했던 이유는 다름아닌 월드컵 때문이었다. 정 감독은 한창 여자 대표팀의 수석코치로 2019 프랑스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었다. 1년도 남지 않은 대회 준비를 접고 성균관대에 가는 것은 고민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정 감독은 성균관대에서의 도전을 택했다. “그 때 여자 대표팀 선수들에게 ‘왜 우리를 두고 떠나냐’라는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다.” 정 감독은 이 이야기를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정 감독은 성균관대에서 춘계대학연맹전 우승과 U리그 권역 우승 등 나름대로 성과를 내며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정 감독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여자 대표팀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은 2019 프랑스 월드컵 개막전에서 홈팀 프랑스에 0-4로 패배한 것을 시작으로 나이지리아에 0-2, 노르웨이에 1-2로 패하며 3전 전패를 기록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에 있으면서 여자 월드컵의 모든 한국 경기를 다 봤다.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내가 성균관대에 가면서 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너무나도 미안했다. 차라리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면 그나마 마음이 좀 더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거두니 미안할 뿐이었다. 아직까지도 그 때의 미안함은 여전하다.”

“여자축구를 이끄는 마음 따뜻한 감독이 되고 싶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정 감독은 다시 여자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인천현대제철이 새로운 사령탑에 정 감독을 앉힌 것이다. 그 때가 2019년 10월이었다. 여자축구 최강팀의 지휘봉을 잡았다는 기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하필이면 인천현대제철이 WK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눈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임 후 팀을 파악했을 때 내 색깔을 입히는 것보다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파악했다. 다행히 우승으로 이어졌다.” 이후 FIFA/AFC 여자클럽챔피언십 등 쉴 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2013년부터 WK리그 7연패라는 대기록을 세운 인천현대제철은 지금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클럽하우스다. 최근 인천현대제철은 WK리그 최초로 여자축구단 전용 클럽하우스를 완공해 가동하기 시작했다. K리그 구단 못지 않은, 어찌보면 더 나은 수준의 시설이다. 정 감독 또한 “모기업의 도움 덕분에 이렇게 훌륭한 시설에서 축구에 전념할 수 있다”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하지만 그만큼 책임감 또한 뒤따른다. 한국 여자축구계에서 ‘최고’를 자부하는 인천현대제철이다. 선수단 중에는 국가대표도 즐비하다. 최근에는 스페인 무대에서 뛰던 장슬기가 국내로 복귀하며 이 팀을 선택했다. 결국 인천현대제철은 한국 여자축구라는 짐까지 함께 짊어져야 한다. 정 감독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여자 대표팀 콜린 벨 감독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콜린 벨 감독과는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상당히 열정이 있는 감독이다. 자주 연락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고 있다. 인천현대제철의 많은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 차출되는 만큼 국가대표와 소속팀을 오가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더 많은 인천현대제철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뽑혔으면 좋겠다. 지금도 많은 선수가 차출되지만 더 보냈으면 하는 것이 내 욕심이다.”

그래서 정 감독은 경기력 뿐 아니라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여자축구가 세계적인 수준의 경기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여자축구를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코칭스태프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작은 일이라도 여자축구를 알릴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서고 싶다. 많은 분들께서 여자축구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도 여자축구를 발전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제 정 감독과 인천현대제철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인천현대제철의 독주 체제를 이어감과 동시에 WK리그와 여자축구의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정 감독도 의욕이 넘친다. 그의 꿈은 간단하지만 크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가 부임하고 있는 동안 인천현대제철의 연패 기록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라고 웃으면서 “여자축구의 발전에 노력한 지도자, 그리고 팬들과 선수들에게 마음 따뜻한 감독으로 남고 싶다”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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