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신예’ 포항 이수빈이 말하는 ‘프로의 맛’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올 시즌 포항스틸러스의 팬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김승대의 이적이었다. 팬들은 크게 안타까워했다. 김승대는 포항의 유스 시스템을 통해 배출된 포항의 에이스였다. 그런 그가 떠났다. 상실감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이는 팬들 만의 생각이 아니다. 포항 김기동 감독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요즘도 종종 김승대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포항에서 김승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제법 컸다. 그렇기에 그 상실감 또한 커보였다.

하지만 올해 포항은 마냥 상실감 속에 시즌을 보내지 않았다. 김승대가 떠나도 포항의 유스 시스템은 여전히 건재하다. 착실하게 새로운 선수들을 키워내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수빈이다. 포철중과 포철고를 거쳐 올해 포항에 입단한 이수빈은 첫 해 25경기 이상 출전하며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이수빈은 제법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이수빈은 단 1년의 시간을 거쳐 포항의 기대주로 자리잡았다. 라이벌 울산현대의 팬들도 포항을 겨냥한 응원가에 “이수빈은 어디로 갈까”라며 견제하기도 했다. 그런 이수빈을 <스포츠니어스>가 포항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올해 뛰어난 활약을 선보인 만큼 이수빈에게 특별함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수빈은 생각보다 소탈했고 소년다운 모습이었다. 지금부터 이수빈과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정말 이수빈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지나간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솔직히 시즌 초에도 내가 이렇게 경기를 많이 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원래는 훨씬 적게 뛸 줄 알았다. 그래서 나의 K리그 첫 시즌 목표가 5경기 출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섯 배가 넘게 뛰었다. 정말 올 한 해 동안 많은 기회를 얻었고 좋은 경험도 쌓았다. 여기에 데뷔골과 데뷔 도움까지 기록했으니 참 행복했던 것 같다.

처음 K리그에서 뛸 때 ‘내가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경험을 하면서 마음 편하게 먹고 뛴다. 그래도 보완해야 할 점은 있다. 선발로 뛸 때 동료 형들은 경험이 많아서 여유로운 플레이를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열심히 뛸 줄 밖에 몰랐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이 느껴지더라. 다음 시즌에는 피지컬 측면에서 많은 보강을 한 다음 경기에 나설 생각이다.

포항 유스 출신의 ‘성골’이라 더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 같다.
아, 사실 내가 포항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하하. 나는 전라도 광주 출신이다. 여전히 집도 광주다. 초등학교 때까지 광주에서 살면서 축구를 하다가 중학교 때부터 포항으로 옮겨왔다. 당신만 오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다들 나보고 포항 사람이라고 하더라.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 광주에 가니 “말투가 포항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원래 내가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라도 사투리가 내 입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 부모님도 나보고 “포항 사람 다 됐다”라고 하시더라. 나 또한 포항에서 추억이 많다. 포항 유스 시절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했고 지금 연락하고 있는 친구들 또한 포항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 제법 많다. 뭐 이제는 포항 사람이라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포항 유스 시절은 어땠는가?
처음에는 좀 힘들었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부 활동을 하면서 숙소 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포철중에 입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단체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단체 생활에는 규칙이라는 것이 있지 않는가.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서 함께 밥을 먹고 당번을 정하기도 하는 생활이 처음에는 적응되지 않았다. 물론 이제는 괜찮다. 지금 포항에서도 막내 역할 열심히 하고 있다.

포항 유스팀에 있으니 1군 경기 때 볼 스태프나 들것 등 보조요원으로 많이 투입됐다. 보면서 팬들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당시 포항은 잘할 때도 있었고 아쉬울 때도 있었다. 잘하면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란 생각을 했고 못하면 ‘이러면 안되는데’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한 가지 일화가 생각난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볼 스태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내 담당 구역이 원정 응원석 앞이었다. 그 때 포항이 이기고 있었다. 경기 막판에 공이 라인 밖으로 나갔을 때 내가 일부러 공을 늦게 줬다. 그러자 갑자기 원정 응원석에서 욕이 좀 날아왔다. 대충 “똑바로 해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저런, 그 팀은 어디였는가?
예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옷이 파란색이었던 것은 기억한다.

파란 옷을 입은 팀을 상대할 때 동기부여가 더 될 것 같다.
어차피 K리그에서 파란 옷을 입은 팀은 다 이겨야 하는 팀들이다.

당신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했다. 후회하지는 않는가?
아예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크게 후회하지 않았다. 대학교에 대한 호기심 또한 있었다. 일단 대학교에 가면 이것저것 구경거리도 많고 놀거리도 많지 않는가. ‘한 번 대학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은 했다. 그렇지만 어차피 대학에 가도 결국에는 다시 K리그로 와야하는 입장이기에 바로 K리그로 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동료 선수들 중에서 대학에 간 선수들도 꽤 있다. ‘단톡방’을 통해 친구들의 근황을 전달 받는다. 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부러운 것은 있다. 고등학교 때는 같이 운동만 하던 친구들이 대학에 가서 운동도 하고 놀기도 하고 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 같더라. 그리고 특히 걔네들은 서울 쪽에 대학교가 몰려 있으니 자주 만나는 것 같더라. 나는 포항에 있고 시즌 중이니 친구들을 잘 만나지 못한다.

부러워할 것 없다. 통장 잔고는 당신이 압승이다.
그렇다. K리그에 와서 제일 좋았던 것 중 하나가 돈을 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내가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는 좀 용돈이 빠듯했다. 집안 형편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었고 휴가 때 용돈으로 광주와 포항을 오가는 버스비까지 감당해야 하니 좀 힘들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는 ‘돈 많이 벌어서 언젠가 건물주가 되어야지’와 같은 생각도 해봤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물론 신인이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한다. 하지만 돈을 번다는 것 자체로 뿌듯하다. 이래봬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최고 연봉자다. 하하. 고등학교 동기 중에 포항 놀러오는 친구들이 있으면 내가 고기를 사준다. 내가 얻어먹으려고 해도 친구들이 아예 주머니에서 지갑 꺼낼 생각을 안하더라. 그래도 마음 넉넉하게 내가 산다. 먼저 베풀면 나중에 다 돌아오지 않을까?

첫 월급을 받고나서 기분 참 좋았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먹고싶었던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과거에는 친구들과 고기를 먹으러 가면 주로 무한리필집을 갔다. 그런데 요즘은 고기의 질을 따지면서 먹는다. 확실히 고기가 비싼 건 다르더라. 비싸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은 소고기가 더 맛있는 것 같더라.

첫 월급을 받았을 때는 가족들에게 대부분 썼다.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누나들도 용돈을 줬다. 그리고 이후에도 조금씩 돈을 모아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라고 드리기도 했다. 부모님이 참 좋아하셨다. 별 다른 이야기 없이 “고맙다”라고 하시더라. 그런데 자꾸 부모님의 시선이 내 얼굴이 아니라 봉투를 향하시더라. 하하. 농담이다. 나를 위해서는 데뷔전 치르고 지갑을 하나 샀다. 지금까지 소중하게 잘 쓰고 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월급 뿐 아니라 수당도 있지 않는가. 내가 살면서 용돈을 받아 쓰다가 이렇게 돈을 번 적은 처음이다. 특히 이렇게 많이 번 것은 더더욱 처음이다. ‘이게 프로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처음 겪는 일이라 나름대로 동기부여도 되고 참 좋은 것 같다.

이제는 친구들보다 형들과 더 어울려 놀 것 같다.
시간이 많을 때는 영화를 보러 가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숙소에서는 종종 형들과 게임을 한다. 주로 ‘피파’나 ‘롤(리그오브레전드)’을 한다.

롤 같은 경우 포지션은 그 때 그 때 다르다. 함께 하는 형들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초보자 수준이다. 따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즐기는 마음으로 한다. 동호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나름 승부욕이 있어서 포항 축구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한 명이 “항복하자”라고 하면 다른 멤버들이 “아직 안끝났으니까 포기하지 말자”고 독려한다. 이미 경기는 기울었는데 끝까지 아둥바둥 열심히 한다.

피파는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는 수준이다. 팀 내에서는 중간 정도 한다. 포항에서는 이진현 형이 제일 잘한다. 몇 판 해봤는데 정말 잘한다. 포항에서 이진현의 피파 실력은 다 인정한다. 나는 붙을 때마다 꼭 1점 차로 지더라. 집중력이 부족한 것 같다.

이번에 피파에서 내 선수카드가 나왔다고 하더라. 기념으로 사려고 했는데 매물이 없어서 사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능력치는 나쁘지 않은 것 같더라. 신인치고 꽤 괜찮은 능력치가 매겨진 것 같다. 게임 상에서 내 능력치가 좋으면 내가 그만큼 잘하고 있고 외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은 경기에서도 잘해 피파 능력치를 한 번 올려볼 생각이다.

프로에 잘 적응했으니 이렇게 게임 이야기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초반에는 걱정이 많았다. 내가 실수할 것 같아서 걱정이었다. 프로에 가서 실수하면 많이 혼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사실 포항은 전혀 그런 팀이 아니었기에 괜한 걱정이었다. 오히려 형들이 나를 더 격려해주고 “하고 싶은 것 해봐”라고 박수쳐줬다. 그래서 내 생각보다 더 빨리 프로에 적응할 수 있었다.

특히 (하)창래 형이 나를 제일 많이 도와줬던 것 같다. 내가 프로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많이 알려줬고 그라운드 안에서 실수해도 옆에서 도와줬다. 창래 형이 많은 말을 해준 덕분에 내가 일찌감치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다. 물론 밥도 많이 사줬다. 그렇게 프로에서 생활하니 조금씩 걱정이 사라지더라.

올해 내가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나도 내 자신이 신기했다. 선배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통할 수 있을까? 내 플레이가 K리그에서 먹힐까?’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뛰어보니 ‘할 만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플레이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그 덕분에 내가 기회를 많이 얻었다고 생각한다.

신인이 ‘할 만 하네’라니 당돌하다.
내가 데뷔전 운이 정말 좋았다. 당시 내가 교체로 투입됐다. 그 때 포항이 이기고 있었다. 만일 지고 있거나 비기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긴장도 되고 분위기도 좋지 않아 자신감도 많이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편안한 분위기에서 내가 투입됐다. 그 때 다들 “마음 편하게 해도 상관없다”라고 해서 내가 하고 싶었던 플레이 다 하고 나왔다. 그래서 자신감을 정말 많이 얻었다.

울산현대와의 ‘동해안 더비’ 때도 그렇게 자신감 있게 했는가.
와… 지난 10월 초에 울산과 경기는 정말 전쟁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울산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가지고 있었다. 감독님들이 울산만 만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나도 일종의 세뇌를 당했다. 울산현대고 선수들과도 꽤 친하게 지냈는데 그라운드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싸웠다. 그래도 프로와는 달랐다. 유소년 시절에는 주로 학부모님들만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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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더비를 준비하는데 사람이 정말 많아서 긴장됐다. 특히 이날 해병대 분들이 오셨다. 울산 서포터스도 많이 온 상황에서 서로 응원을 주고 받더라. 우리가 이긴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려 다행이었다. 특히 울산 팬들이 부르는 응원가도 꽤 재미있었다. 확실히 나 또한 동해안 더비에 대한 부담감은 있다.

그 응원가라는 것이 설마…
당신도 알 것 같다.

‘이수빈은 어디로 갈까’라는 가사가 있는 그 노래?
맞다. 그 응원가를 들었다. 그걸 듣고 ‘내가 진짜 어디 가나?’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뭐 내가 어디를 가겠나. 포항에 있어야지. 만약 내가 포항을 떠나 다른 팀으로 가게 된다면 유럽과 같이 더 큰 무대로 갈 때이지 않을까. 어디 안갈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갈 곳이 있다.
무슨 소리인가. 포항 말고 내가 갈 곳이 있는가.

국방의 의무는 다해야 하지 않는가. 설마 면제인가.
아… 면제는 아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서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1급을 받았다. 공교롭게 해병대가 포항을 방문하고 이틀 뒤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 동해안 더비가 끝나고 A매치 휴식기라 비교적 길게 휴가를 받았다. 그래서 신체검사 받는 내내 해병대가 생각났다.

그 와중에 검사관 중 한 분이 갑자기 나보고 “선수 아닌가요?”라더니 “팬이다”라고 하더라. 포항에서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광주에서 알아보시는 분이 있어서 신기했다. 신체검사가 끝나고 나라사랑카드를 받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심지어 돈도 조금 주더라. 신체검사 여비 명목으로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신체검사를 받으러 갈 때 택시를 타고 가서 받은 여비보다 더 썼다. 적자다.

내가 성인이 된 만큼 군대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선수가 아닌 친구들 중에서는 이미 입대한 사람도 몇 명 있다. ‘나도 곧 가야하는구나’란 생각이 든다. 사실 축구선수의 입장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고 더 큰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병역 이행 여부가 중요하다. 그래서 빨리 입대할 생각도 조금은 해봤다. 하지만 아직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일단 포항에서 열심히 뛸 거다. 가끔 입대 생각을 하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래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대한 욕심도 있을 것 같다.
큰 욕심은 부리지 않으려고 한다. 뽑히면 뽑히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아닌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2020 도쿄 올림픽이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가 포항에서 계속해서 경기를 뛰고 열심히 한다면 한 번 정도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지금 당장 뽑히지 못했다고 아쉬운 것은 없다.

빨리 병역 의무를 마치길 기원한다. 그래야 유효기간 10년짜리 여권도 나온다.
내 꿈 중 하나가 휴가 때 여행을 가보는 것이다. 특히 유럽 가보고 싶다. 내가 유럽을 단 한 번도 못가봤다.

청소년 대표도 자주 했을텐데 유럽을 못가봤다고?
내가 정말 신기한 세대다. 내가 어릴 때 국제대회가 대부분 아시아 쪽에서 열렸다. 특히 이란이나 인도처럼 남들은 여행으로 쉽게 가지 않는 곳만 골라서 갔다. 그리고 그 때는 여행이 아니라 일종의 출장 아닌가. 대회 가서 공 차려고 간 것이다. 생각해보니 휴식을 위해 해외여행을 해본 적은 없다. 휴가를 받으면 축구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이국적인 풍경들을 구경하고 싶다.

(포항의 홍보 담당자는 이수빈에게 “터키도 유럽이다”라고 지적했다. 포항은 올해 초 터키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올해 이수빈은 만족할 만한 시즌을 보냈지만 아쉬움도 많을 것 같다.
물론이다. 경기에 많이 출전한 것은 좋지만 그 속에서도 아쉬운 경기가 많았다. 파이널 라운드에서 전북에 0-3으로 완패를 당한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특히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시즌 초반이 아쉽다. 초반에 좀 더 몇 경기를 이겼더라면 더 좋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뒤늦게 상승세를 탄 것이 아쉽다. 초반부터 집중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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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김)승대 형이 전북으로 떠난 것도 아쉽다. 어릴 때 승대 형은 별명에 걸맞게 ‘라인 브레이커’ 그 자체였다. 그렇게 밖에서 보던 형과 함께 공을 찰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승대 형은 경기 뛸 때는 짜증을 툴툴 내는데 그라운드 밖에서는 정말 잘 챙겨주는 선배다. 무심한 것 같지만 마음이 따뜻한 형이다. 나는 승대 형의 이적을 갑작스럽게 들어서 더욱 아쉬웠다.

김승대는 떠났지만 포항 팬들은 이제 이수빈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포항 팬들께서 내게 “떠나면 안된다”라고 말씀하신다. 굉장히 기쁘다. 어쨌든 팬들께서 나를 좋게 생각해주고 아껴주시는 것 아닌가.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그저 더 열심히 노력해서 팬들께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 뿐이다.

포항에서 1년도 이제 끝나간다. 앞으로 계속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많이 뛰고 싶다. 다치지 않으면서 공격포인트를 올릴 수 있을 때 포인트를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포항 팬들께 많은 응원을 부탁 드린다. 그리고 김학범 감독님도 언제 한 번 포항 놀러오시면 참 좋을 것 같다. 하하.

이수빈은 아직 갓 스무살이다. 청년보다는 소년에 가까운 이미지다. 그런 만큼 이수빈은 아직 꿈이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다. 그는 자신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포항에서의 헌신과 활약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수빈의 첫 해는 마무리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이수빈의 꿈은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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