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신재원 “아버지 신태용, 선수에게 하듯 나와 ‘밀당’ 자주 해”


[스포츠니어스|안산=전영민 기자] 축구계에는 여러 부자(父子)지간 선수들이 있다. 차범근-차두리의 사례가 대표적이고 최근엔 손웅정-손흥민 부자 또한 축구 팬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안산그리너스 신재원 역시 축구인 출신의 아버지를 두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현역 시절 K리그의 전설로 활약했고 지도자로도 대단한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신태용 인도네시아 대표팀 감독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많은 관심을 받은 신재원. <스포츠니어스>는 10일 오후 안산와~스타디움에서 신재원을 만나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스타 출신 아버지의 존재로 인한 고충부터 새 팀 안산에서의 적응기까지 신재원과 나눈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반갑다. 코로나19로 시즌이 미뤄지고 있다.
선수들이 체력적으로는 괜찮은데 계속 개막이 연기되고 있다 보니까 동기부여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힘든 운동은 그렇게 많지 않다. 월요일에 운동 강도를 올렸다가 다시 주말에 맞춰 점점 강도를 떨어뜨린다. 현재 안산와~스타디움과 보조경기장이 트랙 공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경기장 근처에 있는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운동만 하다 보니까 조금은 지쳐 있는, 정신적으로 늘어진 상태다.

안산에서 뛰게 됐다.
그렇다. 3월에 왔으니까 한 달이 좀 넘었다. FC서울에서 전지훈련을 다 소화하고 이곳에 왔다. 안산 역시 전지훈련을 다 마치고 난 시점이었다. 다른 선수들보다 많이 늦게 팀을 옮겼다. 사실 사람들이 봤을 때는 FC서울에서 안산으로 가는 게 쉽지 않은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서울에서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하는 것보다 안산에 가서 많은 경기를 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또 아직 어리니까 명예를 생각하기 보다는 실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서도 경쟁을 해야 한다.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나?
다른 팀에는 그래도 아는 선수들이 한두 명씩은 있다. 하지만 안산에는 아는 선수가 한 명도 없어서 걱정이었다. 그래도 형들과 후배들이 다 잘 도와주고 따라줘서 일주일 만에 빠르게 적응을 했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선수들이 다 나이가 있다. 20대 중반일 거라고 생각했던 형들이 다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 보통 얼굴을 보면 ‘몇 살이겠구나’ 예측이 되는데 다들 내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보다 나이 어린 선수가 세 명 정도밖에 없다. 또래는 딱 한 명 있다.

안산으로 오게 된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내가 지난 시즌에 서울에서 두 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작년 12월에 에이전트와 얘기를 했다. 에이전트가 먼저 “재원아 너 어떻게 할래. 다음 시즌에 서울에서 뛸래? 아니면 다른 팀에서 한 번 해볼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일단 포르투갈 전지훈련은 다녀오겠다. 우선은 서울에 남겠다”고 했다. 그렇게 포르투갈에 다녀왔다. 하지만 내 포지션에 고광민 형을 비롯해 국가대표 출신의 잘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경기에 많이 뛰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지훈련이 끝나고 한국으로 와서 에이전트한테 “팀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가 벌써 1월 말이니까 시기가 너무 늦은 거다. 이팀 저팀 알아봤는데 대부분 팀들이 선수단 구성이 끝나고 전술훈련을 하는 시기라 새로운 선수가 이적을 하긴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김길식 감독님이 날 받아주셨다. 감독님과는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다. 그렇게 3월 초에 안산으로 합류하게 됐다.

김길식 감독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
내가 16세 이하(U-16) 대표팀에 있을 때 김길식 감독님이 U-16 대표팀 코치셨다. 당시 감독님은 최진철 감독님이셨다. 옛날에 (이)승우가 일본을 상대로 60m 드리블을 하고 나서 골을 넣은 적이 있지 않은가. 바로 그때다. 감독님이 어렸을 때부터 날 보셨기 때문에 내 스타일을 잘 아신다. “눈치 보지 말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마음껏 해라”라고 주문하신다. 또 믿음을 주신다. 편하다. 감독님 덕분에 팀에 잘 적응했다.

안산 임대가 결정되고 최용수 감독은 어떤 말을 해줬나?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다. “안산에 가게 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감독님이 “들었다. 가서 잘하고 경기에 많이 뛰어라. 발전해서 다시 서울에 와서 경기를 뛰면 된다. 그러니까 열심히 잘하고 와라”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윙어와 윙백 모두 소화가 가능한데 안산에서는 어떤 포지션으로 훈련을 하고 있나?
우선 프로에 오기 전까지는 계속 공격수를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오른쪽 윙백으로 나섰다. 안산에서는 윙백으로도 나서지만 윙어로도 나서고 있다. 사실 프로 전까지는 계속 공격수로 나섰기 때문에 수비를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수비 하는 법을 몰랐다. 최용수 감독님도 수비적인 부분을 많이 주문하곤 하셨다. 그래도 작년에 서울에서 박주영 선수나 고광민 선수처럼 좋은 선수들을 계속 상대하다 보니까 수비력이 많이 좋아졌다.

서울과 안산이 포메이션이 비슷하다. 두 팀 모두 스리백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적을 했지만 전술적인 측면에 있어선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감독님들이 원하시는 세부적인 면에서 조금 차이가 있지 큰 틀에서는 크게 다른 점이 없다. 또 서울과 안산 선수들이 실력 차이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다들 프로선수들이고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서울은 좋은 선수들이 많으니까 개인 기량과 조직력을 혼합한 플레이를 하는데 안산은 감독님께서 조직력이 단단한 축구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개인 기량이 특출난 선수가 없다 보니까 감독님이 원팀을 만들려고 노력하시고 있다.

“프로 입성 전까지 계속 공격수였다”고 했는데 서울에 가선 왜 윙백으로 전환한 건가?
일단 서울이 스리백을 쓰기 때문에 윙어가 없었다. 그렇다고 스트라이커 자리에 서기에는 페시치와 박주영이라는 좋은 선수가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윙백으로 나서게 됐다. 윙백이 공격도 하고 수비도 하는 포지션이다. 내가 크로스와 스피드에 장점이 있다 보니까 최용수 감독님이 날 윙백 자리에 세우셨던 것 같다. 윙어와 윙백이 둘 다 측면에 선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많이 다르다. 윙어의 경우엔 뒤에 수비수가 한 명 더 있지만 윙백은 혼자 측면을 다 소화해야 한다. 그래서 윙백이 더 체력적으로 힘들다.

최용수 감독이 과거 인터뷰에서 “신재원은 차두리를 연상시키는 선수”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지금 내 실력이 차두리 선배님하고 비교될 수 있는 그런 정도는 아니다. 내가 힘과 스피드를 이용한 축구를 좋아한다. 감독님께서 아마 내 그런 특성 때문에 차두리 선배님과 닮았다고 표현해주신 것 같다.

“스피드가 빠르다”고 본인을 소개했는데 100m를 몇 초에 뛰나?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는데 빠른 편이다.

안산 이적 후엔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집이 분당에 있어서 안산까지 직접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한 35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서울에 있을 땐 숙소 생활을 했는데 이번엔 출퇴근을 하게 됐다.

분당에서 안산까지면 꽤 먼 거리다. 
그렇긴 하지만 아직 시즌이 시작되지 않았고 경기가 없어서 그런지 괜찮다. 보통 팀 운동이 오후 3시에 있다. 오전에 푹 자고 출근을 한다. 운동이 끝나고 나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된다. 또 쉬기도 해야 한다. 그러니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코로나19 때문에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집에 동생과 엄마가 있다 보니까 집이 제일 편하다. 퇴근 후엔 보통 집에서 동생과 플레이스테이션을 하는 편이다.

지난해 경남과의 6라운드 홈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평소에 긴장을 별로 하지 않는 편이다. ‘고연전’도 뛰어봤고 많은 관중들 앞에서 여러 경기를 뛰어본 편이다. 하지만 확실히 프로 무대는 달랐다. 긴장을 하지 않았는데 경기 시작 휘슬이 올리니까 갑자기 목이 타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실수만 나오지 않는다면 내 페이스를 찾아서 자신감 있게 하면 되는데 계속 실수가 나오니까 자신감이 떨어졌다. 후반전에는 페널티킥까지 내줬다. 다행히 상대가 그 페널티킥을 실축했고 우리가 이겼다.

경기 끝나고 주영이 형이 “재원아. 너는 아버지 닮아서 운이 좋다”고 농담을 건네주셨다. 최용수 감독님도 이겼으니까 딱히 질책을 하진 않으셨다. 만약 졌으면 뭐라 하셨을 수도 있다. 감독님이 경기 후에 “괜찮다. 이제 시작인데 잘하면 되는 거다. 이렇게 성장하는 거다”라고 해주셨다.

그야말로 호된 신고식이었다.
U리그는 나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한두살 차이다. 또 내가 팀 주축이고 하다 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대로 경기를 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감도 생기고 경기도 잘된다. 하지만 프로는 관중들도 많고 형들과의 나이 차이도 많이 난다. 주영이 형은 나랑 13살 차이가 난다. 형들이 ‘포스’도 있었다. 그런 ‘포스’ 있는 형들이랑 같이 뛰니깐 ‘실수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또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U리그와는 달리 압박감이 많이 느껴졌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날 경기를 나중에 돌려봤나?
아니다. 다시 보기 싫어서 안봤다. 그날 나는 퇴장 빼고는 거의 다 했다. 데뷔전이었는데 경고도 받았고 페널티킥도 내줬다.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 갔는데 주영이 형이 “야 재원아. 너는 데뷔전이 생생히 기억나겠다.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라고 농담을 건네셨다. 아빠는 “원래 프로 데뷔전이란 게 다 힘들고 그런 거다”고 해주셨다. 주변에서 다들 좋은 이야기만 해주셨다.

평소에도 신태용 감독이 많은 조언을 해주는가?
아빠는 막 뭐라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다만 냉정하다. 잘한 경우에는 “잘했다”고 해주고 못한 경기에서는 “못했다. 어떤 부분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집에서 내가 뛴 경기를 아빠와 같이 돌려보거나 아니면 노트를 가져와서 아빠가 직접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해준다. 데뷔전에선 나도 내가 못한 걸 알았기 때문에 아빠가 뭐라 하지 않았다. 아빠가 대표팀에서 선수들을 컨트롤하듯이 나하고도 밀당을 한다. 내가 잘한 경우에는 오히려 내 감정을 자제시키고 내가 못한 경우에는 날 ‘업’시켜준다. 아빠가 밀당이 좋다.

때때로 부모님의 조언은 잔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아빠가 축구선수나 축구감독이 아니었으면 잔소리로 들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월드컵 대표팀 감독까지 했던 사람이지 않나. 아빠도 내가 잘 되라고 말해주는 거기 때문에 나의 부족한 점에 대해 아빠가 해주는 조언을 새겨듣고 있다.

“힘과 스피드를 이용한 축구를 좋아한다”고 본인을 소개했는데 신태용 감독의 현역 시절과는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듯하다.
내 동생도 축구선수인데 나와 동생 둘 다 아빠와 축구 스타일이 다르다. 동생도 스피드가 있어서 스피드를 이용한 축구를 한다. 윙어인데 공격 지역 포지션을 다 볼 줄 안다. 2001년생이고 올해 건국대학교에 입학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장남이다. 그래서 책임감이 있다. 아빠가 작년까지 백수였지 않나. 아빠가 작년에 “너만 돈을 번다. 네가 이제 가장이다. 네가 우리 집을 먹여살려야 한다”고 한 적이 있다.

잠시 팀 이야기를 해보자. 지난 시즌 안산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임대를 오기 전 안산 축구를 본 적이 있나?
못 봤다. 그런데 내가 안산이란 도시랑 뭐가 있긴 뭐가 있다. 고3 때 안산에서 A대표팀 유니폼 발표회가 있었다. 대표팀 선수들 모교에서 각각 한 명씩 선수를 불러 대표팀 선수들과 같이 유니폼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학성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래서 그때 이재성 선수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안산에 있는 호텔에 와서 묵고 선수들이 운동하는 것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또 서울 입단 전에 고대에 있을 때 안산 구단에서 내게 “R리그 경기를 뛰러 와라”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때 안산 유니폼을 입고 FC서울을 상대했다. 작년에는 반대로 서울 유니폼을 입고 와서 안산과의 경기를 뛰었다. 그렇게 1년에 한 번씩은 안산에 왔던 것 같다. 낯설지가 않다.

김길식 감독이 선수들과 함께 훈련에 참여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팀 분위기가 아주 밝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먼저 나서서 팀 분위기를 끌어올려 주신다. 감독님과 같이 공 돌리기를 할 때면 감독님이 선수들에게 태클을 하기도 하신다. 선수들도 태클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이렇게 감독님이 솔선수범을 하시니까 우리가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감독님이 아직 실력이 좋으시다. 공 돌리기를 하면 선수들끼리 커피 내기를 하는데 감독님이 아직 한 번도 커피를 사신 적이 없다. 그래서 선수들끼리 어떻게든 감독님이 걸리게 하려고 미리 편을 먹고 하는데 아직까지 감독님이 한 번도 벌칙에 걸리신 적이 없다.

조깅도 꾸준히 하신다. 보통 우리가 경기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식당에서 단체로 밥을 먹는다. 여기서 4km 정도 걸린다. 그런데 감독님이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하신 후에는 항상 경기장까지 걸어오신다. 선수들은 다 차를 타고 오는데 말이다.

과거 올림픽 대표팀 소속으로 A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친 적이 있다. 
그렇다. 서울 입단 공식 발표가 나던 날이다. 울산에서 한 A대표팀과 경기였는데 우리가 2-0으로 이겼다. 우리는 지면 본전, 이기면 좋은 그런 경기였고 국가대표 선수들 입장에선 절대 지면 안되는 경기였다. 그래서 마음을 편하게 먹고 경기를 했다. 우리도 우리가 이길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실력 차이가 있다 보니까 쉽지 않은 경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경기를 했다. 다행이었다.

사실 올림픽 대표팀과 A대표팀이 그때 두 번 경기를 했다. 올림픽 대표팀이 1차, 2차 두 팀으로 소집 멤버를 나눠 A대표팀과 경기를 했는데  1차 멤버들과 A대표팀의 경기는 비공개로 치러졌다. 나는 2차 소집 멤버였는데 우리와 A대표팀이 경기를 할 때는 미디어에 공개가 됐다. 그런데 딱 그날에 내 서울 입단 발표가 뜨고 아빠도 경기를 보러 오니까 모든 언론의 관심이 내게 쏠렸다.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못하면 오늘 큰일날 수도 있겠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내 경기력이 좋아서 반응이 괜찮았다.

ⓒ 대한축구협회

신태용 감독은 현역 시절 대단한 선수였다. 아버지와 비교되는 게 부담이 되진 않나?
솔직히 말하자면 프로 무대에 오기 전까지는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프로에 오고 나니까 조금씩 부담감이 생기더라. 솔직히 잘해야 본전인 거지 않나. 사람들은 계속 나와 아빠를 비교할 거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잘하면 될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과거 신태용 감독이 U-20 대표팀을 맡았을 때 “2017 U-20 월드컵에 내 아들을 뽑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발언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도 그 기사를 봤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U-20 대표팀에 뽑히면 말이 나올 걸 알았기 때문에 나 역시 대표팀에 가기 싫었다. 그래서 아빠가 U-20 대표팀 감독이 되고 나서 바로 월드컵 출전을 포기했다. 아빠가 U-20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날 가족들과 다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 자리에서 아빠가 내게 “재원아. 원래는 항상 부모가 희생을 하는데 이번엔 너가 한 번만 희생해라”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월드컵에 나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아빠가 그 말을 듣고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만약 U-20 대표팀에 갔으면 잘해도 욕을 먹었을 거고 못해도 욕을 먹었을 거다.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했을 거다. 날 뽑으면 나도 상처받고 아빠도 상처받을 거라는 걸 아빠는 알고 있었을 거다. 물론 2017 U-20 월드컵에 나가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아빠가 팀을 이끌기 전엔 안익수 감독님이 U-20 대표팀을 이끄셨다. 하지만 아빠가 감독이 되고 나선 월드컵 출전에 대한 생각이 바로 사라졌다.

이후 신태용 감독은 A대표팀을 맡았다. 하지만 ‘히딩크 논란’ 등 경기 외적인 부분으로 비판을 받을 때도 많았다.
솔직히 아빠도 많이 힘들었고 그걸 보는 우리 가족들도 다 힘들었다. ‘히딩크 논란’이 있을 때 아빠가 우리한테 “월드컵 하지 말까? 그만할까?”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 안타까웠다. 그래도 지금은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빠를 인정해 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독일을 이겼고 많은 축구 팬들이 열광을 했다. 아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기쁘고 행복했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나도 가족들과 함께 러시아에 월드컵을 보러 갔다. 그런데 막상 가서 경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골 먹힐 때마다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경기장에서 기도를 했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마음이 불안했다. 스웨덴전은 못 보고 멕시코전, 독일전을 현장에서 봤는데 독일전은 지금도 가끔 돌려보면 울컥한다.

아빠 별명이 ‘난 놈’이지 않나. 그래서 독일전 이후에 아빠한테 “역시 아빠는 ‘난 놈’이다”고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그걸 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보고 엄청 뭐라고 했다. “어떻게 아빠한테 ‘난 놈’이라 할 수 있냐’고 말이다. 난 단지 아빠 별명이 ‘난 놈’이라서 그렇게 한 건데 말이다. 이런 것처럼 내게 아빠는 친구 같은 아빠다. 평소 사람들이 아빠에 대해 ‘아들들한테는 무서운 아빠일 거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 대한축구협회

아까 “많은 관중 앞에서 ‘고연전’도 뛰어봤다”고 했다. ‘연고전’이 아니라 ‘고연전’이 맞나?
그렇다. 내가 고려대학교에서 2학년까지 뛰고 프로로 왔다. 고연전 정기전 두 번에서 다 뛰었다. 또 연대와 U리그에서도 같은 권역이어서 두 번 경기를 했다. 총 네 번 경기를 했는데 그 네 경기에서 다 뛰었다. 그런데 전패했다.

1학년 때는 정기전을 목동에서 했다. 그때 날씨가 좋아서 관중석이 가득 찼다. 2학년 때 치른 정기전은 잠실에서 했는데 비가 왔다. 다행히 우리가 한 시 경기인데 우리가 경기를 할 때 날씨가 확 좋아졌다. 오전 11시에 보조경기장에서 럭비 경기가 있어서 럭비 경기를 보고 주경기장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전반 4분만에 골을 넣어버렸다. 사람들도 없는데 골을 너무 빨리 넣은 것이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사람이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정기전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는 어떤가?
흔히 말하길 “정기전은 전쟁이다”고 한다. 정기전이라는 게 고대생과 연대생만 뛸 수 있는 거지 않나. 선수들도 자기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또 ‘정기전에서 무조건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정기전 한 달 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그 과정이 굉장히 힘들다. 체력 운동을 엄청나게 한다. 새벽에 체력 운동을 하고 오전에 또 뛴다. 그리고 오후에 공을 차고 저녁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이렇게 하루에 ‘네 탕’을 한다. 힘들긴 하지만 정기전은 고대생과 연대생만 뛸 수 있는 특권이다. 대학생 때 많은 관중 앞에서 뛰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다.

당시 연고대 17학번이 지금 잘나가고 있다. 고대 17학번에 (조)영욱이와 수원삼성에 있는 박상혁, 박대원이 있었다. 멤버가 좋았다. 연대도 17학번 멤버가 하승운(전남), 이정문(대전), 김승우(제주)였다. 양 팀 모두 그때 팀 주축 선수들이 17학번 일 정도였다. 정기전은 정말 전쟁이었다. 상대 팀 선수들이랑 친구인데도 경기 중에 싸우고 그랬다.

ⓒ 대한축구협회. 고려대 시절 서울이랜드와 FA컵 경기에 나선 신재원의 모습.

안산에서 1년 임대 생활을 하게 됐다. 올 시즌 목표가 뭔가?
기사를 보니까 ‘개막이 늦춰져서 경기 수가 줄어든다’고 하더라. 그래도 최대한 많은 경기에 뛰는 게 목표다. 비록 임대 신분이긴 하지만 지금 내 팀은 안산이다.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공격수로 뛰면 골을 넣고 수비수로 뛰면 실점이 없도록 하고 싶다. 전경기에 출전하고 싶다. 체력이 어느 정도 올라와 있다. 경기 뛰는 것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팬들이 많이 찾아와주시면 선수들도 신이 난다. 또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팬들을 위해 한 발 더 뛰어 승리로 보답하고 싶다. 더불어 프로선수라면 당연히 태극마크를 다는 게 꿈이다. 또 메이저 대회에 나가는 것 역시 꿈이다. 유럽 진출 역시 목표로 가지고 있다. 한 단계씩 차근차근 올라가도록 하겠다.

스타 플레이어, 스타 감독 출신의 아버지를 둔 신재원은 “프로 무대에 온 후 아버지의 명성으로 인해 조금씩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 위해 매 순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더 많은 경기에 나서고 싶어 임대를 결정했다”는 신재원. 올 시즌 그는 안산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까. 프로 2년차 신재원의 활약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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