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과 아비정전,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그 속의 축구


ⓒ 영화 '아비정전' 스틸컷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4월 1일, 만우절이다.

많은 사람들이 만우절이 되면 장난 섞인 거짓말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정확히 17년 전 수많은 영화 팬들은 만우절 거짓말 같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바로 홍콩의 영화 스타 故장국영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과거 아시아 영화를 주름잡던 홍콩이었고 이 홍콩을 대표하는 스타가 그였다.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놀랍고도 슬픈 소식일 수 밖에 없었다.

故장국영이 출연하는 영화 ‘아비정전’은 여러 명장면을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故장국영의 맘보춤을 많이 떠올리지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이미지였던 故장국영이 장만옥에게 작업 멘트로 날렸던 ‘뻐꾸기’ 또한 잊을 수 없다.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으니까.”,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1분 전, 나는 1분간 너와 함께 있었어. 이제 오후 3시만 되면 나를 생각하게 될 거야.”

새삼 달콤한 말이다. 영화 속에서 장만옥은 결국 그 1분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장소’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 관심을 갖지 않는다. 아마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 만이 조금 흥미롭게 볼 수도 있다. 바로 축구장이다. ‘아비정전’ 속에서 장만옥은 축구장 매표소 직원으로 일한다. 그렇다면 쓸데 없는 호기심이 든다. 과연 이곳은 정말 어디일까?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던 단 하나의 기록
영화 ‘아비정전’이 개봉된 해는 1990년이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고 있는 것은 1960년대 홍콩 뒷골목이다. 따라서 1960년대 축구 경기가 열렸던 경기장을 찾으면 어느 정도 범위가 좁혀진다. 하지만 ‘아비정전’에서 어떤 축구장을 배경으로 촬영했는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홍콩의 여러 명소들이 ‘아비정전’에 등장했다고 홍보하지만 축구장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사실 홍콩에서 축구장 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 영화 ‘아비정전’ 스틸컷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정적이고 우울함으로 가득한 영화 ‘아비정전’에서 축구장 속 장면은 故장국영의 매력과 함께 달콤함이 폭발하는 몇 안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故장국영의 역할이었던 ‘아비’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축구장에서의 그 ‘1분’이다. ‘아비’는 그 1분에 대해 “그녀를 다시 만나면 전부 잊었다고 해. 서로를 위해 그게 좋아”라면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정작 장만옥은 이렇게 회상한다. “그 순간을 난 아직 기억할까?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다.”

그런데 <스포츠니어스>는 ‘아비정전’에 나오는 축구장에 관한 단 하나의 기록을 찾아냈다. 바로 홍콩의 영화 평론가 스티븐 테오의 저서다. 스티븐 테오는 전세계 매체에 홍콩 영화에 대한 칼럼을 기고하고 다수의 책을 집필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 ‘아비정전’과 이를 제작한 왕가위 감독에 대해 언급했다. 그 중에는 ‘축구장’도 있다. 스티븐 테오는 “왕가위 감독은 사우스 차이나 AA를 배경으로 삼으라고 명시했다”라고 적었다.

왜 하필 ‘사우스 차이나’였을까
어찌보면 왕가위 감독이 사우스 차이나를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한국어로 ‘남중국체육협회’라고 번역할 수 있는 사우스 차이나는 1960년대 홍콩 축구의 최강자였다. 10시즌 중 절반 이상을 우승했다. 역사도 깊다. 1904년에 창단했다. 창단 초기에는 중국 대표팀의 대다수가 사우스 차이나 선수일 정도였다. 축구팀으로 시작한 사우스 차이나는 1920년대부터 농구팀 등 다른 종목에도 손을 뻗치며 외연을 확장했다. 대한민국에서는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이 지휘봉을 잡았던 팀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홍콩 2부리그에 속한 팀이지만 사우스 차이나는 홍콩 축구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렇기에 왕가위 감독이 이곳을 배경으로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1982년 벌어진 사건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1부리그 생존 싸움을 벌이던 사우스 차이나의 팬들은 캐롤라인 힐과의 경기 이후 코즈웨이 베이 근처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홍콩 역사에서 1967년 사회주의 폭동 이후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될 정도였다.

한창 재개발 중이던 2012년의 경기장. 일부 관중석이 철거된 것을 알 수 있다 ⓒ Tksteven

자료들을 근거로 할 때 ‘아비정전’에서 故장국영과 장만옥이 매일 오후 3시에 만났던 곳은 사우스 차이나 AA 스타디움으로 추정된다. 1927년 협회장이 부지를 임대해 1934년 클럽하우스와 관중석을 올려 만든 경기장이다. 이 경기장은 꽤 오랜 기간 사우스 차이나의 홈 구장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아쉽게도 예전의 그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재개발 과정을 통해 관중석 네 면 중 세 면이 철거됐기 때문이다. 현재 사우스 차이나도 홍콩 스타디움, 정관오 스타디움을 거쳐 해피 밸리 경마장 내 축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과거를 잊기에는 아직 이르다
세월은 흐르고 옛 영광도 잊혀져 간다. 사우스 차이나는 한 때 홍콩을 호령했던 팀이다. 그래서 ‘아비정전’에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더이상 사우스 차이나는 홍콩의 1부리그에서 보기 어려운 팀이다. 2017년 6월 사우스 차이나는 자진 강등을 선언해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홍콩 1부리그에서 41차례 우승했고 친선경기에서 토트넘 홋스퍼를 2-0으로 꺾을 만큼 저력 있던 팀이었지만 이제는 다 옛날 이야기다.

故장국영과 홍콩 영화도 그렇다. 1990년대 후반 스타 기근과 투자 위축으로 쇠퇴하던 홍콩 영화 산업은 그의 죽음 이후 완전히 몰락했다는 평을 받는다. 혹자는 故장국영의 죽음에 대해 ‘저물어가는 홍콩 영화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홍콩의 미남 스타 故장국영은 우리 곁에 없다. 그래도 여전히 그를 잊지 않고 있는 팬들이 때마다 그를 기억하고 있다. 마치 사우스 차이나의 영광을 기억하던 홍콩 축구팬처럼.

故장국영을 추모하며 ‘아비정전’을 보다가 생각 난 이야기가 너무나도 옆 길로 빠졌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옛날의 아름다웠던 과거를 누군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추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하늘에서 편하게 쉬고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wisdrago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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