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인과 군인의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상주 김태완 감독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매서운 겨울 칼바람이 춥지만 그래도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내는 팀이 있다.

올 시즌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둔 팀은 제법 있다. 우승한 전북현대도 AFC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FC서울도 안정적으로 생존한 성남FC도 웃었다. 그리고 또 한 팀이 있다. 바로 상주상무다. 상주는 군 팀이라는 불리함 또는 특수성을 안고도 일찌감치 K리그1 생존을 확정 지었다. 올 시즌 상주의 K리그1 최종 성적은 16승 7무 15패 승점 55점, 7위다.

2016시즌 K리그1 재승격 이후 상주는 계속해서 1부리그에 머무르고 있다. 벌써 4년 째다. 매년 선수단의 절반이 바뀌고 동기부여도 쉽게 부여하기 어려운 팀이지만 끈끈한 모습으로 생존에 성공하고 있다. 비결이 무엇일까. <스포츠니어스>는 경상북도 문경의 국군체육부대로 찾아가 김태완 감독을 만났다. 오랜만에 찾아간 부대는 역시나도 추웠다.

춥다.
여기가 경북 문경이지만 그래도 춥다. 산도 많고 땅도 넓다. 국군체육부대 면적만 약 45만 평 정도 될 거다. 그래도 바람이 안불면 비교적 따뜻하다.

그 정도나 되는가. 일단 시설은 좋은 것 같다.
예전에 성남에 있을 때보다 훨씬 좋다. 당시 성남 부대는 훈련할 수 있는 시설이 좋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훈련을 인조잔디 구장에서 했다. 게다가 그 곳은 축구장이 아니라 하키장이었다. 처음에는 주변 예초 작업도 우리가 다 했다. 선수들이 직접 스타디움 주변 둑방의 잔디를 낫으로 깎고 그랬다. 그러다가 나중에 용역을 줘서 일반인들이 작업을 했다. 여기는 훨씬 좋다.

군대 많이 좋아졌다.
그런 이야기 하면 안된다. “우리 때는~”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면 ‘꼰대’가 되는 거다. 나도 내가 상무에서 복무하던 시절 이야기 못한다. 그런 말 하면 안된다. 선수들과 대화를 할 수 없다. 세대 차이가 난다고 느끼면 서로 마음을 닫는다.

그래도 지금 국군체육부대는 선수들이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많이 변했다. 그래도 군대는 군대다. 힘든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갇혀있다는 느낌이 힘들게 만들 것 같다. 아까 다른 곳에서 인터뷰하던 (박)용지는 앞이 보이니까 표정이 좋은 것이다. 다른 선수들은 안보이니 힘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 상주의 성적은 좋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했던 것 같다. 이룰 것 다 이뤘고 목표한 것 이상으로 잘했다. 현실적으로 2019 시즌 상주상무의 목표는 K리그1 생존이었다. 물론 윤빛가람이나 김민우 등 주축 선수들이 중심을 잡아주고 잘해준 것도 있다. 하지만 많은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K리그2 출신 선수들도 많았고 경기에 많이 뛰지 못한 선수들도 많았다. 염려를 많이 했지만 동계훈련을 통해 집중적으로 준비했던 부분이 K리그1 초반 3연승으로 힘을 받은 것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은 많다. 그 중 하나가 군 복무 기간 단축이다. 내가 상무에서 뛸 때는 26개월이었는데 점차적으로 18개월까지 단축된다. 선수들이 여기서 경력 단절 기간을 짧게 겪는 것은 다행이지만 팀을 이끄는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많다. 매년 새로 판을 다시 짜야한다. 이게 힘들다. 선수들 인식부터 바꾸고 했던 것을 또 해야하고 반복해서 준비해야 한다. 적응하면 나가야할 것 같더라.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제 곧 있으면 신병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온다. 사실 많은 선수들을 잘 모른다. 문선민, 권경원, 박용우, 문창진 정도 안다. 그 외에는 K리그2 선수도 있고 유망주도 있다. 물론 내가 아는 선수들이 상주에 와서 잘 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들도 팀에 들어오고 잘 녹아든 다음 내가 조직적으로 선수들을 잘 준비시켜야 한다. 훌륭한 자원이 온다고 만족하는 일은 없다.

‘짬’에서 나온 바이브가 느껴진다. 상무 생활만 20년 정도 하지 않았는가.
계속해서 축구인의 길을 걸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최용수 FC서울 감독과 함께 선수생활을 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 삐끗했다.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를 갔다. 물론 홍익대도 좋은 학교지만 축구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당시에는 더 좋은 대학교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 더 좋은 곳에 가지 못해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홍익대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좋은 감독님을 만나 대학 때 축구를 정말 많이 배웠다. 그리고 프로에 입성하려고 드래프트를 지원했다. 여기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연습생 신분이라도 프로 팀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감독님이 “한일은행을 가라”고 했다. 그 때가 1994년이었다. 실업리그에 금융단 축구단이 그 때는 꽤 있었다. 물론 얼마 안가 많이 사라졌다.

한일은행에 가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 사실 실업 팀이라는 것이 은행 업무와 축구를 함께 해야한다. 은행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결론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더라. 축구에 대한 마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일은행에 입단하고 나서 1년 만에 상무에 지원했다. 그리고 다행히 합격하면서 그 때 처음으로 상무와 인연을 맺었다.

요즘은 상무에 입단하려면 경력이 화려해야 하지 않는가.
그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실 나도 상무에 지원하면서 합격을 확신하지 못했다. 내가 프로 선수들에 비해 축구 경력이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1년에 4~5명 정도 밖에 뽑지 않았다. 더 바늘구멍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 운이 좋았다. 내가 상무에 들어갈 때 제 1회 세계 군인체육대회가 생겼다. 그리고 하필이면 축구 아시아 예선에서 북한을 만났다.

그 때만 해도 북한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대였다. 그런데 1년에 4~5명 뽑아서는 북한을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상무에 지원했을 때 무려 11명을 선발했다. 지원자가 12명이었다. 딱 한 명 빼고 다 붙었다. 다행히 나도 합격자 명단에 있었다. 당시 상무 멤버가 진짜 좋았다. 최진철, 박태하, 서정원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내가 선수로 뛸 때 상무의 분위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하필이면 북한과 예선에서 만나기 때문이었다. 벽에다가 ‘이길 수 있다 북한’과 같은 글귀를 붙여놓고 특식도 따로 해줬다. 다른 종목 선수들이 ‘짬밥’ 먹고 있을 때 우리는 고기 먹고 회 먹고 그랬다. 이유는 단 하나다. 무조건 북한을 이기라는 것이었다. 당시 “북한 이기면 군 생활 끝이고 지면 남한산성(과거 국군교도소를 칭하는 은어) 간다”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였다. 선수들의 머릿속에 ‘북한을 이겨야 한다’라는 것을 강하게 주입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재미있는 사실은 그러고 북한을 만나지 못했다. 북한이 출전을 포기했다. 이유는 잘 모른다. 우리 홈에서 하기도 그렇고 원정에서 할 수도 없어서 제 3국에서 예선전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장소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결정됐다. 북한이 비용이 없던 것인지 우리가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모은다는 정보를 입수했는지 출전을 안했다. 그래서 그냥 맛있는 거 많이 먹었다.

제 1회 세계 군인체육대회 본선에 출전한 것인가.
그렇다. 이탈리아에서 열렸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데 군인들에게나 각 국 정부들에는 이 대회가 꽤 중요하다. 그래서 일반인 ‘용병’도 데려다 쓰고 그랬다. 조별예선에서 이란을 만났는데 지금도 전설이라 불리는 알리 다에이가 거기 있더라. 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유럽 팀들도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데려오더라. 유럽 팀 중 일부는 대회 도중에 유로96 예선 일정 때문에 출전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 때를 회상해보면 사실상 순수한 군인으로 팀을 구성한 나라는 미국 정도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우습게 봤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그래도 우리 대표팀이 나가서 꽤 잘 싸웠다. 4강전에서 접전을 벌였고 승부차기까지 가서 패배했다. 그리고 3·4위전에서 승리해 3위를 차지했다. 사실 하나 고백하자면… 아, 이건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괜찮다. 솔직하게 말해달라.
4강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선수가 나다.

해외 파병까지 갔다오고 군 생활 다이나믹하게 했다.
좋은 선배들이 많으니 많이 보고 많이 배웠다. 문제는 전역할 때였다. 내가 한일은행 정직원 자리를 확보하고 군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새로운 팀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군 입대 전에 경력이 화려한 것도 아닌 내가 어떻게 팀을 쉽게 찾겠나. 그 때부터 머리가 본격적으로 많이 빠지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 씩 빠지더라.

차마 그건 물어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런데 또 내게 천금같은 기회가 생겼다. 상무에서 열심히 하니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래서 내 주가가 조금 올랐던 것 같다. 여기에 대전시티즌이 창단을 한 것이다. 나는 우선지명으로 대전에 입단하면서 프로에 입성했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내가 상무에서 전역했을 때가 3월이었다. 리그가 막 시작했을 때 팀에 합류한 것이다. 게다가 대전에는 어린 선수들이 즐비했다. 동계훈련도 함께 하지 못했으니 6개월 정도는 경기에 뛰지도 못하고 몸만 풀었다.

ⓒ 대전시티즌 공식 페이스북

그러다가 조금씩 자리를 잡으면서 경기에도 본격적으로 출전했다. 좋은 추억도 있다. 김기복 감독님 이후 이태호 감독님이 오셨고 대전이 FA컵에서 우승했다. 당시 내가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FA컵 결승전이 12월 말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후 구단에서 나를 부르더니 “선수는 그만하고 유소년 지도자를 할 생각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당시 나는 에이전트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됐다” 그러고 팀을 나왔다.

문제는 그렇게 나오니 할 게 없었다. 2001년 말이었으니 당시 내 나이가 31세였다. 에이전트가 없으니 해외 이적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없었다. 동남아 지역 팀과 어느 정도 이야기는 해봤다. 하지만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2002년부터 상무가 광주에 연고지를 정하고 K리그에 참가한 것이다.

광주상무는 당시 프로 리그에 출전하기 위해 선수 정원을 25명에서 44명으로 늘렸다. 그래서 필요한 코치 수도 덩달아 늘었다. 딱 내가 팀을 나오자 그런 상황이 된 것이다. 이강조 감독님이 “코치 해볼 생각 없는가”라고 전화를 주시더라. 그래서 ‘상무에서 내가 받은 것이 많으니 1~2년 정도 봉사하다가 내 갈 길을 찾자’라고 생각해 광주상무로 향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결국 군무원이 되면서 ‘말뚝’ 박은 것 아닌가.
군무원도 정원이라는 것이 있다. 축구단에는 군무원 TO가 한 명이었다. 2010년에 군무원 신분이던 이강조 감독님이 정년 퇴임을 하면서 자리가 생겼다. 이 자리를 故이수철 감독님이 내게 제의 해주셨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그 보직을 내가 이어 받았다.

군무원은 그렇게 특수한 직책이 아니다. 군 공무원이다. 내 특기는 지도자고 국군체육부대에 있는 축구선수 병사들을 관리하고 지도하는 보직을 맡고 있다.

이 참에 취업으로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군무원에 대해 홍보해달라.
제일 좋은 것은 음… 아침 일찍 일어나 점호 받으면서 좋은 공기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별 다른 일 없으면 지정된 공휴일은 다 쉰다. 물론 나는 경기가 주말에 많으니 예외다. 뭐 다들 아는 것처럼 군무원이라는 직업은 안정적인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네가 무슨 걱정을 하겠니”라면서 날 부러워 하더라.

연금 제도도 좋다. 원래 군무원 연금을 수령하려면 20년을 근무해야 했다. 하지만 연금 제도가 개편되면서 10년 근무한 사람도 수령이 가능하다. 내가 군무원이 되고나서 올해로 9년 째다. 10년을 채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병사로 군에 있었던 것도 경력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연금 수령 자격은 된다. 큰 돈은 아니지만 65세부터 연금이 나올 것 같다.

정말 주변에서 많은 부러움을 살 만한 자리다.
또 그런 것도 아니다. 나도 알고보면 계약직이다. 군무원 신분으로 축구 감독 자리는 5년 마다 재계약을 한다. 처음 군무원이 된 이후 한 차례 연장했고 지금 4년 째 계약 기간을 채웠다. 내년이면 계약 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다시 계약을 해야한다. 국방부에 모집 공고가 올라오면 직접 국방부에 가서 서류 넣고 면접도 봐야한다. 그렇게 해서 합격이 되어야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나도 고충이 많다. 다음에 재계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하. 간당간당하다. 내가 계약 기간 동안 선수들을 잘 이끌었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부임한 기간 동안 있어서는 안될 사고도 있었다. 게다가 성적도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K리그1 7위면 잘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볼 수 없다. 국군체육부대의 다른 종목들은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한다. 그런데 7위 했다고 좋은 성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선수들을 내가 잘 이끌었어야 하는데 잘하지 못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처음에는 오히려 다른 축구인들이 부러웠다. 특히 광주상무에서 처음 코치 생활을 할 때 그랬다. 나보다 어린 친구가 고등학교 등 학원 스포츠에서 감독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급여를 받더라. 그에 비해 나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는 군무원이 아니라 외부에서 파견한 지원 코치였다. 그런데 맨날 아침 점호도 일찍 나가야 했다. 그럴 때는 다른 직장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 여전히 그 점은 아쉽다. 나는 사람들에게 축구 지도자이자 축구인이고 싶지만 군인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그래도 당신은 이동국의 군 시절을 알고 있는 상무의 역사 아닌가.
그 때가 참 좋았다. 2003년 광주상무 멤버가 훌륭했다. 김상식, 김영철, 박성배, 이동국 등이 뛰고 있었다. 아직도 이동국이 광주상무에 들어왔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 이동국은 안티 팬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확실히 큰 선수더라. 마인드가 남달랐다. 안티 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그들 마저도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자기의 팬으로 돌리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

(이)동국이가 광주상무에 와서 정말 많이 변했다. 사실 동국이는 스타 대우를 받다가 군대에 왔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공평했다. 국군체육부대에는 체력단련장이 있다. 연병장 반 만한 크기다. 엄청 크다. 이 곳에서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운동을 한다. 동국이가 여기서 많이 배웠더라.

동국이가 그 이야기를 했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죽어라 훈련 하더라”고. 그걸 보며 많이 느꼈다고 한다.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이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니까 자신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더라. 그 때부터 동국이의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었던 것 같다.

ⓒ 광주상무 제공

전역 후에도 동국이는 팀이 없어서 잠시 상무에서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 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미들스브로와 입단 얘기가 있을 때였다. 나는 동국이에게 “동국아, 거기서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한 게 아냐. 도전을 하고 시도하는 그 자체가 중요해. 그래서 진짜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물론 동국이가 내 이야기를 듣고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미들스브로를 가더라. 결과는 상관없이 정말 잘 갔다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선수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고 나중에 지도자가 되어서도 써먹을 수 있는 특별함이 될 것이다.

(조)원희도 비슷한 사례다. 원희는 원래 울산현대 연습생이었다. 1년에 22명 정도 뽑았을 때 울산에서 지원해 왔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진짜 원희는 어디에서 뛰는 애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원희는 진짜 열심히 하는 것 하나 밖에 없는 선수더라. 그래서 많이 인정했다.

원희도 전역할 때 새로운 팀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대전과 수원삼성이 조원희를 영입하려고 경쟁했다. 원희가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주전 자리를 쉽게 얻기 위해 대전에 갈 생각이라면 가지 마라. 대전 가서 네가 평생 경기에 나설 수 있을 것 같은가. 차라리 어딜 가서도 경쟁을 해야 한다면 더 힘든 경쟁을 할 수 있는 수원삼성에 가라. 거기서 자리를 잡으면 더욱 오래 선수 생활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조원희는 수원삼성에 가서 잘 풀렸다. 나는 선수들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 군에 입대해 재능을 꽃피우는 선수들이 제법 많다. 왜 그럴까?
글쎄… 아마 사회에 있을 때는 많이 놀지 않았을까? 하하. 농담이다. 내 생각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부대에서 규칙적인 생활과 훈련을 하는 것도 비결이지만 외국인 선수가 없다는 것도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상무에서 이 선수 터졌다”라고 할 때 터진 선수가 수비수인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공격수다.

공격수가 잘 터지는 것은 외국인 선수가 없기 때문에 일종의 안정감을 얻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여기서 경쟁하는 선수들은 똑같은 한국인 선수들이다. 그리고 기회도 제법 많이 얻는다. 많은 시간이 주어지니까 경기력과 자신감이 쌓이는 것이다. 또 내성적인 성격의 선수들이 군대에 오면 긍정적으로 바뀐다.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아니까 노력하면서 전우애가 생긴다. 이는 곧 경기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신의 부임 이후 ‘말년 전역’을 걱정하던 이야기도 많이 줄었다.
사실 그 전역 직전 선수들의 경기력에 대한 이야기는 부인할 수 없다. 예전에는 상무가 ‘와서 몸 관리하다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래서 전역할 때가 되면 잘 뛰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축구선수는 다치면 자신의 손해기 때문에 마냥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감독에 부임한 이후 들어오는 선수들이 좀 달라졌다. 실력 없는 선수가 들어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엄청 잘하는 선수도 아니다. 애매한 선수가 좀 많이 왔다. 프로에서 자리를 잡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물론 상주상무에서 잘한다고 전역 이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잘해야 사람들의 눈에 띄고 길도 열리는 것이다. 물론 지도자도 잘 만나고 운도 좋아야 하지만.

나는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다. 용지도 여기서 잘했지만 상주상무에서 잘한다고 전역 후 자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다른 선수들과 주전 경쟁을 할 수 있는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전역하고 나서 군 생활 했던 것처럼 생활하면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는 축구만 하기에는 놀 거리가 너무 많지 않는가. 그런 문화에 젖어들지만 않는다면 동국이처럼 롱런할 수 있을텐데 아쉽다.

이제 당신은 군 복무 18개월의 선수들을 데리고 선수단을 꾸려야 한다. 난이도가 높아 보인다.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국군체육부대장님께 매달려야 한다. 하하. 국군체육부대는 분기마다 입대 시기도 정해져 있다. 축구만 특별한 시기에 뽑아달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특별한 상황일 때는 빨리 앞당겨 써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왜 그런 상황이 필요한지 국군체육부대장님께 요청해야 한다.

사실 상주상무 선수들은 곧바로 활용하기 어렵다.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오자마자 경기할 수 없다. 게다가 경기할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욱 많이 걸린다. 그래서 선수를 빨리 선발하면 그들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도 짧아지고 부상 위험도 줄어든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많아진다. 올해 우리의 성적이 좋았던 것은 부대장님이 흔쾌히 이런 요청을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덕분에 소통이 원활해지면서 팀 성적이 올라갔다.

상무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세계 군인체육대회 우승을 못해본 것이 한이다.

또 그 얘기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면 엄청나게 큰 스포츠 제전이다. 올림픽 다음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다(인터뷰에 동석한 국군체육부대 정훈실장은 “지난 10월 중국 우한에서 열린 대회에 가봤다”라면서 “중국 측은 올림픽 수준으로 준비했다”라고 설명했다). 내가 1회 대회를 선수 자격으로 참가했고 우리나라에서 열린 2015년 6회 대회를 지도자 자격으로 참가했다.

1회 대회에서도 3위를 차지했고 6회 대회에서도 3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세계 대회를 준비하는 법을 배웠다. 어쨌든 이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K리그 스타일과 다르다. 그래서 좀 연구를 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출전했다. 선수들이 실력이 있어도 정보가 없다면 질 수 밖에 없다. 상대 스타일을 알았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대회에 나섰을 것이다. 내가 이 세계 군인체육대회에서 중동의 침대 축구를 제대로 느꼈다. 와, 진짜 장난 아니다. 말로만 침대 축구를 들었지 실제로 당하니까 ‘이렇게 말리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세계군인체육대회 조직위원회 제공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이 대회는 경쟁력도 어마어마하다. 외국에서도 1년 정도 의무 복무 제도가 있는 나라는 이 대회를 통해 병역을 면제시켜준다. 당근이 많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적용되는 메달 연금 점수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아시안게임보다 연금 점수가 더 높다. 일부는 전역을 연기하면서 이 대회에 참가하고 간다(정훈실장은 “우한 대회 때 27명이 전역 연기를 신청했고 대부분 메달을 획득했다”라고 설명했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 이 대회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축구의 경우 올해 우한 대회는 K리그 일정 때문에 아쉽게도 참가하지 못했다. 그래서 2015년 홈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이 더욱 안타깝다.

당신은 상주상무의 감독으로 있으면서 점점 많은 사랑도 받고 있다. 별명도 많이 생겼다.
별명? 뭐가 있는가. 행정보급관?

펩태완, 관물대올라…
아, 그런 이야기는 절대 어디가서 하면 안된다. 그거 진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 세계적인 감독과 내가 비교되는 것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당신이 저평가된 감독이라는 의견도 있다.
코치하다가 감독하고 이제 3년차인데 평가할 시간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성적을 통해서 정확히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어떻게 평가 받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 나름대로 우리나라 축구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은 것이다. 올 시즌 K리그가 재밌다고 많이 이야기하더라. 많이 발전한 것이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할 때는 많은 것이 주먹구구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젊은 지도자들이 많이 나타나 선진 축구를 나름대로 따라가려고 노력하면서 흉내도 낸다. 잘하고 있는 부분도 있고 더욱 발전시켜야 할 부분도 있다.

우리나라 축구의 수준이 많이 올라왔다는 것도 느낀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경기 준비가 잘된 팀과 잘되지 않은 팀은 경기를 해보면 티가 확 난다. 준비된 팀은 상대하기 정말 힘들다. 과거에는 준비되지 않은 팀도 보였다. 이런 팀은 이기기 쉬웠다. 하지만 요즘은 다들 준비를 철저히 한다. 이제는 준비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으면 경기에서 이길 수가 없다.

당신이 제시하고자 하는 축구의 방향이란 무엇인가?
나만 한다고 방향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선수들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선수들은 연령별 대로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프로 레벨에서는 배운 것을 써먹는 무대다. 백 포, 백 쓰리, 윙백을 활용하는 법 등을 어릴 때 이미 다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배우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은 선수들이 많이 있다.

기본적으로 전술의 유연성이나 상황에 맞는 움직임을 미리 배우거나 준비해서 프로에 들어와야 한다. 프로에서 배운 것을 발전시키면 탄력 받아 더욱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 최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벤투 감독의 축구가 답답하다는 의견이 많다. 내가 봤을 땐 벤투 감독이 어떤 축구를 하고 싶은지는 안다. 하지만 선수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있다.

물론 손흥민 같은 슈퍼스타가 여전히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고 이강인 같은 유망한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일단 모든 선수들이 단계적으로 잘 배우면서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어떤 특정한 능력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갖춘 상황에서 세계 흐름에 맞는 경기 운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래서 우리 코치들에게 고맙다. 코치들이 많이 애썼다. 그들이 젊은 감각으로 생각하고 준비했다. 나는 그저 큰 그림을 그릴 뿐이다. 큰 그림을 주면 그 안의 색을 채우는 것은 코치들의 몫이다. 코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외국을 보면 감독이 코치와 함께 사단으로 다닌다. 그게 이해가 되더라. 앞으로 K리그에서도 더 세부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코치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아쉬운 것 중에 하나가 전력분석관이다. 지금도 K리그에는 많은 전력분석관이 있다. 하지만 그들을 좀 더 잘 활용해야 한다. 전력분석관도 코치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경기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코치 입장에서 축구를 읽고 이해해서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에게 조언을 해야한다. 지금까지는 전력분석관을 잘 써먹지 못한다. 이런 부분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코치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이야기다. 부사관으로 임관한 유로몬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유)로몬이는 정확히 말하자면 지도부사관이다. 병사 선수들의 생활이나 행동을 돕는다. 부대에서 지켜야 하는 규율들이 있지 않는가. 이를 위해 선발한 부사관이다. 본격적으로 지도자를 하기에는 선수를 하다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유로몬이 선수로 뛸 수 있는지 궁금해 하더라. 현재 국군체육부대의 제도 상에서 유로몬은 뛸 수 없다. 본인도 뛰고 싶겠지만 행정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마 로몬이는 부대에서 선수들을 관리하고 잘 키워가면서 대리만족 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하.

마지막 질문이다. 이제 상무 축구단에서도 10년 째를 바라본다. 당신이 이곳에서 그리고 있는 비전은 무엇인가?
상무 축구단의 비전을 먼저 이야기하겠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도 어렵고 새로운 팀을 창단하기도 쉽지 않다. 광주상무가 광주FC가 창단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역할을 해내지 않았는가. 우리 상무 축구단은 그렇게 프로축구 팀 산파 역할을 하면서 전국에 많은 축구팀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잘 해내고 싶다.

그리고 상주상무의 감독 입장에서는 선수들을 더욱 성장시키고 싶다. 좋은 선수가 상주상무에 오는 것보다 약간 부족한 선수가 왔으면 좋겠다. 이 선수들이 상주상무에서 축구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고 발전해서 한국 축구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선수로 키우고 싶다.

솔직히 이 비전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는 모르겠다. 50퍼센트 정도는 달성한 것 같다. 더 많이 준비하고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축구는 결국 팬이다. 선수들이 군 생활을 하면서 팬들의 소중함을 익혔으면 한다. 항상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가서 선수들과 팬들이 다 같이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 모두가 축구를 좋아해서 어린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경기장에 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김태완 감독은 축구인과 군인의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김 감독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리그에서 상주의 역할은 굉장히 특수하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상주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군무원’ 김 감독의 노련함이 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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