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아산 이재건 “남들보다 10분 먼저 출근하고 10분 늦게 퇴근해”


[스포츠니어스|아산=전영민 기자] 올 시즌 충남아산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 팀에는 간절한 선수들이 많다. 많은 비용을 쓰지 못하는 구단 특성상 당연한 일이다. 24세 공격수 이재건 역시 간절함의 의미를 잘 아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약체로 평가받는 송호대학교를 졸업한 후 벨기에 2부리그 AFC투비즈에 입단한 그는 지난 시즌부터 아산 유니폼을 입고 활약 중이다. 어린 나이에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이재건. 그는 K리그에서의 두 번째 시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스포츠니어스>는 24일 오후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이재건을 만나 벨기에에서의 2년, 송호대 시절, 새 시즌 각오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반갑다. 시즌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
컨디션이 많이 좋아지고 있다. 동기부여가 없다 보니까 허무하고 허탈했는데 그래도 언제 시즌이 시작할지 모르니까 항상 준비는 하고 있었다. 컨디션이 70~80% 정도로 올라왔다. 남해, 부산, 통영에서 전지훈련을 했고 그 기간 동안 체력훈련을 했다. 팀원들끼리 자체 경기도 하고 경쟁도 많이 했다. 그래서 경기 감각이 나쁘지 않은 상태다.

자체 경기만 했으면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진 않다. 동료들끼리 서로 잘 아는 사이고 또 서로 잘 맞아서 오히려 경쟁심이 생겼다. 이번에 우리 팀에 외국인 선수들이 새로 왔다. 좋은 선수들이다. 어린 선수들도 있는데 서로 얘기를 하면서 호흡을 맞춰가고 있다. 공격진끼리의 호흡이 좋다.

한국 나이로 24살이다. 나이로 치면 아산에서 어느 정도 위치인가?
아직 중간에 끼기도 어린 애매한 위치다. 지금 우리 팀에서 제일 어린 선수들이 21살이다.

막내들이 할 일이 많은데 후배들을 좀 도와주는 편인가?
아니다. 그런 건 확실히 해야 한다. 또 후배들이 알아서 잘하기 때문에 옆에서 그냥 조금만 도와주는 편이다.

외국에서 오랜 시간 생활했다. 외국인 선수들을 보며 옛날 본인의 모습이 떠오를 것 같은데?
그렇다. 그래서 영어를 잘 못하는데도 운동할 때 무야키치와 헬퀴스트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다. 물론 워낙 친화력이 좋은 친구들이라서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다. 사실 우리 팀에 통역이 있긴 하지만 항상 통역이 선수들 옆에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간단한 규칙 같은 거나 연습경기 때 같은 팀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을 알려준다. 농담도 많이 한다. 무야키치가 작년에 잠깐 벨기에에서 뛰었다. 나도 벨기에에서 뛴 적이 있다. 그래서 서로 프랑스어로 욕을 한다. 무야키치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하진 못하는데 욕은 알고 있더라.

경기장 바깥에서도 외국인 선수들을 도와주는 편인가?
아니다. 그 친구들은 저녁을 먹지 않고 퇴근할 때도 있다. 나도 집이 멀어서 훈련 시간 말고는 그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없다.

사는 곳이 어딘가?
경기도 오산에 살고 있다. 차로 왔다 갔다 하면 아산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우리 팀은 ‘점심을 다 같이 먹자’는 분위기다. 그래서 점심에 선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가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나서 운동을 하고 저녁도 다 함께 먹고 퇴근한다. 공격수, 수비수 가릴 것 없이 팀 선수들 모두가 다 친하다. 다만 외국인 선수들은 집이 천안이어서 국내 선수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축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성남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다. 축구를 좋아해서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애들이랑 축구를 했다. 그때 평택 서정리초등학교 축구부 코치님이 학생들을 스카우트하려고 주변 초등학교를 돌다가 내가 혼자 운동하고 있는 걸 보셨다. 그렇게 축구를 시작했다.

5학년 중반에서 말쯤 축구를 시작했으니 조금 늦게 시작한 편이다. 또 어렸을 때 축구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엄마가 “다른 선수들보다 10분 먼저 운동장에 나가서 10분 늦게 들어와라. 그렇게 1년이 지나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축적되고 10년이 지나면 더 큰 시간이 쌓이게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남들보다 10분 먼저 경기장에 나가고 10분 늦게 들어왔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지금도 ’10분 철학’을 실천하고 있나?
아무래도 프로까지 온 선수들은 다 특출난 선수들이다. 그러다 보니 다들 일찍 훈련장에 나가더라. 내가 운동장에 10분 일찍 나가도 나보다 일찍 나오는 선수들이 있다. 또 내가 10분 늦게 퇴근해도 나보다 늦게 들어가는 선수들이 있다.

어쨌든 그런 노력 덕분인지 늦게 축구를 시작했지만 중학교 진학에 성공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며 축구를 그만둔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조금은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서울에 있는 구로중학교로 진학을 했는데 안타까운 점이라면 서정리초등학교 축구부와 구로중학교 축구부가 지금은 모두 해체가 됐다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측면 수비수로 출전하다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공격수로 나섰다. 이후에 쭉 공격수로 활약 중이다.

고등학교는 경희고등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여담이지만 최근에 경희고등학교 선수들이 대건고등학교와 경기에서 한 행동으로 논란이 된 것을 알고 있나?
알고 있다. 아직 선수들이 어리니까 승부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잘못된 행동이었다.

일반 학교 출신 선수들이 프로 산하 학교와 경기를 하면 이를 더 악물고 뛴다고 들었다.
그렇다. 좀 그런 게 있다. 일반고 선수들 중 ‘프로 산하 학교 팀들이 우리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래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프로 산하 팀들이랑 하면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이후에 송호대학교로 진학했다.
원래 대학교 진학에 실패해서 놀았다. 보통 고3이 끝나갈 쯤이면 대학 진학이 확정난다. 하지만 난 대학에 가지 못했고 그렇게 집에서 두 달을 쉬었다. 혼자 있으면 우울하니까 가족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냈다. 누나랑 해외여행도 갔다. 축구에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 그러다가 송호대 하성준 감독님이 기회를 주셔서 뒤늦게 대학에 입학했다. 송호대에 합류했을 때가 2월이었다.

다른 선수들과는 다르게 동계훈련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또 굴러들어온 입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선수들과 섞이려고 노력했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송호대에 모인 친구들 중 나처럼 대학교를 가지 못한 친구들이 많았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송호대가 굉장히 많이 뛰는 팀이라고 들었다.
하루에 세 탕, 네 탕씩 운동을 했다. 새벽 5시 반부터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계속 운동을 하다 보니 선수들이 엄청 잘 뛰었다. 여름이 되면 더 무서워졌다. 동계훈련 때는 하루에 네 탕씩, 평소 리그 경기가 있을 땐 하루에 세 탕씩 훈련을 했다. 그게 감독님의 철학이셨다.

너무 많은 훈련량이다. 불만은 없었나?
불만이 많았다. 그렇지만 훈련한 만큼 경기장 안에서 플레이가 잘 됐고 체력적인 부분들이 좋아지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훈련을 따라가게 됐다. 감독님도 “지금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중에 팀을 못 찾고 그러는 것보다 지금 힘든 게 낫다”고 말씀하셨다. 감독님이 좋으신 분이셨다. 저녁에 간식도 해주시고 핫도그도 해주셨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도 구워주셨다.

2017년 왕중앙전에 결승전까지 갔다. 고려대학교와 결승에서 만났는데 0-2로 져서 준우승을 했다. 정말 많이 뛰는 축구를 했다. 내려서서 상대에게 두드려 맞으며 공격을 다 막아내고 역습을 성공해서 이기는 축구였다. 그때 우리 공격수들이 다 잘했다. 나도 골을 많이 넣었다. 지금 수원삼성에서 뛰는 김준형 선수가 그때 팀 동료였는데 그 친구가 패스를 찔러주면 내가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골을 많이 성공시켰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이라면 당시 송호대 멤버 중 지금까지 프로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나와 준형이 두 명뿐이라는 것이다.

특별한 사이기에 김준형이 국가대표에 발탁되었을 때도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정말 좋았다. 국가대표 명단 발표가 나오기 전날 준형이와 만나서 커피를 한잔 했다. 준형이도 본인이 국가대표에 발탁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갑자기 대표팀에 뽑힌 거다. 나도 기분이 좋았고 그 친구도 놀랐다. 따로 만나서 같이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집이 오산이고 준형이도 동탄에 살고 있어서 요즘도 준형이가 우리 집에 와서 종종 밥을 먹는다. 커피도 자주 마신다. 아직까지 준형이와 잘 지내고 있다.

프로 경력을 투비즈(벨기에)에서 시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투비즈로 갔다. 에이전트 계약을 했는데 에이전시사가 투비즈 구단을 소유하고 있었다. 나를 좋게 봐주셨다. 그렇게 연결이 돼서 갔다. 처음 갔을 때 투비즈에 김은중 코치님이 계셨다. 한국인 프런트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편했지만 생활은 힘들었다. 혼자 사는 게 쉽지가 않더라. 처음 벨기에에 갔을 땐 음식을 아예 못했고 유튜브를 보면서 음식 만들기를 따라했다. 또 투비즈가 시골 동네였다. 한식 식료품을 파는 곳이 투비즈에서 멀었다. 가격도 비쌌다. 그래서 라면을 많이 먹었다.

ⓒ 스포티즌

집에서 한식을 공수해 먹진 않았나?
부모님은 항상 음식을 보내주려고 하셨는데 절차가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내가 “차라리 사 먹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구단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방법도 있었다. 그런데 입맛에 너무 맞지 않더라. 파스타를 주는데 양념도 되어있지 않은 파스타를 줬다. 그냥 소금만 조금 친 파스타였다. 그래서 내가 직접 음식을 해먹었다.

벨기에가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권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투비즈는 어떤 언어를 쓰는 동네였나?
프랑스 언어권이었다. 그때 선수단에 외국인 선수들이 많았는데 크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영어를 사용하는 친구들로 나뉘어있었다. 그런데 프랑스어를 하는 선수들 중엔 영어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반대로 영어를 사용하는 선수들 중엔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영어를 쓰는 선수들과 잘 지냈다. 감독님은 세 분과 함께했는데 다 프랑스 분이셨다.

영어를 잘하진 못하지만 대충 알아는 듣는다. 프랑스어는 진짜 못한다. 숫자나 운동장에서 쓰는 말, 예를 들어 왼쪽, 오른쪽, 앞, 뒤 정도만 말할 줄 안다. 공부를 하긴 했는데 프랑스어가 워낙 어렵다. 마트에 가서도 번역기를 돌려서 의사소통을 하곤 했다. 네덜란드어도 아예 할 줄 모른다. 투비즈에서도 네덜란드어를 할 줄 아는 선수는 두 명 정도밖에 없었다. 투비즈가 프랑스랑 가깝고 네덜란드와는 워낙 멀리 떨어져 있는 동네였다.

김은중 코치님과 한국인 프런트들이 많은 의지가 됐다. 특히 운동 시간엔 김은중 코치님이 내게 많은 걸 알려주셨다. 나도 코치님을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주로 공격적인 움직임이나 득점을 할 수 있는 위치 선정 등에 대해 알려주셨다.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법 등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다. 코치님은 여전히 ‘샤프’하시다.

당시 투비즈가 2부리그에 있었다. 벨기에 2부리그의 전체적인 수준은 어땠나?
상위권 팀들과 중위권 팀들은 되게 잘했다. 우리 팀은 중하위권 팀이었는데 경기를 하면 항상 쉽지가 않았다. 경기력은 매번 괜찮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K리그2와 벨기에 2부리그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한국은 속도가 빠르고 상당히 거칠다. 반면 벨기에 리그는 선수들이 둔탁하면서도 몸을 유연하게 쓴다. 공을 예쁘게 차는 선수들이 많았다. 확실히 한국에 비해 기술적이었다. 하지만 두 리그 모두 힘든 건 마찬가지다. 쉽지가 않다.

흔히 말하는 텃세는 없었나?
없었다. 다만 나 혼자 일종의 자격지심이 있었다. 선수들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 하지만 같이 운동하면서 하루 이틀 부딪치다 보니 다들 잘 챙겨주더라. 리그 경기 중엔 인종차별이 한 번 있었다. 뭐라하는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그 선수가 하는 제스처가 인종차별적이었다.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도 똑같이 해주면 되니까 말이다.

한국에선 “선수들이 어렸을 때 외국에서 성장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많다.
우선 정말 쉽지가 않다. 외국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가 않고 가서 잘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무조건 외국으로 나간다고 좋은 게 아니다. 한국에서 잘해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여담이지만 벨기에 와플 맛은 좀 어떤가?
진짜 맛있다. 한국에서 파는 와플보다 훨씬 낫다. 심지어 마트에서 파는 와플도 맛있다. 한국 길거리 와플도 맛있지만 벨기에 와플은 상당히 괜찮다. 와플에 이상한 토핑도 많이 올리고 딸기랑 바나나도 넣는데 정말 맛있다. 벨기에가 홍합탕도 유명하다고 하더라. 초콜릿도 맛있고 맥주도 유명하다.

맥주 이야기를 꺼내니 설기현 감독이 과거 인터뷰에서 “벨기에에서 뛸 때 경기 후 동료들과 맥주를 많이 마셨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우리 팀도 그랬다. 홈경기에서 이기면 라커룸에서 맥주를 먹으며 축배를 들었다. 원정 경기에 가서도 이기든 지든 상관 없이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려서 맥주를 사서 다 같이 버스에서 마셨다. 감독님도 같이 마셨다.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한두 번 그러다 보니까 금세 적응됐다. 맥주를 마시지 않는 선수들은 콜라를 마셨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맥주를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외국 선수들은 경기에서 패배하면 분해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끝났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 경기에서 이기면 되지’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경기에서 지면 심각하다. 이런 점이 다르다.

투비즈에서 뛸 때 동료들끼리 주고 받는 말의 강도 역시 셌다. “누가 맞다” “누가 틀렸다”를 따지는 것보다는 “그런 상황에서는 이런 플레이를 해줘라” “나는 너가 이렇게 플레이하는 게 힘들었다”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처음에 갔을 땐 동료들이 뭐라고 그러는 건지 못 알아들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나중에는 나도 선수들에게 말할 부분에 대해선 말을 했다. 그러면 “아 그런 고충이 있었냐”고 이해해줬다.

벨기에 리그는 세계적인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 당시 팀 동료들 중 지금 잘나가는 선수가 있나?
그렇진 않다. 아직까지 프로 무대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선수는 없다.

유럽여행은 많이 다녔나?
그렇다. 그때 투비즈 2군에 한국인 동생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이랑 파리, 런던에 여행을 다녀왔다. 구단 직원이랑 같이 차를 타고 네덜란드에 다녀오기도 했다. 또 누나와 동생이 유렵여행을 왔을 때 벨기에에서 같이 지낸 적도 있다. 좋았던 추억들이다.

그렇게 벨기에 생활을 끝내고 지난해 아산에 입단했다. 이적 과정이 궁금하다. 
벨기에에서 시즌이 끝나서 한국에 들어왔다. ‘K리그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아산에서 날 좋게 봐주셨다. 그래서 아산으로 오게 됐다.

박동혁 감독과의 두 번째 시즌이다. 박동혁 감독은 선수들에게 어떤 지도자인가?
날카롭기도 하시고 선수들이 편하게 느끼도록 농담도 해주신다. 말 한마디로 선수들을 잡아주기도 하신다. 선수들을 많이 혼내기도 하신다. 내게는 “장점을 잘 살려라. 넌 슈팅이 좋다. 슈팅을 때릴 수 있는 장면을 항상 만들어라”라고 하신다. 저돌적인 드리블도 많이 주문하신다. 감독님께서 내가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최대한 펼치기를 바라신다. “항상 자신감을 가져라”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공격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올 시즌엔 어떤 포지션에서 훈련을 하고 있나?
양 측면 윙어로 나설 것 같다. 내가 작년에 득점이 없었다. 아직 ‘몇 골을 넣겠다’ 확실한 목표는 없다. 그런 목표를 잡으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득점만 생각하게 될까봐 구체적으로 세워놓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 프로필이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사진이다.
김봉길 감독님이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이끄실 때 한 번 소집이 됐었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실감이 나기도 전에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훈련에만 소집이 됐고 이후에 바로 떨어졌다. 그래도 재밌었다. 벨기에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선수들이랑 있다가 말도 통하고 잘하는 선수들이랑 함께 하니까 대표팀에 대한 욕심이 많이 생겼다. 특히 한승규 선수가 정말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수들과 운동장에서 전술에 대해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그러한 사소한 부분들이 좋았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올 시즌 아산의 K리그 참가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충남아산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됐다.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는 운동장에서 보여줘야 하는 거니까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성적을 내야 창단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동기부여가 됐다. 시즌이 시작하지 않았지만 “아산이 약체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공격수로서 많은 공격포인트를 쌓고 싶다. 그렇게 해서 팀이 승리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또 아산 팬들에게 좋은 축구, 재밌는 축구를 보여주고 싶다.

U-리그에서도 최약체라는 평가를 듣는 송호대학교에 입학한 이재건은 끊임없는 노력 끝에 프로 무대의 높은 벽을 뚫는데 성공했다. 프로선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대학 시절 하루 서너 번의 고된 훈련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남들보다 10분 먼저 출근하고 남들보다 10분 늦게 퇴근하라”라는 어머님의 말씀 역시 잊지 않고 따랐다. 어느덧 프로 4년 차가 된 이재건. 그의 착실한 노력은 올 시즌 드디어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이재건의 이번 시즌 활약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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