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 감독대행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남해=김현회 기자] 대구FC는 동계 전지훈련에서 뜻밖의 변수를 맞았다. 무려 6주간 중국 쿤밍에서 고강도의 전지훈련을 계획했던 이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3주 만에 귀국해야 했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경남 남해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시즌을 앞두고 안드레 전 감독이 급하게 팀을 떠났고 이후 조광래 대표이사와의 설전도 있었다.

지난 시즌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대구는 올 시즌을 앞두고 여러 변수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병근 수석코치는 안드레 감독의 빈자리를 채워야 할 감독대행으로서의 중책을 시작했다. 과연 대구는 올 시즌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경남 남해의 전지훈련장에서 이병근 감독대행을 직접 만났다.

반갑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이다.

우리는 중국 쿤밍에 있었다는 이유로 사실상 여기에 격리돼 있다시피 하다. 잠복기가 2주라고 하지 않았나. 물론 오늘 뉴스를 보니 잠복기 2주가 지난 사람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혼란스럽지만 최대한 예방 수칙, 격리 수칙을 지키려고 한다.

대구 선수단이 거의 격리 수준일 줄은 몰랐다.

매일 남해군 보건소 직원 4~5명이 오전과 오후로 방문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체온을 잰다. 가급적이면 이동도 제한한다. 목욕탕에도 가지 말라고 한다. 격리와 다를 바가 없다. 손 소독제도 나눠주고 매일 챙겨주신다. 구단 차원에서도 매일 체온을 잰다. 여기에서도 훈련장을 제외한 곳에는 거의 나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내일(12일)이 딱 우리가 중국에서 돌아와 2주가 되는 날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지금 당신 방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해열제가 보인다. 혹시….

아니다. 목이 칼칼하고 그럴 때 하나씩 먹는 거다.

중국에 다녀온 뒤로 먹는 건가. 혹시….

아니다. 원래 선수들에게 소리 치며 지도하다가 목이 아프면 하나씩 먹었다.

그래도 혹시….

에이, 아니다. 매일 발열 체크를 할 때도 정상이다. 이상하게 몰아가지 말아라.

이병근 감독대행은 이제부터 대구를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 ⓒ프로축구연맹

알겠다. 쿤밍에서의 분위기는 어땠나.

쿤밍은 우한과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이 너무 좋고 따뜻했다. 호텔도 좋고 먹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만족스러웠다. 다른 팀들은 전지훈련을 두세 차례에 걸쳐 나눠서 진행하는데 우리는 쿤밍에서 1월 7일부터 2월 13일까지 6주 동안 쭉 하는 걸로 계획했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에 있는 선수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 “중국에 있는데 괜찮느냐”고 연락을 자주 해왔다. 상황이 심각해지니 주장 홍정운과 황순민이 우리를 찾아와 “전지훈련 일정을 마무리하고 국내에서 훈련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건의하더라.

건의할 만하다.

선수들도 쿤밍에서는 그렇게 크게 걱정한 게 아닌데 가족들의 걱정 때문에 이런 건의를 했다. 그래서 회의를 했고 이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3주 좀 넘게 쿤밍에서 훈련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급하게 국내 전지훈련장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남해에 숙소와 운동장을 구했다. 그렇게 남은 훈련을 마무리하는 중이다.

요새 중국에 있다가 온 사람들은 좀 더 엄격하게 관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도 쿤밍에서 귀국한 뒤 선수들을 잠깐이라도 집으로 보내 휴가를 주고 싶었지만 공항에서 바로 버스를 대절해 선수들을 그대로 데리고 남해로 왔다. 선수들을 집에 보내면 안 된다고 하더라. 혹시라도 감염이 되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서다. 오히려 선수들이 집으로 가면 가족들이 불안해 할 수도 있어서 우리도 이런 방향을 택했다. 우리 집 사람도 “남해에 있다가 잠복기가 끝나면 오라”고 하더라. 심지어 쿤밍에 같이 있던 조광래 사장님도 계속 집에 못가고 여기 남해에 우리와 같이 있다. 갈 수가 없다.

지도자로서 갑자기 훈련 스케줄이 바뀐 게 혼란스럽지는 않나.

그런 건 없다. 남해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발열 증상을 보이는 선수가 한 명도 없고 부상자도 없다. 건강히 운동을 하고 있어 만족스럽다. 원래 쿤밍에 있으면서 베이징 궈안과의 연습경기가 예정돼 있어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취소됐다. 하지만 남해에서도 수준 높은 K3리그 팀하고 격돌할 수 있다. 전남드래곤즈와의 연습경기도 잡혀져 있다. (12일 열리기로 했던 이 경기는 비가 와 결국 취소됐다.)

두 번째 감독 대행이다.

그렇다. 수원삼성 시절 서정원 감독님이 나가신 뒤 감독대행을 했었고 이번이 두 번째다. 그때는 시즌 도중 갑자기 감독대행을 맡게 됐고 이번에는 좀 다르다. 시즌 시작 전부터 감독대행이다.

시즌 도중에 맡게 된 것과 시즌 전에 맡게 된 것에 차이가 있을까.

사실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감독대행을 하게 됐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지금이 조금 더 여유가 있는 것 같긴 하다. 나에게도 굉장한 부담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지도자로서 한층 더 상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수원삼성 시절 그래도 한 번 감독대행을 해봤다고 그게 경험이 된다.

이병근 감독대행은 이제부터 대구를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 ⓒ프로축구연맹

감독대행은 아직 정식 감독이 아니다. 선수들과 언론을 대할 때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일단 이런 인터뷰를 하면서도 상당히 조심스럽다. 내가 말 실수를 하는 건 아닌지 하나 하나 신중해지게 된다. 오늘은 이 인터뷰가 있다고 해서 미리 답변을 하나하나 다 적어가며 준비했다. 하지만 원래 준비된 질문은 별로 없고 다 다른 질문들만 물어봐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냥 편하게 응해달라.

당신이 안드레 감독님 나가시는 소식도 제일 처음 전한 기자라고 들었다. 조심스럽다. 그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안 건가.

나도 다 정보원이 있다. 하지만 이제 이 문제를 더 확대할 생각은 없다.

그래달라. 그리고 우리 선수들 중에 새로운 선수들도 많고 올림픽 대표에 다녀온 선수들도 있고 잘 생긴 선수들도 있는데 내가 인터뷰를 하는 건 사실 좀 부담스럽다.

나는 당신에게 궁금한 게 더 많다.

아마 팬들은 우리 선수들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더 많지 않을까. 우리 선수들에게 이야기거리가 많다. 나는 내가 언론에 많이 나가는 걸 선수들이 어떻게 바라볼까도 조심스럽다.

감독대행이면 선수들과는 호칭을 어떻게 정리했나. 감독님인가. 대행님인가. 감독대행님인가.

나도 그게 가장 어색했다. 지금까지 나한테 ‘코치님’이라고 부르던 선수들이 하루아침에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할 것이다. 그런데 조광래 사장님이 선수단과의 단체 미팅에서 “이제부터는 이 코치를 우리 안에서 먼저 감독이라고 받아들여줘야 한다”는 말을 했다. 선수들에게 나를 감독 대우하라는 이야기였다. 조광래 사장님께 감사했다. 그때부터 선수들이 훈련장에서도 “감독님”이라고 부른다. 훈련장에서 선수들에게 내 말이 더 무게감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런데 한 놈만, 아니 한 선수만 아직도 호칭을 제대로 안 한다.

그 한 놈, 아니 그 한 선수가 누군가.

세징야다. 자꾸 나한테 형이라고 한다. 지난 해까지 내가 코치를 할 때도 나한테 형이라고 했던 녀석이다. 나한테 형이라고 부르니 주변에서 그걸 보고 깜짝 놀라더라. 다른 선수들은 이제 다 감독님이라고 하는데 혼자만 형이라고 하니까 그럴 만도 하다. 세징야는 내가 편해서 그런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요새는 세징야도 호칭을 조심하더라. 뭐 그러다가도 급하면 또 형이라고 하겠지.

코치 시절에도 당신을 형이라고 부르는 건 너무 격식 파괴 아니었나.

뭐 형이라는 호칭도 나쁘지 않다. 선수들과 더 가까워질 수도 있는 호칭 아닌가. 형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더 젊어지는 듯한 기분도 든다. 물론 내가 이제는 코치나 형이 아닌 감독대행으로서의 역할을 더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다.

이병근 감독대행은 이제부터 대구를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 ⓒ프로축구연맹

감독대행으로서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

요새도 사장님께 종종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자꾸 선수들에게 지시가 아닌 지적을 한다고 말씀해 주신다. 코치는 경기 때나 훈련 때 세세한 부분을 지적할 수 있지만 감독은 지적이 아닌 지시를 해야한다는 의미다. 사장님께서도 쭉 지켜보시다가 내가 하는 게 답답해 보이셨나보더라. “너무 잔소리를 많이 하지 말라”고 한 말씀 해주셨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지적은 잔소리가 된다. 창의성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다. 감독은 지시를 해야한다. 큰 그림을 보고 방향을 이야기해줘야 한다. 그런데 내가 너무 코치에 익숙해 있다 보니 아직까지는 이런 게 부족하다. 오늘도 연습경기를 하는데 답답하니까 또 여러 번 지적을 했다. 이 부분을 돌아와서 계속 돌이켜 보고 있다. 감독은 큰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하프타임 때 라인을 올리거나 프레싱 강도를 설정하는 등의 큰 그림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자꾸 작은 지적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늘 훈련장에 나갈 때 한 번 더 생각을 하고 나간다.

조광래 사장도 잔소리가 많은 스타일 아닌가.

허허허.

민감할 수도 있지만 안드레 감독 이야기를 안 물어볼 수가 없다.

뭔가.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겠다. 민감한 부분인데 당사자들이 다른 뉘앙스로 오해하는 걸 원치 않는다. 사실 안드레 감독님과 조광래 사장님 이야기는 내가 꺼내기 부담스럽다.

알겠다. 간단히 물어보겠다. 당신은 안드레 감독이 팀을 떠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나.

나는 몰랐다. 우리는 늘 해오던 대로, 계획했던 대로 전지훈련장에서 훈련 중이었다. 안드레 감독님은 P급 보수 교육 때문에 브라질에서 좀 늦게 합류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우리는 체력훈련을 시작했고 계획대로 서서히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코치들은 계획된 일정에 따라 훈련만 진행한다. 사퇴 상황은 잘 몰랐다.

안드레 감독이 팀을 떠난 뒤 팀내 분위기는 어땠나.

전지훈련지에서 갑자기 떠나셔서 우리가 급하게 회의를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는 상황에서 조광래 사장님은 나에게 “수석코치가 이제부터 팀을 당분간 이끌어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때부터 감독대행의 역할을 했는데 물론 곧바로 내가 정식 감독대행이 된 건 아니다. 국내로 돌아와 구단 고위층과의 회의를 통해 내가 정식 감독대행이 됐다. 우리는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훈련에 집중하려고 했다.

이병근 감독대행은 이제부터 대구를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 ⓒ프로축구연맹

안드레 감독의 빈자리가 느껴지나.

내가 감독대행으로서 특별하게 더 하는 건 없다. 나는 다른 코치들과 함께 훈련을 진행하고 경기에 나설 멤버를 짠다. 가끔 강하게 이야기 해야 할 게 있으면 강하게 하는 편이지만 최대한 다른 코치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서로가 함께 기존 감독님의 빈자리를 잘 채우고 있다. 물론 혼자 있을 땐 책임감도 많이 느낀다. 사실은 자다가 벌떡 깰 때도 있다.

수원삼성에서 함께 했던 데얀과 다시 만났다.

반가운 친구다. 내가 수원삼성에 있을 때 데얀은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2018년에 리그에서 13골을 넣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0골을 넣었다. 다 합치면 이 해에 27득점 5도움을 기록했다. 대단한 기록이다. 작년에 수원삼성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 대구에서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다.

데얀과 다시 만난 뒤 어떤 말을 처음 해줬나.

“너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수원삼성 시절부터 데얀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데얀이 수원 시절에는 팀 분위기를 흐렸다는 지적도 있었다.

데얀은 자기를 믿어주는 감독에게는 충성을 다한다. 사실 이런 외국인 선수들은 별로 없다. 대부분이 돈에 따라 움직이고 많은 돈을 받을 때 열심히 한다. 하지만 데얀은 한국에서 오래 뛰어서 그런지 한국적인 정서가 있다. 돈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선수다. FC서울에 있을 때도 최용수 감독이 이런 ‘밀당’을 잘 했다고 들었다. 물론 이건 수원삼성 시절 데얀과 사이가 나빴던 감독님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감독님은 감독님마다의 철학이 있을 것이고 팀을 우선시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바라본 데얀은 믿어주면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준다. 데얀도 살고 팀도 살 수 있도록 하겠다.

데얀의 적지 않은 나이가 걱정될 수도 있다.

그건 동의한다. 지난 시즌에 많은 경기를 띄지 못해 컨디션을 올리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포지션에 서야 더 좋은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찾고 있다. 에드가와 투톱도 써보고 원톱에도 기용해 보고 있다. 지난 해 우리가 공격 전개는 좋았지만 마무리 능력이 떨어졌다. 서울이나 수원과도 좋은 경기를 하고 이기지 못했다. 수원전은 슈팅수가 20개가 넘는 압도적인 경기를 하고도 무너졌다. 올해는 에드가에 의존하지 않고 데얀과의 공존을 고민 중이다. 둘이 동시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상대가 느끼는 부담은 더 크지 않을까.

이병근 감독대행은 이제부터 대구를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 ⓒ프로축구연맹

둘이 동시에 들어가면 반대로 기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것도 그렇다. 고민 중이다. 데얀을 후반에 넣고 투톱 형태로 변형하는 방안도 있다. 우리가 지난 시즌에 잘 했던 빠른 역습은 그대로 유지하되 데얀을 활용한 다양한 공격 방법을 논의 중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올해 어떤 축구를 하고 싶나.

사실 시간이 촉박해 내 색깔을 내는 건 무리다. 우리가 잘하고 있는 장점을 꾸준히 살리고 싶다. 당분간은 팀을 안정시키고 싶다. 또한 갑작스럽게 중책을 맡았는데 이 임무를 좀 더 잘 수행하고 싶다. 대구가 지난 해에는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서 첫 승도 하고 성과를 냈지만 16강에 가지 못했다. K리그에서는 5위를 했다. 잘했지만 더 올라갈 수 있는 기회에서 올라가지 못했다. 올해는 실수를 줄여 꼭 다시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가고 싶다.

대구는 또 한 번의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있다. 지난 시즌 최고의 성과를 내며 흥행을 주도했던 대구는 올 시즌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이런 대구가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올 시즌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병근 감독대해도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안다. 과연 그가 올 시즌 ‘대팍’에서 보여줄 축구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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