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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태국 치앙마이=조성룡 기자] 부산아이파크 조덕제 감독은 꽤 당황한 모습이었다.

22일 태국 치앙마이에 위치한 부산의 전지훈련 숙소. 이날도 고된 일정을 마친 부산 선수들이 숙소에 돌아왔다. 부산은 훈련을 하는 운동장과 숙소가 서로 다른 곳이다. 버스를 타고 약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왕복한다. 조덕제 감독은 K리그1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 빡빡한 전지훈련 일정을 구성해놓았다.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

그런 선수들에게 가장 달콤한 시간은 아무래도 식사 시간이다. 대부분의 전지훈련장이 그렇듯 부산 역시 시내에서 상당히 먼 곳에 전지훈련장을 잡았다. 숙소 내에서 모든 여가 생활과 휴식을 해결해야 하는 셈이다. 사실 전지훈련장에서 '놀 거리'는 별로 없다. 게다가 육체적으로 힘드니 무엇을 할 여유도 없다. 그런 와중에 한 줄기 빛이 되는 것은 바로 밥이다.

부산 선수단의 식당에서는 식사 시간마다 항상 노래가 흘러나온다. 선곡은 다양하다. 발라드가 나올 때도 있고 신나는 음악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런데 이날은 유독 이상했다. 식당의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오자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1984년 발표된 나훈아의 '청춘을 돌려다오'부터 '남행열차', '항구의 남자' 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취향이 오래되도 너무 오래됐다. 그 와중에 라이브 영상도 있었던 모양이다. 노래 속 가수는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다같이!"를 외치며 '떼창'을 유도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다가 하나 둘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2~30대 젊은 남성으로 가득한 부산 선수단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노래가 등장하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박종우와 이정협은 흥얼거리며 그 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식사 시간의 BGM을 선곡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선수단의 화제는 '누가 DJ 역할을 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충격적인 선곡, 알고보니 주인공은?

아무래도 젊은 선수들이 이런 노래를 선곡했을 것이라는 예상은 할 수 없었다. 결국 선수들은 코칭스태프 중에서 범인(?)을 지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선수단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조덕제 감독은 유력한 용의자(?)였다. 특히 신인 선수들은 벌써부터 조 감독을 보고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 감독은 당황하듯 해명했다. "아냐, 나 아냐. 내가 나이가 많아도 이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조 감독은 옛날 노래를 듣더니 추억에 젖은 모양이었다. 코칭스태프 사이에서 난상 토론이 벌어졌다.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자 조 감독은 주무를 불러 질문을 던졌다. "심수봉이 노래를 더 잘 부르는 것 같아 이미자가 노래를 더 잘 부르는 것 같아?" 주무는 어리둥절하며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조 감독은 아쉽다는 듯 "이미자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목소리인데 말이야…"라며 말 끝을 흐렸다. 아마도 이미자 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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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또한 주인공을 찾아나섰다. 알고보니 선곡의 주인공은 이기형 코치였다. 권용현은 슬쩍 제보했다. "식사 시간 선곡은 주로 이기형 코치가 한다. 요즘 선수들 취향과 전혀 다른 곡이 자주 나와서 젊은 선수들이 문화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사실 아무도 이 코치님에게 말은 못하고 있다." 박종우 또한 이기형 코치에 한 표를 던졌다. "조 감독님의 취향에 맞게 이기형 코치님이 선곡하는 것으로 안다."

조덕제 감독이 송가인 '스밍' 돌린다고?

알고보니 힌트는 방송 프로그램에 있었다. 이 코치가 선곡한 노래들은 대부분 TV조선에서 인기리에 방영됐거나 방영 중인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에 등장했던 곡이다. 그리고 조 감독은 해당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 그래서 해당 프로그램을 봤던 박종우와 이정협이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었다. 문제는 해당 노래들 중에서 원곡 또는 과거 다른 트로트 가수가 불렀던 리메이크 버전이 있었던 것이었다.

조 감독은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미스트롯'에서 송가인이 우승하는 것까지 다 챙겨본 사람이다. '미스터트롯'도 태국에 오기 전까지 보다가 왔다. '미스터트롯'에서는 홍잠언을 비롯해 어린 친구들이 노래를 정말 잘 부르더라. 이제 3회와 4회를 봐야 하는데 태국에 있어서 아직 못봤다. 방송 다시보기가 뜨면 챙겨볼 예정이다."

ⓒ KBS 제공

최근 '미스트롯'에서 우승한 송가인의 경우 중년 시청자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미스트롯'을 끝까지 다 챙겨본 조 감독도 송가인의 팬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다. 조 감독이 송가인의 노래를 열심히 '스밍' 돌리고 있는 모습 자체는 신선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정도 팬은 아니었다. 슬쩍 묻자 그는 웃더니 "아니다"라면서 "팬심으로 보는 것은 아니고 도전자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껴 열심히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부산의 식사 시간에 매일 트로트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제법 다양한 장르의 노래가 나온다. 이날도 구성진 트로트의 향연 속에 '쇼미더머니5'의 보이비가 리메이크한 '호랑나비'가 아주 잠깐 등장하기도 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이기형 코치의 선곡 덕분에 부산의 식사 시간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이 모두 웃음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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