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포항=전영민 기자] 올 시즌 초반 포항스틸러스는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무기력한 경기가 반복됐고 순위는 하위권으로 쳐졌다. 결국 포항은 지난 4월 2년 7개월간 팀을 이끌었던 최순호 감독과 결별했다. 팀 재편 작업은 이어졌다. 포항은 지난 6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야심차게 데려온 브라질 출신의 스트라이커 데이비드와 결별했다. 이후 포항은 독일 분데스리가2에서 잔뼈가 굵은 일류첸코를 그의 대체자로 영입했다.

일류첸코의 활약은 뛰어났다. 7월 10일 성남과 홈경기에서 K리그 데뷔골을 터뜨린 일류첸코는 이어진 제주, 성남과 경기에서도 한 골씩을 추가하며 세 경기 연속골에 성공했다. 일류첸코는 현재 포항 유니폼을 입고 K리그 15경기에 나서 7골 2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포항도 모두의 예상을 깨고 파이널A 진입에 성공했다. 에이스 김승대가 전북으로 떠났지만 포항 팬들이 공격 걱정을 하지 않는 이유다.  <스포츠니어스>는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일류첸코를 30일 포항 송라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반갑다.

나도 반갑다.

식사는 했나?

아직 하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나면 옆에 있는 선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다.

최근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매일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다. 컨디션이 좋다. 집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휴식도 적절히 취하고 있다.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고 있다.

포항에 온 지 시간이 꽤 지났다. 한국 생활은 좀 어떤가?

처음에는 조금 낯선 부분이 있었지만 완델손의 도움 덕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완델손이 한국에서 오래 거주했기에 나와 팔로세비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이제는 포항이 익숙하다. 포항이란 도시가 좋다.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가족들도 한국 생활에 만족해한다. 아이들은 포항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가족과 함께 있어서 큰 힘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나 혼자 한국에 왔다. 가족들은 8월 초에 한국에 왔다. 원래는 처음부터 같이 오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한국에 오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또 아이들을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하기도 했다. 내가 6월쯤 한국에 왔으니 한 달 반 정도를 혼자 지냈다. 그래도 훈련에 집중하다 보니 그 시간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적응력이 빠른 것 같다.

아시아 생활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과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난 포항이 좋다. 나와 내 가족에겐 이곳에서의 생활이 새로운 도전이다. 그렇지만 현재까지는 모든 부분이 만족스럽다. 팀 동료들과 코칭스태프들도 내게 잘해준다. 무엇보다 한국 음식을 먹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처음에는 한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걱정을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특히 삼계탕과 삼겹살이 정말 맛있다. 매운 음식은 아직 조금 힘들다. 가끔 매운 음식을 먹긴 하지만 위에 부담이 될까봐 즐겨먹지는 않는다. 또 내가 포항에 오기 전 뒤스부르크에서 뛰었다. 뒤스부르크에도 포스코처럼 철강을 만드는 회사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 포항에 도착했을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철강을 사랑한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반면 불편한 점도 있었을 것 같다.

처음 포항에 왔을 때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놀랐다. 규모가 작지 않은 도시인데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이 부분이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바디랭기지를 사용하니 다 되더라. 바디랭기지로 많은 것을 해결했다.

김기동 감독과의 관계는 어떤가

평소에 감독님과 많은 소통을 하고 있다. 감독님은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마주할 여러 상황들에 대해 아이디어를 주신다. 비디오 미팅을 하시면서도 많은 조언들을 해주신다. 감독님은 좋으신 분이다.

김기동 감독이 포항의 전설이었던 것은 알고 있나?

물론이다.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감독님이 가끔 훈련 중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뛰곤 하신다. 그런데 여전히 뛰는 양이 많으시다. 선수들보다 더 많이 뛰실 정도다. 그런 모습을 보며 감독님이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또 감독님이 선수 시절 좋은 선수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줄곧 독일 무대에서 뛰다가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뒤스부르크에서 뛸 때 많은 유럽팀들에서 이적 제안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과 내 미래였다. 에이전트와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에이전트가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해보는 것이 어떠냐"라는 제안을 했다. 마침 그때 뒤스부르크에서 같이 뛰던 한국 선수가 있었다. 그 친구가 한국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결국 많은 논의를 한 끝에 포항에 오기로 결정했다.

당신에게 조언을 준 그 한국 선수가 누군가?

서영재다.

서영재라면 지금은 홀슈타인에서 뛰고 있는 선수 아닌가. 

그렇다. 작년까지는 나도 서영재도 모두 뒤스부르크에서 활약했다.

독일 하부리그부터 경력을 시작한 것이 인상적이다.

프로 생활은 23살부터 했다. 3부리그 팀인 VfL 오스나브뤼크에서 입단하며 프로 선수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했다. 부모님께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프로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만약의 경우도 대비해야 했다.

축구를 처음 시작한 것은 9부리그에서였다. 매일 많은 노력을 했다. 프로선수가 되고 싶은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한 단계씩 성장할 필요가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성인이 되었을 때는 교육을 받았다. 실습을 나갔다. 알다시피 독일은 실습 제도가 잘 갖춰져있다. 그렇게 2년 반 동안 실습을 하며 축구를 병행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를 갔다. 그렇게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시간이 되면 실습 장소로 갔다. 실습이 끝나면 오후쯤 되는데 그러면 그때 축구장으로 갔다. 그리고 훈련을 했다. 훈련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2년 반 동안 매일을 이렇게 보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정말 힘든 시기였을 것 같다.

독일에선 축구팀이 소속팀 선수들에게 여러 가지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독일 선수와 외국인 선수 모두 동등하게 혜택을 받는다. 일단 구단에서 독일어 수업을 진행한다. 또 선수들 부모님의 일자리까지 구단이 알아봐준다. 일자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런 환경 덕분에 나도 축구와 학교 그리고 실습을 병행할 수 있었다. 이후 일이 잘 풀려 9부리그에서 한 단계씩 올라와 2부리그에서 뛸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민을 간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러시아와 독일 두 나라 사이에 인적 교류가 많았다.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민을 가는 사람도 많았고 독일에서 러시아로 이주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 같은 경우엔 증조할아버지가 독일 분이셨다. 그래서 가족들이 모두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주했다.

독일 적응은 어렵지 않았나?

큰 어려움은 없었다. 증조할아버지가 독일 사람이었기에 내게도 독일 국적이 나왔다. 또 가족들 역시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러시아 국적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내 어머니는 러시아 사람이다. 독일 국적이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독일 국적을 갖고 계신다. 증조할아버지가 독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친가 쪽 혈통으로 인해 나도 자연스레 독일 국적을 얻게 되었고 그렇게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본인을 러시아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독일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나는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물론 어린 나이에 독일로 이주했지만 가족들이 다 러시아 사람이기에 집에서는 러시아 말을 사용했다. 지금도 그런다. 하지만 집에서 나가 친구들을 만나면 독일어를 사용했다. 그렇기에 두 나라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은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러시아와 독일이 역사적으로 부딪친 적이 몇 번 있었다. 2차대전 때도 전쟁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일부 독일 고령층은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어디든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나쁜 사람들도 있다. 독일에서도 일부 나쁜 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말 그대로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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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분데스리가2에서 활약했다. 직접 뛰어본 분데스리가2와 K리그1의 차이는 어떤가?

우선 K리그는 선수들이 정말 많이 뛴다. 선수들의 기술, 경기 운영 능력, 경기 스피드, 선수들의 경기를 임하는 태도 등 종합적인 면을 고려했을 때는 분데스리가2와 K리그1의 수준이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분데스리가2에는 분데스리가1에 오랜 기간 있었던 함부르크를 비롯한 강팀들이 몇 개 있다. 많은 돈을 쓰는 팀들이다. 또 분데스리가1에서 매년 두 팀이 분데스리가2로 강등이 되기에 분데스리가2의 수준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다. 다만 K리그의 수준도 낮지 않다. K리그1 팀들 중 분데스리가2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K리그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팀은 어딘가?

전북과 울산이 가장 강하다고 느꼈다. 전북은 경험 많은 선수들이 많고 선수들의 태도도 프로답다. 국가대표 선수들 역시 많고 AFC챔피언스리그에서도 그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울산 역시 강하다. 울산은 우리의 라이벌 팀이다. 다만 올 시즌 우리가 울산을 상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 적이 많아 개인적으로 기분이 좋다.

공교롭게도 시즌 마지막 경기가 울산과 경기다.

그렇다. 중요한 더비 매치다. 이런 경기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울산과 경기를 치르기 전에 우리가 강원, 서울을 만난다는 것이다. 앞에 놓여있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하다. 울산도 급하겠지만 우리도 AFC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위해 승리가 필요하다. 원정 경기이지만 반드시 승리를 거두고 싶다. 울산전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다. 울산도 분명 우리와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기에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년까지 포항과 계약이 되어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포항에서 좋은 사람들 그리고 즐거운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다. 팀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우선은 다음 세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 내년 시즌까지 포항과 계약이 되어있다. 포항과 함께 ACL을 나가 새 역사를 만들고 싶다. 포항을 위해 최대한 많은 골을 성공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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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9부리그에서 축구를 시작한 일류첸코는 피나는 노력 끝에 분데스리가2 입성에 성공했다. 학교와 실습 그리고 축구까지 병행해야 하는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일류첸코는 자신의 꿈을 위해 매일을 성실하게 보냈다. 그리고 결국 프로 선수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 어렵게 잡은 기회인만큼 일류첸코는 간절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매 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고 있었다. '늦게 핀 꽃이 아름답다'는 말처럼 조금은 늦게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일류첸코가 앞으로도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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