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민 인터뷰②] “FC안양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


ⓒ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잠실=전영민] FC안양 팬들에게 김원민은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지난 2013년 창단 멤버로 안양에 합류한 김원민은 지난해까지 안양 유니폼을 입고 리그 117경기에 나서 13골 9도움을 기록했다. 그는 안양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김원민의 모습을 안양종합운동장에서 볼 순 없다. <스포츠니어스>는 3일 오후 서울 잠실에서 김원민과 만나 오랜 시간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안양을 떠난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김원민은 안양에 대한 그리움이 큰 모습이었다.

2013년 창단 멤버로 안양에 합류했다.
국민은행이 해체되고 안양으로 오며 많은 고민을 했다. ‘차라리 울산현대미포조선이나 경주한수원에 갈까’라고 생각했다. 그때 내 나이가 26살인가 27살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였고 또 내셔널리그에서 자리를 잡아 연봉도 어느 정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프로에 가면 경쟁도 심할 거고 정말 잘하는 선수들도 많을 텐데 내가 가서 버틸 수 있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축구선수로서 내 꿈은 프로선수였다. 축구선수들이 프로에 가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부모님한테도 프로선수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로 오게 됐다.

그렇게 고심 끝 도전한 프로 무대에서 결국 100경기를 넘게 뛰었다.
처음엔 100경기를 뛸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공익 생활을 하려 포천으로 갈 때도 안양에 “남은 계약기간을 없애달라”고 했다. “내가 제대하면 30인데 그때 되면 나이 많다고 날 안 쓸 거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안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구단이 그렇게 해준 게 다행이다. 정말 내가 프로에서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줄 몰랐다.

프로 100경기 출전 날에 서포터즈에서 내 티셔츠를 만들어 주셨다. 너무 감동이었다. 그때 부모님과도 같이 사진을 찍었다. 부모님한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았다. 동시에 ‘나름 선수로서 조금은 성공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역대 안양 소속 최다 출전 선수이기도 하다.
FA컵까지 다 포함하면 120경기를 넘게 뛰었을 거다. 운이 좋았다. 최다 출전 기록은 조만간 다른 선수에 의해 깨질 것이다. 그간 축구를 하며 특별한 기록을 갖고 있었던 적이 없다. 그렇기에 안양에서 나름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선수가 된 것 같아 영광이다.

창단 멤버로써 안양이 발전하는 걸 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 처음에는 구단과 선수단이 서로 서운하게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작년에는 정말 ‘원팀’이 되었다. 일단 구단과 선수단의 관계가 되게 좋았다. 선수들이 구단에 피자나 커피를 쐈고 구단 직원들도 선수들을 좋게 생각해 주셨다. 가변석이 설치되며 좋은 반응들이 나오기도 했다. 내 지인들도 작년에 내게 “안양 경기가 재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정들었던 안양을 떠나게 됐다. 그 과정을 말해줄 수 있나?
그동안 일부러 이 부분에 대해 얘기를 안했다. 처음엔 정말 속상했다. 작년에 고참들과 다 같이 의견 조율을 하고 ‘으쌰으쌰’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했다. 내 축구 인생 중 그렇게 선수들과 다 의견이 맞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어린 (조)규성이부터 해서 모두가 함께였다. 내측 인대 완전 파열 부상을 당했지만 일찍 복귀를 해서 부천전에서 중거리슛으로 복귀골도 넣었다. 어떻게든 빨리 복귀해 나이 많은 걸 티 내지 않으려고 했다.

떠나게 된 이유에 대해선 나도 궁금하다. 물론 내가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다른 팀에서 뛰는 김원민은 생각하지 않았다. 안양이 100년 구단이다. 안양이 발전하는데 이바지하고 싶었다. 안양이 성장하고 있지만 다른 구단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발전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과정에서 선수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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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 커 보인다.
너무 속상했다. 며칠 전에 SNS로 안양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팬들하고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글을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했다.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속상했다. 그거 쓰는데도 오래 걸렸다. 올리니까 마음이 또 이상하더라. 며칠 동안 기분이 안 좋았다.

안양에서 나온 직후 ‘다른 팀에서 뛰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이유가 뭔가?
‘안양이 아니라 다른 팀 팬들이었다면 과연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해 주고 관심을 가져줬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우리 서포터즈가 가장 좋았다. 다른 팀들도 물론 서포터즈들이 있지만 우리 서포터즈는 선수들을 절대 질타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항상 박수를 쳐준다. 다들 정도 많으셨다. 그런 과정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다른 팀에서 뛰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안양에서 은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8년에서 2019년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이곳에서 은퇴하겠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까 ‘경기에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로서 팀이 발전하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갔고 동시에 자연스레 안양에 대한 애정이 커져갔다. 만약에 서포터즈가 없었다면 안양을 떠나 다른 팀에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양에서 뛰면서 다른 팀들의 러브콜은 없었나?
K리그2 몇 개 팀에서 제안이 있었다. 물론 솔직히 연봉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안양에서 축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2013, 2014시즌쯤이었는데 코칭스태프도 좋은 분들이었고 다들 날 믿어주셨다. 좋은 사람들 옆에서 축구를 하는 게 좋았다. 2018년엔 시즌 중반부터 끝까지 뛰면서 좋은 활약을 했는데 이후에 2019시즌에도 계속 안양에서 뛰었던 건 사실 정이 들어서였다. 서포터즈와 친했다. 그때부터 안양에서 은퇴하는 걸 생각했고 또 ‘안양에서 정말 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팀에 남는데 있어서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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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서포터즈와 함께 강당에서 창단식을 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또 2013년에 홈에서 고양HiFC를 상대로 시즌 개막전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때가 내 프로 첫 경기였다. 2014년에도 개막전에서 고양HiFC를 만났는데 그때 내가 골을 넣었다. 작년에 프로 100번째 경기를 뛰던 날도 기억난다. 홈에서 했던 아산과 경기였다.

여전히 상실감이 있어 보인다.
사실 안양에서 나오고 “축구를 그만두겠다”고 주변에 이야기했을 때 구단에다가도 “은퇴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속상해서 하고 싶지 않다. 팬들에겐 죄송하지만 난 이제 이렇게 조용히 살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축구를 계속 하게 됐다. 나중에 선수 생활을 계속하다가 안양에서 은퇴식을 할 수 있으면 감사할 것 같다.

34살이다. 아직 은퇴를 말하기엔 이른 나이다.
아니다. 솔직히 젊은 나이는 아니다. 나도 32살, 33살일 땐 내가 젊다고 생각했다. 체력테스트를 해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았다. 그런데 34살이 되니까 ‘많이 먹었구나’는 느낌이 든다. 주위 사람들도 “오래했다. 원민이 아직까지 하네” 이런 얘기를 진짜 많이 한다.

선수 생활을 언제까지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놨나?
그런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그냥 내 몸이 좋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게 목표다. 내가 몸 관리를 못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아직은 ‘몇 살에 은퇴하고 싶다’ 이런 계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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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를 많은 안양 팬들이 읽을 것이다.
팬들에 대한 감사함을 글이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팬들이 남긴 댓글들을 봤는데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더라. “레전드”라고 해주시는 것도 봤다. 솔직히 내가 그 정도는 아니다. 아쉬워하고 또 걱정해 주시는 분들을 보며 힘도 나는 동시에 속상했다. 팬들 덕분에 행복하고 영광스러웠다. 안양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황금기였다. 내가 어딜 가서 이런 대우를 받겠나. 안양 선수고 또 창단 멤버니까 환호를 받았던 것이다.

이젠 안양종합운동장에서 팬들과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게 아쉽다. 아직 안양종합운동장에서 뛰는 게 생생하다.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드리는 게…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거다. ‘혹여나 안양 팬들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로 한 것도 있다. 아직 축구를 하고 있으니까 선수로서 본분을 다하며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는 게 내 역할이 아닌가 싶다. 팬들도 안양과 화성이 멀지 않으니까 화성으로 많이 와주신다고 하더라. 오시면 밥 한 끼 하며 그런 친구 같은 사이가 되고 싶다. 내가 나중에 은퇴하고 아이들과 함께 안양종합운동장에 갔을 때 ‘우리 아빠가 이런 선수였구나’ 알려주고 싶다.

K리그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지 못한 김원민은 먼 길을 돌아 결국 프로 무대 입성에 성공했다. 그에게 안양에서의 지난 다섯 시즌이 특별했던 이유다. 하지만 이제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순 없다. 그럼에도 김원민은 언젠가 다시 안양 팬들 앞에 서게 될날을 고대하며 화성에서의 앞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과연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언젠가 안양 팬들과 조우할 수 있을까. 김원민은 여전히 그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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