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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대구=조성룡 기자] 잊고 싶은 FC서울의 두 시간이었을 것이다.

14일 DGB대구은행파크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대구FC와 FC서울의 경기에서 원정팀 서울은 90분 내내 홈팀 대구에 끌려다니면서 0-6 대패를 기록, 승점 획득에 실패했다. 상대의 빠른 역습에 대처하지 못하며 계속해서 실점한 것도 아쉬웠지만 무려 두 차례나 자책골이 나왔다는 것은 뼈아픈 부분이었다. 대구는 이날 역사적인 90분을 만들었지만 서울은 치욕적인 90분을 감내해야 했다.

경기 전부터 서울의 선발 명단은 충격이었다. 서울의 선수단에는 어린 선수들이 한가득이었다. K리그 첫 출전의 기회를 잡은 강상희를 비롯해 김주성, 양유민, 김진야, 조영욱까지 U-22 자원이 무려 다섯 명이었다. 서울 구단 관계자 역시 "주전급 자원에서 특별히 부상 등의 문제는 없었다"라면서 "우리도 조금 놀랐다. 이런 선발 명단이 나온 이유는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라고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농담 삼아 "최용수 감독이 이번 경기에 마음을 비운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하고 있는 것은 대구였다. 대구가 K리그에서 서울을 상대로 마지막 승리를 거둔 것은 2018년 9월 16일이었다. 그 이후 2무 3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무리 서울이 젊은 선수를 대거 투입해도 서울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분위기가 뒤집히기 시작한 것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구 세징야의 선제골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전반전 결과는 3-0, 대구의 리드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45분 동안 서울은 대구의 거의 비슷한 역습 패턴에 두 골을 실점했다. 그리고 박주영의 자책골로 전반전을 끝냈다.

하프타임 DGB대구은행파크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서울 구단 관계자의 표정에서는 당혹스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 당황하기는 대구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 구단 홍보팀은 "이런 적이 없었다"라는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 대구가 몇 차례의 득점 기회에서 집중력을 좀 더 보여줬다면 3-0보다 더 큰 점수 차로 전반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후반 들어 서울은 한찬희와 아드리아노를 투입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하지만 그것도 딱 6분 만에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한 골을 넣어보자고 준비했던 서울은 김대원에게 한 골을 더 먹혔다. 그리고 페널티킥을 내주더니 자책골을 넣었다. 하지만 두 골의 자책골과 비슷한 패턴으로 실점한 세 골보다 더 치욕적인 순간은 아마 후반 26분이었을 것이다. 서울의 전설에서 '유다'가 된 데얀이 여유롭게 교체 투입되더니 머리로 한 골을 넣었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서울에서 최용수 감독은 마지막 선택을 했다. 후반 33분 양유민을 불러들이고 고요한을 투입한 것이었다. 전반 40분 가량부터 별 말 없이 그라운드만 응시하던 최 감독은 팀의 고참이자 자존심을 그라운드에 넣었다. 투입을 준비하는 고요한의 표정은 비장했다. 마치 죽을 것을 알면서도 전장으로 떠나는 장수의 모습이었다.

결국 서울은 0-6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나마 고요한이 투입된 이후 실점이 없었다는 것이 서울의 작은 위안이었다. 그래도 상처는 씻을 수 없다. 여섯 골 실점은 서울의 역사에서 쉽게 씻기 어렵다. 최용수 감독도 "이런 경기를 보여드려 면목이 없다. 할 말이 없다"라며 침통한 표정이었다. 대량 실점만큼 무득점이 뼈아프다는 언급도 잊지 않았다.

서울이 대구에서 보낸 90분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시즌 초부터 많은 이들이 우려하던 서울의 문제점과 취약점, 걱정거리들이 모두 쌓여 대구에서 폭발한 느낌이다. 모두가 충격적이었던 서울의 90분, 아니 두 시간은 서울이 과거의 영광에 조금이나마 다시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반면 대구는 이와 정반대인 이유로 난리가 났다. 이병근 감독대행은 기자회견장에서 감격에 울먹였고 한 팬은 경기 후 카카오톡 닉네임을 '한 번 뿐인 인생 이병근과 함께'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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