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민 인천 장내 아나운서는 11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안영민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인천유나이티드가 처절한 생존 경쟁을 하고 있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유상철 감독은 끝까지 선수들과 함께 하며 감동 드라마를 쓰고 있다. 지난 24일 벌어진 상주상무와의 하나원큐 K리그1 2019 홈 경기에서는 빗속 혈투 끝에 승리하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올 시즌 K리그1 생존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가운데 인천의 행보 역시 주목받고 있다. 이제 인천은 오는 30일 경남과의 원정경기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K리그1 생존을 확정 짓는다.

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제주가 한 경기를 남겨두고 강등을 확정지은 가운데 인천은 경남 원정에서 패하면 K리그1 11위로 K리그2 플레이오프에서 살아남은 팀과 마지막 승부를 펼쳐야 한다. 내달 5일 K리그2 팀의 홈 경기장에서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을 치르고 8일 K리그1 팀의 안방에서 2차전을 치르는 일정이다. 인천이 승강 플레이오프로 갈지, 그 전에 생존을 확정 지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천 팬들이라면 누구나 승강 플레이오프로 내려가지 않고 생존하길 바란다.

다들 똑같은 마음이겠지만 누구보다도 인천의 생존이 간절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인천의 장내 아나운서 안영민(36세) 씨다. 2008년 R리그 결승전 당시 인천유나이티드 장내 아나운서 오디션을 보고 합격한 그는 이후 무려 11년 동안 인천 경기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인천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익숙한 얼굴과 목소리다. 인천의 ‘문학 시절’부터 현재까지 함께한 그는 구단의 살아있는 역사나 다름없다. 12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인천의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그라운드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안영민 씨는 최근 기쁜 소식을 전했다. 1년 반 넘게 사랑을 키워온 여자친구와 결혼을 발표했다. 그런데 최근 안영민 씨는 큰 고민이 생겼다. 결혼이라는 기쁜 일을 앞두고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결혼식과 신혼여행 일정이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과 겹치기 때문이다. 만약 인천이 승강 플레이오프로 떨어지게 된다면 모든 게 꼬여버린다. 안영민 씨는 내달 7일 결혼식을 올리고 그날 저녁 몰디브로 떠나는 신혼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은 8일에 열린다. 인천이 이 경기를 하게 된다면 가장 난처해지는 건 안영민 씨다.

안영민 씨는 신부와 함께 과연 예정된 날짜에 행복하게 신혼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안영민

안영민 씨는 올 2월 결혼식 날짜를 잡으면서 승강 플레이오프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에는 K리그 일정이 마무리 되는 시점만을 고려해 결혼식 날짜를 잡게 됐다”면서 “12월이면 결혼식을 올려도 인천 구단 경기 일정과는 겹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름부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하더라. 생각하지도 않았던 플레이오프가 결혼식 날짜와 겹친다는 걸 알았는데 인천이 계속 꼴찌에 머물러 있었다. 결혼식 날짜를 생각하니 미칠 거 같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인천은 올 시즌 감독을 교체하는 등 흔들리면서 줄곧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 인천은 10위까지 도약했다. 마지막 경남과의 경기에서 패하지만 않는다면 올 시즌 생존에 성공할 수 있다. 경남전이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되어야 안영민 씨도 수월하게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진행할 수 있다. 12년 동안 인천과 함께하며 선수단과도 가족처럼 지내는 그는 “선수들에게도 올 시즌 계속 이야기했다”면서 “제발 결혼식하고 신혼여행 좀 갈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을 많이 했다. 선수들은 물론 임중용 코치님까지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대사인 결혼식과 신혼여행의 운명은 이제 인천이 마지막 경기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영민 씨는 인천이 승강 플레이오프로 떨어지게 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 된다. 그는 “만약에 승강 플레이오프에 가게 되면 내가 신혼여행을 간다고 해도 어떻게 마음 편히 갈 수 있겠느냐”면서 “그렇다고 승강 플레이오프 장내 아나운서 일 때문에 신혼여행 일정을 연기하면 아마 평생 동안 신부에게 욕을 먹을 것이다.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네가 축구에 빠져서 신혼여행도 미뤘다’고 욕을 먹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경기에 집중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대단히 진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절대 결혼식과 신혼여행 일정이 꼬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안영민 씨는 “아직까지 신혼여행 일정을 바꾸지 않았다. 선수들을 믿고 가겠다”면서 “인천이 나를 믿어준 만큼 나도 선수들을 믿고 있다. 잘 될 거라고 확신한다”는 굳건한 믿음을 보였다. 그는 “올 시즌 가슴 아픈 소식도 있지만 외부에서도 모든 스토리가 인천의 생존에 맞춰져 있다. 선수들이 부담을 가질 법도 한데 최근 경기를 보면 너무 잘해주고 있다. 이대로만 경기력을 발휘한다면 충분할 것”이라고 선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안영민 씨는 살짝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몰라 여행사에 조심스럽게 신혼여행을 2~3일 연기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면서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위약금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랬더니 여행사에서는 다른 걱정을 하더라. 혹시 문제가 생겨 결혼식이 깨졌느냐고 묻기에 ‘그런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축구 때문에 신혼여행을 미루는 걸 미친놈처럼 볼까봐 자세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신혼여행을 연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행사에 문의한 건 그냥 아주 아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런 거였다”고 말했다. 그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이제 운명을 결정지을 한 경기가 남았다. 12년 동안 인천에 청춘을 바치며 함께한 장내 아나운서의 신혼여행은 선수들의 경기에 달렸다. “우리가 승강 플레이오프에 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굳건한 믿음을 드러낸 안영민 씨는 마지막으로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예비 신부가 지금 스노클링 전문가용 장비도 샀고 수영복도 다섯 벌이나 샀다. 가까운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거면 결혼식이 끝나고 신부 먼저 보내놓고 나는 이틀 뒤에 출발할 텐데 몰디브는 그러기에는 너무 멀다. 선수들에게 팬을 위해서도 뛰고 감독님을 위해서도 뛰지만 나를 위해서도 열심히 뛰어달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그는 과연 12월 7일 기분 좋게 몰디브로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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