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러시아, 베트남 유소년이 하나로 뭉친 이유

아산글로벌FC는 정말 '글로벌'한 팀이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고성=김현회 기자] 지난 4일 강원도 고성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제7회 고성 금강통일배 전국유소년클럽축구대회에 출전한 아산글로벌FC의 모습은 조금 특별했다.

이 대회는 한국유소년축구연합회에서 주관하고 고성군과 고성군의회, 고성군 체육회, 아디다스코리아, ㈜피파스포츠, 월간축구사커뱅크가 후원하는 대회다. 유소년 선수들을 위한 이 대회는 전국에서 모인 순수 유소년 클럽팀만 참가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 모두 한 팀으로 참가가 가능하고 여학생은 한 학년 내려서 경기에 임할 수 있다. U-15와 U-12, U-11, U-10, U-9, U-8 팀을 구분해 경기를 치렀다.

프로 무대에서 외국인 선수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이 어린 연령대 선수들 중 외국인 국적 선수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전력 수급을 위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유소년 클럽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한 팀만은 예외였다. 8인제 축구를 하는데 딱 봐도 생김새가 눈에 들어오는 선수들이 절반은 돼 보였다. 이 팀 감독이 한국어로 크게 지시하자 옆에 있는 벤치 선수가 외국어로 이를 전달했다. 팀 이름은 ‘글로벌’했고 선수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그 사연을 들어봤다.

이 팀은 최낙원 감독이 이끄는 아산글로벌FC다. 다문화 가정의 선수들이 뛰는 팀이다. 한국을 비롯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미국, 베트남, 몽골 등의 국적을 보유한 유소년들이 속한 팀이다.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4세도 이 팀에 있다.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인 경우도 있지만 부모 모두 외국인인 경우도 많다. 선수 명단에는 알렉스와 김블라드, 안드레이, 샤샤, 안티무르, 유스백, 트레이 등 우리에게는 다소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올라 있었다.

지금은 해체된 K3리그 아산유나이티드를 운영하기도 했던 최낙원 감독은 처음에는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한국인 유소년을 지도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최낙원 감독은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저쪽 운동장 구석에서 자기들끼리 흙장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너희들도 같이 축구해 볼래?’라고 물었는데 다음 날 운동장에 나가보니 그 아이들이 무려 25명이나 나와 있는 거에요. 자기들끼리 서로 전화통화를 해서 축구하자고 모인 겁니다. 허허.”

그 아이들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최낙원 감독은 깜짝 놀랐지만 한국인 아이들과 차별을 두지 않고 선수들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선수단 규모는 50명이 넘었다. 최낙원 감독은 난처했지만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거절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어서 아이들을 계속 받고 있어요. 다문화 유소년 축구단이 우리나라에 우리밖에 없거든요.” 충남도의원과 아산시의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문화가족시원센터에 말해 고맙게도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이 지원금으로 그래도 유니폼을 맞췄고 코치 강사료를 지급할 수 있게 됐다.

이 팀에는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있다. ⓒ스포츠니어스

최낙원 감독은 이야기를 하면서 ‘다문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비다문화’라는 말을 썼다. 그만큼 아이들을 대하는데 평등하기 위해서다.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재미있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어를 하면 그래도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부모가 다 외국인인 경우 한국어가 전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최낙원 감독은 이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축구가 안 되면 막 러시아어로 욕을 해요. 하도 많이 쓰는 욕은 이제 저도 알아 듣죠. 그래서 운동장에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러시아어를 하면 제가 ‘지금 뭐라고 했는지 한국말로 해봐’라고 말하죠.”

의사를 전달하는데 불편할 때도 많다. 그는 그래서 손짓 발짓이 늘었다. “축구 만큼 아이들 한국어 공부도 시켜야 해요. 그래도 학교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축구를 하면서 배우는 한국어가 더 빨리 늘더라고요. 그리고 막상 경기 도중 의사 소통이 안 되면 이 친구가 통역이 돼 줘요.” 그가 그러면서 가리킨 통역은 10살짜리 고려인 4세 안디아나였다. 아산글로벌FC 선수들이 이날 경기를 치르는 경기장에서는 한국어와 러시아어, 영어가 동시에 들렸다. 최낙원 감독은 경기 내내 손짓 발짓으로 선수들에게 지시했다.

아직은 천진난만하다. 아산글로벌FC U-12 팀이 경기를 하자 아산글로벌FC U-11 팀 선수들이 응원을 하러 왔다. U-11 팀은 곧 바로 옆 경기장에서 자신들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지만 형들과 오빠들을 보기 위해 모여 들었다. 최낙원 감독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들 경기 본다고 온 거야? 오늘도 골 많이 먹고 질 텐데.” 물론 그들에게 승패는 나중 문제였다. 아산글로벌FC 선수들은 경기에 나서는 자체를 즐기고 있다. 최낙원 감독은 축구의 힘을 이야기했다. “국적도 다 다르니 처음에는 애들이 서먹서먹해 했는데 이 축구공 하나 놓고 친해졌어요. 한 번이라도 이기려고 한 팀이 됐죠.”

이 팀에는 고려인 4세도 있다. 골키퍼 안티무르(12세)와 그의 여동생, 그리고 사촌동생까지 같은 팀에서 축구를 한다. 안티무르는 능숙한 한국어로 말했다. “한국에 온지 3년 됐어요. 러시아어가 아직 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는 친구들도 많고 축구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앞으로도 엄마하고 아빠가 한국에 쭉 살 거래요. 저도 한국에 계속 있고 싶어요.” 그러자 카자흐스탄 국적의 안드레이(12세)가 거들었다. “급식이 무료인데 너무 맛있어요. 친구들도 너무 좋고 축구도 너무 좋아요.”

이 아이들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너무 행복해 했다. 하지만 걱정도 있다. 이제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무료로 축구를 할 길이 없다. 최낙원 감독은 이 아이들의 걱정을 전했다. “부모들이 이 팀을 참 좋아해요. 타지에서 맞벌이를 하는데 방과 후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었거든요. 실컷 축구를 할 수 있는 곳이 생기니 정말 고맙다고 말하죠. 그런데 내년 2월에 졸업하는 아이들이 벌써부터 걱정을 해요. 중학교 팀은 안 생기냐고 하죠. 제가 K3리그 아산유나이티드 대표로 있다가 재정 문제 때문에 그만둔 지 3년이 됐거든요. 다시 이런 성인 팀을 부활시켜서 그 산하 유소년 팀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있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첫 경기에서 0-5 대패를 당했던 아산글로벌FC는 이날 두 번째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실력은 다른 팀에 비해 부족한 이들이 모여 일궈낸 값진 무승부였다. 경기가 끝나자 안티무르와 안드레이, 샤샤를 비롯한 선수들이 서툰 한국 말로 골을 넣은 조환희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했다. “환희, 오늘 짱이었어.” 그들은 축구로 이렇게 하나가 돼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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