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한일전 마다 나부끼는 전범기, 퇴치 위한 방법은?


우라와 전범기
우라와 팬은 제주전을 배경으로 전범기 사진을 찍어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전범기가 또 등장했다. 1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결승전 관중석에서는 또 다시 관중이 흔드는 전범기가 등장했다. 이 관중뿐 아니라 전범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이들도 곳곳에 나타났다. 전범기를 든 관중은 경호원의 제지를 받긴 했지만 자리를 옮겨 끝까지 이 깃발을 흔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일본인이 흔드는 전범기에 분노하고 그들에게 지탄을 보내고 있지만 바뀌는 건 없다.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 전범기가 등장해 논란이 됐다는 기사를 수도 없이 쓴 기억도 난다.

서양에 비친 일제 전범기는 어떤 모습일까?
왜 그럴까. 왜 바뀌는 것 없이 늘 일본인이 흔드는 전범기를 보고만 있어야 할까.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 문양은 살짝만 노출돼도 전세계에서 난리가 나는데 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는 버젓이 경기장에 휘날리고 있을까. 이는 일본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무능력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내년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도 전범기가 휘날릴 것으로 보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도쿄올림픽 전범기 논란에 대해 “문제가 발생하면 사안별로 판단할 것”이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WBSC는 “지금은 분쟁 상황이 아니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전범기는 금지하지 않은 사항으로 제한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우리는 전범기를 보며 분노하고 있지만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 일부 국가를 빼고는 이 전범기가 얼마나 극악무도한 의미를 지녔는지 잘 모른다. 아마도 이 전범기가 하켄크로이츠만큼 나쁜 거라는 걸 알면서도 허용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그저 이걸 일본을 표현하는 정도의 문양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 네덜란드 프로축구팀 PSV에인트호번은 일본 축구선수 도안 리츠 영입 소식을 전하면서 전범기를 형상화한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이 문양을 썼을까. 진짜 그들은 이 전범기 형상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모르고 썼을 것이다. PSV는 논란 이후 이 이미지를 물결 무늬로 수정했다.

이뿐 아니다.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는 지난해 10월 공식 SNS에 일본 J리그에서 뛰고 있는 스페인 선수 페르난도 토레스의 득점 장면을 소개하며 전범기를 사용한 영상을 올렸다. 이에 축구 팬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라리가는 다음날 게시물을 삭제하며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라리가 모든 구단에게도 알릴 예정”이라고 사과했다. 지난해 5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아스널의 2017~2018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준결승전에서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들이 전범기를 응원도구로 사용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해 공식 SNS에 공개한 2018 러시아월드컵 홍보 영상에서 전범기 모양의 페이스페인팅을 한 일본 응원단의 모습을 노출했다.

전범기를 형상화된 디자인은 이렇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전범기에 대해 무지하다면 우리가 알려야
미국인 모델 샬롬 캠프 뮬은 지난 8월 자신의 SNS에 전범기 옷을 입은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을 본 일부 네티즌은 “당신이 입고 있는 옷 문양은 ‘나치’와 같은 의미”라며 댓글로 지적하자 뮬은 “이건 일본의 ‘욱일승천기’다”라면서 “욱일승천기는 메이지 시대에 일본군이 처음 사용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나치의 정신적 이념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영국, 프랑스도 국기가 존재하는 동안 식민지 지배를 했는데 그럼 이 국기들도 금지해야 하냐”며 “매우 지루하고 한심한 논쟁”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 전범기가 하켄크로이츠 문양의 옷을 입은 것만큼이나 어리석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지난 7월에도 프랑스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가 전범기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행사장에 나타나 비난을 샀고 한국인 팬으로부터 SNS를 통해 전범기 의미를 전해 들은 뒤 이를 버리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는 “프랑스인들이 전범기기 무늬 뜻도 모르고 쓰는 것이 미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지금도 해외 사이트에서는 전범기 무늬의 옷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심재권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국내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국내에서도 최소 12곳 이상에서 욱일기 디자인 제품이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범기의 의미를 알면서까지도 이 문양을 받아들일 이들은 일본인 빼고는 없다. 나는 정말 이들이 무지했다고 생각한다.

무지하다면 우리가 알려야 한다. 단순히 일본 관중이 스포츠 경기에서 전범기를 흔들 때마다 항의를 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서양에서 보기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뭐 저런 거 하나 가지고 문제를 삼느냐”고 할 수도 있다. 우리도 그들에게 이 문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려야 한다. 아마도 도쿄올림픽 경기장에서는 더 많은 전범기가 휘날릴 것이다. 언제까지 주최 측에 항의만 하고 말 텐가. 그들은 절대 이런 항의에 바뀔 사람들이 아니다. 최근 일본에서 열린 럭비월드컵에서도 전범기는 보란 듯이 관중석에 등장했고 럭비월드컵 ‘Team Pack’ 티켓 디자인에도 욱일기 문양을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말로 타이르고 항의한다고 들었으면 진작에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한 모델은 전범기 티셔츠를 입고도 당당했다.

하켄크로이츠는 안 되는데 일제 전범기는 된다?
심지어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전범기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일본 외무성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오타카 마사토 보도관 이름으로 게재한 기고문을 통해 “욱일기 디자인은 일본 전통문화 속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기에 정치적 표현이 아닐 뿐만 아니라 군대 상징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 “욱일기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기존 일본어·영어 외에 추가로 한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로도 게재해 홍보하고 있다. 더군다나 스포츠 메가 이벤트에서 최대 후원국인 일본의 입김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렵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꼴도 보기 싫은 전범기가 휘날리는 올림픽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만 한다. 우리끼리 기사 쓰고 욕하는 댓글 단다고 변할 게 없다.

가장 큰 죄는 일본에 있다. 일본은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까지 동아시아 지역을 침략하고 수탈한 전쟁 현장에서 이 전범기를 휘날렸다. 일본군은 중일전쟁 당시 중국인 수천만 명을 학살하고 강간했고 조선 등 식민지 여성을 전쟁 성노예로 동원했다. 조선인을 강제 노동에 동원해 혹사 및 집단학살한 강제징용 등을 저질렀다. 전범기로 상징되던 제국주의 일본이 벌인 끔찍한 범죄 행위들이다.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아직도 이 깃발을 흔들면서, 더더군다나 이제는 일본 정부 차원에서 이 깃발을 전세계에 합리화시키고 있는 모습은 분노가 치민다. 일본 내 우경화 움직임이 가시화 되면서 전범기도 다시 당당하게 등장하고 있다.

독일은 전쟁의 죄를 반성하며 스스로 ‘반(反) 나치법’을 제정했다. 전쟁을 이끌었던 독일 나치 당의 깃발 하켄크로이츠는 물론 나치를 떠올리게 하는 제스처까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독일 형법 제 86조(反나치법)은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를 상징하는 깃발, 휘장, 제복, 표어, 경례 형식 등을 반포하거나 사용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벌금을 처한다’고 규정했다. 법을 떠나 전세계에서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흔들거나 나치를 떠올리게 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건 엄청난 비난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하켄크로이츠는 안 되고 일제 전범기는 된다. 왜? 서양을 기준으로 일제 전범의 악행은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하켄크로이츠와 일제 전범기의 차이다.

가와사키 프론탈레 팬의 전범기
이 모습을 내년 올림픽에도 봐야 할까. ⓒ 수원삼성 제공

전범기 휘날리는 올림픽은 안 된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몫이다. 주최 측에 항의를 하는 것 정도로 끝날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제 전범기의 문제를 알려야 한다. 하켄크로이츠처럼 아예 꺼내서 흔들 수 조차 없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전범기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도 당당한 샬롬 캠프 뮬 같은 사람이 사라진다. 현재 전범기 사용을 금지할 국제법은 없다. IOC, FIFA 등 국제 스포츠 기구가 자체 규정을 통해 ‘정치적 선전’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게 전범기 사용을 금지할 근거의 사실상 전부다. 이마저도 해석이 달라 내버려 둘 때도 많다. 도쿄올림픽이 열리기 전, 서양 사회에 적극적으로 전범기가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라는 걸 대대적으로 알려야 한다.

안타깝다. 이건 단순히 지금도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신 서경덕 교수를 비롯한 민간 외교 사절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 또한 전범기 앞에서 학살 당하고 고통 당했던 아시아 국가들이 연대해 움직여야 한다. 중국과 북한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등 우리와 함께 뜻을 모을 수 있는 국가들과 함께 서양 사회에 알릴 필요가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최근 논평에서 “이 피 묻은 전범기를 공공연히 광고하는 설명자료를 조선말로 게재한 것은 일제에 의해 불행과 고통을 강요당한 조선 인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라며 “과거 범죄를 정당화하고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이뤄 보려는 침략정책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우리와 뜻을 같이할 이들이 많다.

서양 사회에 전범기의 의미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면 이번 프리미어12 결승전과 같은 일은 또 벌어질 수 있다. 도쿄올림픽에서 전범기가 휘날리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주최 측에 항의를 하는 걸로는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국제 사회가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 자체를 잘 모르고 있다. 독일 나치에 대해선 국가를 불문하고 비판 여론이 공감을 받고 있지만 일본의 전쟁 범죄 역사에 대해선 일부 아시아 국가를 제외하곤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꼴도 보기 싫은 전범기를 퇴치하려면 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제국주의에 고통 받았던 이들이 뭉쳐 전세계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전범기가 휘날리는 올림픽을 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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