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K리그에는 리얼돌만 있는 게 아니다


ⓒFC서울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년 전 한 업체가 FC서울과 후원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이 업체는 FC서울에 수억 원의 후원을 할 예정이었다. 계약은 사인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런데 FC서울 측에서 최종적으로 계약을 거부했다. “해당 업체의 이미지가 FC서울 구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게 협상 거부의 이유였다. 해당 업체는 불법적인 일을 하는 곳은 아니었지만 FC서울은 그럼에도 ‘구단 이미지’를 협상 거부 이유로 내세웠다. FC서울은 구단 운영과 관련해 이렇게 보수적이다.

그랬던 FC서울이 리얼돌 사태를 일으켰으니 충격적이긴 하다. 아마 내부에서도 상당한 충격을 입었고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거액의 구단 후원 업체마저도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고 거부했던 구단이 전세계로부터 ‘리얼돌’과 관련된 구단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FC서울은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1억 원의 제재금을 받았고 사회적으로도 비판받고 있다. 이와 관련된 소식은 이미 나올 만큼 나왔다. 이제 사태도 점점 잦아들 것이다.

외부 업체 검증 부족했던 K리그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순히 리얼돌 사태에 관한 게 아니다. 이번 일로 인해 K리그 마케팅 시장이 위축되지 않을지가 더 큰 걱정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올 시즌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난 시즌부터 K리그는 흥행 상승세를 이어왔다. 주변에서 K리그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고 시장도 점차 커지고 있었다. 확실히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주변에서도 K리그 업체와 일해보고 싶은데 혹시 소개를 해줄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를 가끔 듣기도 한다.

더페스타가 일으킨 유벤투스전 논란이나 이번 FC서울 리얼돌 논란을 살펴보면 K리그 시장이 그만큼 커졌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신생 업체를 검증도 하지 않고 업무를 맡겼다는 건 개선해야 하지만 그래도 축구 외적인 업체들이 K리그에 도전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활발하지 않던 K리그에 이젠 어느 정도 대중성이 입혀지고 있다고 본다. 돈이 되지 않고 관심을 받을 수 없는 곳에는 더페스타나 달콤 같은 업체도 기웃거리지 않는다. 뜯어 먹을 게 없으면 아마 오라고 해도 안 올 것이다.

지금까지 K리그와 구단은 이런 업체를 걸러낼 능력이 부족했다. 샘플, 브로셔, 과거 사업 경력 등 준비가 부족한 업체와도 손을 잡았고 결국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젠 K리그와 각 구단들도 스스로 업체를 검증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 명함만 주고 받아 봐도 흔히 말하는 ‘사짜’는 눈에 보인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사짜’는 만날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이 많다”면서 명함이 바뀌거나 명함에 얼굴 사진을 넣는다. 누가 봐도 한국인인데 영어 이름을 써 놓았다거나 회사 명함 뒷면에 쓸 데 없이 자신의 이력을 홍보해 놓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 종료 후 인터뷰도 거부하고 경기장을 빠져 나간 호날두 ⓒ스포츠니어스

K리그 마케팅 위축될까봐 걱정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 나름대로 명함 한 장으로도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능력이 생긴다. K리그에서도 이런 ‘사짜’를 걸러낼 수 있는 눈을 키웠으면 한다. 아마 지금까지는 시장이 작아 K리그에 접근하는 사람들이 적었지만 최근 추세를 본다면 K리그에는 이런 외부 업체들이 더 많이 접근할 것이다. 유벤투스전이나 FC서울 리얼돌 사태처럼 또 다른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의 외부 업체 제안을 모두 거부하는 게 아니라 정확히 업체를 판별해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인해 공격적이고 적극적이었던 마케팅이 축소되거나 보수적으로 바뀔까봐 걱정이 된다. 연맹 관계자는 리얼돌 업체를 확인 없이 FC서울에 소개해줬다는 이유로 3개월 감봉의 징계를 받았다. 물론 해당 관계자의 잘못도 있다. 걱정인 건 앞으로 연맹이 외부 업체의 제안을 받고 K리그 구단을 연결해 줄 수 있느냐다. 내가 담당자라도 어지간하면 연결해 주기 어려울 것 같다. 피규어 업체라고 소개해 연락처 정도만 넘겨준 게 전부인데 이런 리얼돌 사태가 터질 거라고 예상할 수 없다. 그때 “혹시 리얼돌 업체 아니신가요?”라고 의문을 품었으면 음란마귀가 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구단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해서 언론과 팬들의 주목을 받으면 좋겠지만 리얼돌 사태는 “최대한 몸을 사리는 게 낫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는 시도민구단이나 변화를 바라지 않는 ‘고인물’들이 모여 있는 기업구단 모두 마찬가지다. 이런 일이 터지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활동이 물거품이 된다. FC서울 리얼돌 사태 이후 K리그 각 구단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참신한 마케팅을 한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다. 젊은 직원들은 지금처럼 적극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도 결정권을 가진 상부에서는 “괜히 그런 거 하다가 논란 만들지 말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긴 한다.

안산그리너스는 무관중 경기를 어린이들의 그림으로 하나 하나 채웠다. ⓒ안산그리너스

K리그에는 리얼돌만 있는 게 아니다
FC서울 리얼돌 사건은 단순히 한 구단의 일이 아니라 K리그 전체에 적지 않은 여파를 끼칠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비협조적인 이들과도 내부에서 충돌해야 한다. 마케팅이 상당히 팍팍해 질 것이다. 앞으로 연맹을 통해 구단과 제휴를 하려는 이들의 문의에 연맹도 몸을 사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구단의 마케팅 사업 등은 상당수가 누군가의 소개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이런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길 바란다. “소개해줘서 잘 되도 본전이고 안 되면 내가 다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K리그 마케팅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FC서울과 해당 성인용품 업체가 잘못한 건 명백하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이 둘을 연결해준 연맹의 잘못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건 하나로 K리그 마케팅 시장이 얼어붙는 건 원치 않는다. FC서울 리얼돌 사태 이후 새로운 시도들이 축소될까봐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좋은 사례를 많이 소개하는 게 이 사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길인 것 같다. FC서울의 리얼돌 사태에서 나온 자극적인 면만 소개되고 있지만 지금도 다른 여러 구단에서는 코로나19 이후 팬들의 염원을 경기장에 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안산그리너스는 16일 수원FC전을 앞두고 무려 1,500여 명의 관내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을 직접 수거해왔다. 관중이 들어올 수 없는 관중석에 아이들의 그림을 일일이 붙여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강수 확률이 30%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만약 비가 내릴 경우 아이들이 정성껏 그린 그림들이 모두 비에 맞을 수 있다”면서 1,500여장의 그림에 모두 비닐을 씌웠다. 구단 직원들뿐 아니라 구단 유소년 지도자들까지 합세해 그림에 비닐을 씌우는 작업에 힘을 보탰다. 무려 서너 시간 동안 이 작업에 매진했다.

DGB대구은행파크를 가득 채운 팬들의 깃발

아름답고 멋진 이벤트에도 관심 갖자
같은 날 대구FC 홈 경기장인 DGB대구은행파크에서는 무려 12,000 전 좌석을 대구FC 깃발로 가득 채우는 작업이 벌어졌다. 코로나19 사태 초반 많은 고통을 겪었던 대구 시민들의 코로나19 완전 종식 염원이 담긴 메시지, 대구FC에 대한 팬들의 응원 메시지 등이 깃발에 적혀 있었다. 선수들과 대구 시민들에게 응원을 보냄과 동시에 어려운 시기에 대구를 위해 봉사해 주셨던 소방관, 의료인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위해서 연 이벤트였다. 조광래 대표이사는 물론이고 서포터스까지 대거 모여 이틀 동안 이 작업에 몰두했고 결국 경기장은 깃발로 가득 채워졌다.

무관중 경기 이후 앰프로 실감하는 사운드를 전달하기 위해 구단마다 응원 파일을 선의로 제공하는 한 팬은 <스포츠니어스>의 인터뷰 요청에도 정중히 고사했다. 그는 “나보다는 준비하느라 많이 연습하시고 또 고생하신 구단 직원분들을 인터뷰 하시는 게 맞다고 생각돼 정말 감사하지만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겠다”면서 “내 모토가 뒤에서 조용히 서포트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정중히 거절하고 싶다. 정말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리얼돌 사태로 이 모든 이들의 노력이 비춰지지 못하고 오로지 자극적인 한 사건만 보도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K리그에는 이렇게 남모르게 노력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걸 꼭 알아줬으면 한다.

리얼돌 사태는 K리그 전체가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코로나19 여파 이후에도 열심히 노력 중인 많은 K리그 종사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한다. 한 번의 사건으로 인해 K리그 마케팅 시장이 얼어붙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해야 할 건 리얼돌 사태를 보며 경각심을 갖는 것 외에도 더 아름답고 멋진 이벤트에도 관심을 갖고 박수를 보내는 일이다. 그래야 K리그는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더 참신한 방식으로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K리그 경기장에는 리얼돌만 있는 게 아니다. 동심이 담긴 그림도 있고 이 그림이 혹시라도 손상될까봐 걱정하는 어른들도 있다. K리그에는 코로나19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지역민들의 응원 메시지도 있다.

footballavenue@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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