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홈구장에 걸린 최호정을 향한 특별한 걸개 ‘ONE AND ONLY’


[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지난 14일 안양종합운동장에 걸린 FC안양 주장 최호정을 위한 걸개에는 꽤 특별한 사연이 담겨있다.

FC안양과 충남아산의 하나원큐 K리그2 2020 6라운드 경기가 펼쳐진 14일 안양종합운동장. 무관중 경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경기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썰렁했다. 하지만 평소 안양의 서포터즈가 자리하는 골대 뒤 가변석에는 머플러, 북 등 보라색 응원 물품들이 가득했다. “무관중 경기가 계속되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서포터즈석을 꾸미면 선수들에게 분명 힘이 될 것이다”는 안양 서포터즈는 매 경기 전 경기장에 도착해 서포터즈석에 보라색 응원도구들을 놓고 간다.

그런데 이날 안양 서포터즈석엔 평소와 다른 응원 물품이 하나 더 등장했다. 바로 주장 최호정을 위한 걸개였다. 서포터즈가 본인의 지지팀 선수를 위한 걸개를 제작하고 경기장에 펼쳐놓는 것은 축구에서 일반적인 일이다. 팀의 주장인 최호정의 걸개가 경기장에 등장하는 것 또한 그런 점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하지만 14일 경기장에 등장한 최호정 걸개에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축구 팬인 김지혜 씨는 고등학생이던 지난 2008년 TV로 우연히 대학축구 경기를 생중계로 시청했다. 김지혜 씨가 시청하던 경기는 관동대학교와 한 대학교 팀의 U리그 경기였다. 그런데 경기를 보던 그녀는 한 선수의 플레이에 빠져들었다. ‘아 저런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녀는 한 대학생 선수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 선수의 이름은 바로 최호정이었다.

최호정의 플레이에 매료된 김지혜 씨는 당시 유행이던 ‘싸이월드’에 즉각 접속했다. 그리고는 ‘파도타기’를 통해 최호정의 계정을 발견했다. 그렇게 그녀는 최호정의 팬이 됐다. 그런데 김지혜 씨를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다. 바로 관동대학교를 다니던 최호정이 2010년 드래프트를 통해 대구FC에 입단한 것이었다. 대구 시민이자 대구FC의 팬이었던 그녀는 본인의 지지팀에 최호정이 온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싸이월드’에 접속한 그녀는 최호정에게 ‘일촌 신청’을 보냈고 대구 훈련장에 여러 번 방문하며 최호정과 친분을 쌓았다.

대구 시절 최호정과 김지혜 씨가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

본래 특정 선수를 좋아하기 보단 구단을 지지하곤 했던 김지혜 씨는 최호정을 계기로 선수를 좋아하는 팬이 됐다. 최호정 역시 그녀의 기대대로 2014년 상주상무에 입단하기 전까지 대구에서 리그 81경기에 나서 5골 3도움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상주에서 1년 9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친 최호정은 2015년 하반기 잠시 대구에서 머문 후 시즌 종료와 동시에 성남FC로 떠났다. 이후에는 서울이랜드를 거쳐 FC안양에 입단하며 경력을 이어갔다.

이렇게 최호정과 김지혜 씨의 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하지만 이어지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의 인연은 2019년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됐다. 최호정이 안양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최호정의 아들 아인 군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지혜 씨는 다시 최호정을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코로나19 여파로 무관중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 최호정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그를 위한 걸개를 만들고 이를 경기장에 걸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안양 서포터즈도 아닌 그녀가 안양종합운동장에 최호정 걸개를 건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방법을 모색하던 그녀는 고심 끝에 우선 FC안양 팬들이 모여있는 오픈카톡 단톡방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단톡방에 있는 멤버들에게 “안양 홈경기 날에 경기장에 걸개들이 있던데 누가 거는 거고 어떻게 거는 거예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일면식이 없는 김지혜 씨의 질문이었지만 안양 팬들은 친절했다. 그들은 “경기 시작하기 전에 경기장에 가면 걸 수 있어요”라는 답변을 남겼다. 거기서 더 나아가 안양 팬들은 “대구에서 오시긴 머니까 택배로 보내주시면 저희가 대신 걸어드릴게요”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지혜 씨는 안양 팬들의 제안을 고맙지만 고사했다. 그녀에겐 ‘내가 좋아하는 선수니까 걸개는 내가 직접 걸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친구와 먼 안양 여행길에 나섰다. 안양 팬들 역시 김지혜 씨가 안양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자 앞장서서 안양 어떤 곳에 맛집이 있고 어떤 카페가 유명한지, 또 “택시는 어디서 잡는 게 좋다” 등의 여러 정보들을 제공해줬다.

김지혜 씨를 향한 이런 안양 팬들의 세심한 배려는 그녀가 이미 안양 오픈카톡방 내에서 유명인사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는 카톡방에서 안양 팬들이 최호정을 더 좋아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직접 다양한 이벤트를 열었다. 안양 지역 곳곳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에 걸린 최호정의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인증샷’을 보내면 상품을 제공하는 이벤트였다. 이렇듯 안양 팬이 아닌 그녀의 정성과 노력에 안양 팬들은 감동했고 결국 김지혜 씨는 해당 카톡방의 부방장으로 고속 승진(?)을 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김지혜 씨가 FC안양 오픈채팅방 내에서 연 ‘최호정 이벤트’

부방장의 안양 방문 소식에 안양 팬들은 경기 당일 새벽부터 김지혜 씨에게 연락을 취해 “안양은 지금 대구와 달리 날씨가 맑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그러면서 “안양 어떤 지역에 가면 최호정의 포스터가 새겨진 버스정류장이 있으니까 들러서 사진 한 번 찍고 가라” “마침 그 버스정류장에서 우리 집이 5분 거리이니 도착하면 연락해라. 커피를 사주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지혜 씨는 안양 도착 후 해당 팬에게 연락을 했고 커피를 함께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안양일번가에 오면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김지혜 씨에게 제안했으나 일정상 그녀와 만나지 못한 한 팬은 상당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김지혜 씨는 안양종합운동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대구 사람인 그녀에게 안양종합운동장은 낯선 곳이었다. 그러나 먼저 경기장에 도착해있던 한 사람의 존재 덕분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바로 오픈카톡방의 ‘방장님’이었다. 대구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수많은 걸개들을 걸어봤던 김지혜 씨지만 서포터즈 출신인 그녀는 각 팀마다 걸개를 거는 방식과 분위기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안양종합운동장에 일찍이 도착했지만 이도저도 못하고 경기장 주변에서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장님’의 도움 덕에 설치 작업은 원활하게 진행됐다.

안양 지역 한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최호정의 포스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김지혜 씨의 모습.

안양 서포터즈의 호의를 직접 경험한 김지혜 씨는 왜 그동안 최호정이 안양 서포터즈에 대한 칭찬을 목이 빠져라 했는지 새삼 느끼게 됐다. 평소에도 최호정은 안양 팬들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함을 김지혜 씨에게 여러 번 자랑한 바 있었다. 그녀 역시 이날 안양 방문을 통해 공손하고도 친절한 안양 팬들의 행동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낯선 그녀의 등장에도 안양 팬들은 본인들의 선수를 응원해주는 김지혜 씨를 가족같이 대했다.

한편 김지혜 씨의 안양 방문 소식을 접한 최호정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최호정은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 “안양에 오면 모 카페로 가서 커피를 먹으라”고 말했다. 이후 최호정의 말대로 그녀는 해당 카페로 갔는데 여기에 또 한 번의 감동이 있었다. 바로 최호정이 김지혜 씨가 먹을 음식과 커피값을 이미 계산해 놓은 것이었다. 평소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의 학생들에게 최호정에 대한 칭찬을 입이 닳도록 하는 김지혜 씨는 여기서 또 한 번의 감동을 느꼈다. 더불어 주장이라는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최호정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후 지혜 씨는 한 치킨집으로 이동해 안양과 충남아산의 경기를 생중계로 지켜봤다. 그러면서 자신이 제작한 ‘ONE AND ONLY’ 걸개가 안양종합운동장에 걸려있는 것을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그녀는 내심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날 안양이 충남아산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두며 또다시 승리를 따내는데 실패했기 때문. 과거 최호정이 대구에서 뛰던 시절에도 지혜 씨는 최호정을 위한 걸개를 몇 차례 건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유난히 대구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그녀만 알고 있는 일종의 ‘징크스’였던 셈이다. 이날도 안양이 시원치 못한 경기력을 보이자 내심 지혜 씨는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경기 후 지혜 씨에게 연락을 취한 최호정은 “그렇지 않다”며 그녀의 마음을 달래줬다. 이런 최호정의 위로에 지혜 씨는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었다.

이렇듯 충남아산전 안양종합운동장에 설치된 최호정의 걸개엔 꽤나 깊고도 진지한 뒷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본래 최호정의 아들 아인이의 이름을 따 ‘아인이가 보고 있다’로 제작될뻔했던 ‘ONE AND ONLY’ 걸개에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최호정을 응원했던 지혜 씨의 따뜻한 마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이 지지하는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한 팬, 그 팬을 잊지 않고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선수,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지혜 씨를 도왔던 안양 팬들의 마음이 합쳐져 설치될 수 있었던 최호정을 위한 ‘ONE AND ONLY’ 걸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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