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5년 반 만의 K리그 재입성’ 서울이랜드 김동권 이야기


김동권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프로 무대에 입성하게 됐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제주=김현회 기자] 누군가에는 프로 무대가 당연한 걸 수도 있다. K리그에서 10년 넘게 꾸준히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이 무대가 당연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무대에 서기 위해 간절하게 도전하고 또 도전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프로에서 밀려나고 5년 6개월 만에 다시 프로 무대에 서게 된 선수가 있어 소개하려 한다. 올 시즌 서울이랜드와 계약을 맺은 수비수 김동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김동권을 서울이랜드 전지훈련지인 제주도 서귀포에서 만났다.

반갑다. K리그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
고맙다.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5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2014년 여름 K리그 챌린지 충주험멜을 떠난 뒤 다시 K리그로 오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그때는 6개월 후면 다시 K리그로 올 줄 알았다. 너무 감개무량하다.

서울이랜드에 언제 합류했나.
지난 1월 2일에 합류했다. 지난해 내가 내셔널리그 경주한수원에서 코뼈가 두 번이나 부러졌었다. 두 번째 코뼈 골절이 7월이었는데 그때 수술을 하면 여름에 다시 몸을 만드는 게 힘들 것 같아서 그냥 교정만 하고 뛰었다. 경주한수원 서보원 감독님께도 “일단은 시즌 끝날 때까지 수술 미루고 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내셔널리그 시즌이 끝나고 지난해 12월에 코뼈 수술을 했다. 수술 이후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못해서 살도 쪘다. 그래서 1월 2일부터 팀에 합류해 열심히 훈련 중이다.

코가 잘 생겼다. 실리콘도 좀 들어간 것 같다.
티가 나나.

오똑하다.
사실은 작년 5월에 처음 코뼈가 부러졌을 때 치료만 받고 갔더니 선배들이 “이 기회에 성형도 좀 하고 오지 그랬냐”고 하더라. 어차피 코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실리콘도 좀 넣고 오라는 것이다. 몇몇 선수들도 그렇게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좀 후회하고 있었는데 7월에 또 부러진 거다. 그래서 교정만 하고 있다가 12월에 수술할 때 실리콘을 살짝 넣었다.

성형미남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그래도 코끝은 안했다.

김동권은 내셔널리그 무대에서 5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셔널리그

알겠다. 코의 컨디션은 좋아 보이는데 축구선수로서의 컨디션은 어떤가.
운동을 계속 못하다가 1월 2일 목포에서 서울이랜드 1차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이후 태국 전지훈련을 갔다가 지금은 제주도에서 선수단과 훈련 중이다. 아직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는 않다. 우리가 아직 연습경기를 두 번밖에 안했는데 나는 25분만을 뛰었다. 태국에서 열린 연습경기에서는 몸이 좋지 않아 뛰지 못했고 제주도에서 단국대와의 연습경기에서는 25분만 소화했다. 몸을 더 끌어 올려야 한다.

코만 강해진 건가.
올해 내가 29살이다. 20대 초중반 생각을 하면서 자꾸 나이를 까먹는다. 당연히 그때와 똑같은 몸 상태라고 생각하다가 아차 싶을 때가 있다. 똑같은 휴식을 취해도 회복 속도가 다르다. 더 몸 관리에 신경을 써야겠다.

사람들이 당신의 이력을 잘 모른다. 당신을 소개해 달라.
대구 청구중학교와 청구고를 졸업하고 2011년 포항스틸러스에 입단했다. 그런데 당시 K리그에는 U-22 의무 출전 조항이 없었다. 자리를 잡지 못했고 포항에서는 나에게 J2리그 임대를 권유했다. 어린 나이에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FC기후에 임대를 떠났는데 거기에서 실패했다. 향수병도 있었고 적응도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합숙 생활을 했는데 일본에 가니 갑자기 집에서 출퇴근하는 외국인 선수가 돼 있었다. 내가 컨트롤을 잘 못했다.

그래서 다시 한국으로 복귀했나.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2013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포항에서 나를 받지 않겠다고 해 새로운 팀을 찾아야 했다. 즉시전력감이 필요한 프로 무대에서 내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새롭게 출범한 K리그 챌린지 충주험멜로 갔다. 그 해에 21경기에 나가면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경기 출장 수가 줄면서 결국 내셔널리그 울산현대미포조선으로 가게 됐다.

프로 무대에서 내셔널리그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충주에서 경기를 잘 못 나가게 되니 일단 이 팀을 떠나 한 6개월 정도만 내셔널리그에 있으면 다시 프로 팀에 올라올 줄 알았다. 굳이 내셔널리그로 안 가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가겠다고 했다. 돈도 울산현대미포조선이 충주험멜보다 좀 더 많이 줬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다시 프로 무대로 돌아오는데 5년 반이 걸린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K리그 챌린지의 열악한 팀에서 내셔널리그의 조건이 좋은 팀으로 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이적이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울산미포조선은 내셔널리그에서 잘하는 팀이었다. 나도 그때는 딱 6개월만 하고 다시 프로로 갈 생각 뿐이었다. 시즌 도중이라 K리그 챌린지 팀에서 또 다른 K리그 챌린지 팀으로 가기가 어려울 뿐 시즌이 끝나면 이적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충주험멜 시절 김동권의 경기 모습. ⓒ프로축구연맹

무엇 때문에 프로에 다시 오는 게 그리 어려웠나.
그때는 내가 너무 몸 관리도 못했고 지금 당장 뭐가 중요한 건지도 몰랐다. 울산미포조선에서 6개월 동안 경기에 나가지 못했고 결국 프로에 당장 다시 가는 것도 어려워졌다. 울산미포조선에서 경기에도 못 나가는데 프로 팀에서 받아줄 리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팀을 찾다가 2015년 시즌을 앞두고 내셔널리그의 목포시청으로 가게 됐다.

울산현대미포조선에서 그렇게 경기에 나가지 못하면서 당황했을 것 같다.
물론이다. 그래도 목포시청에 가서는 운동을 잘했다. 목포축구센터 안에 목포시청 숙소가 있다.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거기에서 몸도 잘 만들었고 경기에도 많이 나가게 되면서 좋은 시절을 보냈다. 그때가 25살이었다. 물론 다시 프로에 가지 못하고 있다는 건 아쉬웠지만 목포시청에서 있었던 2년은 나에게 좋은 기억이다.

하지만 당신은 목포시청 이후에도 내셔널리그에 있었다.
목포시청에서 2년을 보내고 그 다음에는 무조건 프로에 갈 것이라고 다시 다짐했다. 에이전트한테도 프로 팀을 잘 좀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런데 2017년 시즌을 앞두고 김해시청으로 이적하게 됐다. 윤성효 감독님이 새롭게 팀에 오시면서 모든 게 새로운 상황이었다. 감독님이 1년 정도 김해시청에 있다가 다시 프로로 가시면 같이 했던 선수들 중에 좋은 선수들을 데려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만 잘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김해시청이 프로 팀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1년만 믿고 해보기로 했다. 그 당시에 이런 이야기를 듣고 김해시청으로 온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김해시청은 프로팀이 되지도 않았고 윤성효 감독도 1년 만에 프로로 복귀하지도 못했다.
그렇다. 하지만 그 당시 선수들 중 지금 프로 무대에 올라간 선수들이 많다. 성남에 간 박수일을 비롯해 대구에 있다가 상주상무에 입대한 박병현, 지난 해 전남에서 뛴 김민준, 안산으로 이적했던 최성민과 곽성욱, 그리고 김민규와 김창대 등이 당시 우리 팀이었다. 거기에 경험 많은 정성훈과 하강진 형도 있었다. 멤버가 좋았고 축구도 재미있게 했었다.

김해시청에서 1년을 보낸 당신의 그 다음 선택도 또 다시 내셔널리그였다.
맞다. 김해시청에서 1년을 지낸 뒤 경주한수원으로 옮겼다. 경주한수원에서는 우승도 많이 해봤다. 나름대로 내셔널리그에서는 전국체전과 내셔널선수권대회, 내셔널리그가 가장 큰 대회인데 이 모든 대회에서 다 우승해 봤다. 아무리 3부리그라 해도 선수가 성인 무대에서 우승을 경험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 강팀에 있어서 좋았다. 이 팀이 나의 내셔널리그 네 번째 팀이었다. 형들은 내가 김해시청에 갔다가 경주한수원까지 가니까 “내년에는 또 어떤 내셔널리그 팀으로 가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김동권에게 프로 재입성은 너무나도 간절한 꿈이었다. ⓒ프로축구연맹

그 사이 프로 팀 도전에 대한 꿈은 사라진 건가.
아니다. 경주한수원에서 2018년 시즌을 마친 뒤 자비를 털어 일본에 프로 테스트를 다시 도전했다. 대학생 선수들이 모여서 가는 공개 테스트였는데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리고 도전했다. 포항에 있다가 일본으로 임대를 간 뒤 실패하지 않았나. 네이버를 검색해 보면 당시 ‘김동권 방출’이라는 기사가 있다. 그때는 그게 부끄러웠는데 더 후회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학생들 테스트에 내 돈을 내고 다녀왔다.

잘 안 됐나.
당시 경주한수원 서보원 감독님께도 “다시 일본에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감독님께서는 “다녀와라. 대신 안 되면 다시 우리 팀으로 돌아오라”고 하셨다. 개인 테스트가 아니라 단체로 보는 테스트였고 내가 특출나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일본에서 선택받지 못하고 다시 경주한수원에 1년을 더 있어야 했다.

이 프로라는 무대가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도전해야 하는 곳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경주한수원에서 2019 시즌을 다시 시작했는데 지난 시즌 여름에 마침내 프로팀에서 제안이 왔다. 서울이랜드였다. 연봉과 옵션 계약까지 세부적으로 다 오갔다. 경주한수원과는 1년 계약이어서 내가 감독님을 찾아가 말씀드렸다. 이제는 프로 무대에 꼭 가고 싶다고 상황을 말씀드렸는데 경주한수원에서도 나를 내보내는 걸 좀 난처해했다. 경주한수원은 내셔널리그에서 항상 우승을 경쟁하는 팀이고 전국체전과 내셔널선수권대회, 리그 모두 정상에 도전하는 팀이다. 감독님은 우승을 생각하고 스쿼드를 짰는데 내가 갑자기 나간다고 하니까 난처해하셨다.

감독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가 나가려면 누군가 한 명 새로운 선수가 영입돼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감독님께 장문의 ‘카톡’ 메시지도 보냈다. 경주한수원에서는 당시 임대 영입을 추진 중인 프로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와 계약하게 되면 나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거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이 선수가 결국 다른 팀으로 가버렸고 나는 서울이랜드로 이적할 수가 없었다. 너무 상심했지만 그래도 시즌이 끝나고 2020년이 되면 서울이랜드에서 다시 한 번 제안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기다리게 됐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서울이랜드에 오게 된 건가.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서울이랜드 단장과 감독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입 방침도 다 달라질 테니 ‘올해도 또 못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 선배가 내셔널리그 목포시청 테스트를 준비 중이었다. 목포시청 닥터 선생님께 이 선배에 대해 대화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닥터 선생님은 “너 또 내셔널리그 어느 팀 가기로 했다며?”라고 물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렸다. “프로 팀을 알아보고 있는데 만약에 프로 팀을 또 못 가게 된다면 그 팀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 이거 큰일났네”라고 하시더라.

무슨 일인가.
목포시청 코치님과 서울이랜드 코치님이 아는 사이였는데 이 분들 사이에서는 내가 어느 내셔널리그 팀과 계약했다는 말이 오간 모양이다. 서울이랜드 측에서는 내가 내셔널리그 팀과 다시 계약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목포시청 닥터 선생님이 “어? 며칠 전에 서울이랜드에서 너에 대해 물어봐서 나도 네가 내셔널리그 팀으로 간다고 들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단 서울이랜드 측에 네가 계약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다시 말해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다시 서울이랜드의 연락을 받았고 마침내 서울이랜드와 계약할 수 있게 됐다.

김동권은 내셔널리그에서 인정받는 수비수였다. ⓒ내셔널리그

또 한 번의 프로 입성 기회를 놓칠 뻔했다.
그렇다. 이번에 많은 걸 느꼈다.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자주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하는 게 나쁠 게 없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5년 6개월 만에 돌아왔다. 그동안 설움도 많았을 것 같다.
나는 그래도 내가 현역 축구선수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프로는 아니지만 세미프로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주한수원 시절 2018년도 FA컵에서 성남FC와 붙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경기였는데 이날 경기는 0-0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중앙 수비수인 내가 측면에서 막 경합을 하고 있는데 한 관중이 “야 이 한수원 아마추어 XX들아”라고 하시는 거다. 너무 선명하게 들렸다. 그때의 충격이 컸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컸을 것 같다.
0-0으로 경기가 흘러가니까 관중은 ‘왜 프로가 저런 애들한테도 못 이기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아직도 아마추어 선수구나’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나는 5년 6개월의 시간 동안 내셔널리그 무대에만 있으면서 사람들이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아마추어 선수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한 번 꼭 프로 무대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곧 30대에 접어드는 데도 다시 도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신은 이런 시련을 겪으며 다시 프로 무대로 돌아왔다. 축하한다.
축구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한수원 팀이요? 수원에 있어요?” 이렇게 물어보시기도 했다. 나도 팬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아보고 싶었다. 5년 6개월 전 처음 내셔널리그로 내려갈 때는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잠깐 갔다가 오면 되지’ ‘에이전트가 알아봐주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어린 선수들에게는 한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니 늘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해준다.

다시 프로에 돌아오니 어떤가.
포항에도 있어봤고 일본에서도 있어봤지만 그 사이 프로 팀이 더 발전한 건지 서울이랜드가 체계적인 건지 여기 와서 깜짝 놀랐다. 프런트와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은 딱 축구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해주신다. 비디오 미팅도 자주한다. 어릴 때는 이런 걸 하면 지루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는 영상을 하루에 20~30분 정도 보면서 포인트만 배우면 되는데 선생님들은 이걸 보여주려고 2~3시간씩 작업을 하신다. 프로에 오니 좋다. 우리를 지지해 주는 팬들과 우리가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런트를 보며 프로선수가 다시 됐구나라는 걸 느끼고 있다.

김동권은 경주한수원 수비의 핵으로 활약했다. ⓒ내셔널리그

정정용 감독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나.
전혀 모른다. 그런데 U-17 월드컵을 감명 깊게 보고 정정용 감독님을 포털사이트에서 찾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나하고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오셨더라. 나의 대선배님이셨다.

영입에 학연이 작용한 것 아닌가.
절대 아니다. 우리가 목포에서 1차 전지훈련이 끝나던 날 등산을 했는데 감독님께서 “동권이 어딨어? 너 나하고 같은 학교 나왔더라”라고 하셨다. 그러더니 “여기 선생님들한테 말해. 내가 너 학연 때문에 뽑은 줄 알잖아. 아니라고 어서 말해”라고 말씀하시더라. 다같이 웃었다. 알고 봤더니 감독님도 모르고 계셨는데 분석관이 검색해서 나하고 감독님의 출신 학교가 똑같은 걸 찾아냈다. 감독님과 같은 학교를 나온 건 영입과 전혀 연관이 없다. 심지어 아직까지 감독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다.

이제는 프로 재입성으로 만족할 게 아니라 다시 프로에서 살아남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이다. 나는 내셔널리그에 오래 있었다. 주변에서는 “그래도 네가 내셔널리그 감독님들은 다 아니까 내셔널리그에서 시작하면 ‘0’부터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나도 편하려면 계속 그 무대에서 뛰는 게 나았다. 하지만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싶었다. 다시 ‘0’부터 시작이다.

올 시즌 각오를 듣고 싶다.
죽기살기로 해보려고 한다. 일단 개인적으로는 20경기 이상 뛰었으면 한다. 그리고 서울이랜드가 4강 안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선수가 아무리 잘해도 팀이 꼴찌라면 선수가 박수를 받지 못한다. 일단은 팀이 잘 돼야 한다. 치열하게 주전 경쟁을 하고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하겠다. 조급하지 않다. 기회가 올 때 잡고 싶다.

ⓒ스포츠니어스

K리그에 5년 반 만에 돌아왔다. 사실은 당신 이름을 모르는 팬들이 훨씬 더 많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 팬들에게 당신이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나.
내셔널리그에서 매년 한두 명씩 프로에 가는 선수들이 있었다. 이중에는 잘된 선수도 있고 다시 실패한 선수도 있다. ‘내셔널리그에서 왔으니 저거밖에 못하지’라는 이야기를 절대 듣고 싶지 않다. 경기에서 눈에 띄는 플레이를 펼쳐 검색해 봤더니 의외로 내셔널리그 출신이라는 생각이 드는 선수였으면 좋겠다. 투지 넘치는 수비수로 기억되면 좋을 것 같다.

김동권은 돌고 돌아 다시 프로 무대에 섰다. 5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게 변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철없던 이 어린 선수는 이제 서른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제 이 5년 반의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돌아왔다. 과연 그가 K리그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도전 자체로도 그는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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