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혁 코치(왼쪽)와 오기환 감독(오른쪽)은 아들과 아버지 사이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고성=김현회 기자] 대를 이어 가는 ‘맛집’이 있다. 시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물려받은 며느리의 식당은 인기가 있다. 그만한 역사와 전통에는 이유가 있고 맛도 보장돼 있다. 오늘 소개할 클럽 축구팀도 대를 이어 받았다. 학원 축구에서 클럽 축구로 전환된 지 이제 막 20여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2대째’ 이어온 클럽 축구팀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부천 원종OH’s FC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4일 강원도 현내운동장에서 벌어진 제7회 고성 금강통일배 전국유소년클럽축구대회에 부천 원종OH’s FC가 출전했다. 이 대회는 한국유소년축구연합회에서 주관하고 고성군과 고성군의회, 고성군 체육회, 아디다스코리아, ㈜피파스포츠, 월간축구사커뱅크가 후원하는 대회다. 유소년 선수들을 위한 이 대회는 전국에서 모인 순수 유소년 클럽팀만 참가할 수 있다. 이 대회에 출전 중인 부천 원종OH’s FC 감독과 코치를 지난 4일 만났다. 이 팀은 오기환 감독과 오재혁 코치가 이끈다.

경기장에서 만난 오재혁 코치는 오기환 감독을 부를 때마다 “감독님”이라는 호칭을 잊지 않았다. 오기환 감독은 오재혁 코치를 부를 때 “오 코치”라고 했다. 이 둘은 철저하게 서로를 존중하며 아이들 지도에 몰두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둘을 만나 특별한 사연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이 둘은 전혀 다른 호칭을 썼다. 오기환 감독은 오재혁 코치에게 “우리 아들”이라고 했고 오재혁 코치는 오기환 감독에게 “아버지”라고 했다. 이 둘은 부자지간이다. 부천 원종OH’s FC는 ‘2대째’ 이어오는 ‘축구 맛집’이다.

부천 원종OH’s FC는 1996년 창단했다.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을 중심으로 오기환 감독이 만든 클럽 축구 팀이다. 실업축구 서울시청에 입단했던 오기환 감독은 이후 곧바로 현역에서 물러나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프로축구가 없을 당시 그는 실업 무대에 진출했다가 고민 끝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는 “그때는 은행 팀에 입단해 금방 대리 직급을 달고 은퇴하는 게 최대 목표였다”면서 “우리 때 선수들은 대부분이 그랬다. 대학교 1,2학년 때 용돈 받고 실업팀 갔다가 ‘와이샤쓰’ 입고 ‘화이트 칼라’가 되는 게 최고였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돼 서울시청에 입단한 뒤 금방 선수 생활을 그만뒀다”고 현역 시절 이야기를 전했다.

오기환 감독은 지도자가 돼 여자 대표팀 수비수 김도연(인천 현대제철)을 발굴했다. 그때 김도연과 함께 지도했던 선수가 바로 아들이자 현재 부천 원종OH’s FC 코치인 오재혁이다. 1989년생인 오재혁은 부천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뒤 건동대에 갔다가 천안시청을 거쳐 2013년 K리그 챌린지 부천FC에 입단했다. 아버지는 밟아보지 못한 프로 무대에 입성한 그는 그해 8경기에 출장하는 등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후 두 시즌 동안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하고 팀을 떠나야 했다. 27세의 나이에 그는 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부천 원종OH's FC는 24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스포츠니어스

결국 오재혁 코치는 현역으로 입대해야 했다. 프로 경력이 화려하지 않은 그가 상무나 경찰청에 입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2016년에 군대에 가면서 결국 그의 현역 프로 선수 생활도 이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는 군대에 가서도 축구를 해야 할, 아니 가르쳐야 할 운명이었다. 1년에 몇 명 뽑지도 않는다는 육군사관학교 체육학 조교로 차출된 것이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대상으로 체육을 가르칠 때 시범을 보이고 도와줄 현역 군인이 필요했고 마침 프로 생활까지 했던 오재혁 코치가 훈련소에 입대하면서 조교로 자대배치를 받게 됐다. 그는 군 생활 동안 ‘축구 가르치는 일’을 했다.

제대하기 전부터 그는 사회로 나가면 축구 지도자가 돼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마침 아버지가 운영하던 부천 원종OH’s FC에서도 오기환 감독을 도울 코치가 필요했다. 때가 절묘했고 그렇게 군대에서 육사 생도에게 축구를 가르쳤던 아들이 코치로 합류했다. 이 둘은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봐 사석에서도 철저하게 호칭을 구분한다. 아버지는 ‘감독님’이고 아들은 ‘오 코치’다. 오재혁 코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할 때가 많다”고 웃었다. 결혼해서 분가한 아들은 지금도 아버지의 전화를 받으면 “네. 감독님”이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오기환 감독도 이제는 ‘오 코치’나 ‘오 선생’이라는 말이 ‘아들’이라는 말보다 더 익숙하다.

오기환 감독은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워낸 아버지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아 선수의 절반은 회비를 반만 내는 장학생으로 받고 있다. 아들인 오재혁 코치는 혹시라도 있을 오해를 없애기 위해 늘 말과 행동을 조심한다. 그는 “부모님들이 혹시라도 감독의 아들이 아이들보다는 감독의 편에 서지 않을지 걱정하실까봐 늘 깊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서 “나도 어릴 때 감독님, 아니 아버지 밑에서 축구를 배웠다. 어릴 때부터 지도자의 꿈이 있었다. 아버지가 20년 넘게 운영해온 팀에서 지도자로 일한다는 게 부담도 됐지만 이 팀을 더 좋은 팀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B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해 이 팀을 더 성장시킬 준비를 마쳤다.

오기환 감독은 감독 입장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아버지의 입장으로 잠깐 속내를 내비쳤다. 그도 24년째 한 곳에서 축구 클럽을 운영 중인 감독이기 이전에 프로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한 한 선수의 아버지였다. 오기환 감독은 “아들에게 ‘네가 내 아들이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더 멋있게 이 팀을 물려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게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오기환 감독은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팀을 24년째 이끌고 있다. 부천 원종OH’s FC는 지난 2월 열린 유소년클럽연맹 굿뜨래배 새싹부 결승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오재혁 코치는 24년 역사를 자랑하는 팀을 이어받을 지도자로서의 사명감이 있다. 그에게 “2대째 운영 중인 맛집 같다”고 농담을 건네자 진지한 답변이 돌아왔다. 오재혁 코치는 “오래된 맛집은 맛도 유지하면서 사람들이 계속 찾고 인정해줘야 한다”면서 “더 공부하면서 지도력을 키워 2대째 운영하게 될 이 팀을 발전시키고 싶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만 축구를 하고 말 게 아니라 고등학교는 물론 성인이 돼서까지 축구를 계속한다는 생각으로 지도하고 있다. 공만 차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축구’를 가르치는 팀을 만들고 싶다. 아버지가 24년 동안 쌓아온 팀의 역사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2대째 축구 맛집’의 역사는 이렇게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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