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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을 하루 앞뒀던 1999년 12월 31일. 많은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새 시대의 시작을 기다렸다. 분명 그때의 기억은 아직 생생히 남아있다. 그리고 20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 2020년이 시작된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지난 20년간 많은 것이 변했다.

축구계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난지 벌써 18년이 다 되어가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것 역시 8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10년간 K리그는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한때 '재미없다' '박진감 없다' '그들만의 리그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K리그지만 이제 K리그에 대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만큼 K리그는 조금씩 성장을 거듭해왔다.

2010년대가 딱 하루를 남겨 놓고 있다. 지난 10년간 K리그에도 여러 일들이 있었다. 전북이 막대한 투자를 통해 1강팀으로 거듭났고 포항의 2013시즌 극적인 리그 우승, 서울의 2016년 리그 뒤집기 우승 역시 많은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K리그2 창설, 승강제 도입 등 새로운 변화들도 있었다.

이렇게 또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 지난 10년간 많은 선수들이 K리그를 누비며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했다. <스포츠니어스>는 지난 10년의 K리그를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2010년대 K리그를 누볐던 베스트 11의 선수를 선정해봤다.

GK: 조현우(대구FC: 20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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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는 지난 2013년 대구FC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시즌 리그 14경기, 이듬해 리그 15경기에 나선 조현우는 2015시즌 41경기에 출전하며 대구의 주전 수문장으로 거듭났다. 이후 조현우는 최고의 활약으로 2015, 2016 두 시즌 연속 K리그2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대구의 승격과 함께 K리그1에 등장한 조현우는 한층 더 무서워졌다. 승격 첫 해인 2017년 리그 35경기 출전 48실점의 기록으로 K리그1 베스트 11에 선정된 조현우는 2018년에는 FIFA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 승선해 월드컵 본선 세 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스웨덴, 멕시코, 독일을 상대로 믿기지 않는 선방쇼를 펼친 조현우는 이후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조현우의 가장 큰 장점은 실수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순발력과 반사 신경은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단점으로 언급됐던 킥 능력 역시 점차 개선되고 있다. 2015년 이래 K리그 최고의 골키퍼 자리(2015,2016 K리그2 베스트11, 2017,2018,2019 K리그1 베스트11)를 놓치지 않고 있는 조현우. 그는 명실상부 2010년대 K리그 최고의 골키퍼다.

LB: 홍철(성남일화: 2010~2013, 수원삼성: 2013 ~ , 상주상무:201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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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은 지난 10년간 K리그에서 가장 꾸준한 활약을 펼친 왼쪽 풀백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던 홍철은 데뷔 시즌인 2010시즌 리그 22경기에 출전하며 프로 무대에 안착했다. 이후 2013년 수원삼성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홍철은 현재까지 수원의 주전 왼쪽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다.

홍철의 최대 장점은 '꾸준함'이다. 홍철은 2010년 데뷔 이래 부상으로 반년간 결장했던 2016년을 제외하면 매 해 리그 20경기 이상씩을 소화했다. 날카로운 왼발 킥, 시의적절한 오버래핑 등은 홍철의 대표적인 트레이드마크다. 지난 10년간 K리그에서 홍철보다 꾸준한 활약을 선보인 왼쪽 풀백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B: 아디(FC서울: 2006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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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피지컬, 지치지 않는 체력, 멀티 포지션 능력과 리더십까지. K리그 역사상 이보다 나은 수비수가 있었을까. 바로 FC서울 전설 아디 이야기다. 지난 2006년 서울에 입단한 아디는 이후 2013년까지 서울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서울의 리그 우승 2회(2010, 2012), 리그컵 우승 2회(2006, 2010) 등을 함께했다.

2006년 서울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아디는 한국 나이 31세의 노장이었다. 하지만 아디는 많은 나이에도 꾸준한 활약으로 서울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서울에서의 8시즌 동안 아디는 2009년(28경기 출전)을 제외하고 매해 리그 30경기 이상씩에 출전하며 서울 수비진을 이끌었다. 경기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아디는 경기장 밖에서도 모범적인 모습으로 팀의 본보기가 됐다. 이렇듯 FC서울과 K리그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아디의 이름을 빼놓을 순 없다.

CB: 김광석(포항 스틸러스: 2003 ~ , 광주상무: 200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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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이 경기장에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 아니다. 울산과 올 시즌 최종전에서 승리한 후 김광석 본인이 내뱉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에 반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983년생인 김광석은 올해 한국 나이로 37세의 노장이지만 여전한 기량으로 포항 수비진을 이끌고 있다.

센터백으로선 상대적으로 작은 183cm의 신장이지만 김광석은 강력한 제공권 능력과 대인마크로 포항 수비진을 책임진다.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빌드업 능력은 덤이다. 올 시즌에도 김광석은 부상 복귀 후 포항 수비진을 이끌며 포항의 극적인 파이널A 합류에 기여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각고의 노력으로 포항의 레전드가 된 김광석. 그는 명실상부 2010년대 K리그 최고의 수비수다.

RB: 최철순(전북현대: 2006 ~ , 상주상무: 20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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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순은 전북의 역사를 함께한 선수다. 2006년 최철순이 전북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전북은 그리 주목받는 팀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기업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은 전북은 이후 아시아 최고의 클럽으로 발돋움했다. 클럽의 전진과 함께 최철순의 기량 역시 만개했다. 최철순은 특유의 성실함, 투지, 열정을 바탕으로 전북의 살아있는 레전드가 되었다.

최철순이 대단한 것은 전북이 최고의 팀이 된 이후에도 주전 자리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전북은 많은 돈을 투자해 리그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했지만 최철순의 자리만은 요지부동이었다. 2017년 이용이 영입된 후에도 최철순은 특유의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출전 기회를 잡아나갔다. 비록 올 시즌은 18경기 출전에 그치며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최철순이 전북의 레전드임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MF: 레오나르도(전북현대: 2012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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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역시 전북의 지난 10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선수다. 2012년 전북 유니폼을 입은 레오나르도는 이후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킥, 탁월한 개인 능력을 바탕으로 K리그를 휘저었다. K리그에서뿐만이 아니었다. 레오나르도는 한 수 위의 플레이로 전북의 아시아 정복에 앞장섰다.

특히 2016시즌의 활약이 대단했다. 2016년 레오나르도는 AFC 챔피언스리그(ACL) 14경기에 나서 10골 3도움을 기록하며 전북의 통산 두 번째 ACL 우승에 기여했다. 전북에서의 5시즌 동안 리그 우승 2회, ACL 우승 1회에 앞장선 레오나르도는 명실상부 2010년대 K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MF: 몰리나(성남일화: 2009~2011 FC서울: 201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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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는 한때 '데몰리션 콤비'라는 말이 있었다. FC서울의 외국인 듀오 몰리나와 데얀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2009년부터 성남일화에서 두 시즌간 활약한 몰리나는 2011년 서울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서울 생활 초반에는 문제가 있었다. 몰리나는 당시 서울이 아시아쿼터로 영입한 제파로프와 경기 중 동선이 겹치는 문제를 겪으며 잠시 주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서울이 제파로프를 처분하는 방향으로 교통정리를 했고 이때부터 몰리나의 활약이 시작됐다.

몰리나의 최대 장점은 역시 정확한 킥이었다. 몰리나의 왼발은 알고도 막을 수 없는,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무기였다. 상대적으로 느린 스피드가 약점으로 꼽혔지만 차원이 한 수 위의 개인기와 예리한 킥은 몰리나만이 보유한 무기였다. K리그에서의 7시즌 동안 몰리나가 남긴 기록은 209경기 출전 68골 69도움. 지난 10년 K리그를 이야기할 때 몰리나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MF: 염기훈(전북현대: 2006~2007 울산현대: 2007~2009 수원삼성: 20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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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원 팬들 사이에선 "빅버드에 염기훈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염기훈은 수원 팬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수원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과거보다 현격히 줄어든 투자로 힘겨운 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수원이 계속해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데는 염기훈의 존재가 크다. 지난 10년간 염기훈은 날카로운 왼발로 위기에 처한 수원을 여러 차례 구했다.

지난 2010년 수원에 합류한 염기훈은 이후 수원의 세 차례(2010, 2016, 2019)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리그에서의 활약 역시 대단했다. 2010년부터 염기훈은 수원 유니폼을 입고 리그 259경기에 나서 45골 83도움을 기록 중이다. 올 시즌에도 염기훈은 37세의 많은 나이에도 리그 26경기에 나서 6골 3도움을 기록하며 제 역할을 다했다. 지난 10년간 수원은 다사다난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수원이 계속해서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데는 염기훈의 공이 컸다.

MF: 이재성(전북현대: 2014~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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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초 전북현대가 이재성 영입을 결정했을 때 이재성에게 관심을 갖는 팬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팬들은 호리호리한 체격의 이재성이 거친 K리그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이 같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데뷔 시즌이었던 2014년 이재성은 리그 26경기에 출전해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이후에도 이재성의 활약은 계속됐다. 2015시즌 K리그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한 이재성은 2016시즌과 2017시즌 K리그1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며 주가를 높였다. 2017시즌에는 K리그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북 시절 이재성의 활약은 위치를 가리지 않았다. 2선 미드필더, 측면 윙어, 중앙 미드필더까지. 이재성은 모든 위치에서 전북 공격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 수비적인 측면에서의 공헌 역시 컸다. 이재성은 많은 활동량, 영리한 위치 선정으로 전북 수비의 1차 저지선 역할을 했다. '닥공'을 추구하는 전북이 공수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이재성의 보이지 않는 헌신이 컸다. 더불어 2010년대 중후반 전북 왕조의 흐름이 이어질 수 있었던데 역시 이재성의 공헌이 컸다.

FW: 이동국(포항스틸러스: 1998.07~2007.01 광주상무: 2002~2004 성남일화: 2008.07~2009.01 전북현대: 2009.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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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수식어가 더 필요할까. 'K리그의 살아있는 전설' '라이언킹' '기록의 사나이' 등등 이동국에게 붙는 수식어들은 너무나도 많다. 이동국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선수다. 미들스브러에서 실패 후 성남에서의 부진까지.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동국의 축구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성남 유니폼을 벗었을 당시 이동국의 나이가 31세였으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이동국의 축구 인생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최강희 감독의 구애로 전북 유니폼을 입은 이동국은 전북에서의 첫 시즌(2009년) 리그 32경기에 나서 22득점을 기록하며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이후 이동국은 2018시즌까지 10년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K리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비록 올 시즌엔 리그 33경기에서 9골 2도움을 기록하며 11년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에 실패했지만 이동국의 지난 10년은 그 자체가 위대한 역사이자 기록이었다.

FW: 데얀(인천유나이티드: 2007~2008.01 FC서울: 2008.01~2014.01, 2016~2017 수원삼성: 2018~2019 대구FC: 2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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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선수다. 바로 몬테네그로 출신의 데얀이다. 데얀의 지난 10년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데얀은 지난 10년간 3년 연속 K리그 득점왕(2011~2013)과 4년 연속 K리그 베스트11(2010~2013)에 오르며 K리그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다. FC서울 시절 데얀과 몰리나의 '데몰리션 콤비'는 상대 팀들이 알고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무기였다.

수원 유니폼을 입고서도 데얀의 활약은 이어졌다. 데얀은 수원에서의 첫 시즌이었던 지난 2018년 공식 경기 50경기에 출전해 27골 6도움을 기록하며 제 역할을 다했다. 올 시즌에는 리그 21경기에서 3골 1도움을 추가하며 K리그 통산 기록을 357경기 189골 45도움으로 늘렸다. 내년 한국 나이로 40세가 되는 데얀이지만 그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누구보다 화려한 지난 10년을 뒤로하고 데얀은 이제 대구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감독: 최강희(전북현대: 2005~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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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전북은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진 클럽이 아니었다. 당시 전북은 기업구단임에도 애매한 선수단을 보유하고 그저 그런 성적을 기록하는 중하위권 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9년 리그 첫 우승을 시작으로 전북은 K리그를 대표하는 팀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엔 단연 최강희 감독의 역할이 컸다.

최강희 감독은 전북과 지난 10년간 다섯 번(2011,2014,2015,2017,2018)의 리그 우승을 함께했다. 리그에서의 성적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최강희 감독은 지난 2016년에는 전북의 통산 두 번째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성적뿐만이 아니었다. 최강희 감독은 '닥공'이라는 전북만의 트레이드마크를 만들며 K리그 흥행에 앞장섰다. 지난 10년 수많은 사령탑들이 K리그를 거쳐갔지만 최강희 감독을 최고의 감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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