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용인=전영민 기자] 곽희주는 수원삼성에 몸담았던 2003년부터 2016년까지 수원의 좋았던 시절과 좋지 않았던 시절을 함께했다. 2000년대에는 송종국, 이운재, 마토, 에두, 나드손 등 K리그의 전설로 평가받는 선수들과 함께 '레알 수원'의 명성을 드높였다. 모기업의 지속적인 투자 감축으로 힘겨운 경쟁을 했던 2010년대 중반에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팀을 이끌기도 했다. 27일 오후 용인축구센터에서 나눈 곽희주와의 인터뷰. 그 두 번째 편을 소개한다.

[곽희주 인터뷰①] “현역 시절, 경기장은 놀이터 아닌 전쟁터였다”

차범근 감독님이 수원 시절 선수들에게 어려운 장면을 실행하길 요구해서 선수들이 '그게 되겠어?'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직접 시범을 성공적으로 보여서 선수들이 당황해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사실인가요?

맞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요. 발리슛 훈련이었어요. 측면에서 크로스가 올라오면 선수들이 발리슛으로 슈팅을 하는 연습이었어요. 그런데 발리슛이 쉽지 않다 보니까 선수들이 차는 족족 슈팅이 빗나갔어요. 그런 저희를 감독님이 보고 계시다가 "야 너네들 그것도 못해?" 그러면서 나서시더라고요. 그리고 측면에서 크로스가 올라왔는데 감독님이 정확한 발리슛으로 득점을 성공시키셨어요. 바로 한 번에요.

감독님이 정말 멋있는 궤적으로 발리슛을 성공시키셨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선수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그 장면을 보고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축구를 잘 알고 계시는 거죠. 크로스의 스피드와 궤적을 알고 어떻게 몸을 돌려 슈팅을 하면 된다는 확실한 방법을 알고 계시니까 확신에 차서 직접 시범을 보이신 거죠. 선수들이 다들 놀랐어요. '슈팅은 이렇게 차야 된다'는 방법을 제시해 주신 거죠.

최근에 과거 수원에서 뛰었던 리웨이펑 선수가 중국 언론과 한 인터뷰를 봤습니다. 리웨이펑이 인터뷰에서 "수원 시절 후배들이 잘못된 행동을 할 경우 곽희주가 해당 선수에게 바로 벌금을 걷었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오는 친구들, 그리고 대학교를 다니다 중간에 프로에 오는 친구들이 프로가 되면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돈을 쓰는 방법이 계획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선수들도 많죠. 가령 전날에 술을 먹고 술 냄새를 풍기면서 훈련장에 오는 선수들이 있었어요. 이 친구도 술 먹고 오고, 저 친구도 술 냄새를 풍기고 오고… 저희는 이런 애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나가서 결과를 보여줘야 하고 팬들을 만족시켜야 했어요. 하지만 이런 친구들과 함께라면 100%를 보여줄 수 없죠.

그래서 분위기를 잡으려고 했어요. 술을 먹어도 술 냄새를 풍기지 말거나 잠을 제대로 자고 와야죠. 훈계라기 보다는 훈련 분위기를 만드는 거였어요. 고참 선수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죠. 또 선수들이 팀 동료와 싸우거나 팀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을 했을 때 그리고 팀 미팅에 늦었을 때 벌금을 매겼어요. 미팅에 늦는 친구들이 진짜 많았어요.

이런 분위기를 저만 잡은 게 아니라 그전에 계셨던 선배님들도 잡으셨어요. 그런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저도 시간 약속을 지키려고 하고 훈련 때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긴장감이 없으면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거든요. 물론 팬들이 있는 경기장에 들어가면 긴장감이 생겨서 좋은 퍼포먼스가 나옵니다. 하지만 훈련 때는 긴장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분위기를 잡아줄 필요가 있었죠.

쓴소리를 정말 많이하셨나 봅니다.

평소에 누구에게 잔소리를 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동생들 입장에선 '저 형은 운동장에선 원래 좀 그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선배님들한테도 오해를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항상 "죄송합니다"라고 했죠. 그러면 형들은 다 이해를 해주고 넘어가셨어요. 제 스타일을 알고 계셨어요.

제가 동료들에게 얘기를 많이 하면 할수록 저희 팀이 좋은 위치를 잡게 되고 한 발자국 더 뛰어서 좋은 수비를 할 수 있었어요. 좋은 수비는 좋은 위치 선정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좋은 위치는 말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을 많이 하는 부분에 대해 동료들이 인정을 해줬어요. 다만 후배들한테는 "형 때문에 축구가 힘들었어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아마 (염)기훈이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할 거예요.

이제 양상민과 염기훈이 수원의 최고참이 되었습니다.

고참이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팀 분위기에 민감해져요. 좋은 분위기가 정말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확신을 받게 되면 그런 분위기를 잡으려고 하죠. 보통 이런 역할을 기훈이나 고참 선수들이 할 텐데 좋은 과정이에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밑에 있는 (홍)철이나 다른 선수들이 고참들이 만들고자 하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뒤에서 받쳐줘야 한다는 겁니다. 중간 다리 역할이 끊어지게 되면 고참들만 스트레스를 받다가 끝납니다. 어느 정도 팀 분위기가 유지는 되지만 더 탄력을 받고 올라가긴 어려워요.

고참은 외로운 자리입니다. 또 제일 불안한 자리입니다. 가정도 돌봐야 하고 은퇴도 생각해야 합니다. 또 지금 앞에 있는 성적도 생각해야 하죠. 다양한 걱정거리를 안고 있습니다. 반면 가장 편한 건 중간에 있는 선수들이에요. 중간 선수들이 놀고 있을 때 팀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 선수들이 고참들을 도와주려고 하고 1선에 나와서 싸우면서 분위기를 잡아야죠. 하지만 아직까지 중고참 선수들은 나와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기훈이 밑에 숨어있는 거죠.

여담이지만 선수 시절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상당히 부드러우신 점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어려운 축구를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 아이들한테는 그런 어려운 축구를 가르쳐주기 싫어요. 저는 어렸을 때 배운 축구가 무조건 상대 공격수를 돌아서지 못하게 하는 거였어요. 그러다 보니 공이 오면 상대에게 계속 붙어있었고 상대가 그 점을 알고 뒷공간에 킥을 때리면 쫓아가고 이렇게 어렵게 축구를 했었죠. 결국 그게 제 스타일이 됐어요. 하지만 그런 스타일이다 보니 몸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경기력이나 결과가 치명적이었기에 항상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아이들은 플레이 스타일에 있어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지도하고 있습니다.

ⓒ 대한축구협회

최근에 우연히 2000년대 초반 감독님이 이동국을 끈질기게 막는 영상을 봤습니다. 선수 시절 이동국, 데얀 등 리그 정상급 선수들을 유난히 잘 상대하셨던 노하우가 있을까요?

돌아서지 못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기 위해 항상 좋은 위치를 잡고 가까운 거리에 있고 또 붙었죠. 권투를 하면 잽을 날리잖아요. 잽을 날리는 게 상대로 하여금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좋은 공격 기회를 잡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훅을 한 번 때리죠. 저도 상대 공격수들이 공을 소유하고 있을 때 훅을 때렸습니다. 공을 낚아채던지 아니면 바짝 붙었죠.

90분 동안 계속 잽을 날려야 하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또 힘든 상황에서도 말은 해야 했는데 막상 말을 하게 되면 산소가 부족했어요. 경기가 끝나면 항상 헛구역질을 했고요. 경기 끝나고 집에 가면 거의 5시간 동안 계속 배가 아팠어요. 다른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고 저녁도 잘 못 먹을 정도였죠. 제가 상대했던 데얀, 라돈치치, (이)동국이 형은 공을 잡고 나서 연계를 해주려고 하는 선수들이었어요. 그래서 더 잽을 많이 날려야 했죠. 경기할 때는 접촉이 있고 하니까 상대 선수들이 저한테 짜증도 많이 냈는데 사적인 자리에서는 다 풀었어요. 다들 '경기장 밖에서는 그런 애가 아니구나' 이해를 해준 거죠.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라돈치치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라돈치치가 인천 시절엔 악동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수원 시절에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라돈치치가 정말 착했어요. 한국말도 굉장히 잘했죠. 그때 팀에 통역사가 있었는데 통역사가 외국인 선수들한테 통역을 해줄 때 라돈치치가 "야 통역, 이야기하지 마. 너 그 뉘앙스 틀렸어. 그거 아니야"라고 하면서 대신 통역을 했던 적이 많아요. 팀을 정말 많이 걱정하고 사랑했던 친구입니다. 외국인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정말 잘했어요. 라돈치치가 한국인 선수들과 엄청 가깝게 지내니까 외국인 선수들이 보이지 않게 라돈치치를 따돌리는 그런 일들도 있었죠. 경기장 안에서만 악동이었고 그 외의 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았어요. 좋은 동생입니다. 하지만 제가 SNS를 하지 않아서 최근에 연락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선수였던 시절 코치 역할을 하셨던 이임생 감독이 이젠 수원 지휘봉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임생 감독을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감독님은 정말 유연하신 분이세요. 다른 감독님들과 다르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유연한 사고로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시는 분이죠. 제가 2003년에 팀을 이탈했다가 돌아왔을 때였어요. 그때 사실 저를 제일 다그쳐야 할 분이 이임생 감독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를 제일 위로해주신 분이 이임생 감독님이셨어요. "희주야 괜찮아"라고 하시며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셨죠. 감독님은 저한테 좋은 선생님이세요.

지금 전술적인 부분에서 감독님이 자꾸 지적을 받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땐 지금 (수원 선수단) 조합으로는 정말 좋은 감독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분들이 와도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감독 입장에서 결과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죠.

지난 시즌 이임생 감독은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감독이란 직업은 경기를 졌을 때 문제가 커집니다. 패배하면 문제집이 한 권 늘어나고 경기에서 이기면 문제집이 한 권 없어지죠.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24시간 내내 문제점을 생각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진 않아요. 우리가 당구를 좋아하면 머릿속으로 당구 치는 장면을 계속 그리잖아요. 그것처럼 축구도 머리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잘 안 풀려요. 변수도 너무 많고 경기 당일의 날씨, 선수들의 심리 등 상대적이고 수학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죠. 저는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문제되는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님이 선방하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이 감독을 맡았으면 더 큰 문제가 되었을 겁니다. 혼란의 시기인 것 같아요.

ⓒ 대한축구협회

지난 시즌 매탄고 코치로 활동하셨을 때 오현규와 함께하셨습니다. 오현규에 대한 감독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좋은 걸 가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너무 만족하면 안될 것 같아요. 그전에 더 좋은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러나 만족하는 순간 그 선수들이 본인의 자리를 잃었죠. 그리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그런 축구 인생을 살았습니다. 현규는 계속 더 배워야 합니다. 물론 어리고 잘하긴 하죠. 지난 시즌에 슈퍼매치에서도 뛰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1년, 2년이 지나면 슈퍼매치를 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결과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할 때 실수가 많이 나오고 문제점이 나타납니다. 이제는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고 또 고민하고 기술적으로도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는 훈련을 해야겠죠. 제가 봤을 땐 현규가 그 나이 때의 (신)영록이보다 뛰어나지 않아요. 영록이는 중3 때 우리 팀에 왔을 때 프로 선수들을 상대로 등을 지고는 공을 절대 빼앗기지 않았어요. 영록이처럼 '김호의 아이들'로 불리는 좋은 실력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옛날에 있었죠. 지금 어린 선수들을 보고 "잘한다 잘한다"하면 선수들이 거기에 정착하고 발전하지 않게 됩니다. 치명적인 상황이 오는 거죠. 현규가 아직은 부족해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의외의 답변입니다. 원래도 제자들을 냉정하게 평가하시는 편인가요?

냉정하기 보다는 선수들이 부족한 부분을 현실적으로 얘기해줍니다. 지금 여기서도 축구를 잘한다고 축구를 다 배운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은퇴를 했지만 아직 축구를 모르겠다. 나도 그렇고 너희들도 계속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아이들은 소수죠. 그 외의 아이들은 계속 배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훈련을 시켜도 분위기가 좋아요.

과거에 구자룡을 언급하며 "나와 비슷한 선수"라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룡이에 대해 '굴뚝이'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자룡이가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경찰청 축구단에 가서도 어려운 시기를 보냈죠. 그런 걸 겪으며 일어났어요. 구단에서 방출 직전 상황까지 가기도 했어요. 그때 구단과 감독님 모두 "1년 더 지켜보겠다"고 했는데 결국 힘들게 올라왔죠. 지금은 좋은 조건으로 전북에 갔습니다. 전북에서 경기를 뛸 수 있을지 뛸 수 없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룡이는 어려울수록 강해질 겁니다. 저와 비슷한 면이 있더라고요.

구자룡의 전북 이적이 결정됐을 때 내심 아쉽진 않으셨나요?

사실 자룡이가 수원에 남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죠. 하지만 환경적인 변화를 맞는 것이 자룡이가 더 축구를 오래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적이 확정되었을 때 응원했어요. 전북이 강팀이고 공격축구를 하는 팀이잖아요. 그런 축구를 하게 되면 기술적, 심리적으로 더 발전할 거라고 생각해요. 선수 개인 입장에서 봤을 땐 잘 선택을 한 거죠. 하지만 선수들을 육성하는 수원 구단 입장에선 유스 시스템의 본보기 같은 선수를 보낸 것이기 때문에 (팀의 육성) 방향에 어느 정도 어긋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선수였던 시절 K리그 각 팀에는 저마다 대들보 같은 수비수들이 있었습니다. FC서울의 김진규, 전북현대의 조성환, 인천유나이티드의 임중용 같은 선수들이죠.

다들 센터백입니다. 그 자리가 정말 힘든 자리입니다. 더 강해져야 하는 자리고 순간적인 플레이 하나로 결과가 바뀌는 자리에요. 방금 말씀하신 선수들은 다들 제가 좋아했던 선수들입니다. 많은 분들한테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선수들이었죠. 그 선수들을 보며 '고생 많겠다'는 생각을 내심 했기 때문에 그 선수들의 입장을 이해했죠. 그 선수들과 만나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었어요. 특유의 느낌인 거죠. 선수들이 포지션에 따라 성격이 달라요. 공격수들은 확실히 업다운이 있습니다. 중앙 수비수들은 딱 중간이죠. 하지만 또 크게 보면 다 똑같은 선수들이에요. 경기장에서 보여지는 그 선수들의 모습은 생존 본능이었던 거죠.

ⓒ 대한축구협회

다시 최근 이야기로 돌아와보고 싶습니다. 감독이 되신 만큼 부모님들과의 의사소통 문제 역시 중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책임을 질 수 있는 문제가 있을 땐 부모님들에게 솔직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솔직한 게 중요해요. 저한텐 정말 중요한 아이들입니다. 아이들하고 있는 게 편하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상황마다 느끼는 기분에 대해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또 부모님들한테 이 친구들을 어떻게 육성할 건지 설명합니다. 부모님들한테 이야기를 하면 그게 아이들한테도 전달됩니다.

사실 지금 중학교 아이들을 강압적으로 운동시키면 성적이 더 잘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시키는 것만 하고 고등학교에 가서나 그 후에 누군가 시키지 않으면 운동을 하지 않아요. 그 상태로 프로에 가면 도태되고 결국 경쟁에서 밀리게 되는 거죠. 아이들한테 제 교육관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너네한테 물고기를 잡아주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요. 지금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 동선 파악을 해야 하는데 어떤 선수들은 매일 본인 동선에 대해 말을 하고 다른 선수들은 깜빡하고 보내지 않은 선수들도 있죠. 스스로 하는 아이들에게는 보상을 해줄 겁니다. 이런 차별화를 두면 아이들도 '아 내가 스스로 했을 때 이런 보상이 있구나' 느끼게 되겠죠.

지도자로서 목표는 어떤 것이신가요?

우선 제가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재료가 있어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레시피가 있어야 하는데 그 레시피를 찾고 싶어요. 어떤 팀에 가서든, 어떤 선수 조합으로도 팀을 만들 수 있는 그런 레시피를 배우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여기로 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우선 운동장이 있고 운동장 사이즈에 따라 훈련 프로그램,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수 있습니다. 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아이들의 이해도 역시 높일 수 있고요.

여기가 지도자에 대한 계약기간, 확실한 보장 등이 좋습니다. 이곳 용인축구센터 출신의 프로선수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지금 K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100명이 넘어요. 프로 유스팀에서도 이 정도 시설을 가지고 있는 곳이 없어요. 아이들에 대해 걱정하시는 학부모님들이 최대한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여긴 아시는 학부모님들만 오시거든요. 아이들을 훈련시키기에 이곳 만한 조건이 없습니다.

과거 "언젠가 수원 감독직을 맡는 것이 꿈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그 꿈은 유효하신가요?

선수 때 수원 팬들께 감동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꿈을 갖게 됐죠. 하지만 단기 감독은 되기 싫어요. 정말 좋은 조건에 장기적으로 감독을 맡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제가 비싼 감독이 되어야 해요. 1년 감독하겠다고 수원에 가긴 싫어요. 그렇게 하고 싶었으면 수원에 계속 남았겠죠.

이전과 달라진 수원에 저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이렇게 된 게 아니잖아요. 경기력을 포함해 문제가 계속 생겼고 제가 뛸 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또 재밌는 축구를 하지도 못했어요. 선수들 책임이죠. 지금 수원이 힘들긴 하지만 팬들이 왜 수원 축구를 보시겠어요. 어떠한 감동을 받기 위해 보시는 거잖아요. 그런 감동을 안겨드려야죠. 매탄고 코치 시절에도 수원 선수들하고 얘기할 때면 "힘들지만 잘 이겨내자" "괜찮아"라고 많이 다독였어요. 항상 걱정이 되긴 합니다. 이런 걱정이 빨리 사그라졌으면 좋겠어요.

ⓒ 대한축구협회

현역 시절 곽희주는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너무나 치열했던 프로에서의 14년이기에 그는 "영광의 시절로 돌아가라고 해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뜻밖의 고백을 했다. 누구보다 간절한 현역 시절을 보냈던 그는 이제 감독으로서 제 2의 인생을 준비한다. 과연 먼 훗날 감독 곽희주는 어떤 지도자로 이름을 남기게 될까. "비싼 감독이 되어 수원 지휘봉을 잡고 싶다"는 곽희주. 그의 지도자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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