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정승현 “돌아온 이유? 가난했던 날 키워준 구단에 대한 의리”

[스포츠니어스|태국 치앙마이=조성룡 기자] 정승현이 울산현대에 다시 돌아왔다.

울산을 떠났던 정승현이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과거 울산현대고 출신으로 K리그에 입성했던 정승현은 J리그 사간도스와 가시마 앤틀러스를 거쳐 울산에 돌아왔다. 울산 팬들의 입장에서는 ‘울산의 아들’이 다시 온 셈이다. 지난 시즌 아깝게 우승을 놓친 울산은 정승현의 영입을 비롯해 여러 포지션에서 전력을 보강하며 다시 한 번 우승컵을 노리고 있다.

지금 울산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우승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스포츠니어스>는 고향으로 돌아온 정승현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정승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울산에 대한 이야기부터 일본 생활과 클럽월드컵까지. 인터뷰는 점점 수다로 바뀌었고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지금부터 정승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전지훈련은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아, 좋다. 한국 사람들과 한국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게다가 친한 선후배들도 많다. 전지훈련은 굉장히 즐겁게 소화하고 있다.

울산에 돌아오면서 남긴 글이 인상적이었다.
아 그거 봤나. 사실 블로그는 일본에 있으면서 시작했다. 여가 시간이 많은데 훈련 끝나고 집에 오면 생각이 많았다. 그걸 일기 형식으로 한 번 남겨보려고 시작했다. 내 기록을 하려고 혼자 쓴 거다. 사실 블로그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 띄일 수 밖에 없는 건데 남들이 보니 부끄럽긴 하더라.

블로그 내용부터 소개해달라.
내가 어렸을 때 집안이 어려워서 힘들게 축구를 했다. 중학교 때까지도 쉽지 않았다.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했고 여러가지가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울산에서 스카우트되어 울산현대고에 들어갔다. 울산에서 불러준 덕분에 좋은 환경에서 축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돈도 내지 않고 일반 축구팀보다 좋은 곳에서 축구를 할 수 있었다. 그 때 울산에 와서 정말 행복하고 좋았다.

울산에 와서 프로 선수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 내가 축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부모님이 돈을 내기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돈 걱정 없이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나에게는 울산이라는 팀이 정말 고마운 구단이다. 그래서 울산에 돌아오면서 생각났던 내용을 블로그에 적었다.

정말 집이 많이 가난했는가.
사실 그거는 감안해야 한다. 사람들은 다 자기 자신이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하하. 나도 내 나름대로는 나의 어린 시절이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져본 적 없었다. 당시 아버지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어머니가 밤새도록 공장에 나가 일도 하고 많이 고생 하시면서 나와 누나를 먹여 살리려고 엄청 노력하셨다.

어릴 때는 좋은 차와 좋은 집이 정말 부러웠다. 그게 제일 부러웠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는 애들을 동경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외제차 같이 엄청 좋은 차를 부러워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좀 괜찮은 차를 봐도 부러울 정도였다. 등교할 때 부모님들이 차로 태워다주는 경우가 있지 않는가. 나의 아버지도 가끔 그렇게 데려다줬다. 하지만 초라한 형편이 부끄러워 주로 걸어다니고 버스 타고 다녔다.

이 가정 형편은 내게 엄청나게 큰 동기부여였다. 어릴 때 워낙 가난하니 ‘내가 축구로 성공 안하면 굶어 죽는다’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릴 적 다른 친구들이 쉴 때 나는 더 연습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큰 동기부여였다.

지금은 좀 짭짤하게 벌지 않는가.
에이, 그 정도는 아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짭짤한 수준은 아니다. 하하. 물론 내 나이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짭짤하게 벌지만 축구선수 입장에서는 많이 벌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내가 어마어마한 돈을 주는 중국이나 중동을 간 것도 아니지 않나. J리그에 간 것도 연봉도 연봉이지만 내가 경기에 많이 뛸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집과 차는 살 정도 아닌가.
음… 사실 프로에 처음 와서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어릴 때 한이 맺혀서 그랬다. 만약 5천만원짜리 차가 있다고 치자. 그럼 내가 전 재산이 6천만원이어도 무조건 그 차를 사겠다는 다짐이었다. 차에 대한 욕심도 많고 어릴 때 부러워하던 게 있으니 좋은 차를 사겠다는 욕심이 컸다. 그런데 일단 일본에 있다보니 한국에서 차를 살 일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차량을 구입해야 했다. 그래서 차를 보는데 내 생각이 바뀌어 있더라. 차라리 그 돈을 더 잘 모아서 미래를 위해 준비하자는 생각이 들더라. 게다가 나를 지켜보는 팬들도 있는데 너무 과한 것을 사면 썩 좋은 일도 아닐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바뀌더라. 물론 지금도 좋은 차를 보면 멋있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걸 내 소유로 만드는 것보다 우리 가족이 같이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돈을 쓰는 것이 더 즐겁더라. 생각해보면 차는 어쨌든 소모품이다.

가족을 위해 많이 쓰는가.
그래도 내가 열심히 돈을 벌면서 가족들이 많이 행복해진 것 같다. 부모님도 누나도 좋아하신다. 누나는 나보다 일곱 살 더 많다. 아이 둘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내게 조카가 둘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원래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 못하는 편이다. 아이들과 놀면 10분 밖에 버티지 못하겠더라. 내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재능이 없는 건지 너무 힘들다. 대신 만나면 이것저것 많이 사준다.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지갑으로 놀아주는 삼촌이 최고다.
아… 솔직히 나도 내 조카들이 부럽다. 나도 나 같은 삼촌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거 같다. 물론 조카들이 사고 싶은 것을 다 사주지는 않는다. 버릇 나빠진다고 하더라. 게다가 일본에 있을 때는 한국에 잘 오지 않으니 가끔씩 만나서 사줬다. 내 마음은 더 사주고 싶은데 어릴 때부터 아껴쓰는 버릇을 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꼭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준다. 내가 사주지만 걔네들이 진짜 부럽다.

외화 벌어 조카에게 쓰는 삼촌이라니 멋있다. 일본 생활은 많이 힘들지 않았는가? 조카들이 삼촌이 어떻게 힘들게 돈 버는지 알 필요가 있다.
내가 사간도스에서 1년 가량 있었고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1년 6개월을 생활했다. 솔직히 극과 극 체험이었다. 물론 두 군데 모두 배울 점도 많았고 선수로 성장도 많이 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사간도스에서는 정말 힘들었고 가시마에서는 정말 즐거운 일들이 많았다.

사간도스에서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나?
처음 갔을 때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나는 해외 생활, 그리고 일본 생활에 대한 환상이 어느 정도 있었다. 일단 나는 사간도스에서 ‘용병’ 아닌가. 그만큼 대우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편히 쉴 만한 집도 주고 이동에 불편함 없이 차도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야 축구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또 일본이라는 나라가 깨끗하고 예의 바르다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 사간도스에 갔을 때 내게 배정된 집을 갔다. 밖에서 집을 보고 1차적으로 충격 받았다. 집이 우리나라 1980년대에 볼 법한 멘션인 것이다. ‘더럽다’라는 생각보다 좀 무서웠다. 그리고 집 내부도 엄청나게 허름했다. 게다가 엄청 큰 바퀴벌레도 여기저기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2차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난 솔직히 서프라이즈 신고식인 줄 알았다. 장난치는 건줄 알았다. 근데 여기가 진짜 내가 살 곳이더라.

ⓒ 사간도스 제공

내가 별 일 없으면 어느 곳에서도 잘 적응하고 산다. 어릴 때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열악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익숙했다. 불평 불만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긴 심각했다. 진짜 이건 아닌 것 같아서 함께 집을 보러 간 에이전트 형에게 말했다. “형, 나 여기서는 살기 힘들 것 같아.”

사간도스는 참 아쉬움이 많은 팀이다. 사실 사간도스는 윤정환 감독님이 계실 때만 해도 가난한 팀이었다. 하지만 유벤투스 스폰서도 했던 게임 회사가 스폰을 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자금을 확보했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뛰었던 일본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연봉도 제법 많이 줬다. 하지만 연봉을 많이 줬을 뿐 구단의 환경에 대한 투자는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사간도스는 한국인을 용병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콜롬비아 선수는 또 엄청 잘해주더라. 예전부터 김민우, 김민혁 형들처럼 한국인들이 어릴 때부터 뛰어서 그런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 형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버틴 것이다. 대단한 형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나름 용병의 자격으로 온 건데 기본적인 대우는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나중에 내 돈 내고 다른 집을 구해서 살았다. 그런데 힘든 일은 이 뿐이 아니었다.

뭔가 더 힘든 에피소드가 있는가?
사간도스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했다. 통역도 없었다. 먹을 것도 알아서 먹고 전기세도 편의점에 가서 매 달 내야했다. 특히 전기세는 꼬박꼬박 알아서 내는 것이 중요했다. 안내면 전기가 끊긴다. 그러다가 사건이 한 번 터졌다.

2017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 참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18년 초 월드컵 대표팀의 터키 전지훈련까지 참가했을 때다. 그 기간이 약 한 달 반 정도 됐다. 계속해서 타지 생활을 했으니 전기세를 내지 못한 것이다. 매달 직접 가서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당연히 전기는 끊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전기가 끊긴 걸 예상했으니 별 문제 없어 보이는데?
근데 하필이면 그 때 후쿠오카 지방에 이상기후로 기록적인 폭설이 온 것이다. 부산보다 덥다는 그 후쿠오카에.

아…?
집에 갔는데 일단 집 앞에 세워둔 내 차가 반 이상 눈에 묻혔다. 보자마자 ‘와 큰일났다’라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 손으로 눈을 열심히 치우고 시동을 걸어서 일단 차를 점검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더라. 그리고 집에 자려고 들어갔는데 당연히 전기는 끊겨 있었다. 심지어 물도 안나오더라.

눈이 엄청나게 내렸는데 전기와 수도가 끊긴 집에서 버텨야 했다. 심지어 일본의 집은 대부분 이중창이 없다. 하나만 있다. 그래도 별 수 있나. 자야지. 당장 낸다고 전기가 돌아오지는 않으니까 ‘일단 오늘만 버텨보자’라는 심정으로 옷을 패딩 포함 서너 겹 껴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한 번 더 당황했다. 원래 푹신해야 할 침대가 얼어버렸다. 손으로 두들기니 이건 무슨 문짝도 아니고 ‘똑똑’ 소리가 나더라.

옷을 아무리 껴입어도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고 침대는 얼어있으니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라는 일종의 ‘현자타임’이 오더라. 결국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면 얼어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김)민혁이 형 집에 가서 잤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그 형이 없으면 나는 큰일날 뻔 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가시마에서도 한 번 더 했다.

가시마에서 또 무슨 경험을 했는가.
거긴 돈 안내서 전기가 끊기지는 않았다. 대신 자연재해가 왔다.

축구 인생이 무슨 재난영화인가.
먼저 가시마는 정말 살기 좋았다. ‘용병’ 대우를 제대로 해줬다. 내가 살 집을 복수의 리스트로 만들어 고르라고 하더라. 정말 감사한 마음에 “어디든 살아도 상관 없다”라고 했는데 굳이 고르라고 해 고를 정도였다. 여기에 집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챙겨줬다. 심지어 쓰레기 봉투 하나까지도 신경 써주더라. 정말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 가시마 앤틀러스 제공

하지만 사람이라는 존재가 참 간사하다. 일단 가시마 그 동네가 지진이 많았다. 그래도 지진은 견딜 만 했다. 문제는 태풍이었다. 지난 여름에 태풍이 어마어마한 게 하나 왔다. 내가 살던 곳을 정통으로 지나갔다. 태풍으로 인해 마을이 죄다 정전이 됐다. 집은 깜깜하고 태풍이라 창문은 다 닫아놓은 상태에서 정전이라 선풍기나 에어컨도 켤 수 없으니 땀은 뻘뻘 나고 정말 죽겠더라.

게다가 일본에서는 내가 식당에서 주로 밥을 사 먹었다. 그런데 태풍이라고 식당들도 문을 다 닫았다. 배가 고파서 참을 수가 없더라. 결국 집 밖을 나와 편의점에 갔다. 편의점에 도착하자 나는 무슨 영화를 실제로 보는 줄 알았다. 재난영화처럼 편의점에 있는 모든 것들이 싹 다 털린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태풍 경험이 있으니까 오기 전에 미리 편의점에서 ‘싹쓸이’한 것이다.

결국 여기저기 헤매다가 자체 발전기를 돌려 영업하고 있는 카페를 하나 찾았다. 거기서 커피와 빵을 먹었다. 정말 살려고 먹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뭐든 먹어야 한다’를 그 때 처음 배웠다. 그리고 한 달 뒤에 또 초대형 태풍이 왔다. 그 때는 일본이 다 잠길 정도였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이 있으니 또 당하지 않았다. 창문에 테이프도 붙이고 사흘 전에 편의점들을 돌면서 비상식량도 나흘치 가량 비축했다. 혹시 몰라 라면도 사놓고 버너도 구비해뒀다. 그 당시 일본 집들도 많이 피해를 봤는데 가시마는 막판에 비껴가서 다행히 별 일 없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인가.
그런 건 아니다. 나는 해외에서도 굉장히 적응을 잘한다. 해외 체질이라고 할 정도다. 일본에서도 정말 즐거운 일도 많았다. 선수로 성장도 많이 했고 좋은 경험도 많이 했다. 나는 여전히 잘 갔다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말도 안되는 자연재해를 겪을 때는 ‘역시 한국이 제일 살기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 하하.

클럽월드컵도 나갔으면서 너무 힘들었던 얘기만 하는 것 아닌가?
아, 물론 클럽월드컵에 나간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시마에서 뛰었던 모든 경기가 하나하나 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시마라는 팀은 정말 훌륭한 팀이었다. 나는 외국인 선수의 자격으로 팀에 있었지만 만일 내가 일본인이라면 가시마에서 평생 뛰고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여러가지 좋은 면들이 많았다.

일단 모든 사람들의 생각부터 정말 좋다. 감독님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그리고 일하는 구단 프런트까지 모두가 가족 같다. 좋은 사람들 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 해서 행복했다.

무엇보다 훈련에 처음 갔을 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가시마는 훈련에 굉장히 진지하게 임한다. 경쟁 체제가 잘 되어있다. 예를 들어 내가 월드컵까지 갔다온 국가대표고 다른 경쟁자가 나이도 매우 어리고 경험이 없어도 경쟁자가 컨디션이 더 좋으면 그 선수가 선발로 나간다. 이렇게 경쟁 체제가 잘 구축되어 있으니 매 훈련마다 진지하게 한다. 훈련 중에 이 보이며 웃는 선수도 없고 장난 치는 선수도 없다.

가시마는 일본에서 제일 잘한다는 선수들이 모인다. 그런데 그 선수들이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고 목숨 걸고 경기에 뛴다. 잘하는 선수들이 그렇게 뛰니 일본에서 가시마를 이길 수 있는 팀이 거의 없다. 게다가 이 선수들은 이력에 대한 욕심이 대단하다. 다들 여기서 열심히 뛰고 유럽에 진출하겠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가시마에서 유럽으로 보낸 선수들이 제법 있다.

ⓒ 가시마 앤틀러스 제공

심지어 훈련장에서는 험한 이야기도 나온다. 훈련에서 정신 차리지 못하는 선수가 있으면 가서 질타도 하고 욕도 한다. “이래서는 우리 우승 못한다”라고 얘기한다. 팀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는 상황에서 그런 마인드로 가득한 사람들과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하니 선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성장할 수 밖에 없다. 실력도 좋아질 수 밖에 없고 항상 좋은 성적을 낸다. 나도 성장하고 많이 배웠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점은 K리그 팀들이 배울 만한 점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부럽기도 했다.

클럽월드컵도 가시마는 그리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시마는 워낙 경기가 많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 세계 축구팀 중에 경기 수가 가장 많은 팀 중 하나일 것 같다. 컵대회가 두 개고 AFC챔피언스리그(ACL)에 J리그까지 있다. 그런데 항상 성적이 좋으니까 모든 대회마다 결승 부근까지 간다. 매 경기 정신이 없다. 경기가 너무 많으니까 그냥 매 경기가 똑같은 경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ACL도 클럽월드컵도 그렇게 임했다.

나 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그런 마인드로 임한다. 이게 가시마의 자부심인 것 같다. 항상 가시마는 대륙 대회와 세계 대회에 많이 나가봤다. 그런 환경에서 살다보니 특별히 한 경기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똑같은 경기라고 생각한 셈이다. 2018 클럽월드컵에서도 멕시코 치바스 과달라하라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저 팀 굉장히 잘한다”라고 들었다. 그런데 나와 팀 동료들은 ‘그냥 하던 경기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들어가서 이겼다.

아, 근데 레알 마드리드와 할 때는 또 특별하게 하더라. 그건 예외다. 하하.

역시 세계 최강 레알 마드리드인가?
가시마가 2년 전(2016년) 클럽월드컵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2-4로 패배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런 것 같다. 경기 전에 “이번에는 레알을 잡아보자”라는 거다. 솔직히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물론 가시마가 매 경기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승리를 추구하는 분위기는 알고 있었다. 근데 레알 마드리드를 잡아보자고? 조금 황당했다.

그래서 함께 뛰던 (권)순태 형에게 “형, 레알 잡자는 건 너무 말이 안되지 않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순태 형도 껄껄 웃더니 “미친 X들”이라면서도 “그냥 즐겨~”라고 하더라. 근데 다들 레알 마드리드를 한 번 이겨보자는 생각으로 들어가더라. 그리고 1-3으로 졌다. 거기서 더 황당했던 것은 감독의 반응이었다. 솔직히 레알 마드리드에 지는 것이 못한 건 아니다. 그런데 감독이 졌다고 “그거 밖에 못하는가”라면서 막 화를 냈다. 여기서 또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축구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붙어본 레알 마드리드는 어떤가?
와, 나는 순태 형 말처럼 즐기려고 들어갔다. 그런데 얘네는 진짜 다르다. 진짜 잘한다. 그냥 할 말이 없이 정말 잘한다. 내 입장에서 예를 들어 공격수가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공을 잡았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럼 이 공격수의 행동에는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근데 레알 마드리드 공격수들은 내가 제일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대로 축구를 한다. 아니 그 시나리오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 가시마 앤틀러스 제공

특히 카림 벤제마가 그랬다. 벤제마가 패스를 받으러 나가면 내가 따라갈 때가 있다. 그럼 너무 쉽게 다른 쪽으로 패스를 준다. 한 번은 또 받으러 나가길래 이번에도 패스를 줄 것 같아 따라가지 않았다. 그런데 벤제마는 뒤에도 눈이 달렸나? 내가 없는 걸 알고 바로 돌아서서 드리블을 하더라.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본능대로 하게 하는데 그게 또 잘 안먹힌다. 그 때 ‘이 선수들은 정말 잘하는구나’라고 느꼈다. 정말 좋은 추억이었다.

기념품으로 유니폼이라도 바꿨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히 바꿨다. 경기가 끝나고 나의 타겟은 세르히오 라모스였다. 내가 라모스를 축구선수 중에 제일 좋아한다. 경기가 끝나고 라모스가 우리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 하면서 “수고했다”라고 하더라. 내게 와서도 악수를 하기에 용기 내서 “체인지 유니폼(유니폼 바꾸자)”이라고 했다. 그러니 “오케이”라면서 선수단 출입구 안에서 바꾸자고 하더라. 신나서 먼저 가 있었고 라모스가 그 뒤를 따라오고 있더라.

그런데 갑자기 관계자 한 명이 내게 오더니 “도핑테스트 대상자다. 도핑테스트 하러 들어가야 한다”라는 것이다. 아니 저기 라모스가 오고 있는데 도핑하러 가자는 거다. 그래서 내가 “유니폼만 좀 바꾸고 들어가겠다”라고 하니 관계자는 또 “안된다. 빨리 가야한다”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레알 마드리드 관계자에게 내 유니폼을 벗어주면서 안되는 영어로 “라모스와 유니폼 바꾸기로 했다. 바꿔달라”고 한 다음 도핑테스트실에 들어갔다.

가뜩이나 땀을 많이 흘렸는데 마음도 급하니 도핑테스트가 제대로 될 리 있나. 한 3~40분 동안 고생했다. 그 때 마침 함께 도핑테스트를 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골키퍼 티보 쿠르투아였다. 도핑테스트 하면서 쿠르투아와 간단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정말 착한 선수다. 쿠르투아가 사진을 찍자고 해서 같이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헤어질 줄 알았는데 갑자기 쿠르투아가 자기 유니폼을 벗어서 내게 주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사실 두 가지 측면에서 깜짝 놀랐다. 나는 솔직히 쿠르투아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유니폼을 줬다. 게다가 나는 이미 라모스와 바꾸기 위해 내 유니폼을 벗어주고 온 상황이었다. 맨 몸이었는데 선뜻 유니폼을 주는 것이다. 정말 고마웠다. 그 후 우리 팀 통역이 “레알 선수와 유니폼 바꾸기로 했던 사람?”이라면서 유니폼을 하나 들고 들어오더라. 그래서 냉큼 손 들고 나갔다. 그런데 라모스가 아니라 라파엘 바란 유니폼을 갖고 왔더라. 아쉬웠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 실착 유니폼이 두 장이나 있는 건가.
아니다. 쿠르투아 유니폼은 더 갖고 싶어하는 우리 팀 통역에게 줬다. 나는 바란의 유니폼만 가지고 있다. (옆에서 듣던 울산 구단 관계자는 짧게 탄식했다.)

사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만 있는 건 아니다. 좋은 선수들과 유니폼을 많이 바꿨다. 월드컵에서도 그랬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역시 독일전이다.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독일을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기 전 친한 (김)신욱이 형에게 농담처럼 그랬다. “형, 나 오늘 비기기만 하면 유니폼 바꿀 겁니다. 마츠 훔멜스랑 바꿀 겁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2-0으로 이겨버렸다. 비긴 게 아니라 이겼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경기 끝나고 유니폼을 바꾸러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갔다. 근데 이게 쉽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독일 선수들이 초상집에다가 표정은 썩어 들어가고 속된 말로 빡쳐있었다. 그래도 바꾸고 싶어서 처음에 훔멜스를 찾았다. 그런데 그 선수가 없더라. 알고보니 훔멜스와 토마스 뮐러, 메수트 외질은 너무 화가 나서 그냥 라커룸으로 들어가버린 거다. 그래서 훔멜스와 유니폼 교환은 실패했다.

그러다가 니클라스 쥘레를 만났다. 일단 “유니폼 바꿀래?”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알겠다고 하면서 “저기 안에서 바꾸자”라고 하더라. 생각해보니 유럽 선수들은 왜 그렇게 실내에서 유니폼을 바꾸자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 때는 안에 들어가면 못바꿀 것 같았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다른 선수를 둘러봤다. 토니 크로스가 있었다. 가서 유니폼을 바꾸자고 하니까 굉장히 화가 나 있더라. 또 실패했다. 마리오 고메즈가 있었는데 좋아하는 선수는 아니라 그냥 지나쳤다.

고메즈를 거르다니, 결국 유니폼은 바꿨는가?
그렇게 얘기하고 응원 와주신 팬들께 인사하고 들어가는데 바꾸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너무 강했다. 그런데 그 때 내 눈에 독일의 장비 담당이 들어왔다. 그 사람에게 유니폼을 벗어주면서 “아까 쥘레가 바꾸자고 했다. 쥘레에게 내 유니폼을 갖다주고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자 내 유니폼을 갖고 독일 라커룸으로 들어가더라. 그러고 한참 기다리는데 나오지를 않는 거다.

솔직히 그 때 민망했다. 웃통 벗고 한복판에 나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결국 ‘유니폼 하나 버렸다’라는 아쉬움을 삼키고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그 후 대표팀 장비 담당하시는 분이 “독일 선수랑 유니폼 바꾼 사람?”이라면서 유니폼 한 장을 들고 오는 거다. 그 때도 손 들고 가서 받아왔다. 그런데 쥘레가 아니라 티모 베르너 유니폼을 갖고 왔다. 입어봤는데 엄청 작더라. 그래서 집에 잘 모셔두고 있다.

무슨 한 편의 대서사시를 들은 느낌이다. 유니폼과 자연재해 가지고.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하하.

어쨌든 당신은 수많은 일들을 거쳐 울산으로 돌아왔다. 민감한 질문일 수 있다. 병역 문제 때문에 들어온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물론 나도 병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병역 이행을 위해 울산에 돌아온 것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지금 당장 K리그로 복귀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해외에서 더 생활하다 올 수 있었다. 솔직히 해외에서 조금 더 경험을 쌓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고 결국 친정팀 울산으로 다시 왔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가장 큰 동기부여는 대표팀이었다. 내가 최근 대표팀에서 많이 멀어졌다. 해외에 있을 때보다 K리그에서 활약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면 내게 더 주목할 수 있고 대표팀 승선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더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대표팀 승선 기회의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좀 더 일찍 돌아오게 됐다.

ⓒ 울산현대 제공

개인적으로 항상 여러가지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울산에 있다가 사간도스에 갔고 가시마에서도 생활했다. 그리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나는 울산에서 또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북현대라는 강한 경쟁팀이 있지만 우승을 노리는 울산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싶은 생각이 많다. 또 울산에서 ACL에 나갈 수 있으니 ACL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 궁극적으로 나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사실 당신이 K리그 복귀를 타진할 때 울산이 아닌 다른 팀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어릴 때부터 여러가지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팀에 대한 유혹도 분명히 있었다. 실제로 K리그의 빅클럽 두 군데와 이적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나의 선택은 친정팀 울산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울산으로 돌아온 이유는 팬들 때문이다. 내가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나를 응원해준 팬들이 울산에 있다. 그들이 실제로 만났을 때도 SNS 메시지를 통해서도 “다시 꼭 돌아오라”고 해줬다. 나를 응원하는 걸개를 만들어준 것도 그 팬들이다. 수원삼성이나 서울, 전북처럼 많은 팬들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서포터스가 관심 가져주고 응원해준 것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나는 울산이란 구단 덕분에 지금까지 여기에 있을 수 있었다. 울산은 어릴 때 나를 키워준 구단이다. 내가 처음 프로에 왔을 때에 비해 많은 선수들도 바뀌었고 변화도 있었지만 울산 구단이 나를 성장시켜준 팀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이 팀을 위해 내가 다시 한 번 헌신해서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또 내가 일본에서 여러가지 좋은 것들을 많이 배워왔다. 울산 유스 출신 후배들에게 내가 배워온 것들을 전해줘 구단에 더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다. 그러면 구단에 좋은 전통이 자리 잡히게 될 것이고 더 좋은 팀으로 발전할 것이다. 사실 선수 혼자 울산에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울산이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줬고 나도 에이전트 형에게 망설임 없이 “울산 가겠다”라고 이야기했기에 올 수 있었다.

그 정도 애정이라면 작년 충격의 K리그 최종전도 봤을 것 같다.
봤다. 사실 일본에 있을 때 여가시간이 많다. 그래서 K리그를 항상 챙겨봤다. 물론 J리그 경기 일정과 겹치지 않게 봤다. 내 경기가 토요일에 있으면 일요일 K리그 경기를 보는 식이다. 나는 오히려 J리그를 안봤다. 하하. 그런데 일본에서는 K리그 경기 중계를 보기가 쉽지 않다. 지인이 좋은 화질로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알려줘서 항상 챙겨서 봤다.

나는 주로 울산과 전북의 경기를 챙겨봤다. 일단 축구가 재미있고 우승 경쟁을 하는 두 팀이니 흥미롭게 봤다. 울산이 승승장구 하는 모습을 보면서 ‘와 진짜 우승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도 정말 좋고 성적도 잘 나오니 무조건 울산이 우승하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포항스틸러스전도 당연히 잘 넘기고 우승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충격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실제로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던 선수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다시 돌아가서 울산과 함께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승할 것이다. 울산이 이제 한 번 우승할 때는 됐다고 생각한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지금은 그 때의 기억은 다 잊었다. 아마 기존 선수들은 트라우마도 있을텐데 다 잊고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그것이 프로 선수의 역할이다. 실수하고 우승 못했다고 아직까지 그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옛날 생각은 안하고 우승이라는 목표를 두고 다시 열심히 할 것이다. 이것이 프로 선수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딱히 내가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할 것도 없다. 그저 열심히 할 뿐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울산 선수단에 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당신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잘 모르겠다. 일단 내가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나는 내가 팀을 바꿀 만한 선수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내 몫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 뿐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김보경과 믹스같이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던 선수들이 떠났다. 사실 속으로는 정말 많이 아쉬웠다. 어쨌든 그들은 K리그에서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니까.

그래도 지금 있는 선수들도 훌륭한 선수들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우승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섣불리 우승할 것이라고 단언하지는 않겠다. 예측이라는 것이 정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 없이 열심히 매 경기에 임하면 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선수는 그저 열심히 해야 하는 것 밖에 없다. 나는 열심히 막고 있으면 최전방에 외국인 공격수들이 알아서 골 잘 넣어주고 이기지 않을까. 하하.

우승에 대한 욕심이 상당히 많다.
일본에 있으면서 든 생각이다. 사실 울산에 있을 때는 몰랐다. 밖에 나가보니 울산이 더 큰 구단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과거 울산은 K리그의 명가였다. 하지만 최근에 우승을 하지 못했다. ACL이든 리그든 우승을 해야 명문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울산은 그러지 못해 너무나도 아쉽다. 우승컵이 없기 때문에 아직 전북을 능가한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울산 유스 팀 주장을 맡기도 했기 때문에 구단에 대한 책임감을 좀 가지고 있다. 울산이 더 좋은 구단으로 발전하려면 우승컵이 있어야 한다. 젊은 선수들부터 우승을 노리는 마인드를 갖고 전통을 만들어 간다면 어린 선수들도 우승 도전을 당연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울산은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좋은 구단이다. 하지만 한 단계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우승을 해야한다.

결국 프로는 우승을 위해 뛰는 사람들이다. 우승컵만 하나 있다면 전북을 비롯해 충분히 아시아의 다른 구단들과 경쟁할 수 있다. 우승을 해야 더 좋은 선수들이 팀에 매력을 느끼고 오려고 하고 구단과 모기업에서도 더 많은 지원을 할 것이다. 결국 울산이 우승을 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다. 어떻게 하면 울산이 우승할지 상당히 고민이다.

결국 올해 정승현의 목표도 우승일 것 같다.
맞다. 내 목표는 K리그와 ACL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이다. 과거 ACL에서 우승했을 때가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뻤다. 그 뿐만 아니라 나의 가치와 몸값, 연봉이 다 올랐다. 사람들이 보는 시선도 그랬고 구단에서 내린 평가도 그랬다. 그래서 우승이라는 것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울산에 우승컵을 안기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왔다.

우승은 결국 나와 팀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승을 해야한다. 그렇다고 거창한 것을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팀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나는 특히 수비수니 조용히 묵묵하게 나의 일을 해야하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우리 외국인 선수들을 믿겠다. 앞에서 골 넣어주면 나는 뒤에서 최선을 다해 막겠다. 하하.

<스포츠니어스>와 만난 정승현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무엇보다 핵심은 “울산에 우승을 선사하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는 의리를 지키기 위해 울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팀이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고싶어 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승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정승현은 간절한 마음으로 울산에 왔기에 다시 한 번 우승에 도전하는 울산에 날개를 달아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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