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서귀포=조성룡 기자] 0.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골키퍼 윤영글이 막아야 했던 슈팅의 숫자다. 9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 최종예선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장슬기와 추효주, 지소연의 릴레이 골에 힘입어 베트남을 3-0으로 꺾었다. A조 1위를 확정지은 대한민국 대표팀은 오는 플레이오프에서 B조 2위와 대결을 펼쳐 승리할 경우 역사상 첫 올림픽 본선 진출의 역사를 쓰게 된다.

이날 콜린 벨 감독은 선발 골키퍼로 윤영글을 낙점했다. 하지만 윤영글은 한없이 한가로웠다. 공이 좀처럼 대한민국의 진영으로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을 강하게 압박한 대한민국 선수들은 쉽게 뒷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윤영글은 대한민국의 골문 앞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중앙수비수 심서연은 라인을 한껏 끌어올려 공격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그럴 일도 없는 윤영글의 입장에서는 그저 서 있었을 뿐이다.

특히 전반전은 윤영글에게 굉장히 추워 보였다. 이날 경기가 열린 제주도 서귀포시의 기온은 8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따뜻하다고 할 수 있지만 바람이 문제였다. 예로부터 바람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제주도 답게 계속해서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하필 윤영글이 전반전에 위치한 자리는 그늘이 잔뜩 져 있었다. 홀로 외롭고 추운 싸움을 계속 해야 했다.

물론 베트남이 아예 공격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은 몇 차례 대한민국의 뒷공간으로 침투해 역습을 시도했다. 이 때는 윤영글이 '조금' 바빴다.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베트남 선수들을 상대로 우리 수비진의 위치를 조정하고 집중을 요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베트남 선수들은 역습을 하고도 윤영글에게 어떠한 위협도 하지 못했다. 후반 33분 베트남이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지만 윤영글 이전에 심서연의 벽도 넘지 못했다. 그렇게 윤영글의 베트남전은 슈팅 하나 허용하지 않은 채로 마무리됐다.

경기 후 믹스드존에서 만난 윤영글은 이번 경기에 대해 "선수들이 앞에서 잘 차단해준 덕분에 공이 몇 번 안와 편하게 했다"라면서도 "어쩌다 한 번 오는 공이 더 많이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특히 베트남이 역습을 주로 하는 팀이다. 그걸 대비해야 했다. 90분 동안 나 자신에게는 베트남전이 마냥 편하다고 하기 어려운, 어찌보면 더 어려웠던 경기였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지켜보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윤영글에 대해 "춥겠다"라고 걱정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전하니 윤영글은 웃으면서 "발도 얼었고 얼굴도 얼고 손도 다 얼었다. 다행히 하프타임 때 스태프들이 따뜻한 것을 챙겨줘서 몸을 좀 녹이고 다시 후반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윤영글에게는 그늘 진 전반전보다 그나마 해가 비춘 후반전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고. 그는 "전반전은 몸을 풀고 들어가기 때문에 그나마 추운 것이 덜하지만 후반전은 정말 추웠다"라고 토로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윤영글이 슈팅 하나도 없는 희귀한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윤영글은 오히려 이런 경험이 많았다. 그는 "내가 A매치 17경기 정도 출전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슈팅이 거의 없는 경기가 절반 가까이 된다"라고 웃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이런 경기가 익숙하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경기를 한 골키퍼에게 으레 하는 질문을 윤영글에게도 던졌다. "경기 끝나고 샤워 했는가?" 그러자 윤영글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지난 미얀마전 끝나고 '샤워 했냐'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사실 그 때는 안했다. 내가 별로 할 일이 없는 경기를 하면 꼭 그 이야기를 물어보더라. 하지만 이번 베트남전 끝나고는 샤워를 했다. 땀을 많이 흘려서가 아니라 따뜻한 물로 몸을 좀 녹이고 싶어서 샤워 잘 하고 왔다."

물론 윤영글에게 남이 볼 때 편해 보이는 경기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 윤영글은 이제 역사상 첫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역사를 쓰기 위해 최종예선 플레이오프에 나서야 한다. 윤영글의 역할은 이제 플레이오프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실 플레이오프가 중요한 것은 알지만 우리에게는 현재가 중요했기에 이번 베트남전까지는 마음 속으로만 플레이오프를 생각했다"라면서 "이제 끝났으니까 지금부터 계속 플레이오프를 생각하고 준비하겠다. 무조건 올림픽 가야한다. 호주와 중국 누구와 만날 지 모르지만 반드시 승리하는 경기를 해서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꼭 따내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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