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군단의 일원으로 활약한 수리남계 네덜란드 선수 11인


ⓒ Ailura

[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과거 네덜란드 축구의 위세는 대단했다. 인구 1,700만의 그리 크지 않은 나라지만 네덜란드는 언제나 세계 축구의 흐름을 선도했다. 리누스 미셸, 요한 크루이프 등 토탈사커의 창시자들을 비롯해 거스 히딩크, 로날드 쿠만, 루이스 판 할, 프랑크 레이카르트 등 불세출의 명장들이 모두 네덜란드 출신이다.

하지만 네덜란드 축구의 찬란한 역사에 기여를 한 또 하나의 국가가 있다. 바로 수리남이다. 남아메리카 최북단에 위치한 수리남은 과거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1975년 11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했지만 여전히 네덜란드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수리남은 네덜란드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다.

수리남과 네덜란드의 관계는 축구에서도 깊다. 과거부터 수리남 혈통의 많은 축구선수들이 네덜란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네덜란드 대표팀이 세계 최고의 팀으로 이름을 날릴 때도 네덜란드 대표팀의 주축은 수리남계 선수들이었다. <스포츠니어스>는 우리에게 친숙한 수리남계 네덜란드 스타 11명을 선정해봤다.

미하엘 포름(토트넘 홋스퍼) – A매치 15경기 출전

ⓒ 토트넘 유튜브 캡쳐

미하엘 포름은 지난 1983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위치한 한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네덜란드인, 아버지는 수리남인이다. 184cm로 골키퍼치고는 매우 작은 키를 보유한 포름이었지만 그는 환상적인 반사 신경, 안정적인 플레이로 프로 무대에 안착했다. 위트레흐트에서 6년간 159경기에 출전한 포름은 2011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 시티 유니폼을 입으며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거칠고 강한, 또 무엇보다 피지컬이 강조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포름이 쉽게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포름은 스완지에서 3시즌 동안 97경기에 출전하며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후 그 능력을 인정받아 2014년 여름에는 토트넘으로 적을 옮겼다. 하지만 토트넘 이적 후에는 주전 골키퍼 위고 요리스에 밀려 현재까지 47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치고 있다. 어느덧 38살이 된 포름은 이번 시즌 위고 요리스, 파울로 가자니가에 밀려 공식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버질 반 다이크(리버풀) – A매치 33경기 출전 네 골

ⓒ 리버풀 유튜브 캡쳐

현 시점 세계 최고 수비수 중 한 명인 버질 반 다이크는 지난 1991년 네덜란드 브레다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네덜란드인, 어머니는 수리남인이다. 이후 빌럼 II와 FC흐로닝언 유소년 팀을 거친 반 다이크는 지난 2011년 흐로닝언 1군팀에 이름을 올리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반 다이크는 흐로닝언 소속이던 석현준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리그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반 다이크는 2013년 스코틀랜드 명문 셀틱 유니폼을 입었다. 셀틱에서 기량이 한층 성장한 반 다이크는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으로 이적했고 지난 2018년 겨울엔 무려 7,500만 파운드(약 1,133억원)의 이적료를 남기며 리버풀에 입단했다. 이후 세계 최고 수비수 반열에 오른 반 다이크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선 주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제프리 브루마(마인츠05) – A매치 25경기 출전 한 골

ⓒ 마인츠 유튜브 캡쳐

한때 네덜란드 축구의 미래로 평가받던 브루마는 지난 1991년 수리남인 어머니와 네덜란드인 아버지 사이에서 출생했다. 브루마의 시작은 화려했다. 잉글랜드 명문 첼시 유소년 팀 출신인 브루마는 지난 2009년 첼시 1군 입성에 성공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쟁쟁한 경쟁자들로 인해 브루마는 레스터 시티, 함부르크 등지에서 임대 생활을 전전해야 했다.

이후 PSV로 이적한 브루마는 PSV의 주전 수비수로 129경기에 출전해 7골 5도움을 기록했다. 그렇게 가치를 증명한 브루마는 2016년 여름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며 독일 무대로 복귀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샬케 04에서 잠시 임대 생활을 하기도 했다. 현재는 마인츠 05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다. 올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9경기를 포함해 공식 경기 15경기에 출전했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 A매치 73경기 출전 10골

ⓒ NASA

프랑크 레이카르트는 1980~1990년대 네덜란드 축구의 황금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레이카르트는 수리남 출신의 아버지와 네덜란드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이후 고향 암스테르담에 연고지를 두고 있는 AFC아약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레이카르트는 때에 따라서 센터백으로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탁월한 개인 기량과 탄탄한 피지컬, 체력까지 갖춰 현역 시절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손꼽혔다. 네덜란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는 73경기에 나서 10골을 기록했다.

감독으로서의 발자취도 대단했다. 지난 2003년 42세의 젊은 나이에 바르셀로나 감독직에 부임한 후 바르셀로나의 2004-2005, 2005-2006 리그 우승, 2005-2006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이끌었다.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해임된 이후에는 감독직을 맡고 있지 않다.

나이젤 더 용(알 샤하니야) – A매치 81경기 출전 한 골

ⓒ ING Nederland

네덜란드의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 주역 나이젤 더 용 역시 수리남 혈통의 선수다. 더 용의 아버지는 수리남 출신이고 그의 어머니는 인도네시아 혈통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출생한 더 용은 지난 2002년 고향팀 AFC아약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독일 함부르크를 거쳐 2009년 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시티로 전격 이적했다.

많은 활동량, 강력한 태클, 지능적인 움직임으로 더 용은 프리미어리그 최고 미드필더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언제나 성실한 모습을 보여줬던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AC밀란, LA갤럭시, 갈라타사라이, 마인츠05 등 다양한 팀을 거친 더 용은 현재는 카타르 1부리그 알 샤하니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올 시즌에는 알 샤하니야 유니폼을 입고 카타르 스타스 리그 다섯 경기에 출전 중이다.

에드가 다비즈 – A매치 74경기 출전 6골

ⓒ sconosciuto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 에드가 다비즈는 지난 1973년 수리남 수도 파라마리보에서 출생했다. 이후 유아기에 네덜란드로 이민을 온 다비즈는 네덜란드 명문 AFC아약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아약스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당대 세계 최강팀 중 하나로 꼽히던 AC밀란에 입단한 다비즈는 지난 1997년에는 유벤투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폭발적인 활동량과 체력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무대를 점령한 다비즈는 2004년 상반기 잠시 임대 신분으로 바르셀로나에 몸담기도 했다. 2005년 여름에는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하며 이영표와 한솥밥을 먹었다. 현역 시절 다비즈는 총 두 번의 월드컵(1994 미국 월드컵, 1998 프랑스 월드컵)에 네덜란드를 대표해서 나섰다. 통산 A매치 출전 기록은 74경기 출장 한 골이다.

조르지니오 바이날둠(리버풀) – A매치 61경기 출전 15골

ⓒ 리버풀 유튜브 캡쳐

리버풀 주전 미드필더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은 지난 1990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출생했다. 바이날둠의 부모는 모두 수리남 출신이다. 하지만 그가 여섯 살이던 시절 그의 부모님은 이혼했고 결국 바이날둠은 할머니와 함께 성장했다. 이후 2007년 페예노르트에 입단한 바이날둠은 페예노르트에서 팀의 핵심 미드필더로 활약했고 PSV를 거쳐 2015년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이때부터 바이날둠의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뉴캐슬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2015-2016시즌 공식 경기 40경기에 나서 11골 5도움을 기록한 바이날둠은 2016년 여름 2,500만 파운드(약 391억 7,220만원)의 이적료를 남기며 리버풀로 이적했다. 리버풀 이적 후에도 바이날둠의 활약은 계속됐다. 바이날둠은 현재까지 리버풀 소속으로 170경기에 출전해 16골 16도움을 기록 중이다.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바이날둠은 61경기에 출전해 15골을 기록하며 순도 높은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다.

루드 굴리트 – A매치 66경기 출전 17골

ⓒ sconosciuto

현역 시절 긴 레게머리로 시선을 끌었던 루드 굴리트는 수리남 출신 아버지와 네덜란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재능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굴리트는 1987년 당대 세계 최강팀 중 하나였던 AC밀란에 입성했다. 밀란 시절 굴리트는 프랑크 레이카르트, 판 바스턴 함께 ‘오렌지 삼총사’로 불렸다.

190cm의 큰 신장임에도 빠른 스피드를 보유했던 굴리트는 탁월한 개인 능력, 골 결정력 역시 갖추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은 굴리트를 당시 나폴리에서 활약 중이던 축구 황제 마라도나의 최고 라이벌로 꼽기도 했다. 현역 시절 굴리트는 총 여섯 개의 팀을 거치며 382경기에 출전해 127골 29도움을 기록했다.

선수 시절 말미 첼시에서 잠시 플레잉코치로 활약하기도 했던 굴리트는 1998년 뉴캐슬 유나이티드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굴리트는 뉴캐슬, 페예노르트, LA갤럭시에서 연이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당했다.

클라렌스 셰도르프 – A매치 87경기 출전 11골

ⓒ flickr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 클라렌스 셰도르프는 1976년 수리남 수도 파라마리보에서 태어났다. 이후 두 살 때 네덜란드로 건너왔다. 10대 시절 아약스 유소년 팀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셰도르프는 1992년 아약스 성인팀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이탈리아 삼프도리아를 거쳐 1996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다.

현역 시절 셰도르프는 정확한 슈팅, 패스, 개인기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 공격형 미드필더로 평가받았다. 당대 최강으로 불렸던 네덜란드 대표팀 소속으로 87경기에나 출전했다는 것이 그점을 증명한다. 더불어 2000년대 세계 최고 팀 중 하나였던 AC밀란에서 10년 동안(2002.07~2012.07) 활약했다는 것 역시 셰도르프가 최고의 선수였다는 증거 중 하나다.

다만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현역 은퇴 후 셰도르프는 친정 AC밀란을 비롯해 선전 루비,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카메룬 국가대표팀 감독직 등을 거쳤지만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카메룬 국가대표팀에서 경질된 이후에는 감독직을 맡고 있지 않다.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 A매치 79경기 출전 40골

ⓒ Sky Sports Football 방송화면 캡쳐

네덜란드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인 패트릭 클루이베르트는 수리남 출신의 아버지와 퀴라소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아약스 유스 아카데미를 거친 클루이베르트는 1994년 아약스 성인 팀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0cm에 육박하는 큰 키의 소유자임에도 클루이베르트는 수준급의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왼발, 오른발을 가리지 않는 슈팅 능력과 탁월한 골 결정력은 클루이베르트의 최고 장점이었다. 클루이베르트는 현역 시절 AC밀란, 바르셀로나, 아약스 등 당대 최고의 팀들을 거쳤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총 79경기에 출전해 40골을 기록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어머니의 나라 퀴라소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기도 했으며 현재는 바르셀로나 아카데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 A매치 23경기 출전 9골

ⓒ Sky Sports Football 방송화면 캡쳐

또 한 명의 전설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는 지난 1972년 수리남 수도 파라마리보에서 태어났다. 이후 하셀바잉크는 여섯 살이던 1978년 어머니, 형제들과 함께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하지만 네덜란드 이민 직후 하셀바잉크는 갱단에 몸담았고 절도죄로 3개월 동안 소년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렇듯 어두운 과거가 있는 하셀바잉크였지만 실력만큼은 일품이었다.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스페인 등에서 기량을 갈고닦은 하셀바잉크는 2000년 첼시에 입성했고 2000-2001시즌 리그 35경기에 나서 23골을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이후 미들즈브러, 찰턴, 카디프 시티 등을 거쳤고 2008년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감독 데뷔 후에는 주로 하부리그 팀들을 맡았다. 벨기에 로열 앤트워프를 맡으며 감독 생활을 시작한 하셀바잉크는 이후 버튼 알비온, 퀸즈 파크 레인저스, 노샘프턴 타운 등을 이끌었다. 2018년 4월 노샘프턴 타운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후에는 감독직을 맡고 있지 않다.

이렇듯 네덜란드 축구의 영광 뒤에는 수많은 수리남 계통 선수들의 공헌이 있었다. 20세기 후반 오렌지 군단의 주축이었던 에드가 다비즈,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루드 굴리트, 클라렌스 셰도로프부터 현 시점 세계 최고 수비수로 평가받는 반 다이크까지. 경기도 안양시 인구(56만 7,040명)보다 조금 많은 58만 6,630명의 인구를 보유한 작은 국가 수리남에서 이렇게 세계를 뒤흔든 선수들이 나왔다는 사실은 흥미롭고도 놀랍다.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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