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안산그리너스는 K리그2에서 가장 적은 예산을 쓰는 팀이다. 열악하다는 시민구단 중에서도 예산이 가장 적다. 하지만 안산은 K리그2에서 현재 4위에 올라있다. 이 순위가 이어진다면 창단 이후 최초로 승격을 위한 K리그2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할 수 있다. 현재 3위 안양과는 승점 1점차다. 관중수도 인상적이다. 언론의 노출이 그다지 많지는 않은 팀이지만 평균 2,689명의 관중을 불러 모았다. 리그에서는 5번째다.
지난 광주와의 홈 경기에는 무려 7,143명의 관중이 운집했고 최근 치러진 서울이랜드와의 홈 경기에도 4,075명의 관중이 안산 와~ 스타디움에 들어찼다. 투자 대비 효율이 가장 좋은 팀이다. 이렇다 할 스타 선수도 없지만 창단 3년차 팀치고는 눈부신 성장이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지난 해 9월 부임한 이종걸 단장이 있다. 독특한 이력의 이종걸 단장은 안산에 부임한 이후로도 인상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살아온 이야기와 안산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반갑다.
죽겠다. 며칠 전 조기 축구를 하다가 상대의 팔꿈치에 맞아 갈비뼈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3주 동안 안정을 취하라고 하는데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잠 잘 때도 불편하고 기침을 할 때도 죽겠다. 내가 이래보여도 선수 출신이고 왕성한 50대인데 60대 선수와 붙어서 다쳤다. 창피하니 기사에는 30대 선수하고 부딪혔다고 써 달라.
그대로 쓰겠다. 그런데 당신이 선수 출신이라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산에서 나고 자랐는데 축구를 하려고 동두천에 있는 신흥실고에 갔다. 우리 때는 신흥실고가 강한 팀이었는데 내가 10번을 달았다. 청소년 대표팀에 뽑혀서 3차 선발전까지 갔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명지대로 진학해 2학년 때까지 축구를 했다. 그때 조윤환, 최진한이 내 동기였다. 김학범 감독이 나보다 명지대 1년 선배다. 오늘 (김)학범이 형이 “나 화성에서 경기하는데 안 오느냐”고 해서 가려고 한다. 선수 때는 나도 잘했다. 원래 축구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키가 커서 주목을 좀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에 축구를 시작했다는 이야기인가.
안산 반월중학교에 진학했는데 키가 크니까 별 걸 다 시키더라. 학교에서 육상도 시키고 핸드볼도 시켰다. 투포환도 했다. 반에서는 반장이 됐고 공부는 해야하는데 키가 크다는 이유로 이것 저것 다 했다. 사실 축구를 가장 좋아했는데 우리 학교에 축구부가 없어서 축구는 안 시켜주더라. 그래서 선생님께 “축구부를 만들어 주면 같이 운동하겠다”고 하니 내 마음을 잡기 위해 선생님이 자비로 축구화 12켤레를 사 오셨다. 거의 “이거 줄 테니 네들이 알아서 운동하라”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당시 학교에서 화성군 운동 시합에 나갔는데 축구 빼고 다 나가는 거 아닌가. 그래서 3학년 때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가겠다고 했는데 어머니가 반대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축구를 시작하게 됐나.
둘째 매형이 아는 조기 축구회의 지인이 소개해줘서 동두천 신흥중학교로 3학년 때 전학을 갔고 그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리프팅 3개를 못했다. 키 하나로 했다. 우리 집안이 축구를 잘 몰라서 아버지께서는 잘 먹나 못 먹나만 챙겼다. 그렇게 신흥실고에 입학한 뒤 고등학교 때는 경기도 대회에서 한 해에 17골도 넣어봤다. 고등학교 때 축구로 경기 교육대상을 탄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해 대학까지 진학한 건 대단한 일이다.
혼자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다 밀리더라. 또 진학을 앞둔 시기에 코뼈가 부러져 대회에도 많이 나가지 못했고 명지대로 가게 됐다. 그런데 명지대 2학년 때 오른쪽 발등 뼈가 다 부러졌다. 경기 도중 슈팅을 날렸는데 상대가 발바닥을 들이미는 바람에 오른발 발가락 뼈 다섯 군데가 다 부러졌고 결국 축구를 1년 동안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렇게 축구를 그만둔 건가.
큰 부상을 당한 이후로 몸도 불어났고 회의감도 들었다. 대학 진학 문제로 힘들어 했던 시기도 떠올랐다. 방황을 많이 했는데 아버지께서 올라와 “축구를 해서 국가대표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학교에 다니면서 장학금을 타고 다니라는 것도 아니다. 시장에서 번데기 장사를 하더라도 남한테 인정만 받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축구를 접고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체육 특기생이었는데 당시에는 학과를 고를 수 있었다. 명지대 법학과에 다니고 있어 고시 공부도 좀 해봤다. 친구들이 다 고시를 준비해 따라서 한 거다.
운동만 하다가 고시를 준비한다는 게 상상이 되질 않는다.
뭐 아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아는 게 없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영어 학원 다닌 놈은 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우리 집안 특성상 내가 한자를 좀 안다. 축구를 접고 학교 수업에 들어가니 법이 다 한자 아닌가. 한 친구가 형법 책을 가지고 오더니 “야, 너 축구했다며? 이거 읽을 수 있어?”라고 무시하는데 딱 보니까 대충 읽을 수는 있겠더라. “너 내가 이거 다 읽으면 죽는다”라고 하고 다 읽었다. 그랬더니 애들이 나를 다시 보더라. 그 친구들이 공부하는데 많이 도와줬다. 고시 공부도 그 친구들 쫓아다니면서 했다.
운동을 하는 친구들은 똑똑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군대에 갔다 와서 사업을 잠깐 하다가 다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하던 사업을 동서에게 물려주고 국제법으로 석사를 받았다. 지도 교수님이 내가 석사를 받은 이후 은퇴하셔서 전공 지도 교수가 없었고 그래서 다시 헌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교에 가 강사로 시작해 전임 교수까지 지냈다. 축구를 잊고 법학박사로 살았다.
오, 말로만 듣던 법학박사인가. 법학박사 처음 본다.
법학박사 맞다. 공부하면서 축구는 멀어졌었다. 공부할 때 고생을 많이 했다. 책을 보다가 모르면 ‘아 모르나보다’라고 생각하고 읽고 또 읽었다. 절에 들어가 하루에 16시간씩 공부했다. 그때 공부에 탄력이 붙었다. 지금은 법에 대해 적당히 알고 있지만 책을 열어보면 ‘아 이거?’라고 다시 떠오를 정도로 책을 많이 봤다.
그러다가 어떻게 다시 축구로 돌아온 건가.
교수를 하다가 고향인 안산으로 돌아왔다. 축구에 미련이 많이 남아 안산시축구연합회 부회장을 지냈다. 축구로 시작했으니 축구로 마무리하자는 생각이었다. 나도 고등학교 때는 축구를 좀 했고 명지대에 갈 때도 그래도 1,2번 순위로 진학했는데 다치면서 급하게 선수 생활을 접으니 자꾸 미련이 남더라.
그렇게 고생해 법학박사가 되고난 뒤 축구로 돌아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내가 법학박사였으면 그 안정된 삶을 포기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안산시축구연합회와 안산체육회 자문위원, 안산시청소년수련관 이사, 안산 상록경찰서 인권위원 사무총장 등으로 일했고 안산시축구협회장을 하다가 지난 해 9월 안산그리너스 단장이 됐다. 현재도 안산시축구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요새도 현역 생활을 그만두려는 선수들에게는 “너 어차피 여기 떠나도 5~6년 있으면 조기회에서 만난다”고 말한다. 축구 인생이 반을 차지했는데 여길 쉽게 떠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안산그리너스에 오니 어땠나.
단장으로 오기 전에도 안산시축구협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여기 있던 이흥실 감독과 많이 싸웠다. 싸웠다는 게 심각한 건 아니고 악의가 있어서도 아니다. 사실 (이)흥실이가 나하고 동갑이다. 걔는 마산공고 나와서 다른 대학교에 갔지만 나하고 같은 나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봐왔던 사이다. 흥실이는 감독으로서의 고집이 있고 소신이 있어서 안산시축구협회장인 나하고도 의견이 달라 충돌할 때도 있었다. 물론 나는 안산시축구협회장 타이틀 하나밖에 없어서 내 힘이 세진 않았다. 그런데 흥실이가 지난 해 8월 팀을 떠나고 내가 9월에 부임하게 됐다.
안산그리너스가 요즘 성적도 나오고 흥행도 이어가고 있다. 어떤 면에 신경을 쓰고 있나.
작년 9월에 오면서 사회 공헌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최근에는 U-20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황태현 효과도 분명히 있었다. 안산 지역에서 사업을 하거나 장사하는 분들 중에 경기장에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 오지 못할 뿐이다. 경기가 끝난 뒤 식당에 가면 “오늘 경기는 어떻게 됐어요?”라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다. 이제는 안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고 이 사람들이 경기 결과를 궁금해 한다. 한 2년 정도가 더 지나면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될 정도로 관심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물론 우리가 잘 해야 한다.
요새 안산 구단 분위기가 참 좋다.
스태프의 행정 능력은 30%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머지 70%는 팀워크다. 이걸 강조하고 있다. 처음에 구단에 와서는 직원들에게 잔소리를 한 적도 있지만 3박자가 맞아야 성적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조기축구회에서도 성적이 나려면 코칭스태프와 집행부, 회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프로 구단도 프로선수들과 유소년, 지원 스태프들이 서로 잘 맞아 돌아가야 한다. 그걸 물 흐르듯 조정해 주는 게 단장의 역할이다. 바깥에서 안 좋은 이야기가 나돌면 꼭 불협화음이 나온다. 말이 많은 업계인데 어떤 이야기가 들리건 가족은 가족이다. 우리 프런트들이 내부적으로 잘 다져주고 있어 나는 안심하고 바깥 일을 볼 수 있다.
안산은 적은 투자로 효율을 가장 극대화하고 있다.
단장으로 와 최소한의 경비로 효과적인 걸 찾고 있다.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노력 중이다. 돈을 많이 쓰면 당연히 좋은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상황이 아니다. 2부리그에 있는 시민구단으로서 시에 의지하고 않고 주어진 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경기 일정 홍보 현수막만 해도 그렇다. 매 경기마다 홍보 현수막을 바꾸면 좋겠지만 한 번 현수막을 걸 때 여러 경기 일정을 넣어 놓으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비용을 줄여나가고 있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듣고 보니 그렇다.
홍보비로 내려오는 돈을 줄이면 다른 홍보를 할 수 있다. 항상 프런트에 이야기하는 게 “기존 틀만 생각하지 말고 변화를 주자”는 것이다. 거기에 머무르면 안 된다. 육교에 하루 홈 경기 일정만 붙이지 말고 하나를 붙일 때 일주일, 한 달을 붙일 수 있게 만들자고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이런 부분을 다들 인식하고 있어 나는 큰 거만 정리하면 된다. 리스크를 많이 줄였다. 또한 박창희 사무국장이 경험이 있는 친구라 이런 쪽으로 잘 해나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올 1월 우리가 터키로 동계 전지훈련을 갔다. 없는 살림에 해외 전지훈련은 무리였지만 그래도 선수들을 더 잘 지원해 주기 위해 터키로 향했다. 그때 짐을 최대한 줄인다고는 했지만 ‘오버 차지(규정 무게 초과)’가 났다. 선수들한테도 짐을 다 분산시켰지만 그래도 전지훈련을 가는데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았고 결국 규정 무게 초과로 공항에서 항공사에 350만 원을 내야했다. 그런데 그때 박창희 사무국장이 “제가 알아서 해결해 보겠습니다”라고 하더니 350만 원의 비용을 싹 없애고 오더라.
어떻게 해결한 건가.
아직까지 그 방법은 모르겠다. 어떤 노하우가 있는 거 같더라. 아마 우리가 기업 구단이었으면 그 친구한테 보너스를 줬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런 게 없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외 전지훈련을 나가면서도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우리 구단의 노하우다.
최근 출범을 준비 중인 K3리그나 K4리그 팀들에게도 이런 노하우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다. 비용을 최대한 줄이면서도 구단을 운영할 수 있다. 나도 구단에서 제공한 신용카드 한도가 월 100만 원인데 주말에는 이 카드를 안 쓴다. 주말이면 기름값도 내 돈으로 한다. 구단 카드로 한 달에 50만 원 정도 쓰는 것 같다. 구단 예산을 얼마든지 아낄 수 있다.
창단 3년차인 신생 구단이 참 열심히 한다.
오늘 아침 회의에서는 내년 시즌에 어린이 기자단을 선발하는 방안을 놓고 이야기했다. 어린이 기자단을 뽑으면 어린 친구들이 부모와 함께 경기장을 찾을 것이다. 또한 최근 네이버 대표 카페인 ‘안산 시흥 맘 모여라’와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여기 회원수만 10만 명이다. 사회공헌 활동을 하면서 연이 닿았는데 지역민들이 함께할 수 있다면 어디든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올 시즌 마지막 홈 경기 때 카페 회원이 500명에서 1,000명가량 올 예정이다. 카페 대표에게 이날 내 돈으로 치킨 100마리를 쏘기로 약속했다. 그때 오면 당신도 치킨 한 마리 사주겠다.
500명이 치킨 100마리면 좀 적은 거 같은데…. ‘1인 1닭’ 시대다.
나머지는 그래도 그 분들이 먹을 것도 좀 챙겨 오시고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제공하는 치킨은 일단 기본적으로 양이 많다.
알겠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기에서 축구 경기가 열리는지를 몰라서 못 오는 분들이 많다. 안산시축구협회 여성축구회에서도 처음에는 20~30명씩 오다가 요새는 지인들을 데리고 와 그 규모가 50~60명으로 늘었다. 오면 다들 “이런 것도 있었네요”라며 즐거워한다. 관중이 많아지면 정치인들은 당연히 더 관심을 갖는다. 관중이 매번 5천 명씩 오면 관심을 안 가질 정치인이 없다.
그래도 500명이 치킨 100마리면 적다.
사비로 선수들 고기도 한 번씩 사줘야 하니 이해 바란다. 협회장 시절부터 선수들에게 한 번씩 영양 보충을 시켜준다. 낙지도 사주고 저기 시골밥상 가면 애들이 잘 먹는 걸 보고 거기도 몇 번 갔다. 여유가 좀 없을 때는 “거기까진 안 되니 여기에서 먹자”고 하고 사준 적도 있다. 내 사정이 좀 부족할 때는 협회 사람들한테 이야기해서 “네가 한 번 사라”고 한 적도 많다. 그런데 단장이 되고 올해에는 그런 걸 3~4번 밖에 못했다. 오히려 안에 들어와 있으니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다. 부산 원정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 그전에 애들 고기 한 번 살 계획이다.
그러면 관중 500명에게 치킨 100마리를 사는 것도 이해하겠다. 단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얼마 전 서울이랜드와의 홈 경기가 낮 3시에 있었다. 경기가 일찍 끝나는 날이라 지인들과 경기 일정을 마무리하고 당구장에 갔다. 그런데 옆에서 젊은 친구들 네 명이 당구를 치다가 우리가 나가려고 하니 “혹시 그리너스 단장님 아니세요?”라고 하더라. 맞다고 하니까 “저희도 오늘 경기보고 왔어요”라면서 인사를 하더라. 예전 같았으면 바로 “호프나 한잔 하러 가자”고 했을 텐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냥 인사만 했다. 이렇게 우리를 알아주는 이들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내가 그리너스 단장인 걸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가끔 맥주 한잔 하고 있으면 옆에서 구단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안산 시민들이 함께 손 잡고 올 수 있는 구단 문화가 만들어 지고 있는 것 같다.
올 시즌 태국 이주민을 위한 ‘태국DAY’도 대박을 쳤다. 장외에 40여개의 태국 음식과 전통 체험을 할 수 있는 부스를 운영했고 태국 아이돌 가수의 축하 공연도 이어졌다. 그날 관중만 7,143명이었다.
우리 홍보 마케팅 팀에서 구상한 아이디어였다. 앞으로는 베트남이나 우즈베키스탄 등을 주제로 한 행사도 구상해 볼까 한다. 안산에 다문화 가정이 많고 이주 노동자들도 많다. ‘태국DAY’ 때는 시흥 쪽에서 경찰도 몇 번 구단으로 방문해 행사를 협의하고 준비했다. 안산에 외국인 중 태국인이 가장 많겠지만 아마 ‘우즈벡DAY’를 하면 전국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또 다 모일 거다. 다문화와 함께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꾸준히 생각 중이다. 우리 구단주인 윤화섭 시장님도 이쪽에 관심이 많으시다. “이런 행사를 위해 본국에서 오는 사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더 나아가 동남아 출신 선수들을 육성해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많은 것 같다.
또 있다.
뭔가.
선수들을 안산시 조기축구회에 한 명씩 보내려고 했다. 40개 조기축구회에 추첨을 통해 한 명씩 다 배정시켰다. 선수들이 경기가 없는 날 조기축구회에 찾아가 같이 공 차고 맛있는 거 먹고 “형님들, 이번 주 홈 경기에 제가 나오니까 한 번씩들 보러오세요”라고 하는 활동을 하려고 했다. 이 말 한 마디가 사람들을 움직이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시즌에 들어가니 이게 잘 안 되더라. 조기축구회가 일요일 아침에 공을 차는데 그날 원정경기가 있고 그런 경우가 많아서 40명을 일정에 맞게 조기축구회에 보낼 수가 없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데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깝다.
그래서 시즌이 딱 끝나고 휴식기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시간 내서 해볼 생각이다. 아직 이 이벤트를 완성시키지 못해 아쉽다. 올 시즌이 끝나고는 한 번은 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빈치씽코도 조기축구회로 보내는 건가.
물론이다.
거기에서도 경고를 받는 건 아닌가.
어휴, 저거 저거.
올 시즌 정규리그가 이제 딱 네 경기 남았다. 올 시즌 목표는 무엇인가.
사실 성적이 잘 나오고 있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많다. 우리가 돈도 없는데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1부리그로 간다면 시에서도 구단 운영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나눠질 것이다. 1부리그에 가서 꼴등을 하면 또 분위기가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2부리그에 남아 있으면 내년에는 또 어떻게 될까. 이미 올 시즌 우리가 성적을 내 기대치는 높아졌는데 성적이 떨어지면 엄청난 부담이 올 수도 있다. 그때는 어떻게 감당할 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올해 플레이오프에는 가고 싶은데 그 기대치에 대한 부담도 상당하다.
투자에 비해 성적이 나오지 않는 구단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진짜 탄탄한 팀을 만들고 싶다. 시민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즐거운 팀이 된다면 1부리그인지 2부리그인지는 크게 연연하지 않겠다. 유소년 선수들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건강한 팀이 되려면 유소년에 확실히 투자해야 한다. 우리 팀에는 지금 군대 갈 선수들, 나이가 있는 선수들, 잘해서 큰 구단에서 데려갈 선수들이 많은데 이 공백을 외부에서 메우려면 예산상 쉽지 않다. 내부에서 계속 메워줄 수 있어야 건강한 팀이 된다. 유소년과 2군 육성에 상당한 힘을 쏟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안산 단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큰 목표는 무엇인가.
남들은 다 1부리그에 진출하는 걸 목표로 하겠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시에다 무조건 돈을 달라고 손만 벌리는 게 아니라 모든 시민이 1천 원, 1만 원을 투자해 같이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는 구단이 됐으면 한다.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 건강한 팀을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게 목표다.
이종걸 단장은 안산그리너스의 자생력을 강조했다. 촉망받는 축구선수에서 법학박사가 됐고 안산시축구협회장에서 다시 한 번 프로구단 단장으로 변신한 그는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안산그리너스를 이끌고 있다.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그는 지금 안산그리너스의 드라마를 써 내려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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