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희주 인터뷰①] “현역 시절, 경기장은 놀이터 아닌 전쟁터였다”


[스포츠니어스|용인=전영민 기자] 곽희주. 수원삼성 팬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지난 2003년 수원에 입단한 곽희주는 2016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수원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무려 369경기에 나섰다. 그는 현역 시절 포기하지 않는 모습과 남다른 투지로 수원 수비진을 이끌었다. 문득 그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수원의 전설이자 모든 것이나 다름 없었던 곽희주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스포츠니어스>는 27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용인축구센터에서 감독으로 제 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곽희주를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를 2편에 걸쳐 소개한다.

반갑습니다 감독님.
반갑습니다.

팬들께서 감독님 근황을 궁금해 하십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용인축구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곳 용인축구센터엔 두 개의 중학교 팀과 한 개의 고등부 팀이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 중학교 팀 중 하나인 원삼FC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사실 새로운 곳에 와서 예전 집이 더 그리우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시설도 좋고 다들 잘 대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좋은 시스템 속에서 생활 중입니다.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는 매탄고등학교에서 코치직을 맡으신 걸로 압니다.
매탄고에서는 1학년 코치를 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점 때문에 용인축구센터로 오는 걸 선택했습니다. 또 이곳에서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 방향에 맞춰 축구 인생을 걸어가는 중입니다. 감독은 직접 문제를 계속 풀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코치 생활을 하는 것보다 문제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자리를 빨리 경험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심각하네요. 훈련을 중단한 상태입니다.

저도 이곳 주변에 살고 있었지만 용인축구센터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영어, 음악, 심리 수업 등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수업들을 이곳에서 진행합니다. 행정, 교육 지원팀이 있고 거기에 속해 다양한 업무를 보시는 분들도 열 분 정도 계십니다. 영양사님도 있으십니다. 어떻게 보면 시설이나 선수들 식사 관련 부분 역시 수원보다 앞서있다고 볼 수 있어요. 좋은 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실제로 둘러보니 시설이 웬만한 K리그 클럽하우스보다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선생님들하고 “내가 중고등학교 선수였으면 무조건 여기 왔다”고 농담 삼아 말을 하기도 합니다. 상당히 부러워요. 저희는 사용해보지 못했던 시설에서 아이들이 운동을 하고 있고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용인시에서도 선수 육성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고 걱정도 많이 해주십니다. 매점도 있어요.

경기장은 총 5면인데 인조잔디 구장이 3면이고 천연잔디 구장이 2면입니다. 비가 오거나 겨울에 눈이 올 때 사용할 수 있는 규모가 큰 돔구장도 있습니다. 고등부가 제일 좋은 구장을 사용하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라이벌이라고 볼 수 있는 중학교 두 팀이 가장 좋은 구장을 한 번씩 번갈아가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선수들을 다루시는지 궁금합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시도할 것을 아이들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선수들을 유연하게 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좋은 교육관을 가지고 있으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김보경 선수도 이곳 출신입니다. 김보경 선수도 어렸을 땐 상당히 키가 작았다고 들었어요. 잘은 모르지만 아마 좋은 실력을 가졌음에도 신체적인 조건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좋은 팀들이 그 선수를 선택하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김보경 선수가 여기서 좋은 교육을 받았고 이곳에 있는 동안 키도 컸다고 들었습니다.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이곳에 좋은 지도자 선생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항상 아이들한테 “정답은 운동장 안에 있다”라는 걸 강조합니다. “정답을 찾기 위해 항상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라”라는 이야기 역시 많이 합니다. 그냥 시키는 것만 하는 아이들이 있고 반면 ‘무슨 훈련을 해야겠다’고 확실한 계획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행에 옮길 수 있게끔 강조하고 있어요.

혹시 감독님이 현역 시절 대단한 선수이셨던 걸 제자들도 알고 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아이들에게 제가 수원에서 어떤 축구를 했는가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보다 축구를 먼저 경험했던 경험자로서 “앞으로 마음의 상심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가야 할 길이 멀기에 모든 걸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해라. 축구를 다 배운 것 같이 행동하지 말고 더 배우려고 해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2주를 더 쉰 후에 선수들이 소집됩니다. 두 달 정도 쉬는 동안 키가 상당히 큰 아이들도 있을 겁니다. 전화해서 물어보면 “저 키 많이 컸어요”라고 하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잠깐은 쉬고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시기일 겁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들이 팀을 맡았을 때 흔히 ‘나는 축구를 이 정도로 했는데 왜 애들은 이렇게밖에 못하지?’라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감독님도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사실 저도 중고등학교 때 축구를 상당히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지금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실력에 놀랄 때가 많아요. 기술은 지금 아이들이 더 좋아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실수를 할 수 있어요. 다만 아이들이 실수를 반복할 땐 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런 걸 잡아주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한테 도움이 될 거예요.

ⓒ 한국프로축구연맹

“나는 중고등학교 때 축구를 상당히 못하는 선수였다”고 표현하셨는데 그렇다면 감독님의 기량이 성장했던 시기는 언제이신가요?
중고등학교 때는 항상 경기에서 패배하는 팀에 있었습니다. 보복을 많이 당했죠. 거의 1년 내내 뛰는 훈련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잘하는 팀 선수들은 항상 이기기 때문에 휴가라든지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때 고통을 겪으면서 멘탈이 강해졌습니다. 또 피지컬이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거기에 기술까지 습득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도 가능성이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와 3학년 때 기량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많은 걸 얻었습니다. 대학교 땐 기량을 유지하는 정도로 운동을 했습니다. 프로에 갔을 때는 프로 세계에서의 경쟁 관계에 대해 이해했습니다. 시간대별로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프로 첫 팀으로 당시 K리그 최고 명문으로 평가받던 수원삼성에 입단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셨습니다.
처음에는 프로선수가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그 목표를 이루고 나니까 정작 그 다음에 대해선 계획이 없었다는 걸 확실히 느꼈습니다. 계획이 없으니까 어려움이 닥쳤을 때 부딪쳐나가기가 어렵더라고요. 처음엔 프로에 있는 선배들하고 저하고의 경쟁 관계 이런 부분에 대해 이해도가 떨어졌어요. 저를 보여줘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저를 봐주기를 바랐고 그렇게 저를 보여주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소외되고 어려움을 겪었어요. 1년 차 때 말이죠.

이후에 팀을 이탈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때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이제는 잃을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고 싸웠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니까 영광의 자리(2004 K리그 우승, 2004 K리그 베스트11 선정)에 올라가 있었어요. 하지만 두 번 다시 겪고 싶지는 않은 과정입니다. 너무 어려웠어요. 영광도 있었지만 고통 역시 길었기에 옛날 이야기를 잘 안 하게 되는 편입니다. 너무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요.

당시에 팀을 이탈하셨을 때 수원 코치 한 분이 위치 추적을 해서 감독님을 찾아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핸드폰을 꺼놨다가 잠깐 켰는데 위치 추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코치님이 그 근방에서 오랫동안 잠복을 하신 것 같더라고요. 사실 그때 제가 눈이 좋지 않은 상태여서 축구를 할 때 어려움이 있었어요. 시선이 공에만 꽂히고 주변을 미리 볼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그 부분이 트라우마가 됐어요. 또 수비수로서 공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꾸 실수가 나왔어요. 경기력이 많이 떨어졌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리를 잡아갔어요.

솔직히 말하면 영광스러운 장면들은 기억이 안 나요. 2004년에 너무 갑작스럽게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됐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어려웠고 거칠었고 하루하루가 상당히 고단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 비해서 우승했을 때의 기억은 너무 짧더라고요. 우승을 하고 준비하는 2004년 한 해 동안의 과정에서 제 스스로 여유가 있을 필요도 있었는데 그땐 제 자리가 확고하지 않았고 또 팬들의 원성도 있었기에 멀리 보지 못하고 앞만 보면서 달려야 했어요.

그래도 절 도와주시는 분들, 지지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어요. 항상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들, 그리고 “그래도 곽희주는 포기하지 않을 거다”라고 믿어주시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끝까지 버텼습니다. ‘이분들을 위해 내 자신을 더 확실하고 강하게 단련시키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자리잡혔습니다.

얼마 전에 서장훈 선수가 방송에 나와서 “단 한 번도 농구를 즐겼던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걸 봤습니다. 반면 “운동을 즐겼다”고 말하는 은퇴 선수들도 많습니다. 감독님은 어떠셨나요?
저는 단 한 번도 축구가 즐거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치열하게 했어요.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 놓고 하자. 즐기자’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나갔을 땐 결과가 굉장히 좋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마음을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받아야지 더 준비를 하고 또 승리 확률이 높아지는 걸 몸소 느꼈기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저 자신을 합리화시켰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축구를 하시다가 20대 후반 나이(2009시즌)에 수원 주장에 선출되셨습니다.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어요. 차범근 감독님이 계실 때인데 제가 정해 놓은 2차적 목표를 성취했을 때여서 ‘이제 마음을 놓고 즐기자. 스트레스를 버리고 하자’는 생각으로 2009년을 치를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주장 완장을 차게 됐습니다. 그때 슬럼프가 깊게 왔어요.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때인데 무언가에 잡혀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혼란스러운 상황이 오면서 오래 슬럼프를 겪었죠. 제 생각엔 2009년 한 해를 거의 망쳤어요. 마음이 망가지니 몸이 망가지고 잔부상도 생겼습니다. 제일 좋은 시기였던 2008년 이후에 1~2년 슬럼프를 경험했던 거죠. 망가져 있는 몸을 다시 만드려고 하니까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부상은 계속 생기는데 마음은 급해서 빨리 훈련을 하려고 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때부터 천천히 제 자신이 내려갔던 것 같아요.

ⓒ 한국프로축구연맹

염기훈 선수가 과거에 “희주 형이 있을 땐 후배들을 심하게 다그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인터뷰 한 걸 봤습니다.
경기장에 들어가기 전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죽기살기로 뛰겠습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그 마음이 1분 1초마다 계속 바뀌어요. 선수들 본인만 아는 그런 감정이 있어요. 힘들면 포기하고 싶고 또 힘든 상황에서 도전하고 상대 선수와 부딪치다 보면 그 초심이 사그라질 때 있고요. 그래서 경기장 안에서 그런 1분 1초를 다잡기 위해선 조금 더 강제적인 게 있어야 합니다. 또 수비수인 제 위치 특성상 선수들이 한 발이라도 더 뛰어줘야 팀이 버틸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그런 부분에서 강요를 했죠.

만약 제가 공격수였으면 선수들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상대를 막는 입장이고 주변 동료들의 힘이 필요했어요. 선수들한테 심한 욕도 했었죠.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선수들의 잠재적인 능력을 뽑아내야 하니까요. 저에게 그라운드는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였거든요. 선수들을 잘 만나는 경우에는 좋은 동료나 선후배 관계가 되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정말 많았어요. 개인의 이득을 위해 본인이 힘들면 그 상황을 남들에게 미루고 ‘다른 누가 해주겠지’ 이런 생각을 가진 선수들이요. 선수가 그런 생각을 가지는 순간 팀이 망가집니다. 저는 ‘누군가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어요.

훈련 때도 고참으로서 선수들을 강하게 다그치시는 편이셨나요?
훈련 때는 그렇게 심하게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경기 전날에는 어느 정도 긴장감을 가지고 훈련을 했었습니다. 경기장은 실험을 하는 곳이 아니라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곳이잖아요. 훈련장과는 확실히 다르죠. 밖에서 보시는 분들은 경기 중에 크로스가 한 번 올라오면 위협적인 장면으로 보실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실 수도 있는데 뛰는 선수 입장에선 그렇게 공수전환이 한 번 빠르게 되면 모든 선수들이 급속히 지칩니다. 그런 상황에서 또 한 번 크로스가 올라오면 집중력이 더 떨어지죠. 그럴 때 선수들에게 강한 어조로 말하면서 경기에 집중을 하게 했습니다.

감독님이 수원에서 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비진의 호흡이 가장 잘 맞았던 때는 언제인가요?
2004년도 기억이 나지만 특히 (이)정수 형, 마토, (송)종국이 형과 함께 있던 2008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역할은 물론 본인이 맡은 역할 외의 일도 도와주려고 하는 조합의 선수들이었어요. 마토가 앞으로 나가서 헤딩을 하면 제가 뒤로 커버를 갔습니다. 마토가 무조건 헤딩을 딸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2~3%의 실수를 막기 위해 4m에서 5m를 제가 내려갔습니다. 저 말고 다른 선수들도 다 그랬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서로가 신뢰를 쌓았습니다.

혹시나 내가 실수를 해도 뒤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다른 동료들이 나를 뒤에서 커버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쌓이며 서로 간에 믿음이 강해졌고 ‘상대가 공격을 몰아쳐도 우린 절대로 골을 먹지 않을 거야’라는 마음가짐이 생겼습니다. 내가 실수를 해서 태클로 1차 위기를 막으면 다른 선수들이 바로 와서 도와줬어요. 반대로 만약에 한 선수가 상대에게 속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달려와서 커버를 해줬죠. 그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잘 됐어요. 서로가 서로를 돕고자 하는 마음들이 컸어요. 만약에 우리 수비 라인이 뚫려도 (이)운재 형이 있었어요.

그렇게 2008년 수원은 아직도 회자되는 리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여전히 그때 영상을 자주 보시나요?
네. 그때 경기를 보면 지금하고는 확실히 차이가 있어요. 전술적인 차이라기 보다는 선수들의 마음에 차이가 있는 게 확실히 보입니다. 그때는 ‘원팀’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원팀’을 만드는 것은 전술이 아니라 선수들의 마음이에요. 그런 마음을 만드는 건 감독 한 사람, 선배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원팀을 만드는 게 정말 어려워요. 어렵기 때문에 원팀을 만들면 바로 우승권 팀이 되는 거죠. 지금 (수원) 같은 경우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원래 우승에 대한 보상금을 구단에서 정해놓는데 2007년이 끝나고 스타플레이어들이 다 팀에서 빠져나간 상황이었어요. 검증되지 않은 (신)영록이, (서)동현이가 전방에 있었죠. 다들 우리 팀에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저희 역시 불안감이 있었죠. ‘우리끼리 해서 될까?’ ‘왜 아무도 우리 팀에 안 오지?’ 하지만 그런 불안감이 우리를 더 끈끈하게 했고 결국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었어요. 정말 어린 선수들이 전투적으로 싸웠고 뛰었고 또 본인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영록이가 중학교 3학년 때 수원에 왔잖아요. 영록이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하지만 2008년에는 영록이가 경쟁의 개념을 단계적으로 밟아가서 어느 정도 그 개념에 대해 이해했을 때였어요. 이제는 본인을 보여줘야 하고 또 K리그라는 무대에 올라가고 싶고 본인의 자리를 찾고 싶어하는 그런 어린 선수들의 의지가 상당히 좋았고 어린 선수들부터 중간 나이대 선수들 그리고 가장 고참 선수들까지 골고루 배치가 잘 되었던 때죠.

ⓒ 한국프로축구연맹

당시 수원의 리그 우승에는 차범근 감독님의 엄격한 규율 역시 한몫 했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맞습니다. 선수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확실한 징계가 있었습니다. 차범근 감독님 시절에 임의탈퇴 처분을 받아 팀에서 나간 선수들도 많았습니다. 감독님이 행정을 하시는 구단 관계자 분들까지도 강한 파워로 잡고 계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감독님의 뜻대로 팀이 나아갈 수 있었죠.

2편에서 계속. 

[곽희주 인터뷰②] “비싼 감독이 돼 언젠간 수원 돌아가고 싶어”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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