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유학파’ FC안양 구본혁, “이정빈 공백 잘 메우고 싶어”

[스포츠니어스|안양=전영민 기자] 축구를 시작해 프로축구선수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택받은 선수들만이 프로에 입성할 수 있다. FC안양 미드필더 구본혁 역시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험난한 과정을 거친 선수 중 한 명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스페인 명문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의 선택을 받아 스페인으로 건너간 그는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축구를 이어간 뒤 일본 J2리그 몬테디오 야마가타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마주한 일본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결국 구본혁은 지난해 6월 내셔널리그 김해시청에 입단하며 한국으로 돌아왔고 김해에서 반 시즌을 보낸 뒤 올 겨울 FC안양 공개테스트에 도전했다. 10대 시절 한국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날렸던 구본혁이기에 어쩌면 2부리그 팀의 공개테스트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에게 자존심이 상할 법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구본혁은 최선을 다해 테스트에 임했고 결국 김형열 감독의 선택을 받으며 안양에 입단할 수 있었다. <스포츠니어스>는 먼 길을 돌아 안양에 도착한 구본혁을 3일 오후 안양종합운동장에서 만났다.

반갑다. 최근 두 경기 연속(서울이랜드전, 전남전)으로 경기에 나섰다. 
데뷔전이었던 서울이랜드전에서는 긴장이 많이 되어서 몸이 무겁고 안 움직였는데 두 번째 경기였던 전남전에서는 조금 더 여유롭게 뛴 것 같다. 경기 중 다치는 선수도 나오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항상 준비를 해놓고 있자’고 생각했었는데 기회가 왔다.

전남전 자신의 활약을 되돌아본다면?
서울이랜드전에 비하면 엄청 잘했다고 생각한다. 서울이랜드전에서는 공격적인 능력을 잘 못 보여드렸는데 전남전에선 조금 더 여유를 찾고 내가 더 원하는 플레이를 자신감 있게 했다. 공격진에서 외국인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분에선 힘들지만 공격적인 부분에선 우리 모두 자유롭게 플레이 하기 때문에 잘 맞는 것 같다.

김형열 감독은 전남전 후 개인적으로 어떤 말을 해줬나?
따로 말씀을 하시진 않으셨다. 평소에 감독님께서 조언을 많이 해주신다. 선수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고 “더 열심히 하라”라고 하신다. 그런 점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때론 채찍을 때리기도 하신다. 칭찬과 채찍을 적절히 혼합하신다.

안양의 훈련은 상당히 힘든 것으로 유명하다. 적응은 끝났나?
솔직히 처음 왔을 때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계속 그런 시스템에서 훈련을 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일정이 빡빡했다.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안양이란 팀에 들어왔는데 일단은 신인 선수기 때문에 힘든 것, 안 힘든 것을 가려가면서 할 때가 아니라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서 감독님 밑에서 배우고 싶다. 지금 지나서 생각해보면 그런 고된 훈련들이 없었으면 데뷔전과 전남전에서도 잘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

어렸을 때 스페인에서 뛰었다.
13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스페인 1부리그 팀인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유소년 팀에서 뛰었다. 1년 반 정도 있었다. 팀 내에 동양인 선수가 나 혼자였다. 조금 힘들었는데 주위 또래 친구들이 잘 챙겨줬고 또 우리 팀에 스페인 말고 다른 나라에서 온 외국인 선수들이 많아 그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혼자 있다 보니까 언어도 빨리 늘었다.

스페인 음식은 입에 잘 맞았나?
그렇다. 입에 잘 맞았다. 빵하고 파스타를 주로 먹었다. 스페인에 파스타 종류가 되게 많다. 원래 크림 파스타는 느끼해서 잘 못 먹는데 스페인 크림 파스타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 잘 먹었다.

스페인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운동뿐 아니라 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학교 시험에서 50점 이상을 넘지 못하면 다음 학년으로 진학을 하지 못한다. 시험에서 통과를 못하면 축구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나 같은 외국인들은 스페인어, 영어, 수학 과목에서 50점 이상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시험을 통과했다.

요즘은 분위기가 다르지만 옛날만 해도 한국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한국보다 스페인에서 공부를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다. 어머니가 학습지 선생님을 하셨어서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좋아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스페인으로 건너갔는데 스페인으로 가기 전 중학교에 들어갈 때 배치고사에서 반 4등을 했다. 그때 반 학생 수가 40명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반 4등이면 굉장히 공부를 잘한 것 아닌가?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대가 심했을 것 같다.
어머니가 반대를 많이 하셨다. 아버지는 태권도 선수 출신이라 “네가 운동을 좋아하고 또 나를 닮아 그쪽 유전자도 있으니 축구를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라고 하셨다. “대신 공부는 하면서 운동을 하라”고 하셔서 운동과 공부를 병행했다. 운동-집-운동-집을 반복했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가면 무조건 공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어렸을 때 즐거워서 축구를 했다. 취미로 1주일에 한두 번 정도 공을 찼다. 축구를 좋아했다. 클럽팀에서 축구를 했는데 한 번은 우리 팀과 초등학교 축구부가 연습경기를 했다. 그랬는데 축구부 감독님이 우리 집까지 찾아오셔서 축구를 해볼 것을 권유하셨다. 그렇게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스페인에 건너가게 된 것도 운이 좋아서 그랬다. 그때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과 경기를 했는데 데포르티보에서 내가 뛰는 모습을 보고 “한 번 더 보고 싶다. 테스트를 받는 게 어떠냐”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데포르티보에서 비행기 티켓을 지원받고 혼자 테스트를 보기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그렇게 스페인에서 생활하다 15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유가 뭔가?
내가 스페인에 있을 때 갑자기 FIFA에서 어린 외국인 선수들을 뛰지 못하게 하는 룰이 생겼다. 부모님이 전부 스페인으로 오시거나 비자가 나와야지 내가 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내 미래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스페인에서의 시간들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은 매일매일 운동을 하는데 스페인은 일주일 두세 번 정도 밖에 운동을 안 했다. 여가 생활을 즐기고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스페인에서 되게 여유롭게 축구를 했던 것 같다.

축구 스타일에 대해 얘기하자면 한국은 11명의 팀원들이 조직적인 움직임을 가져간다. 반면 스페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플레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만약 실패하면 방법을 직접 찾을 수 있게 한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나중에 되면 생각하는 차이가 달라지지 않나 생각한다. 한국에 있을 땐 안 하던 플레이를 스페인에서 하게 됐다. 원래는 그냥 소극적으로 패스를 주고받는 플레이를 했는데 스페인에선 조금 더 공을 다루는 플레이를 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넘어갔다.
풍생중학교를 거쳐 솔FC라는 팀에서 뛰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몬테디오 야마가타에 입단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감독님이 일본 축구를 좋아하셔서 일본 출신 감독님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지도를 받는 시간을 갖게 해주셨다. 그때 일본에서 초청 오신 감독님이 “한국보다는 일본 축구 스타일에 맞을 것 같다. 일본에서 테스트를 받아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고3이고 대회도 있어서 중요한 시기인데 우리 팀 감독님이 “좋은 기회니까 가서 도전해보라”라고 선뜻 보내주셨다. 그렇게 19살 때 몬테디오 야마가타에 입단했다.

고등학교에 있다가 프로로 바로 가다 보니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선수들의 체격, 공 다루는 기술이 고등학교 선수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많이 배웠다. 또 통역사가 있긴 했지만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불편했다. 그래도 형들이 되게 착했다. 이제승이라는 한국인 형이 있었고 경험 많은 일본 베테랑 선배들도 있었는데 내가 막내이다 보니까 다들 많이 도와주셨다. 재밌었다. 몬테디오가 FC안양이랑 비슷한 팀이었다. 지역 사람들이 많이 와서 홈경기를 봐주신다. 다른 J2리그 팀보다 관중수가 많다. 평균 1만명 이상은 홈경기에 오셨다.

경기엔 많이 나섰나?
리그보다는 일왕배에서 많이 뛰었다. 1년에 두 경기 정도 일왕배에 출전했던 것 같다. 첫 일왕배 경기를 19살 7월에 치렀다. 상대 팀이 비셀고베였다. 고베는 주전으로 나오고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그날 경기에서 딱 20분 뛰었다. 20분 후로는 너무 힘들어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감독님이 좋게 봐주셔서 나를 뽑았는데 체력이 되지 않다 보니 고베전 이후부터 밀려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일본 팀들은 훈련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체력 운동을 꾸준히 많이 했다. 피지컬 코치님이 운동을 많이 시키셨다. 팀 훈련은 짧고 굵게 1시간 20분 정도 하고 쉬는 경우가 많았다. 1년 차에는 이제승 형이 있어서 같이 운동도 하고 시간을 보냈는데 2,3년 차에는 팀을 떠나셔서 내 또래 일본 친구랑 같이 커피도 마시고 온천도 다니고 했다.

밥도 각자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일본인 친구와 나가서 같이 사먹고 했다. 일본이 편의점 도시락이 잘 되어있다. 맛있기도 하다. 그렇게 도시락을 먹다가 나중엔 그 친구가 “몸에 좋은 것만 먹자”해서 다른 것도 먹었다. 어렸을 때 남들보다 빨리 프로에 가서 좋은 점도 있긴 했지만 외롭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이 다 외국인들이다 보니 심심했다. 그렇지만 혼자 있다 보니까 일본어는 되게 빨리 늘었다. 처음에는 따로 시간을 내서 일본어 공부를 했는데 나중엔 친구랑 같이 다니며 모르는 걸 물어보며 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지금도 일본어를 거의 다 알아듣는다. 3년 반 정도 일본에 있었고 2018년 12월 몬테디오에서 나와 한국으로 왔다.

다소 아쉽게 끝난 J리그 생활인데 일본에서 더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내 스스로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왼발에 피로골절이 와서 수술을 했다. 재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한국에 왔고 작년 6월에 김해시청에 입단했다. 1년을 그냥 흘려보내면 어태껏 내가 쌓아온 커리어가 무산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6월에는 어떻게든 팀을 구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해시청에 들어가서 열심히 하고 몸을 만들어서 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첫 두 경기 정도를 빼고는 내셔널리그 경기에 꾸준히 출전했던 것 같다. 많은 경기에 나섰다. 내셔널리그는 선수들 연령대가 높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다들 잘 나갔던 선수들이라 공을 차는 것에 있어서 연륜이 느껴졌다.

구본혁(맨 오른쪽)은 이승우, 백승호 등과 함께 한국 축구의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대한축구협회

그리고 올 겨울 FC안양 입단테스트에 도전했다.
나에 대해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신 팀이 안양이었다. 다른 팀은 생각하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보여드리겠다’는 생각으로 테스트를 치렀다. ‘내가 모든 걸 쏟고 선택은 안양에서 해주는 거다. 후회 없이 테스트를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했다. 작년에 수술을 하고 아마추어 팀에서 재활을 했다. 그때 안양과 연습경기를 했고 또 주위에서 안양의 축구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안양은 많이 뛰는 팀이고 나도 그런 축구가 좋았다. ‘한 번쯤 안양에서 뛰어보고 싶다. 내가 안양과 잘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에 김해에서 뛸 때에도 친분이 있는 (안)성빈이 형이 안양에서 뛰어서 안양 경기를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했다.

오랜 기간 외국에 있다가 한국 선수들과 함께 뛰게 되었다.
확실히 조금 더 편하다. 훈련할 때도 더 재밌다. 일본에 있을 때는 어리고 하니까 대화할 사람도 많지 않아서 외로웠는데 여기서는 형들이 되게 잘해주신다. (최)호정이 형과도 인연이 있다. 호정이 형이 안양에 오기 전 팀을 구할 때 일본에 한 번 오셨었다. 그때 내가 통역을 도와드렸다. 그래서 내가 안양에 처음 왔을 때 호정이 형이 나를 도와주셨다. 다른 팀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안양은 형들이 다른 선수들에게 너무 잘해주신다. 조금은 텃세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게 없다. 오히려 격려를 하고 잘 도와주신다.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1998년생이다. 팀에서 막내 축에 속하는데?
내가 1998년 2월 9일생이다. 빠른 년생은 아니다. 본 나이에 학교를 입학했다. 하지만 (맹)성웅이 형은 같은 98이지만 빠른 년생이다. 그런데 생일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성웅이 형이 2월 4일생이다.

그러면 맹성웅한테 호칭은 어떻게 하고 있나?
선배 대접을 하고 있다. 형이라 부른다. 성웅이 형이 학번이 빠르니까 그렇게 하고 있는 중이다.

생일 차이도 닷새밖에 나지 않는데 계속 형이라 부를 건가?
사실 그것 때문에 조금 어색한 게 있었는데 요즘엔 경기를 같이 뛰고 하다 보니까 많이 친해졌다. 조만간 친구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프로 데뷔전이었던 서울이랜드전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선발 출전 통보를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경기 전날 운동을 하는데 감독님이 말씀해 주셨다. 서울이랜드전에 대비해 훈련을 하는데 감독님이 나와 성웅이 형을 미드필더 위치에 세우셨다. 그러면서 “내일은 이런 플레이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또 마침 감독님이 지시하신 플레이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다만 첫 경기를 하는 거기 때문에 조금 긴장을 하긴 했다. 선발 통보를 받았을 때 ‘잘 하자’ 보다는 ‘내일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전날에 잠은 잘 잤나?
잠은 잘 잤다. 하지만 가족한테 미리 말하면 안될 것 같아서 경기 당일에 선수 명단이 나올 때쯤 “오늘 출전해요”라고 말씀드렸다. 원래 시즌 첫 세 경기에서도 출전 명단엔 들었지만 경기장에 나서진 못했다. 부모님과 할머니, 할아버지가 거의 옆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 사시는데 서울이랜드전을 같이 보셨다고 그러더라. 되게 좋아하셨다고 들었다. 특히 내가 앞 세 경기에서는 나가지 못했는데 드디어 출전을 하니까 더 좋아하신 것 같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너무 재밌었고 감동받았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아버님도 좋아하긴 했지만 “더 열심히 하자” 라는 뉘앙스로 말씀을 남겨주셨다. 또 “첫 경기는 첫 경기고 네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더 보여줬으면 좋지 않았을까”라고 하셨다. 항상 아빠가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 좋은 말씀을 해주시기 보다는 냉정한 말씀을 해주신다. 나도 그런 점을 듣고 보완하려고 노력한다. 전남전도 네 분이 함께 보셨다고 들었다.

어쨌든 첫 두 경기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첫 경기를 뛰었을 때 관중이 없어서 아쉬웠다. ‘관중이 있는 경기장에서 뛰면 어떤 느낌일까’ 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한편으론 다행이기도 했다. 데뷔전이라 긴장을 많이 했고 또 원정 경기였는데 많은 원정팀 팬들이 경기장을 채웠으면 조금 더 힘들게 플레이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루빨리 경기장에서 팬들을 뵙고 싶다.

사실 K리그2와 J2리그가 비슷한 축구를 축구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J1리그는 다들 기량이 좋아서 압박 수비가 아니라 지역 수비를 한다. 반면 J2리그는 압박 수비를 한다. K리그2도 비슷한 거 같다. 몇 팀이 내려서서 하긴 하지만 대부분 앞에서 바짝 압박을 한다. 그런 면에서 K리그2와 J2리그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선수를 편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다들 압박 타이밍이나 힘이 좋다. 공 처리가 미숙하면 바로 위기를 맞는다. 나도 많이 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일본에선 수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기를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수비에 대해 계속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플레이를 하게 됐다.

안양 팬들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감독님이 기회를 주셨으니 최선을 다해 이 기회를 잡고 싶다. 또 형들이랑 잘 뭉쳐서 앞으로 계속 승리를 하고 싶다. 그래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K리그1에까지 안양이 가는 것이 목표다. 지금 팬들이 (이)정빈이 형의 공백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계신다. 정빈이 형이 안양의 마스코트 같은 선수였기에 당연한 일이다. 정빈이 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최대한 열심히 하고 노력하겠다.

쉽지 않은 길을 거쳐 안양에 입단한 만큼 구본혁은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선택한 김형열 감독과 안양 구단에 대한 감사함을 수차례 표했다. 만 22세의 젊은 나이지만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경험을 한 구본혁. 이정빈이 떠나며 자신에게 온 기회를 과연 구본혁은 잡을 수 있을까. 많은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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