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FC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경남FC 유망주 김형원의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설기현 감독 체제의 경남FC는 K리그2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경남은 단순히 전술 뿐 아니라 어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유망주 육성에도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김형원이 있다. 경남 유스 진주고 출신인 김형원은 올 시즌을 앞두고 경남에 입단했다. 그 이후 설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두 경기 만에 데뷔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경상남도 함안에 위치한 경남 클럽하우스에서 김형원을 만났다. 확실히 김형원은 뭔가 다르긴 달랐다. 과거 미디어 앞에서 인터뷰하면 수줍음으로 가득했던 신인들의 이미지는 김형원과 어울리지 않았다. 오히려 김형원을 통해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스포츠니어스>와 김형원이 나눴던 대화를 소개하려고 한다. 요즘 뜨거운 '설기현교' 신도가 여기 있었다.

만나서 반갑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아무래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훈련만 하고 쉴 때는 외출을 자제하고 있다. 계속 숙소에 있는 편이다. 별로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롤 실버 티어라는 소문이 있는데…

무슨 소리인가. 실버가 아니라 골드 티어다. 예민한 이야기다. 실버와 골드는 확실히 다르다.

그런데 롤은 그만뒀다. 이게 한 판 할 때마다 시간이 제법 길다. 하다보면 피로가 쌓인다. 여기에 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게임하면서 스트레스 받으면 안될 것 같아 더 이상 롤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노트북은 계속 가지고 있으니 인터넷 서핑도 하고 드라마도 보면서 지내고 있다.

99년생 프로 신인치고는 꽤 여유로운 모습이다.

사실 처음 K리그에 왔을 때는 엄청 긴장도 많이 하고 낯설었다. 이제 좀 지나고보니 괜찮아진 것 같다. 이런 게 적응했다는 것 아닐까.

계속해서 경남에 살았던 토박이라 그런 것 아닐까?

그럴 수도 있다. 내가 경남에서 쭉 생활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를 진주에서 다녔다. 경남 유스 팀은 진주고에 다니면서 인연을 맺었지만 그 전부터 진주봉래초와 진주중에 있었다. 우리 집은 경남 사천시였지만 축구를 위해 학교는 진주에서 다녔다.

솔직히 어린 나이에 한 동네만 오래 살다보니 때로는 지겨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연세대학교 입학이 결정되면서 처음으로 서울 생활도 2년 동안 해봤다. 살면서 서울을 가본 적이 없었다. 가족들 말로는 어릴 때 할머니와 같이 롯데월드에 놀러갔다고 하는데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축구대회 때문에 서울에 가본 적도 없었다. 대학교 덕분에 서울 생활도 맛보고 다시 경남으로 돌아왔다.

속칭 '촌놈'의 서울 생활은 사연이 많았을 것 같다.

놀기도 정말 많이 놀았다. 대학 가서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술도 많이 마셨다. 경남에 입단하면서 '많이 놀았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놀지 않았던 것 같다 하하. 특히 우리 클럽하우스 주변에 이렇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 더 놀았어야 했나…

처음에는 지하철도 제대로 타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대학 생활을 하기 위해 혼자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온 것 아닌가. 볼일을 마치고 집에 가야하는데 도대체 지하철을 어떻게 타야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친구들에게 지하철 타는 법을 물어봤다. 그러자 친구들이 한숨을 쉬면서 카카오지하철 어플을 깔아주더라. 그러면서 '이거 보면서도 못가면 너 좀 문제 있는 거다'라더라. 다행히 그거 보고 지하철은 무사히 탔다.

서울은 길거리에서 갑자기 사람 붙잡는 것도 있더라. 설문조사 같은 것을 막 부탁한다. 내가 또 소심한 성격이라 그런 부탁을 받으면 거절을 잘 못한다. 설문조사 해달라고 하면 따라가서 해주고 그랬다. 물론 나중에는 적응이 되면서 거절했다.

'도를 아십니까'도 겪어봤는가?

내게 접근하기는 하더라. 그래도 끌려가서 믿고 그러지는 않았다. 한 번 제대로 끌려갈 뻔 하긴 했지만 그 때는 시간 없다고 빨리 가봐야 한다면서 다음에 시간나면 하겠다고 얘기하고 도망쳤다.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동네라더니…

서울 올라갈 때 주변 사람들이 서울 가면 정신차리고 열심히 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서울 가서도 네가 해야할 것 꿋꿋하게 해야한다"라고 말하더라. 착하게 살지 말고 좀 독해져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래도 착하게 살았던 것 같다. 머리 써서 독하게 사는 것보다 그냥 착하게 살면서 바보라는 소리 듣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무언가를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혹시 천만원만 땡겨줄 수 있는가.

금전 관계는 확실하게 한다. 안된다.

하지만 김형원의 서울 생활은 딱 2년으로 끝났다. 그리고 경남으로 돌아왔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경남으로 가기 위한 준비는 했다. 우선지명이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비교적 마음은 편안했던 것 같다. 경남이라는 구단을 믿었고 경남이 조만간 날 불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다치지 않도록 몸 관리에 신경 쓰면서 나 자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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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도 많이 났다. 중학교 때까지는 경남 유스에서 뛴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끔 한 번씩 진주종합운동장에서 경기할 때 보러갔다. 더 어릴 때는 조광래 감독님 시절 창원종합운동장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들어서 볼 스태프를 할 때 경남 선배들의 경기도 많이 봤다. 아쉽게도 내 담당 구역은 항상 골키퍼 뒤여서 골키퍼 등만 봤다. 그 때 골키퍼는 김병지였다.

이제 볼 스태프를 할 때 그라운드에서 뛰었던 (안)성남이 형, (배)기종이 형 등과 함께 공을 찬다. 특히 기종이 형은 어릴 때 많이 우러러 보던 우상이다. 경남에 왔을 때 "그 선수가 경남에 왔다고?"라면서 놀랐던 기억도 있다. 성남이 형은 아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더라. 내게 "나중에 네가 고참이 되면 내 아들이 후임으로 들어올 수 있겠다"라면서 잘해주겠다고 했다. 하하.

무엇보다 경남은 내가 믿은 구단이자 나를 믿어주고 키워준 구단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경남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만큼 이제는 경남이라는 구단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그래도 서울 살다 조용한 함안에서 사니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다.

그 뭐라고 해야하나? 시내? 읍내? 여튼 번화가를 가야할 때는 조금 불편하더라. 우리 클럽하우스에서 그곳까지 걸어가기에는 살짝 멀다. 그렇다고 면허도 없는 내가 운전을 할 수는 없다. 종종 택시를 부르는데 이게 또 택시 타고 가기 애매한 거리다. 그래서 요즘 그리운 게 서울시 대여자전거 '따릉이'다. 서울에서는 따릉이 타고 여기저기 다녔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어 조금 아쉽다.

고작 2년 살았는데 서울 사람 다 됐다.

나 그냥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서울 사람이다. 사투리도 여기 있을 때나 쓰지 서울 가면 사투리 안쓴다. 진짜다.

이제는 경남의 이야기를 해보자. 짧지만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맞다. K리그에 와서 내가 한 것에 대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더라. 무언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첫 월급의 기분은 역시 잊을 수 없다.

솔직히 나는 모두 부모님을 드리기 때문에 크게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 시작이구나,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더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더 열심히 해서 더 많이 받아야하지 않겠는가. 부모님은 항상 월급 보내드리면 '고생했어, 수고했어'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내 월급은 가계 빚을 갚는데도 쓰이고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누나를 위해서도 쓰였다. 지금 부모님이 여전히 맞벌이 하시면서 일하고 계신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가족과 해외여행도 갔다왔다고 들었다.

본격적으로 시즌을 준비하기 전에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갔다왔다. 태국에 놀러가서 잘 쉬다 왔다. 나는 태국에 대해 딱히 아는 게 없었다. 누나가 전부 다 여행 스케줄을 짜서 방콕에 하루 있고 파타야로 넘어가 잘 놀았다. 나는 하라는 대로 잘 하고 가자는 대로 잘 따라다녔다. 내가 또 길치여서 앞장서서 할 처지가 안된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 이후에 경남에 합류하고 해외 전지훈련을 떠났다. 고등학교 때 대표팀에 차출되어 스페인 갔다온 것을 제외하고는 이번이 첫 해외 훈련이었다. 많이 설렜다. 그런데 장소가 태국인 것이다. 그것도 내가 가족여행으로 갔다온 방콕이었다. 가족여행을 갔을 때는 공기가 좀 좋지 않아도 사람들도 많고 신선한 느낌이었는데 불과 얼마 뒤 또 방콕에 오니 솔직히 큰 흥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축구에 집중했다. 가족여행은 마음도 편하고 쉬기 위해서 정말 즐겁게 시간을 보냈지만 전지훈련에서는 다르다. 설기현 감독님께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내가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지훈련장에서부터 증명을 해야하기 때문에 마음이 좀 무거웠다. 그래도 내가 우러러보는 형들과 함께 훈련하고 배우면서 나 자신도 많은 것을 느꼈다.

설기현 감독은 어떤가?

솔직히 경남에 오실 줄은 몰랐다. 내가 1999년생이라 2002년 월드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릴 때 스포츠 채널을 틀면 2002년 월드컵 하이라이트 영상이 많이 나온다. 그걸 보며 자랐다. 설 감독님을 보면서 2002년 전설과 함께 공을 차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설렜다.

처음에는 좀 무서운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 수록 그 느낌이 달라졌다. 설 감독님을 보면 확실히 괜히 월드컵 스타고 프리미어리거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이 배운다. 게다가 굉장히 다정한 스타일이다. 선수들 개인마다 따로 불러서 고충을 많이 듣고 선수에게 바라는 점 등을 조언도 해주신다. 항상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분이다.

내게도 조언을 해주셨다. "너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라"는 이야기였다. 굳이 경남이 아니더라도 다른 팀에서 키 크고 체격 좋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많이 찾는다고 하더라. 단순히 경남의 좋은 성적을 위해서만 조언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더 멀리 보고 더 좋은 선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자신의 블로그에 설 감독의 '짤'을 올렸는가.

아, 봤는가. SNS를 보고 있었는데 우연히 댓글에 감독님의 얼굴에 '믿으세요'라고 써있는 사진이 달려있는 것이다. 너무 웃기면서도 탄성이 나왔다. 정말 재밌게 잘 만든 것 같다.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 선수들도 감독님을 계속 믿고 가니까 팬들도 내 블로그에 오시면 그 사진을 보고 함께 감독님을 믿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그 사진을 배경으로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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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와 예비 파워블로거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연세대학교에 다닐 때 이원규 코치가 '만다라트 계획표'라는 것을 알려줬다. 가장 핵심이 되는 목표를 정가운데 놓고 그 주변에 다양한 다짐과 목표를 적어놓는 것이다. 이걸 적어보다가 한 칸에 '일기'라고 적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일기라는 것이 그냥 공책에 쓰면 나 밖에 모른다는 단점이 있었다. 나 밖에 모르면 안써도 나 자신만 안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왕 목표를 정한 김에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도 볼 수 있게 블로그를 시작했다. 내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된 일기인 셈이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면서 매일 블로그를 했다. 경남에 와서는 매일 쓰지는 않지만 인상 깊은 날에는 블로그에 글을 쓴다. 살면서 여러가지 날이 있을 것이다. 그 날을 잊기 싫어 간단하게라도 적고 그날 느낀 점이나 기록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웠지만 블로그를 하면서 조금씩 괜찮아졌다. 내가 데뷔골을 넣었을 때는 많은 팬들이 블로그에 오셔서 댓글로 축하한다고 응원도 해주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도 해주시더라. 나쁘게 말하면 내가 '관종'인 셈이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무언가 생각나거나 기록하고 싶을 때는 계속해서 블로그를 할 생각이다.

설 감독의 훈련 방식을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솔직히 신인의 입장에서 나도 어색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U리그 경기가 있어도 그냥 웨이트 트레이닝 열심히 했고 당연하다는 듯 하루에 훈련 두어 번을 했다. 훈련이 없으면 개인적으로 훈련을 했다. 그러다가 경남에 왔는데 하루에 운동 한 번 하고 쉬고 또 휴식일도 많이 주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보다 그만큼 한 경기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설 감독님이 훈련을 적게하는 것은 이 한 경기에 모든 것을 걸기 위해 우리들의 몸 관리를 해주고 계시는 것이라고 느꼈다. 나는 K리그에 온 이후 웨이트 트레이닝에 많은 힘을 쏟으려고 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웨이트 트레이닝의 양을 조절하면서 다가오는 경기에 최선을 다하도록 모든 것을 맞추고 있다.

지금은 시즌이니 예정된 훈련을 소화하고 몸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는 훈련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다. 식단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잠을 잘 자도록 노력한다. 특히 내가 고기를 참 좋아한다. 프로에 와서는 고기를 거의 먹지 않는다. 과일이나 채소 위주로 많이 먹는다. 특히 경기 2~3일 전에는 과일과 채소를 먹고 수분 섭취를 충분히 하는데 신경쓰고 있다. 특히 주 1회 경기를 할 때는 체력이 괜찮았지만 평일에 경기를 하게되니 더 신경이 쓰이더라.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꾹 참고있다.

그렇다면 경기 끝나면 고기 파티가 열리는가.

아니다. 경기 끝나면 힘들어서 고기가 입에 안들어간다. 그냥 바나나 먹고 초코바 먹는다. 프로 와서 몸 관리라는 것을 정말 잘 배우고 있다.

대학교 때 술만 덜 마셨어도 한결 나았을텐데…

무슨 소리인가. 그 때는 더 마셨어야 했다. 열심히 놀아야 축구에도 더 집중한다.

두 경기 만에 데뷔골을 터뜨렸으니 인정한다.

솔직히 올 시즌에 5~10경기 정도 출전만 목표로 잡았다. 데뷔골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골까지 넣으니까 기분이 얼떨떨하더라. 이렇게 빨리 골을 넣게 되면서 많은 관심도 받았다. 솔직히 '내가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놀랍기도 했다.

데뷔골을 넣으니 축하 연락이 엄청나게 많이 왔다. 전화도 오고 문자도 많이 왔다. 친구들도 다 고맙고 팬들도 고맙지만 무엇보다 연세대학교 최태호 코치님의 문자가 정말 감사했다. 짧게 '결승골이네, 축하한다'라고 왔는데 그게 그렇게 감사하게 느껴지더라. 그래서 대학교 때 잘 가르쳐준 덕분이라고 감사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이후 수원FC전에서는 마사에게 패스를 헌납하며 실점했다.

와… 그 때 우리가 0-2로 지고 있을 때였다. 빨리 골을 넣어야 하는데 중요한 장면에서 내가 패스를 실수해 상대편 마사가 추가골을 넣었다. 그 순간 사람이 멍해지더라. 앞이 깜깜해지고 정신도 못차리겠더라. 그래도 나는 오히려 이런 경험을 빨리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비기거나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그런 실수를 했다면 더 무너졌을 것이고 회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고 있던 경기에서 실수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다음에는 그런 실수 절대 안할 것이다.

형들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났을 것 같다.

그렇지는 않다. 설기현 감독님은 오히려 괜찮다고 하면서 지는 기분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저 다음 경기 열심히 준비하자는 말로 실수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물론 질책도 들었다. 선수단이 다 같이 모였을 때 형들이 말해줬다. "실수가 쌓이면 나중에 실력이 된다. 이런 걸 특히 조심해야 한다"라면서 나를 포함한 어린 선수들에게 "이렇게 출전 기회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 차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가짐을 더 단단히 하고 그라운드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위로도 받고 마음도 다잡았다.

맞다. 솔직히 당신 기회 많이 받고 있다. 시즌 전 목표인 5~10경기 출전은 조기 달성이 유력하다.

에이 아니다. (하)성민이 형이 부상이어서 내가 그 자리를 잠시 맡은 것 뿐이다.

터프한 남자 하성민과 경쟁이라니 생각만 해도 무섭다.

솔직히 나도 아직까지 성민이 형이 조금 무섭다.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다정한 형이다. 어린 선수들에게 한없이 다정하다.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이제 너라면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한다"라는 말을 많이 해준다.

FC안양과 경기할 때 성민이 형은 엔트리에 없었다. 그런데 경기 전에 나와 (김)규표 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제주유나이티드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를 보여주더라. "여기서 페널티킥이 나왔어. 이 장면을 다시 보면 해도 되지 않은 파울을 했어"라고 설명해줬다. 그러면서 "경기할 때 자신감 있게 하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줬다. 내가 골을 넣고나서는 "잘했다, 축하한다"라고 또 문자를 보내줬다. 그런 형이다.

성민이 형은 경기 뿐 아니라 연습할 때도 실전처럼 엄청 열심히 하는 선배다. 나는 그를 보면서 '저런 모습이 바로 프로 선수구나'라고 생각한다. 처음 경남 왔을 때부터 성민이 형이 훈련하고 자기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성민이 형이 나이도 적지 않는데 그 모습을 보면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말 뿐 아니라 지갑도 여는 마음 넉넉한 선배가 진짜 좋은 선배인 거다.

내가 성민이 형에게 무언가를 얻어먹은 적은 없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선수들을 정말 많이 챙겨주는 선배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예전에 클럽하우스 내 사우나에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그 냉장고에 성민이 형이 항상 초코우유 같은 마실 것을 채워넣었다. 사우나 끝나고 초코우유 한 잔 해본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좋은지 알 거다.

한창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다. 만족스러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잘 풀리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걱정도 있다. 오히려 이렇게 잘 되다가 혹시나 자만할까봐 걱정도 되고 뛰다가 부상이 올까봐 걱정도 한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제는 5~10경기 출전 그 이상을 바라봐도 되지 않을까.

나는 정말 올 시즌 목표가 그랬다. 하지만 사실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것이다. 앞서 말했던 '만다라트 계획표'의 정가운데에는 영플레이어상 수상이 적혀있다. 이게 가장 큰 목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5~10경기 출전도 계획했고 공격포인트도 몇 개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적어놓았던 것이다. 현재 개인적인 목표는 영플레이어상을 노리는 것이다.

많은 기대를 하겠다. 올 시즌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물론 우리 경남이 승격하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선 우리는 다른 팀과는 다르다는 자부심을 계속해서 갖고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다른 팀보다 더 재밌는 축구를 하고 싶고 어떤 팀과 만나도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 팀의 목표다. 개인적인 목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영플레이어상 수상이다. 조금 멀어보일 수 있지만 목표는 크게 잡을 수록 좋은 것이다. 이를 위해 계속 다치지 않고 꾸준하게 경기에 나서고 싶다.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나도 당신에게 기꺼이 한 표를 던지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설기현 감독 믿어도 되는가?

믿으세요. 저도 믿습니다.

김형원은 이제 고작 K리그 4경기에 출전한 신인이다.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먼 선수다. 하지만 김형원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 길을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그 길이 좀 험할 때도 있고 가다가 쉬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잘할 수 있다는 믿음, 감독을 향한 믿음,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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