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근예비역’ 정운이 말하는 크로아티아 귀화설의 진실

[스포츠니어스|김포=전영민 기자] 제주유나이티드는 올 시즌 창단 후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리그 마지막 다섯 경기가 남은 현재 제주는 승점 23점으로 리그 최하위에 위치하며 힘겨운 생존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듯 부진에 빠진 제주의 모습을 보며 제주 팬들은 지금은 잠시 팀을 떠나있는 한 선수에 대한 그리움을 말한다. 바로 김포시민축구단에서 활약 중인 정운이다. <스포츠니어스>는 11일 김포에서 군 생활 말년을 보내고 있는 정운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반갑다.
나도 반갑다.

요즘 근황이 궁금하다. 
상근예비역으로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예비군을 담당하는 일이 주 업무다. 자대는 장기본동대 동사무소에 있는 예비군 중대다. 주로 예비군 통지서를 예비군 선배님들께 돌리고 전화 업무를 하는 등 일을 한다. 선배님들이 전화를 걸어오시면 예비군 훈련에 대해 설명도 드려야 한다. 일과가 끝나면 저녁에는 소속팀인 김포시민축구단 선수들과 훈련을 한다.

예비군들이 까칠한 경우가 많아서 일이 쉽지 않을듯하다.
예비군 선배님들이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하지만 선배님이라고 호칭을 해야 한다. 나도 선배님들의 상황을 이해한다. 예비군 전화를 받는 것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짜증을 한 번씩 내시곤 한다. 그러나 내 신분이 군인이다 보니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

전역은 언제인가?
내년 1월 31일에 전역이다. 오늘 계산해보니 113일이 남았더라. 현재는 상병이다. 드디어 다음 달에 병장이 된다. 군 생활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지금은 괜찮지만 한창 힘든 시기가 있었다. 입대 후 3개월쯤 지났을 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내가 군 생활을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비를 넘기니 시간이 흐르더라.

지난주에 사단 쳬육대회에 나갔다고 들었다.
작년에 우리 팀이 사단 체육대회 축구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올해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올해는 멤버도 좋았다. 김포시민축구단에서 함께 활약 중인 이기제, 임하람과 같이 한 팀으로 체육대회에 나갔는데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경기에서 2-3으로 졌다. 창피했다. 불과 이틀 전 일이다.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겠더라.

현역 선수가 세 명인데 어떻게 예선에서 탈락했나.
체육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포상 휴가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우리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우리 팀이 나 포함 선수 세 명에 일반 병사들로 구성됐었다. 나가기 전에는 우승을 장담했는데 정말 민망했다. 대대장님 앞에서 체면이 안 서더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깊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요즘 컨디션은 어떤가?
오후 6시에 퇴근을 하고 저녁에는 팀 훈련에 참가한다. 하루가 짧게 느껴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예비군 중대에서 업무를 보고 팀 훈련에 참가한 뒤 집에 돌아오면 저녁 10시다. 사실 처음에는 ‘K3리그에 가서 뛰면 경기력이 저하될 텐데…’라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내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K리그1, K리그2와 K3리그의 수준 차이는 있지만 큰 차이는 아닌 것 같다. 미세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FA컵 4강 1차전에서도 화성이 수원을 잡지 않았나.

이곳에 있다 보니 과거 제주에서 뛰었던 시절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환경적인 면에서 K3리그 팀보다는 제주가 좋은 것이 사실이다. 전역 후 제주로 다시 돌아가면 제주로 처음 이적했을 때 마음가짐과 같을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현재 제주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걱정이 많이 된다.

나도 제주의 현재 부진이 믿기지 않는다.
제주로 이적한 후 첫 해에 리그 3위를 하고 이듬해에 2위를 했다. 제주에서 뛰며 자연스럽게 제주가 강팀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해 군대에 입대하며 내심 ‘내가 전역해서 제주로 돌아갈 때는 AFC챔피언스리그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돼서 당황스럽다. 모든 제주 경기를 챙겨본다. 아직 제주와 계약 기간이 남아있다. 제주 동료들과 가끔 연락을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저 “힘내라”라는 말을 해주고 있다.

울산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후 크로아티아로 건너갔다. 그 과정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울산에 입단한 후 계속해서 2군에서 생활을 했다. 결국 2012시즌 종료 후에 구단으로부터 “관계를 정리하자”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종료했다. 이후에 충주 험멜 테스트를 봤다. 그런데 1차 테스트에서 탈락을 하고 말았다. ‘아 축구계에 내 자리는 없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에서 운동을 하며 테스트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마침 내 친구 중 동유럽 2부리그 팀으로 테스트를 보러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한테 “나도 테스트를 보고싶다. 에이전트를 소개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렇게 크로아티아 에이전트와 접촉이 되었는데 에이전트가 “가능하면 빨리 크로아티아로 들어와라”라고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고 크로아티아로 가게 되었다.

날짜도 생각난다. 1월 28일 출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때쯤이면 이미 K리그와 내셔널리그 팀들은 선수 구성이 다 마무리 된 시기지 않나. 그렇기에 ‘어떤 기회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크로아티아에 갔다. 크로아티아에 도착한 후 바로 경기를 뛰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내 활약을 좋게 보셨는지 바로 “계약을 하자”라고 하시더라. 그렇게 크로아티아 생활을 시작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놀라운 이야기다.
그때 내가 25살이었다. ‘잘해야 된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거기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사실상 축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팀에 적응하기 바빴던 것 같다. 정말 미친 듯이 축구를 했다.

현지 선수들의 텃세는 없었나?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로서는 인종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는 상황들이 있었다. 그런데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다들 성격이 좋았다. 텃세는 크게 없었다. 오히려 내가 팀에 합류하니까 선수들이 다들 좋아했다. 다들 친하게 지냈다. 크로아티아에서 처음 있었던 팀이 NK 이스트라였는데 해안가에 있던 팀이었다. 좋은 도시였다. 물론 한국인은 없었다. 동양인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텃세는 없었지만 한국에선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일을 겪기도 했다. 어느 날 우리가 리그 경기 중 전반전에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이며 상대에 뒤지고 있는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우리 팀 구단주가 크로아티아 최고 부자 중 한 명이었다. 사실상 그 사람의 개인 팀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전반전을 마치고 라커룸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구단주가 분노한 표정으로 라커룸에 들어오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선수들에게 엄청 화를 냈다. “너네들. 내 돈 받고 뛰면서 그따위로 축구할거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할 말이 없더라. 한국에서는 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선수들의 텃세는 없었지만 이런 일이 있기는 했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헌데 먼 타지 생활이었는데 힘든 점은 없었나. 
한국 에이전트를 거쳐서 갔으면 계약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내 에이전트는 크로아티아 사람이었고 또 내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처음에 계약서를 받았는데 이해를 하지 못하겠더라. 번역기를 돌려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쉽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계약을 했던 것 같다.

임금 체불도 빈번했다. 그런데 크로아티아 팀들이 머리가 좋은 게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FIFA에서는 구단이 선수에게 임금 체불을 3개월 이상 할 경우 선수가 구단과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크로아티아 팀들이 그 규정을 이용했다. 임금 체불을 3개월까지 하지 않는다. 딱 2개월치까지만 밀린다. 임금 체불이 모든 팀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처음에는 이런 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나중에는 익숙해지더라.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크로아티아 이적 후 첫 팀이었던 NK 이스트라에서 활약이 좋았던 것 같다.
우리 팀이 당시에 중위권 정도에 위치한 팀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고 그 당시에도 유럽에선 풀백 포지션의 선수가 귀했다. 내가 이스트라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다 보니 오라는 팀들이 많았다.

어떤 팀들에서 러브콜을 받았나?
가장 기억에 남는 팀은 현재 오르샤가 뛰고 있는 디나모 자그레브다. 디나모 자그레브 감독이 직접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도 그때는 처음 크로아티아에 갔을 때보다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자그레브 감독한테 “무조건 이적하겠다”고 말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어머니한테도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때 내가 햄스트링 부상이 있었다. 하지만 자그레브와 이적 논의를 하며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부상이 완치되지도 않았는데 복귀를 해 경기를 뛰다가 또 햄스트링이 찢어지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아팠지만 뛰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성숙하지 못했다. ‘이런 기회는 없다’라는 생각으로 욕심을 내니 그게 부상으로 돌아오더라. 그렇게 자그레브 이적이 무산됐다. 그때 자그레브 감독님이 “정운을 원한다”고 공개 석상에서도 여러 차례 발언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뛰는 한 알제리 국가대표팀 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도 나를 리그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풀백으로 꼽았다. 그때가 가장 좋았던 시절이다. 조금 더 잘 치료를 하고 인내심을 가졌어야 하는데 햄스트링 부상으로 3개월을 쉬게 되었다. 원래는 고작 한 달짜리 부상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이적이 무산되었고 결국 쉬다가 시즌을 마쳤던 기억이 난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자그레브 말고 또 이야기를 나눴던 팀들은 어딘가?
크로아티아의 리예카라는 팀과 이탈리아 세리에A의 아탈란타, 그리스의 파나시나이코스 등도 나를 원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일단 우리 팀 관계자들뿐 아니라 이적 논의를 했던 유럽 구단들이 한국의 징병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우리 팀 관계자들에게 “빨리 팀을 옮기고 싶다. 다른 팀에서 짧게 활약을 하고 군대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전혀 문제없다. 우리가 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말을 했다.

내가 설명을 해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결국 리예카와는 이적료 논의를 하다가 협상이 끝났다. 파나시나이코스는 구단주가 내 에이전트에게 직접 연락을 해왔다. 에이전트도 내게 “너 그리스로 가게 될 것 같아”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이후에 갑자기 파나시나이코스가 재정 문제가 불거지며 이적이 무산됐다.

아탈란타는 나를 영입하기 위해 공식 오퍼를 보냈다. 아탈란타 디렉터와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아탈란타가 나와 5년 계약을 원했다. 하지만 나는 “2년 정도 뛰고 군대를 가야 한다”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내 에이전트가 크로아티아 사람이다 보니 중간에서 조율을 완벽히 해주지 못했다. 한국의 군대 문제를 내 에이전트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한국 에이전트가 있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아탈란타 입장도 난감했을 것이다. 나를 믿어서 5년 계약을 하자고 하는데 내가 “안된다”라고 말하니 말이다. 돌아보면 유럽에 늦게 진출했던 것이 조금 아쉽다. 더 어린 나이에 갔었다면 장기 계약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땐 내가 20대 중반이니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다. 그런데 당시 크로아티아 귀화 이야기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당시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이 마땅한 왼쪽 풀백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팀 감독님이 내게 “크로아티아로 국적을 바꿀 의향이 있냐”고 물어보더라. 감독님이 “크로아티아 축구협회에서 너에게 크로아티아 국적을 줄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어떻게 하고 싶냐”고 말씀하셨다. 당시 크로아티아 축구협회가 나와 크로아티아 다른 팀에서 뛰는 한 오스트리아 국적의 왼쪽 풀백 선수 중 한 명을 귀화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미 에이전트가 협회와 내 귀화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크로아티아 국적을 얻게 되면 자연스럽게 병역 문제도 해결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오스트리아 선수가 크로아티아 귀화를 선택하며 내 귀화는 없던 일이 됐다. 에이전트가 “아무래도 너보다는 그 선수가 유럽인이고 외모에서도 크로아티아 사람들과 이질감이 없기에 선택된 점이 있는 것 같더라”라고 말을 했다.

병역을 이행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많이 흔들렸을 것 같다.
나도, 가족들도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정말로 ‘크로아티아 국적을 취득해야 하나, 아니면 군대를 가야 하나’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당시 이 소식이 크로아티아 뉴스에도 나왔다. ‘정운 크로아티아 대표팀 가나?’ 라고 헤드라인이 떠 있더라. 내심 기분은 좋았다. 내가 한국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선수였다. 그런데 크로아티아에서는 나를 인정해준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귀화 제의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만약 당신이 크로아티아 귀화를 선택했다면 크로아티아의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 주역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니다. 내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내가 월드컵을 뛸 정도로 좋은 실력을 가진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내 실력이 그 정도 무대에 있을 정도는 아니다. 다만 귀화 제의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지나간 일이다. 또 이미 군대에 왔기에 큰 미련은 없다.

그렇게 짧고 강렬했던 크로아티아 생활을 끝내고 제주에 입단하며 K리그로 돌아왔다.
원래는 군 입대 전까지 최대한 외국에서 뛸 계획이었다. 한국에서 원하는 팀이 있으면 가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좋으니 크로아티아에 더 있다가 한국으로 가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K리그 몇 팀에서 내게 연락이 왔다. 고민을 하다가 내 스타일과 제주 색깔이 맞을 것 같아 제주를 선택했다.

한국에 오니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도 많아 신기했다. 과거 인천에서 뛰었던 요니치, 지금은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오르샤, 전남에 있었던 토미와 유고비치까지 모두 크로아티아에서 상대 팀으로 만나봤던 선수들이다. 이렇게 크로아티아에서 알게 된 선수들과 한국에서 같이 뛰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크로아티아에서 3년 가까이를 뛰며 상대 선수들을 매일같이 분석했기에 그 선수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 와서도 경기장에서 만나면 그 선수들과 인사를 하곤 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 정도면 크로아티아 통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렇게 크로아티아에서 오래 뛰고 제주에 이적해 첫 해에 시즌 베스트11에 선정됐다.
울산 시절에는 내가 봐도 내가 축구를 못했다. 울산에 있던 형들보다 내 실력이 좋지 않았기에 내가 경기에 나갈 수가 없었다. 제주에 와서 시즌 베스트11에 선정되고 든 생각은 ‘나 같은 선수도 어디서 기회만 주어지고 경기를 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어린 선수들 중에서도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이 선수들이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안타깝다. 나도 한국에서 계속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베스트11에 선정되자 부모님이 좋아하셨던 기억도 난다. 사실 내가 울산에서 방출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그 사실을 모르고 계셨다. 그런데 방출이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과 외식을 하러 갔다. 하지만 도저히 “울산에서 나왔다”고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그냥 “다른 팀에서 테스트를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안될 것 같으면 그렇게 해봐라”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금 더 울산에서 버티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그 자리에서 아버지한테 짜증을 많이 냈다. 집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던 내가 한국에 돌아와 2016시즌에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부모님께서도 정말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당신의 진가를 알아준 조성환 감독한테도 감사한 점이 많을 것 같다. 
제주에서 2년 반 동안 쭉 조성환 감독님과 함께했다. 감독님이 선수 시절 정말 거칠고 끈질겼던 스타일의 선수라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한테도 그런 부분을 강조하셨다. 그런데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다. 끈질긴 부분이 많이 부족했다. 감독님께 혼도 많이 났다. 감독님 덕분에 그런 부분이 개선되며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원래 스타일대로 했다면 잘하지 못했을 것이다.

감독님이 기회도 많이 주셨다. 내가 왼발 크로스에 자신감이 있었는데 우리 팀 공격수들에게도 내가 공을 잡으면 침투 할 것을 강조하셨다. 공격포인트도 그 덕분에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감독님과 좋은 성적도 내고 했는데 감독님이 팀에서 나가시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군대에 가려고 한국에 왔지만 결국 상주와 아산에 가지 않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원래는 제주에서 1년만 뛰고 군대를 가려고 했다. 하지만 베스트11도 선정되고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을 때라서 욕심을 냈다. 그때는 ‘조금만 더 잘하면 국가대표도 갈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팀 분위기도 좋았다. 더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어 상주와 아산에 가지 않았다. 후회는 없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이 선택을 할 것 같다. 제주와 AFC챔피언스리그도 나갔고 K리그 2위도 해봤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았다.
팀에 도움이 되는 것이 1차 목표다. 내가 이곳에서 해야할 역할이 있다. 최대한 좋은 성적을 김포에서 내고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 몸 관리도 잘하고 부상도 조심해야 한다. 이제 내년 준비를 해야 한다. 제주 팬들의 상심이 크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실 것이다. 그래도 제주 선수들이 팀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즌 종료까지 다섯 경기가 남았는데 팬들도 제주의 잔류를 위해 많은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프로축구선수가 되어 K리그에서 활약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정운 역시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기까지 많은 시련을 겪었다. 울산현대라는 빅클럽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정운은 그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울산에서 방출되며 설움을 겪었다

하지만 정운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재기를 위해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크로아티아로 향했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크로아티아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됐다. 이후 K리그로 돌아온 정운은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 정운의 축구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는 말처럼 앞으로도 정운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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