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이적생’ 김성주 “호남이 형 약속처럼 나도 어디 안갈 것”


ⓒ 인천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지난 시즌 극적으로 생존에 성공한 인천은 올 겨울 폭풍 영입을 단행했다. 그중 가장 눈길이 모아지는 선수는 김성주다. 왼쪽 풀백,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 소화가 가능한 김성주는 지난 1월 인천 유니폼을 입었다. 김성주 개인에게도 어느덧 K리그1에서의 다섯 번째 시즌이다. <스포츠니어스>는 19일 오후 김성주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의 프로 데뷔부터 인천에 오게 된 계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반갑다. 컨디션은 좀 어떤가?
시즌 개막에 맞춰서 준비를 했는데 개막이 연기되다 보니까 조금 루즈해지는 건 있다. 원래는 시즌이 시작되면 경기날에 맞춰 중점을 두고 운동을 한다. 비록 시즌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주말에는 자체 경기를 하고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 컨디션은 괜찮은 것 같다.

감독님이 늦게 선임되셨다. 이제 팀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다. 오히려 시간이 주어진 걸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있다. 시간이 주어졌으니 이 시간 동안 우리 팀의 조직력을 잘 맞춰보자는 생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인천에서의 첫 시즌이다.
신인 선수들을 포함해 모르는 선수들이 많았다. (김)호남이 형이랑 몇 명 빼고는 모르는 선수들이었다. 누군지는 알았지만 같은 팀에서는 처음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래서 적응을 빨리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일 년을 함께해야 할 선수들이다. 태국 전지훈련에 참가한 인원이 많았다. 서른 몇 명 정도 됐다. 태국에 4주 동안 있었는데 처음에는 어색한 점도 있었지만 3~4주차 때 다른 선수들과 많이 친해졌다.

임완섭 감독이 2차 전지훈련부터 함께했다. 1차 전지훈련 동안 해오던 게 있었으니까 2차 전지훈련 때는 혼란이 있었을듯한데
일단 감독님이 오시지 않았던 1차 전지훈련에서 준비한 게 있었다. 감독님도 처음에 팀에 오시고는 ‘너희들이 이때까지 했던 것들이 있으니까 해봐라’라는 마음으로 지켜보셨던 것 같다. 이후에 감독님이 세부적인 틀을 잡아주셨다. 처음부터 스리백을 준비했는데 감독님이 오시면서 쳐져서 하는 것 만이 아닌 전방에서도 플레이를 하는 이런 부분을 조금씩 맞춰갔다. 감독님께서 우리 팀에 맞는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셨다. 내게는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시는 것에 대해 많은 주문을 하셨다.

전지훈련이 끝났지만 최근에도 인천의 훈련 강도가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그렇다. 힘들다. 훈련이지만 경기를 뛰는 것 같은 정도의 운동량이다. 기존에 있었던 다른 팀들보다 운동량이 많다. 그런데 우리가 해야 할 게 많다고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니깐 훈련양이 많은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선수는 뛰어야 하는 게 일이다. 우리가 맞춰가야 할 부분이 많으니까 감독님이 이것저것 많이 시키시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3주 동안은 월화수목금 운동을 빡세게 하고 주말 이틀을 쉬는 방식으로 훈련을 했다.

측면 수비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인천에선 어떤 포지션으로 나설 것 같은가?
그간 있었던 팀들에선 내가 다양한 포지션을 볼 줄 아니까 동계훈련 때부터 여기저기에 서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태국 전지훈련 때부터 왼쪽 측면 수비수 한 자리만 봤다. 나도 이렇게 한 포지션만 계속 섰던 게 오랜만이다. 그래서 나도 ‘측면 수비수로서 내가 어떤 점을 잘할 수 있을까’ 연구를 많이 했다.

솔직히 가장 편한 포지션이 왼쪽 풀백, 윙백이다. 하지만 내가 내 자신을 돋보이게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포지션은 보다 공격적인 자리인 것 같기는 하다. 창의적인 패스 등 내가 가지고 있는 공격적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길게 봤을 때는 꾸준히 한 자리에서만 플레이하고 싶은 게 있다. 또 내가 측면 수비수 자리에서 크로스를 통해 할 수 있는 게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이 자리가 제일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임완섭 감독이 크로스를 개인적으로 주문한다고 말했는데 케힌데 무고사와 호흡은 어떤가?
운동할 때도 두 선수와 호흡을 많이 맞춘다. 우선 무고사는 검증된 선수고 크로스를 기게 막히게 올리지 않아도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다. 케힌데도 지금은 컨디션이 처음보다 많이 올라온 것 같다. 공을 지켜주거나 할 때 좋은 장점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태국 전지훈련 때부터 두 선수와 이야기를 많이 했다. “너희가 어느 쪽으로 움직여주면 그쪽으로 크로스를 올려줄게. 그러니까 거길로 움직여”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우리 외국인 선수들이 착한 게 요구를 많이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그런 게 없다. 그냥 “좋아좋아”라고만 한다. 다른 외국인 선수들은 성향이 강한 선수들이 있는데 우리 팀 외국인 선수들은 조용조용하고 열심히 하는 선수들인 것 같다.

부노자는 어떤가?
피지컬적으로 되게 좋은 선수다. 한국 선수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고 왼발잡이 센터백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부노자는 다른 외국인 선수들에 비해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화도 낸다. 부노자가 화를 내면 다른 선수들도 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그랬다가 바로 푼다. 수비수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경기 중에는 짧은 대화만 하는 편이지만 경기 들어가기 전이나 후에는 부노자가 통역사를 불러 “이렇게 하자” “이렇게 플레이를 해달라” 이야기한다. 부노자가 좀 세더라. 짜증도 있고 자기 주장도 있다. 하지만 경기 끝나면 금방 또 풀고 다시 서로 맞춰가고 그런다.

제주를 떠나 인천으로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제주와 계약 기간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지난해 K리그1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이 노력했는데 팀이 결국 강등됐다. 정말 막막했다. 이후에 감독님도 바뀌고 제주가 새로운 팀으로 변해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새 팀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최윤겸 감독님이 남으시고 “같이 해보자”고 했으면 고민을 했을 텐데 감독님도 바귀셨고 구단도 전체적으로 다 바뀌었기 때문에 팀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1년 반을 있었는데 제주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어떤 부분이 쉽지 않았나?
제주의 지리적 특성상 비행기를 많이 타야 했다. 이동 시간이 되게 많았다. 말이 한 번 이동하는 거지 비행기 기다렸다가 타고 또 기다렸다가 타고 이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되게 크다고 생각한다. 한 번 이동할 때 다섯 시간 이상씩 걸렸다. 근육 부상을 가지고 있는 형들이 되게 많았다. 나도 이제 나이가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도 생각을 했다.

지난해 제주는 정말 안풀렸다.
개인적으로도 힘들었고 팀도 되게 힘들었다. 조성환 선생님이 계실 때부터 이길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지는 게 반복됐다. 그러면서 시즌 초반부터 팀이 진짜 힘들었다. 중간에 감독님이 바뀌고는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이후에도 계속 반복되니까 진짜 힘들었다. ‘뭔가 마가 꼈나. 왜 계속 지는 거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런 상황에서 인천의 제안이 왔다.
인천에 와서 경기를 뛸 때면 인천 서포터즈들을 보면서 ‘와 여기는 홈구장 분위기가 되게 좋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옛날에 일본에서 뛰면서 그런 열정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일본은 어떤 팀 경기장에 가던 다 열광적이었다. 인천의 오퍼를 받고 수락을 할 때도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이 부분이 되게 컸다. 일본에서 뛸 때도 많은 서포터즈들의 응원을 받으면 정말 많이 힘이 됐다. ‘아 인천 서포터즈들 앞에서 뛰면 힘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이 이적을 결정하는데 컸다. 선수는 경기에 뛸 때 행복한 건데 그렇게 우리가 일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열정적으로 지지를 해주시면 홈경기 때 힘이 많이 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갑작스럽게 작별을 했던 김호남과 재회하게 됐다.
그 당시에 호남이 형이 “갑자기 팀을 떠나게 됐다”고 해서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선수들 모두 ‘아 우리도 저렇게 팀을 떠날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호남이 형은 당시 제주의 주축이었다. 그런데 호남이 형이 갑자기 트레이드된 거니까 선수들끼리도 “우리도 트레이드되는 거 아냐?”라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선수가 본인 의지 상관 없이 트레이드된다는 건 조금 가슴 아픈 일이지 않나. 그런데 나도 형을 따라 인천에 오게 됐다. 호남이 형을 처음 만났을 때 호남이 형이 “잘 왔다.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이야기 해줬다.

불과 반년 만에 김호남은 인천의 레전드 같은 선수가 됐다.
그렇다. 입지가 상당하더라. 그 형이 인터뷰를 잘한다. 호남이 형과 인천에 온 후에 생활적인 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우리 서포터즈들의 열정 그리고 우리 팀의 끈끈함 이런 거에 대해서 호남이 형이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호남이 형이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벌써 상주와 제주, 인천까지 세 번째 팀에서 함께하게 되었다.

호남이 형이 “송도가 좋다”고 해서 나도 지금 송도에 살고 있다. 사실 태어나서 인천이란 도시와 인연이 한 번도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다. “송도가 정말 살기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되게 조용하다. 한적하고 조용하고 불편한 점이 거의 없다.

J리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한 점이 인상적이다.
어렸을 때 ‘판타지스타’라는 만화가 있었다. 일본 만화였는데 일본 선수가 일본에서 잘해서 AC밀란과 레알 마드리드로 가게 되는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화였다. 그 만화를 보면서 일본에 관심을 갖게 됐다. 또 일본이 공을 아기자기하게 차고 하는 점도 흥미로웠다. 그때부터 J리그에 관심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보면 관중들도 되게 뜨겁더라. ‘아 저기서 뛰면 행복하겠다. 가슴이 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다. 운이 좋게 숭실대 재학 중에 올림픽 대표팀에 몇 번 갔는데 그런 게 인연이 되어서 J리그로 가게 된 것 같다. 첫 팀이 알비렉스 니가타였는데 (김)진수와 캐리어 하나 백팩 하나 들고 갔다.

그때 나는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주로 나섰고 진수는 풀백으로 경기에 출전했다. 처음에는 ‘도전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갔는데 어리기도 하고 경기도 안풀리고 하다 보니까 힘들었다. 멘탈적으로 극복을 못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 자신을 많이 내려놨던 것 같다. 프로 1년차 때 많이 힘들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일본에서 힘든 건 없었나.
일단 진수랑 내가 어리고 하니까 일본 선수들이 많이 챙겨줬다. 나이 많은 선수들이 “한국 식당에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서 많이 챙겨줬다. 밥도 먹으러 가고 차도 마시러 가고 때로는 일본 선수들이 술도 먹자고 했다. 한국은 외국인 선수들과 잘 지내는 선수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선수들도 있는데 ‘일본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를 잘 챙겨주는구나’ 그런 점을 느꼈다.

다만 다른 성향을 가진 선수들도 있었다. 선수들마다 다 다르다. 외국인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인정을 받을 경우에만 어울리려고 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앞에선 잘해주고 뒤에선 욕을 하는 선수들도 되게 많았다. 내 앞에선 “하이”라고 하면서 뒤에서는 한국 선수들을 욕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도 경기를 뛰고 내가 잘하면 먼저 다가와서 장난도 치고 하더라.

일본에서 고생했던 다른 선수들처럼 당신도 도시락을 먹고 그랬나?
많이 먹었다. 근데 일본 도시락이 괜찮다. 한국이랑은 다르다. 도시락 문화가 잘 되어있어서 많이까지는 아닌데 자주 먹었다. 다 먹을만했다.

카탈레 도야마라는 팀에서도 생활을 했다.
프로 2년 차 때 카탈레 도야마로 임대를 갔다. 2부리그 팀이었는데 니가타에서는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해서 임대를 결정했다. 2부리그 팀이다 보니 열악했다. 통역도 없었다. 고생 많이 했다. 그때 도야마에 (서)용덕이 형이 있었는데 용덕이 형이 많이 도와줬다. 통역이 없다 보니까 일본말이 많이 늘었다. 소중한 2년이었다. 지금도 일본어로 대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다만 읽고 쓰는 건 못한다. 회화만 한다.

그때 잘 챙겨주셨던 어머니 아버지 같은 일본 팬들이 계셨다. 한국 선수들을 잘 챙겨주셨다. 1주일에 한두 번 우리 한국 선수들에게 소고기를 사주셨다. 아직까지도 그분들이랑 연락을 한다. 맨날 우리에게 전화하셔서 “너희 뭐해? 같이 밥 먹자”고 해서 밥 먹으러 가면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한국 선수들 3~4명이서 가서 소고기를 먹었다. 한 번 먹으면 소고기 값이 100만원 정도 나왔다. 그런데도 1주일에 한두 번씩 사주셨다. 되게 감사했다.

대단한 팬들이다. 다시 인천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1990년생이다. 인천에선 거의 최고참 라인에 속하게 됐다.
작년에 제주에 있을 때는 내 위에 형들이 되게 많았다. 그런데 여기 오니까 진짜 몇 명 없다. ‘아 벌써 이렇게 됐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많이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다. 묵묵히 할 일을 하며 선수 생활을 했는데 이제 고참이 됐다. ‘어린 선수들도 많으니 운동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여기에 와서 많이 하게 됐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당신의 외모에 대해 호평을 하는 인천 팬들이 있는 것 같더라.
아니다. 나 말고도 잘생긴 선수가 많다.

누군가 김호남을 말하는 건가?
음… 얘기를 잘해야 할 것 같다. 이제 호남이 형이 팬이 많아져서 호남이 형한텐 함부로 못하겠다.

김호남은 아닌 걸로 알겠다. 당신의 외모를 높게 평가하는 댓글들이 있는 것 같아 물어봤다.
감사한 일이다. 다만 선수는 축구로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친한 팬들이 몇 분 계신데 내 외모에 대한 칭찬이 있는 댓글들이 달리면 캡쳐해서 보내주시더라. 그러면서 “너는 주 포지션이 얼굴이니?”라고 해주신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감사하다. 사실 일본에 있을 땐 외모나 외적인 부분을 신경쓰지 않았다. 일본에서 뛸 때는 머리가 길어서 그냥 머리띠를 하고 뛰었다. 그렇게 해도 팬들이 좋아해 주시니까 그냥 뛰었다. 그런데 내가 서울이랜드에 왔을 땐 아무래도 서울이랜드가 창단 팀이라 주목도 많이 받고 하니까 외적인 부분을 신경쓰게 되더라. 아무래도 주위에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하면 사람이란 존재가 어쩔 수 없이 신경을 쓰게 되는 게 있는 것 같다.

인천은 끈끈한 팀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전에 인천과 만나 경기를 하면 처음엔 쉽게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쉽지 않았다. 그런 느낌을 상주상무에서 뛸 때부터 많이 느꼈다. 시즌이 시작되면 인천의 끈끈함이 나온다고 하더라. 아직은 리그 개막을 안해서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많고 그런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경기장에서 끈끈함이 나오는 것 같다. 매년 다른 팀들에 비해서 순위도 그렇고 간절하지 않았나. 그런 점이 쌓여서 끈끈한 게 생기지 않았나 본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올 시즌 목표는 뭔가?
이젠 나이가 있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선수 생활 동안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없다. 개인적인 목표는 부상 없이 경기를 뛰는 것이다. 또 인천이 한 단계 올라섰으면 좋겠다. 팀이 돋보이다 보면 그 팀 속에서 개인도 빛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팀에 맞춰서 운동을 많이 하고 있다. 우리가 1승이라도 더 해야지 밖에서도 주목을 하실 거고 그래야 안에 어떤 선수가 있는지를 보실 것이 아닌가. 팀이 잘되면 자연스럽게 개인 타이틀이나 공격 포인트는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인천 팬들이 시즌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홈 경기장에서 빨리 경기를 뛰고 싶다. 팬들의 함성을 빨리 느끼고 싶은데 시즌이 시작되지 않아 맨날 영상으로만 찾아보고 있다. 당장 경기를 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서 선수들도 그렇고 팬들도 되게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 상황이 하루빨리 좋아져서 경기장에서 뵙고 싶다. 신나게 축구를 하고 싶다. 또 팬들도 우리가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꼈으면 좋겠다. 마음 같아선 당장 내일이라도 경기를 하고 싶다.

올 시즌 팬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해준다면?
호남이 형이 말했듯이 나도 어디 가지 않겠다. 또 어떤 팀을 만나든 쉽게 지지 않을 거다. 정말 어디 안 갈 거다. 인천에서 은퇴하고 싶다.

아직 시즌이 시작하진 않았지만 김성주는 이미 인천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러면서 “인천 팬들에 대한 한 가지 약속을 말해달라”고 하자 “호남이 형이 말했던 것처럼 나도 어디 가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느덧 프로 9년차의 베테랑이 된 김성주. 그의 날카로운 왼발은 올 시즌 인천에 어떤 선물을 가져다줄까.

henry412@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bz3cO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