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치열한 프로무대에서 생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일이다. 많은 선수들이 호기롭게 K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지만 차디찬 쓴맛을 맛보고 좌절한다. 이렇듯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고 때로는 잔인하다. 1998년생의 젊은 골키퍼 손무빈은 20살의 어린 나이에 국내 최고 클럽인 FC서울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주전 경쟁은 녹록지 않았다. 결국 손무빈은 지난 시즌을 앞두고 인천유나이티드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인천에서의 새 도전이었지만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손무빈은 시즌 종료 후 인천과 작별하며 또 한 번의 쓴맛을 맛봤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시련들로 좌절에 빠져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손무빈은 조용하고 치열하게 또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스포츠니어스>는 12일 서울 모처에서 손무빈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반갑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인천에서 나온 후 강릉시청에 입단하게 됐다. 인천 김이섭 골키퍼 코치님이 강릉에 계신 송유걸 코치님과 선수 생활을 같이하셨다. 그래서 송유걸 코치님께 나를 추천해주셨다. 다른 팀을 갈지 아니면 축구를 관두고 다른 일을 할지 고민을 하던 상황이었다. 부상을 당할 때마다 충격이 너무 컸다. 동계훈련을 마치고 시즌 초에 꼭 부상을 입었다. 그래서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이섭 코치님이 "강릉에서 널 보고 싶어한다. 한 번 강릉으로 가봐라"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프로팀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김이섭 코치님의 조언도 있고 해서 '강릉에서 뛰는게 맞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무엇보다 강릉에서 나를 원했다. 팀에 합류한지 3~4주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휴식기에도 많이 쉬진 못했다. 훈련 강도가 높지만 경기를 뛰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열심히 하고 있다.

컨디션은 좀 어떤가

강릉에 와서 몇 경기를 했는데 실수도 없었고 생각보다 좋은 경기력이 나왔다. 감독님, 코치님이 좋게 봐주셔서 날 영입했다는 건 내가 못하지는 않았다는 뜻 아니겠나. 내 스스로도 경기력이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운동은 상당히 힘들지만 재밌게 훈련을 하고 있다.

인천에서 나오게 되어 아쉬운 점이 있을듯하다

당연히 아쉬운 것은 있다. 김이섭 코치님도 날 되게 좋게 봐주셨다. 그래서 기존 골키퍼진에 나까지 총 네 명으로 골키퍼 구성을 가져가고자 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중간에 부상이 있었어서 결국 팀을 나오게 되었다. 그래도 김이섭 선생님이 날 잘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상이 있었나

내가 서울에서 2군 선수였다. 그런데 어느 날 1군에서 날 필요로 해서 1군 훈련에 참여하게 됐다. 서울 훈련장인 GS챔피언스파크는 잔디에 물을 많이 뿌린다. 그렇게 1군 훈련에 참여해 경기를 하게 됐다. 그런데 필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일대일 상황에서 미끄러졌고 팔꿈치에 부상을 입게 됐다. 인대가 끊어졌다. 그래서 수술을 했다.

인천으로 팀을 옮기고 나서도 같은 부위가 다쳤다. 이번에도 일대일 상황이었다. 가까운 위치에서 공을 상당히 쎄게 맞았는데 서울에서 다친 그 부위였다. 재활 훈련을 처음 부상 당했을 때보다 더 많이 했다. 지금은 다 회복됐다. 공교롭게도 재작년 부상을 당하고 MRI를 찍었던 날짜와 작년에 부상을 당하고 MRI를 찍었던 날짜가 똑같았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4월에서 5월쯤이었다.

두 번째 부상을 당하고 나선 순간적으로 '심한 부상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 들어갔는데 눈물이 엄청나게 나왔다. 재작년에 그 부위를 다쳐봤기에 겁도 났고 무엇보다 엄청 아팠다. 아니나 다를까 검사를 받으니 병원에서 재활 기간만 네 달에서 여섯 달을 이야기했다. 시즌이 반이 날라가는 상황이었다. 부상 상태를 보고하려고 팀 사무실에 가는데 눈물이 났다. 임중용 코치님, 박용호 코치님이 "선생님들이 기다려주겠다"며 위로해주셨다. 김이섭 코치님도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해주셨다. 이런 말씀들이 위안이 됐다.

그래도 너무 속상하긴 했다. 문학경기장에서 집까지 10분 정도 거리를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그런데 너무 속상해서 계속 울면서 길거리를 걸었다. 몸 상태도 괜찮았고 코치님들도 "무빈이 컨디션 많이 올라왔네?"라고 말씀해주시는 상황이었다. 한 달 동안은 팔을 고정시켜야 했다. 재활을 비롯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많이 울었다.

힘겨운 시간이었을 것 같다 

그래도 재활을 시작하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내 성격이 원래 밝고 긍정적이다. 부상을 입었을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코치 선생님들이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고 병원에서 의사선생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며 마음이 조금씩 괜찮아졌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라운드 밖에서 보여주는 밝은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서울에서 뛸 때 내 이름을 유니폼에 마킹해주신 분들이 계셨다. 유니폼 가격도 비싼데 가장 뒤에 있는 골키퍼이자 막내인 내 이름을 마킹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그분들께 편지를 쓰고 내 골키퍼 장갑을 드렸다. 그런 결정을 하는게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팬들께서도 편지와 장갑을 받고 굉장히 좋아해 주셨다. 마음 같아선 경기장에서 실력으로 보여드리고 싶은데 출전 기회를 잡는다는 것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나. 그래서 팬들에게 선물을 드렸는데 좋아해주셔서 정말 기뻤다.

경기장에서 내 이름을 마킹해주신 팬들을 만나면 커피 한잔을 사드리고 이야기도 나누고 했다. 팬들께서도 축구선수와 이야기하시는 걸 좋아하시더라. 또 신기해하셨다. 팬들과 함께하는 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팬들과 같이 경기를 본적도 있다.

인간적인 면에서 부끄러운 점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팬들과 가까이 지내며 팬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본다. 또 내 이야기를 팬들께 한다. 그렇게 하며 일반인들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서도 배우게 된다. 팬들을 보며 '그래도 난 내가 어려서부터 원했던 직업을 가졌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매순간 한다.

평소에 선행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 장애인 복지관에 찾아간 적이 있다. 그곳에 계신 많은 분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했다. 비장애인들과 다른게 없는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우리와 똑같은 분들이다. 사실 시즌 중에는 바빠서 봉사활동을 하지 못한다. 시즌이 끝나고 나서 한다. 시즌이 끝나면 솔직히 말해 아무것도 안할 때가 많다. 휴가를 한 달 정도 받는데 그 시간에 맨날 집에 누워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뭘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길을 가다가 안타까운 분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런 분들이 있으면 가서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항상 휴식기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번 겨울에도 팬들과 밥을 같이 먹기도 했다. 쉬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겨울에는 강릉에 바로 입단하게 되어 봉사활동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힘든 분들을 돕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따로 내게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진 않으셨다. 딱히 계기는 없었다. 힘든 상황에 처한 분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다. 서울에 입단하고 나서부터는 기부를 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세 개 정도 후원 업체에 후원을 하고 있다. 또 급식소 같은 경우는 신청만 하면 가서 급식을 배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있더라.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와 같이 살아서 어르신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졌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고 힘들게 살아가시니까 젊은 사람들이 가서 이야기도 하고 하면 어르신들이 상당히 좋아하신다. 우리 할머니는 나와 같이 살아서 좋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의 어르신들도 있다. 나도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정말 대단하다

부끄러운 점이 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유상철 감독이라는 사실 역시 인상적이다

인천에 있는 동안 내가 부상 상태였던 시간이 많아서 감독님을 많이 뵙진 못했다. 감독님 취임식 때 처음 뵀고 이후엔 재활을 하느라 많이 뵙지 못했다. 그래도 가끔 뵙게 되면 감독님이 "열심히 하고 있어?" "잘하고 있지?"라고 물어봐 주셨다.

감독님과는 오래 전에 짧은 인연이 있다. 내가 대전 산하 중학교인 유성중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볼보이를 하러 대전 홈경기에 자주 갔다. 그런데 그때 대전 감독님이 유상철 감독님이셨다. 나중에 부모님이 유상철 감독님과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셨다. 잊고 살았었는데 사진을 보는 순간 감독님이 그때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감독님께 "저도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었는데 감독님이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하면 잘할 수 있어"라고 말씀해주셨다. 유명 스타 출신 선수들은 아이들이 사진, 사인 요청을 하면 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감독님은 되게 친절하셨다.

당시에 감독님이 정말 체격도 좋으셨고 머리숱도 풍성해서 멋있으셨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멋있으시지만 힘이 조금 빠지신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 마음이 정말 아픈 순간들이 있었다. 올 시즌이 끝나고 감독님께 카톡으로 어린 시절 감독님과 있었던 일화들을 말씀드렸다. 감독님과 같은 팀에 있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카톡 프로필 사진을 감독님으로 해놨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바른 마음씨다. 하지만 이제 강릉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프로에 들어온 20살 때부터 언제나 욕심이 있었다. 경기에 나가 뛰고 싶다는 욕심을 가졌다. 그런데 급한 마음에 절실하게 하다가 부상을 입었다. '아 왜 난 계속 다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목표는 다치지 않는 것이다. 코치님도 "다치지만 않으면 널 경기에 기용해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나도 그 말씀을 믿고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강릉에 가며 인천을 떠나게 됐다. 원래 인천과 계약은 1년 단기 계약이었다. 사실 난 인천에서 자란 선수가 아니고 서울에서 온 선수다. 그런데 내가 지나갈 때 팬들이 알아봐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했다. 내가 그렇게 유명한 선수도 아니고 경기에 나서는 선수도 아닌데 부상을 입었을 때 격려도 해주시고 해서 인천 팬들께 너무 감사했다.

경기장에 가면 1만명에 가까운 인천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주셨다. 또 훈련장에도 찾아와 선수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팬들도 많이 계셨다. 그런 팬들의 열정들을 보며 '정말 괜찮은 팀이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선수들한테도 "인천 팬들 정말 대단하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응원을 해주신 인천 팬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인천 팬들이 모두 다들 건강하시고 새해엔 좋은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다. 비록 나는 강릉에서 뛰게 됐지만 올해엔 인천이 강등권이 아니라 더 높은 위치에서 팬들을 즐겁게 해줬으면 좋겠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많은 시련들로 좌절할 법도 했지만 손무빈은 담담하고 겸손하게 새 도전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께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의지 또한 드러냈다. 이제 손무빈은 강릉시청에서 또 한 번의 도전에 나선다.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의 진가가 이제는 빛을 발할 수 있길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henry412@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