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내셔널리그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천안시청의 풍경.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천안=김현회 기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실업축구 내셔널리그가 그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내셔널리그는 26일 오후 3시 전국 4개 경기장에서 일제히 경기를 치렀다. 이미 강릉시청이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가운데 플레이오프에 나갈 두 팀을 가리는 마지막 라운드가 열렸다. 천안축구센터에서는 천안시청과 경주한수원이 격돌했고 부산구덕운동장에서는 부산교통공사와 창원시청이 맞붙었다. 목포시청과 김해시청은 목포축구센터에서 경기를 펼쳤고 대전코레일과 강릉시청은 대전한밭운동장에서 격돌했다.

이 경기는 올 시즌을 끝으로 막을 내리는 내셔널리그의 정규리그 최종전이라서 의미가 더 깊었다. 대한축구협회는 디비전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실업축구인 내셔널리그 팀들의 프로화를 유도했다. 내셔널리그 8개 팀은 내년 시즌 새롭게 출범하는 K3리그 신청서를 모두 제출했고 그러면서 내셔널리그는 자연스레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14년 동안 내셔널리그를 이끌었던 김학인 실업축구연맹 과장도 “올 시즌을 끝으로 내셔널리그가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고 말했다.

내셔널리그는 지난 2003년 K2리그로 출범했다. 이후 2006년 지금의 내셔널리그로 명칭을 바꿨다. 한때는 승강제 구축이 최대 과제였던 한국 축구에서 내셔널리그는 유일한 희망이라는 기대를 받기도 했다. 2006년 우승팀이 K리그로 승격하기로 약속했지만 그 시즌 우승팀인 고양국민은행은 우승을 확정하고도 은행법을 이유로 승격을 거부했다. 이후 2007년 우승팀인 울산현대미포조선도 승격을 거부하면서 축구팬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승강제는 논의 자체가 백지화됐다.

천안시청은 내셔널리그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맞아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스포츠니어스

이후 2013년 프로축구연맹이 자체적으로 K리그2를 출범하면서 내셔널리그는 애매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K리그에 승강제가 도입됐고 내셔널리그는 자체적으로만 운영되는 리그가 됐다. 내셔널리그는 ‘외딴 섬’이 됐고 ‘영원한 강자’ 고양국민은행과 울산현대미포조선은 해체됐다. 결국 2015년 대한축구협회는 내셔널리그를 K리그 챌린지(현 K리그2)에 편입하거나 K3리그에 통합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1부에서 7부에 이르는 한국형 디비전 시스템을 완성시키기 위한 마지막 퍼즐은 세미프로에 해당하는 K3, K4리그였다. 이전까지 3부리그 역할을 한 내셔널리그, 4부리그격인 K3리그의 통합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진통도 적지 않았다. 내셔널리그 8개 팀 중 프로화에 적극적이었던 건 천안시청 뿐이었다. 천안시청은 천안 NFC 유치 공약으로 천안 프로팀 창설을 내걸었다. 천안시청을 제외한 내셔널리그 7개 팀은 프로화에 난색을 표했다. 내셔널리그 팀들은 "유예기간을 달라"고 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구단의 의지 문제"라며 팽팽히 맞섰다.

내셔널리그 팀들은 지방자치단체 혹은 공기업이 구단을 직접 운영하는 특성상 독립법인으로 분리될 시 재정지원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법인화를 마친 천안시청이 적극적인 프로화 의지를 표명했고 목포시청이 프로화에 관심을 보였을 뿐 다른 팀들은 프로화에 회의적이었다. 내셔널리그 관계자는 “회의 과정에서 거의 죽이네 살리네 소리가 나올 정도로 격렬하게 싸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천안시청은 내셔널리그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맞아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스포츠니어스

하지만 결국 내셔널리그 팀들은 K3, K4리그 합류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법인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새롭게 출범하는 K3리그에 내셔널리그 8개 팀 모두 신청서를 냈다. 물론 아직 이 과정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각 구단별로 법인화도 필요하고 프로에 맞는 선수단과의 계약 과정도 거쳐야 한다. 지자체와 공기업이 운영하는 구단의 성격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ㄹ단은 각 구단의 의사를 확인한 수준이다.

내셔널리그가 고집불통 리그였던 것만은 아니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 구단도 내셔널리그에서 그 역사를 이어왔다. 현재 내셔널리그에 속한 대전코레일은 1943년 조선철도국 축구단이 그 모체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겪었던 팀은 내셔널리그와 함께 그 역사를 이어나갔다. 경주한수원도 1945년 경성전기 축구단으로 창단된 팀이다. 내셔널리그가 한국 축구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민재도 내셔널리그에서 꿈을 키웠던 시절이 있었다. K리그에서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도 내셔널리그에서 재기의 칼을 갈았다.

천안시청과 경주한수원의 내셔널리그 정규리그 최종전이 열린 26일, 천안축구센터에는 많지 않은 597명의 관중이 찾았다. 같은 시각 이 경기장에서 3km 떨어진 천안종합운동장에서는 서울이랜드와 대전시티즌의 K리그2 경기가 열렸고 관심은 그쪽으로 쏠렸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내셔널리그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부족했다. 하지만 이 경기장에는 이우진과 서동현, 고차원, 송제헌 등 K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던 이들이 뛰고 있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순간에도 이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14년 간 내셔널리그를 이끌어온 김학인 과장은 현장을 찾아 경기 전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내셔널리그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정리하기 위해서다. 10년 넘게 명예기자 제도를 운영해 온 내셔널리그는 그동안 쌓인 경험과 기록이 방대하다. “내셔널리그 자료와 기록이 K리그보다도 낫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김학인 과장은 오랜 시간 쌓아온 경기 사진과 기록을 역사에 남길 방안을 명예기자들과 고민 중이다. 이날 경기는 2003년부터, 아니 실업축구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더 오랜 시간 역사를 쌓아온 내셔널리그가 팬들과 작별하는 경기였다.

천안시청은 내셔널리그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를 맞아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스포츠니어스

이제 내셔널리그는 플레이오프 두 경기와 챔피언결정전 두 경기 만을 남겨 놓고 있다.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한 강릉시청, 플레이오프에 오른 천안시청과 경주한수원을 제외한 나머지 5개 팀은 이날 경기를 끝으로 기나긴 내셔널리그에서의 도전을 마무리했다. 8개 팀 전부 프로화를 선언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한 번의 홍역을 치를 수도 있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아예 사라지는 팀이 생길 수도 있고 뼈대만 남긴 채 모든 게 바뀌는 팀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때는 한국 축구의 희망과도 같았던 내셔널리그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작별을 고했다.

강릉시청과 천안시청, 경주한수원, 부산교통공사, 창원시청, 목포시청, 김해시청, 대전코레일, 그리고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양국민은행과 울산현대미포조선, 서울시청, 이천상무, 예산FC, 홍천이두FC, 안산할렐루야, 충주험멜, 용인시청 모두 이 찬란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리고 이제 한국 축구는 중대한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내셔널리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그 변화는 시작됐다. 이제 이들은 내년 시즌 프로화를 마친 뒤 팬들을 찾아가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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