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목포=전영민 기자] 올 시즌 광주FC는 압도적인 모습으로 K리그2 우승을 차지했다. 광주는 이번 시즌 K리그2에서 21승 10무 5패의 성적을 거두며 내년 시즌 K리그1 승격을 확정지었다. 광주가 좋은 성적을 거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31실점만을 내준 탄탄한 수비력, 물샐 틈 없는 중원, 기복 없는 경기력 등이다. 하지만 이 선수의 활약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브라질 출신 공격수 펠리페다.

펠리페는 이번 시즌 광주 유니폼을 입고 리그 27경기에 나서 19골을 득점하며 K리그2 득점왕에 올랐다. 2014시즌 아드리아노, 2015시즌 조나탄, 2017시즌 말컹에 이어 펠리페는 브라질 출신 K리그2 득점왕의 계보를 잇는데 성공했다. <스포츠니어스>는 최고의 한 해를 보낸 펠리페를 7일 광주의 훈련장이 위치한 목포국제축구센터에서 만났다.

우승을 축하한다.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원래는 우승을 생각하지 못했다. 시즌을 되돌아보자면 초반부터 분위기가 참 좋았다. 19경기 무패를 거두기도 했다. '계속 이렇게 가면 우리도 우승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중간에 힘든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원팀'으로서 그 모든 과정들을 이겨냈다. 우승을 이뤄 정말 기쁘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역시 안양전 1-7 패배 후인가?

그렇다. 안양과 경기를 치르기 전까지 우리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방심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날의 패배가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안양전 패배가 있었기에 이후에 힘든 과정들을 팀으로서 이겨낼 수 있었다.

어떻게 안양전 패배를 극복했나?

너무나 충격적인 결과라서 경기 후에 이겨내기가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초반에 쌓아놓은 승점이 있었고 감독님도 "1-7이란 스코어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한 경기 진 거라고 생각하라"라고 말씀하셨다. 감독님 말씀처럼 단 1패라고 생각하고 그날 경기를 잊으려고 하다 보니 머릿 속에서 어느 새 그날이 잊혀졌다. 그렇게 안양전 패배를 극복했던 것 같다.

지금이니까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다. 단언컨데 내가 프로에 데뷔한 이후 올해가 최고의 시즌이었다. 우승을 해서 너무 행복하다. 사실 다이렉트 승격과 우승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팀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모든 것이 너무 좋았고 운도 일정 부분 따라줬다. 내 커리어 최고의 한 해다. 앞으로도 올해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번이 프로 데뷔 후 첫 우승인가?

아니다. 브라질에서도 우승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다만 그때는 전국리그가 아닌 지역리그에서의 우승이었다. 지역리그가 아닌 제대로 된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기쁘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어떤 경기인가?

우승을 차지하기까지의 모든 경기가 중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역시 10월 19일 있었던 안양전(4-0 승)이다. 그전에 안양에 1-7로 졌기에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경기를 앞두고 동기부여가 많이 됐다. 다행히 오랜만에 내가 두 골을 넣으며 4-0으로 승리를 거뒀다.

또 그날 경기 바로 하루 뒤 부산이 안산에 0-2로 패배하며 자연스레 우리의 우승이 확정됐다. 부산으로서도 안산과 경기를 하기 하루 전에 우리가 그렇게 안양을 이겼으니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안양에 복수도 하고 우리에 우승을 가져다주었던 그날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우승과 별개로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부상이 조금 있다. 걱정했던 것보다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통증이 약간 있다. 감독님과 의료진이 날 도와주고 계신다. 나 역시 부상에서 빨리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 서두르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년 시즌도 있기 때문이다.

치솜이 맹렬하게 추격해오고 있는데 득점왕 자리를 빼앗길까봐 걱정되지는 않나? (펠리페와 만난 7일을 기점으로 광주와 수원은 시즌 마지막 한 경기씩을 남겨놓고 있었다. 당시 펠리페는 리그 19골, 치솜은 18골을 기록 중이었다.)

득점왕에 연연하지 않는다. 올 시즌 내가 보여준 것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부상 때문에 대전과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대전과 경기에 나서든 나서지 않든 치솜이 골을 넣고 득점왕에 오른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미 이번 시즌을 앞두고 개인적으로 세워놨던 목표를 다 이뤘기에 득점왕에 오르지 못해도 만족한다. 개인적으론 더 이상 이룰 게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치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수원FC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만나게 된 부천이 쉬운 팀이 아니라는 것이다. 치솜이 부천전에서 적어도 두 골을 넣어야 나를 제치고 득점왕에 오를 수 있는데 부천을 상대로 두 골을 넣긴 힘들 것 같다. 그렇기에 내가 대전과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도 자연스레 내가 득점왕에 오르지 않을까 한다. 물론 치솜이 득점왕에 올라도 좋다. (결국 9일 치러진 대전과 경기에 펠리페는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시간대에 열린 부천전에서 치솜이 득점에 실패하며 득점왕은 19골을 기록한 펠리페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상당히 쿨한 모습이다.

시간이 될 때마다 치솜의 경기를 본다. 나와 치솜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 포지션도 조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수원이 올 한 해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치솜이 굉장히 많은 골을 넣었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정통 스트라이커가 아닌데도 치솜이 그렇게 많은 골을 넣은 것이 놀랍다. 치솜은 정말 좋은 선수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지난 시즌도 좋았지만 올 시즌 득점 페이스가 더 좋았다. 이제 한국 수비수들을 상대하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생겼을 것 같다.

올 시즌 초만 해도 상대팀 수비수들이 나를 격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내가 골을 조금씩 성공시키자 나를 정말 거칠게 대하더라. 그 장면을 본 감독님과 코치님들은 "신경쓰지 말고 너의 플레이를 하라"라고 내게 조언을 해주셨다. 나도 그 말씀들을 머릿 속으론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긴 쉽지가 않았다. 자칫하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수비수들이 나를 거칠게 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안산과 경기에서 퇴장을 당해 징계위원회에 다녀온 이후 많이 배웠다. 정말 많이 깨우쳤다. 내가 순간적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팬들에게 실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징계위원회에 다녀온 이후로는 상대 수비수들과 대립하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내게 맨투맨이 붙었을 때 윌리안 등 다른 선수들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는 앞으로 그런 상황이 와도 이겨낼 수 있는 성숙함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당신을 자극하는 수비수들이 많을 것 같다.

그렇다. 경기 중에 상대팀 한국 선수들이 내게 포르투갈어로 욕을 한 적도 상당히 많다. 처음 포르투갈어 욕을 들었을 때는 너무 놀랐다. 하지만 동시에 "나도 한국어 욕을 배워서 똑같이 갚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팀 동료들한테 한국어 욕을 배워서 복수를 했다.

물론 내게 욕을 했던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런 것을 떠나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팀을 말하자면 안산을 꼽고 싶다. 안산이 끈끈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어서 상대하기가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시즌 내가 퇴장을 두 번 당했는데 모두 안산한테 당했다. 안산에 좋지 않은 추억이 있다. 내 경기력도 안산을 만나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안산에는 당신과 같은 브라질 출신의 빈치씽코가 뛰고 있다. 그런데 빈치씽코는 아직도 철이 들지 않은 모습이다. 최근 경기에서도 또 퇴장을 당했다.

(웃음) 그러니까 말이다. 물론 이해가 되는 점은 있다. 나도 작년에 처음 왔을 때 K리그의 거친 플레이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빈치씽코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빈치씽코는 올해가 K리그에서 첫 시즌이지 않나.

한 번은 안산과 경기를 할때 빈치씽코와 만나 진심 반 농담 반으로 "제발 진정 좀 해라"라고 얘기했다. 결국 본인의 그런 행동이 자신과 팀에 피해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안산과 경기를 치른 후에도 빈치씽코에게 전화를 걸어 "경기장에서 진정 좀 해라"라고 얘기했는데 아직 쉽지 않은 것 같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올 시즌 굉장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면서 국내외 팀들로부터 많은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광주와 3년 재계약을 체결한 이유가 무엇인가.

모든 프로 선수라면 더 좋은 팀에서 뛰고 싶은 바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난 광주를 존중하고 있다. 팬들, 감독님, 코칭스태프를 비롯해 모든 구단 관계자들이 내게 신뢰를 주셨다. 그렇기에 많은 오퍼에도 일말의 고민 없이 광주와 재계약을 선택했다. 물론 미래는 모른다. 기회가 된다면 더 좋은 리그와 더 좋은 팀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광주에 대한 애정이 있다. 그래서 재계약 체결 당시 큰 고민 없이 광주와 동행을 선택했다.

특히 박진섭 감독님은 내가 축구를 하며 만나봤던 감독들 중 가장 좋으신 감독님이다.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 감독들은 엄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박진섭 감독님은 정반대이시다. 감독님은 항상 선수들에게 신뢰를 주신다. 선수들에게 플레이를 지시하시기 전에 "네 생각은 어때?"라고 먼저 물어봐 주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감이 생긴다. 선수로서 감독님과 상호작용 하는 느낌이 든다. 감독님의 이런 지도 스타일 덕분에 우리가 한 팀이 된 것 같다.

생활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감독님은 생활 부분에서도 선수들을 자유롭게 해주신다. 식사 시간이나 스케줄을 짜는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다른 팀들과는 달리 "원래 너네 스타일대로 해라. 다만 훈련에만 지장 가지 않게 해라"라고 말씀하신다. 감독님의 이러한 배려 덕분에 우리가 올해 좋은 성적을 거뒀던 것 같다.

박진섭 감독에 대한 충성심이 돋보인다.

감독님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내년은 더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다. 요즘은 'K리그2와 K리그1 팀들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K리그1 팀들이 강한 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목적을 갖고 올 시즌 우리가 해왔던 대로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감독님, 선수들과 함께 전지훈련부터 제대로 준비하겠다. 감독님과 동료들을 믿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승격 외에 내년엔 현재 숙소가 있는 목포를 떠나 광주로 이사한다는 점도 또 하나의 변화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목포가 대도시가 아니고 작은 도시이기에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목포가 살기엔 정말 좋은 도시다. 대도시처럼 교통 체증도 없고 맛있는 음식점들도 많다. 아웃백과 라라코스트라는 훌륭한 패밀리 레스토랑도 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먹을 수 있다. 목포에서의 삶은 불평불만할 게 전혀 없다.

내년엔 클럽하우스가 광주에 생겨서 자연스레 광주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또 현재의 월드컵경기장에서 전용구장으로 경기장이 변경된다는 것도 큰 변화다. 팬들도 더 좋은 관람 환경에서 경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점들이 팀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에 온 지 벌써 1년 반이 넘어간다.

브라질과 한국은 지구 정반대 편에 있다. 그렇기에 축구적인 부분과 축구 외적인 부분 모두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처음엔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우선 브라질은 경기 속도가 빠르지 않다. 경기 템포가 느리고 선수들의 개인적인 역량을 통해 경기 승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한국은 2부리그도 경기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선수들 개개인 능력도 뛰어나다. 90분 내내 골키퍼를 포함해 다들 정신없이 뛴다.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후 감독님이 내게 체력적인 부분을 강조하셨고 이 부분을 보강해 올해는 적응을 완료했다.

음식에도 큰 차이가 있다. 작년에는 한국 음식에 적응이 되지 않아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올해는 조금씩 적응이 되었다. 올해 아내가 나를 위해 한국에 왔다. 아내가 집에서 내게 브라질 음식을 해줬다. 또 가끔은 나가서 외식을 함께 했다. 그래서 음식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내의 내조 덕분에 올해 조금 더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여자친구가 아니라 아내인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것인가?

맞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여자친구였다. 그런데 이제는 법적으로 부부 사이가 되었다. 한국과 브라질 두 국가에 모두 혼인신고를 완료했다. 다만 정식 결혼식은 내년에 치를 계획이다. 준비할 게 너무 많다. 브라질은 교회에서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소 물색을 비롯해 준비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래는 올 시즌이 끝나고 결혼식을 할 계획이었는데 힘들 것 같아 내년으로 미뤘다. 아내에게는 감사한 점이 많다. 사실 아내가 학생이었는데 나를 위해 본인의 꿈을 포기하고 목포로 왔다. 그래서 시즌 초에 아산무궁화와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하고 최신형 핸드폰을 선물로 줬다. 그냥 줄 수도 있었지만 득점 후 핸드폰을 의미하는 골 뒷풀이를 선보인 다음 선물로 주는 것이 더 특별할 것 같았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나를 위해 한국에 와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제 K리그1에 가게 됐다.

나는 큰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올 시즌도 다른 생각 없이 그저 '좋은 성적을 거둬 다이렉트 승격을 하자'고만 목표를 두고 있었는데 이를 이뤘다. 난 항상 "이번 시즌 몇 골을 넣고 싶냐"라는 질문을 받아도 "바로 앞에 있는 한 경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매 경기 득점을 해 팀에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이 내 목표다. 눈 앞의 한 경기씩에 집중하겠다.

펠리페는 올 시즌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겸손했다. 그는 항상 팀을 먼저 이야기했으며 모든 공을 박진섭 감독과 선수들에게 돌렸다. 광주에 온 후 축구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 펠리페는 이제 K리그1에 도전한다. 여러 유혹들이 있었지만 펠리페는 자신에게 기회를 준 광주를 위해 뛰기로 결정했다. 또 한 집안의 가장이 된 그는 이제 더 큰 책임감을 갖고 그라운드를 누빈다. 과연 말컹, 아드리아노, 조나탄 등 K리그2 득점왕들이 그랬듯 펠리페도 K리그1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펠리페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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