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서귀포=조성룡 기자] 서울이랜드 이상민이 도쿄 올림픽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올 시즌 서울이랜드에 새로운 임대생이 들어왔다. 바로 울산현대 이상민이다. 2018시즌 울산현대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상민은 아직 울산에서의 K리그 출전 기록이 없다. 데뷔 시즌 주전 경쟁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R리그에서 뛰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2019시즌 임대 이적을 선택했고 J리그 V-바렌 나가사키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이상민은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임대를 선택했다. 그의 새로운 행선지는 서울이랜드다. 서울이랜드는 정정용 감독 부임 이후 젊은 자원들을 적극 영입하며 유쾌한 반란을 꿈꾸고 있다. 특히 2020 도쿄 올림픽 본선 무대를 꿈꾸는 이상민에게는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AFC U-23 챔피언십 일정을 마치고 제주도의 서울이랜드 전지훈련에 합류한 이상민을 <스포츠니어스>가 만나봤다.

만나서 반갑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팀의 분위기는 굉장히 좋다. 코칭스태프들이 선수들을 편하게 대해준다. 서경주, 이시영과는 이미 친분이 있고 (최)재훈이 형과도 과거 대표팀에서 만난 인연이 있다. 휴식을 잘 취하고 훈련에 합류했으니 열심히 할 생각이다.

하긴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서울이랜드에 합류했다. 태국이 아니라.

정정용 감독님이 배려를 굉장히 많이 해주셨다. 알다시피 내가 AFC U-23 챔피언십을 마치고 태국 현지에서 합류해야 했다. 대표팀도 태국에 있었고 서울이랜드도 태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계획은 태국에서 서울이랜드 전지훈련장에 합류해 며칠 함께한 뒤 한국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제주도에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차라리 팀에 합류하지 말고 한국으로 바로 가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아마도 U-23 대회에 나갔던 선수들 중에 내가 가장 많이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하하. 덕분에 정말 푹 쉬었다. 다른 선수들 소속팀에 합류해서 훈련 일정 소화할 때 나는 한국에서 잘 회복하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제주도에 합류했다. 아직 모르는 형들도 많아 어색한 면도 있고 서울이랜드라는 팀도 처음이지만 마음은 편하다. 그래도 아는 코칭스태프도 있고 전체적으로 팀의 연령층이 낮은 편이다.

처음 온 서울이랜드는 어떤가?

좋다. 사실 여기 오기 전까지 서울이랜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와보니 무엇보다 의류들이 정말 마음에 든다. 뉴발란스에서 나온 구단 의류들이 상당히 좋다. 뉴발란스를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막상 입어보니 좋은 것 같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해외 유명 브랜드에 밀리지 않는 품질인 것 같다.

옷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아, 축구하면서 의류도 굉장히 중요하다. 관심이 많다. 브랜드 별로 인지도와 품질 등이 다르지 않은가. 해외에서 제작되어 수입된 의류도 좋지만 요즘은 뉴발란스나 험멜처럼 국내 기업들이 라이센스를 가지고 제작하는 의류도 상당히 좋다고 생각한다. 또 K리그를 후원해주고 있지 않은가. 서울이랜드 옷도 많은 사랑 부탁드린다.

서울이랜드 유니폼에 이상민 마킹을 하면 멋있을 것 같다. 7번이라니.

하… 내가 고른 번호가 아니다. 정정용 감독님이 골라주신 번호다. 나는 진짜 7번을 달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 수비수가 7번을 다는 사례가 거의 없지 않는가.

등번호를 받았을 때 첫 느낌은 어땠는가?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이게 뭔가. 지금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달라.

사실 제주도에 오기 전에 등번호에 대한 이야기를 구단과 했다. 나는 33번을 한다고 했다. 남는 번호가 거의 없어서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 먼저 구단에 남는 번호를 물어봤다. 그러니 "7번이 남아있고 30번대가 남아있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33번을 하겠다"라고 하니 구단에서 "7번은 어떠냐"라고 하더라. 나는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다"라면서 33번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구단에서도 "오케이, '삼땡'으로 갑시다"라고 했다.

그리고 제주도에 합류했다. 나는 당연히 33번인 줄 알았다. 전지훈련 중에 구단 용품을 지급하는데 등번호 순서대로 부르더라. 당연히 나는 뒷 번호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6번 다음에 곧바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나만 깜짝 놀란 것이 아니라 형들도 깜짝 놀랐다. "와, 상민이 7번이야? 상민아 네가 7번 달라고 했어?"라고 물어보시더라.

ⓒ 서울이랜드 제공

특히 (김)민균이 형이 "상민아 너 7번이야?"라더라. 나는 억울해서 "7번 달라고 한 적 없어요"라고 했다. 정 감독님도 나를 놀래켜주려고 하신 건지 그 때까지 말을 안해줬다. 서울이랜드에서 처음 감독님과 만났을 때 감독님은 내게 "U-23 대회 고생했고 축하한다"라면서 팀 전술 이야기만 주로 했다. 등번호 이야기는 당시 끝까지 안하셨다.

사실 걱정이 많다. 내가 축구 인생을 살면서 7번을 달아본 적도 없고 달아볼 일도 없었고 달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달아볼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7번이라니… 올해 진짜 별 걸 다해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AFC U-23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지 않았는가.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큰 선물까지 덤으로 얻었다.

역시 주장의 리더십 덕분 아닐까.

에이 아니다. 선수들이 다 잘 따라와준 덕분이다. 내가 지시를 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끼리 서로 돕고 따르려고 하고 거기에 조금 더 주장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기 때문에 팀이 하나로 잘 된 것이다. 나도 주장의 입장에서 훨씬 수월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이런 저런 지시를 해봤자 선수들이 따르지 않고 자기 개성을 내세우면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 내가 노력한 만큼 선수들도 호응해주고 각자 희생했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다.

김학범 감독 칭찬은 없다.

아니다. 감독님께도 정말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주장이라고 내게 힘을 많이 실어주셨다. 감독님이 주장이라는 자리가 힘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려고 하셨다. 감독님 덕분에 내가 자신감을 정말 많이 얻은 것 같다. 그래서 감사하다.

ⓒ 서울이랜드 제공

요즘 김학범 감독이 '호랑이'라는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처음에는 나도 소문이라는 걸 듣긴 들었다. 그래서 무섭기는 했다. 막 움찔움찔하고 미팅하면 바짝 '쫄아'있었다. 거의 뭐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하.

하지만 전혀 그런 분이 아니다. 굉장히 재밌으신 분이다. 사실 감독님이 나이가 많지 않은가. 그 나이에 어린 선수들이랑 장난 치면서 놀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권위적인 면을 내세우지 않고 같이 어울리신다. 우리도 정말 감독님의 모습이 재밌어서 같이 웃고 논다. 그렇게 재밌게 감독님과 놀면서도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실 대회 기간 중 한 가지 일화가 있다. 김학범 감독님이 애연가인 것은 유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가 걸어가다가 감독님이 흡연 중인 것을 모르고 한 선수가 "아, 이 담배 냄새 누구야?"라고 했다. 그걸 어쩌다 감독님이 알게되신 거다. 그러자 김학범 감독님이 장난 치려고 그 선수에게 "야이 씨 이거는 하느님도 끊게 못하는데 네가 내 취미를 끊는 거야?"라고 하셨다. 우리는 또 보고 깔깔 웃었다. 그만큼 편하게 해주셨다.

이제는 정반대 스타일인 정정용 감독과 함께해야 한다.

음…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미지 차이는 있지만 스타일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분 모두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신다는 공통점이 있다. 운동할 때나 경기에 임할 때는 정말 진지하게 임하지만 그 외에 생활할 때는 정말 편하게 해주시고 장난도 엄청 많이 치신다. 우리와 어떻게든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신다. 사실 이것은 밖에 잘 비춰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건 여담인데 누가 물어보더라. 이동준과 정태욱이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할 것인가?

내가 걔네들을 왜 구해주나. 구해줄 일 없다. 둘 다 별로 안좋아한다. 하하.

서울이랜드에 임대로 왔다. 원소속팀에서 뛰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을 것 같다.

물론 울산에서 경쟁력이 크게 없다는 생각으로 임대온 것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있다. 울산에서 경기를 뛸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확신이 없기에 임대를 왔다. 물론 이 아쉬움은 나에 대한 아쉬움이다. 나 스스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곳에서 많은 경기를 뛰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또 서울이랜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서울이랜드에 임대온 것이 정말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지난 시즌 J리그 V-바렌 나가사키에서도 임대 생활을 했다.

맞다. 나름 좋았다. 일본의 인프라 등 좋은 환경을 겪었고 선수들에 대한 대우와 존중이 훌륭한 곳이었다.

첫 해외 생활 아니었는가?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다.

맞다. '용병' 입장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어렵기도 했고 좋은 경험이기도 했다. 먼저 언어의 문제가 제일 컸다.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경기장에서 소통을 하고 맞춰가기 어려웠다.

특히 '용병' 생활에 대해 많은 조언도 얻었다. 내가 일본 임대가 결정되고 한국을 떠나기 전에 선배 형들이 조언을 많이 해줬다. 특히 (박)주호 형과 (이)근호 형이 선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정말 많은 부분이 와닿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말들은 "네가 용병이기 때문에 거기 있는 선수들과 똑같이 하면 안된다"라는 이야기였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 선수들보다 더 잘해야 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경험해보니 구구절절 맞더라. 그렇지 않으면 '용병'인 나를 굳이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남들보다 특별해지는 것은 조금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당연히 내가 받아들여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나가사키에는 다른 한국인 선수들도 있지 않은가?

맞다. 정말 의지 많이 했다. 당시에 (이)종호 형과 (최)규백이 형과 함께 있었다. 그 형들은 내 '브라더'다. 친형이라고 생각할 만큼 정말 친한 형들이다. 거기서 형들에게 모든 것을 배웠다. 진짜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배웠다. 그 형들을 통해 어른이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웠다. 심지어 재테크까지 배웠다. 모르는 것은 다 형들이 가르쳐줬다.

ⓒ 서울이랜드 제공

게다가 형들은 정말 나를 너무 잘 챙겨줬다. 나는 일본에서 돈 쓸 일이 거의 없었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갈 때도 어디 갈 때도 그랬다. 형들이 "막내는 돈 쓰는 거 아니야"라면서 다 내주셨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종호 형은 이제 K리그2에서 적으로 만난다.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며칠 전에 통화도 했지만 얼른 경기장에서 보고싶다.

재테크까지 배우다니, 꿀팁이 있다면 전수해달라.

에이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무조건 절약이다. 축구선수라는 직업이 내 또래에 비해 좀 많이 번다. 하지만 또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기 때문에 노후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잘 모아놓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지금 잘 번다고 이것저것 사고 그러면 안된다. 형들이 "차 자주 바꾸면 안된다"라는 등 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하하.

사실 나는 많이 쓰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자잘한 것은 잘 사지 않고 종종 한 번씩 나 자신에게 선물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형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마저 고민이 많이 되고 있다. 무언가를 사려고 해도 형들이 해줬던 "아껴쓰라"는 조언이 생각나서 망설이게 된다. 그만큼 내가 형들을 좋아하고 많이 따랐다. 그 때 추억이 많았다.

일본어는 많이 배웠는가?

많이 배우지는 못했다.

도쿄 올림픽에 가려면 일본어가 또 하나의 무기 아닌가.

에이, 내가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아예 모르는 문외한은 아니다. U-23 대표팀 기준으로는 세 번째로 잘한다. 하하. 원두재와 안준수가 나보다 잘한다. 안준수는 거의 언어가 일본인이라고 보면 된다. 세레소 오사카에서 뛰고 있으니 일본어를 굉장히 잘한다. 그 다음이 원두재다. 두재는 일본인처럼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잘하는 편이다. 다음이 나다. 아예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으니 오해하지 말아달라.

일본어가 올림픽 승선의 기준이면 안정권이겠다.

그런데 그게 기준이 아니지 않는가.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아주 살짝 미치지 않을까. 하하. 정말 올림픽은 평생의 꿈이라 꼭 가고 싶다. 하지만 김학범 감독님이 어떤 선택을 하실지 모르니까 열심히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정정용 감독은 올림픽에서 메달 따 이랜드뮤지엄에 기증하길 바라고 있더라.

맞다. 감독님이 얼마 전에 정정용 감독님이 이랜드뮤지엄에 U-20 월드컵 메달 등을 기증하셨다. 그러면서 내게 "그보다 더 값진 메달이 이곳에 전시됐으면 한다"라고 하시더라. 내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와 여기에 기증하라는 이야기였다. 먼저 이건 나와 협의되지 않은 이야기다. 감독님 혼자 한 이야기다. 아니 올림픽을 일단 가야 메달을 바라보기라도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가게 되더라도 메달을 따야 기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해 기증은 벌써 약속드리기 어렵다. 하하.

그래도 감독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많이 배웠다. 정말 만약 내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서 개인 소장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집에 놔둬봤자 기껏해야 나나 내 가족들이나 볼 것이다. 그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기증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이와 함께 나눔의 가치를 생각하는 것도 뜻깊은 일인 것 같다. 좋은 생각일 것 같다.

근데 사실 올림픽에 갈 수만 있다면 기증이 문제겠는가. 더한 것도 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인 올림픽 본선을 향한 여정과 서울이랜드에서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렇다. 나는 많은 경기에 출전하고 싶어서 서울이랜드에 왔다. 과거 나와 함께 계셨던 정정용 감독님 밑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다. 여기에 온 만큼 감독님의 기대하는 부분이나 믿음에 정말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경기력으로 보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잘 준비해야 한다. 내가 나이가 어리지만 올 시즌 팀의 중심이 되어 많은 승리를 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올림픽도 꼭 가야하지 않겠는가.

아 정말 가고 싶다. 어떻게 해서라도 꼭 가고 싶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아직 어린 선수인 이상민도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가받을 것이다. 어떤 선수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대부분의 축구선수가 그렇지만 나 또한 비슷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처음에는 선수와 지도자에게 인정받고 더 나아가서 팬들과 대중들, 그리고 국민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고 싶다. 먼 미래에 내가 은퇴할 때 많은 사람들이 '아, 이 선수 정말 잘했지'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선수이고 싶다. 이제 시작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이랜드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이상민은 아직 어리다. 그래서 꿈도 많고 욕심도 많다. 더 좋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그를 서울이랜드로 이끌었다. 서울이랜드에서 이상민은 임대 신화와 함께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이라는 꿈 또한 노리고 있다. 모든 것은 그의 손에 달려있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올해가 끝났을 때 그를 다시 만난다면 이 인터뷰를 회상하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기대감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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