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퀸컵] 열 골 먹어도 유쾌한 아주대 맨차의 ‘맨땅에 헤딩’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천안=조성룡 기자] 5일 천안 상록리조트.

여대생들의 축구 축제인 2019 K리그 퀸컵 조별예선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다음날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강호 연세대 W-KICKS는 1차전에서 꽤 생소한 팀을 만났다. 아주대학교 ‘맨차’다. 생소한 팀이라는 것은 약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세대 입장에서는 여유로울 수 밖에 없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관건은 승패가 아니다. 몇 골 차 승부가 날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그런데 신기하다. 강호 연세대를 만나는 아주대는 짐짓 긴장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표정이 밝다. 웃음도 넘친다. 대학 클럽 여자축구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아주대가 더 강팀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한 선수에게 “안떨려요?”라고 물어보니 패기 넘치는 답변이 돌아온다. “뭐, 다 이겨버리면 되죠.” 그러자 주장 완장을 찬 선수가 슬쩍 귀띔해준다. “쟤 이번에 경기 처음 뛰어봐요. 뭘 몰라요.”

다시 한 번 천천히 선수들을 살펴봤다.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엉성하게 유니폼을 ‘배바지’ 스타일로 입은 선수부터 키가 작은 골키퍼까지 다들 뭔가 하나씩 엉성하다. 그렇게 웃고 있으면 왜 웃냐며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볼 수 있지만 오히려 같이 웃는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웃는다. 그리고 한 시간 뒤, 그들은 연세대를 상대로 어마어마한 대패를 당하고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최종 점수는 0-9.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대패로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것 같았다. ‘그나마 2차전에는 좀 낫겠지’라는 생각에 2차전이 끝난 뒤 다시 그들을 찾았다. 2차전 결과를 물어보니 몇 명이 황급하게 “쉿!”을 외친다. 알고보니 2차전에 아주대는 인하대 인하윅스를 상대로 0-10이라는 결과를 남겼다. 두 경기 전패 19실점을 한 팀이다. 그런데 2차전이 끝나고도 그들은 즐겁다. 서로 흥겹다. 그 사이에 얕게 한숨을 쉬는 한 선수가 눈에 띈다. ‘승부욕이 강하구나’란 생각에 이유를 물어보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날아든다. “과제를 다 못하고 지금 천안 와서요…”

이날 아주대는 3경기에서 전패를 기록하고 총 무득점 25실점을 기록하며 짐을 쌌다. 2019 K리그 퀸컵에 참가한 16개팀 중에 최하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자존심이 상할 법 하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아주대는 대회를 즐기는 팀이었다. 도대체 그들의 긍정 에너지는 어디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아주대 선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보니 그들은 축구 그 자체를 참 좋아하는 학생들이었다. 지금부터 아주대의 구구절절 웃고 우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나무숲’에서 시작한 아주대의 여자축구 동아리
이야기는 제법 오래 전 한 선수에게서 시작된다. 지금도 아주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정다솜이 그 주인공이다. 정다솜은 어릴 때부터 꽤 축구를 좋아했다. 전문적으로 축구선수의 길을 꿈꾸기도 했다. 그의 모습을 본 축구계 관계자들도 선수의 길을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의 걱정 어린 반대에 꿈을 접었다. 꿈을 접었다고 흥미가 갑자기 사라지는 법은 없다. 정다솜은 취미로 축구를 하면서 평범한 학생의 삶을 살았다.

정다솜은 대학 진학도 ‘축구’를 보고 선택하려고 했다. 그가 관심을 가졌던 대학은 인하대였다. 바로 조별예선에서 아주대를 10-0으로 완파한 그 학교다. 인하대는 나름대로 여자축구 동아리가 잘 갖춰져 있는 곳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세상만사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의 대학 행선지는 전혀 정반대의 곳이었다. 바로 아주대였다. 아주대는 체대가 없다. 아주대 출신 축구선수들이 떠오르지만 그들은 사회과학대학 소속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주대는 여학우의 수가 굉장히 적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일종의 편견일 수 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중에서 축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은 더욱 적다. 특히 ‘남초’ 학교라는 이미지가 있는 아주대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곳에 여자축구 동아리가 있을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축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정다솜은 직접 동아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운명처럼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요즘 대학가는 ‘대나무숲’이라고 불리는 각종 페이스북 페이지와 ‘에브리타임’이라는 어플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다. 정다솜은 어느 날 무심코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깜짝 놀랄 만한 글을 발견했다. “우리 학교는 여자축구 동아리 없나요? 여자도 축구하고 싶어요”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그는 바로 다음 날 그 선배를 만나 본격적으로 여자축구 동아리 모집을 시작했다.

아주대에서 여학우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 중 축구를 하고 싶은 여학우를 찾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들은 무작정 ‘대나무숲’과 ‘에브리타임’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너 한 번 해보라”며 학우를 태그하면 무작정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반 이상이 축구할 생각 없는 장난 댓글이었지만 예상 외로 “축구가 하고 싶었다”라는 여학우도 조금씩 등장했다. 그렇게 10명 가량이 모였다. 그것이 아주대 ‘맨차’의 시작이었다. 2017년이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축구해
겨우 축구 경기를 해볼 수 있는 정도의 학우들이 모였다. 문제는 그들이 모두 축구를 좋아해서 모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운동을 하고 싶어 들어온 학우도 있었고 신기해서 온 학우도 있었다. 감독도 코치도 없는 상황에서 뭘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축구를 조금이나마 아는 정다솜이 선수들의 훈련을 주도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선수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였다. 정다솜은 그 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형편 없었어요.”

장비도 없었다. 훈련을 위한 고깔이나 각종 용품들이 있을리 없었다. 완전히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동아리다. 다행이었던 것은 정다솜의 아버지가 축구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의 집에는 몇 개의 공이 있었다. “비닐 ‘봉다리’에 공 넣고 들고 다녔어요. 고깔 대신 사람 세워놓고 달리고 훈련하고 그랬죠.” 서러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서러움도 축구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가장 난감한 것은 운동장 사용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런 것처럼 아주대 역시 운동장 사용 시간을 수요에 따라 배분한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은 부족했다. 그리고 이제 막 생겨난 맨차에 배분할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그래도 훈련은 해야했다. 선수들은 오전 7시에 학교에 나와 훈련했다. 그러자 다른 학우들의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쟤네들 누구야?’ 커뮤니티에 조금씩 언급되면서 관심이 많아졌다.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은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뜻이다. 아주대 맨차는 동아리 박람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동아리를 홍보했다. 그러자 조금씩 신입 부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아리가 생기고 1년이 지나자 맨차는 대회에 나갈 수 있을 정도의 동아리 회원을 확보했다. “정말 하고 싶어도 몰라서 구석에 숨어있던 친구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죠.” 드디어 그들은 유니폼도 맞추고 나름대로 팀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제는 회원이 40명 가량 된다.

남의 스타킹 빌려 신으면서도 웃음 넘치는 아주대
하지만 그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여전히 선수들의 압도적인 대다수는 ‘축알못’, 즉 축구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제 축구를 배워야 하는 선수들이었다. 체대생이 대다수를 이루거나 애초부터 축구를 좋아하는 선수들이 모인 다른 대학과는 상황 자체가 달랐다. 그러다보니 웃지 못할 일도 여럿 발생했다. 물론 이제는 추억이지만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난 2018년 서울대에서 열리는 ‘샤컵’이었다. ‘신흥 최약체’인 아주대는 샤컵에 참가해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아주 기초적인 것을 깜빡했다. 장비였다. 축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모든 선수가 기본적인 장비를 갖춰야 한다. 유니폼과 축구화, 정강이 보호대, 스타킹 등이 그렇다. 그리고 대부분의 장비는 단체 경기의 특성 상 통일성을 요구한다. 이 때 아주대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스타킹이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유니폼과 함께 스타킹 또한 통일성이 요구된다. 적어도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은 같은 색의 스타킹을 신어야 한다. 하지만 샤컵에 참가한 아주대 선수들 중 일부는 그 사실을 몰랐다. 아주대 유니폼의 스타킹은 남색이었지만 흰 스타킹을 들고온 선수를 비롯해 스타킹을 아예 지참하지 않은 선수도 있었다. 한 명의 선수가 아쉬운 상황에서 스타킹을 이유로 그 선수를 무작정 제외할 수는 없었다.

결국 아주대는 다른 선수가 한 번 신었던 땀에 젖은 스타킹을 빌려 신거나 흰 스타킹을 유성펜으로 칠해 남색으로 맞춰 신고 뛰어야 했다. 물론 결과는 전패였다. 이 이야기를 하던 주장 정다솜은 경기력에 대해 “답답할 때도 있다”라고 토로했지만 옆에서 다른 선수들은 “힘들 때 웃어야 일류다”라고 변죽을 올린다. 또 한 번 아주대의 라커룸이 까르르 웃음으로 넘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들은 이번 대회에서 3패를 했다.

‘승리’가 아닌 ‘축구’를 위해 뛰기에 유쾌한 아주대
그래도 아주대는 많은 것이 발전했다. 부원이 늘었을 뿐 아니라 코칭스태프도 생겼다. 경기도가 여성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한 지원금을 제공했고 은퇴 선수의 재취업을 돕는 사회적 협동조합 플랜비스포츠가 코칭스태프를 파견했다.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도 아주대 맨차를 지도하는 것은 험난한 일이다. 김진우 감독은 “그래도 체대생이 아닌 선수들 중에서는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다”라면서도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는 않는다”라고 웃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아주대 맨차는 작은 것에도 기뻐한다. 김 감독은 “과거에는 경기를 하면 대패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공 한 번 못만져보고 슈팅 한 번 못날리고 경기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라면서 “그런데 요즘은 제법 체대생을 상대로 공도 뺏고 슈팅도 날리고 패스도 한다. 물론 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순간이 소중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아주대 맨차의 또다른 웃음 포인트다. “한 번 좋은 장면이 나오면 다른 팀들에는 별 것 아니지만 우리는 ‘너무 잘한다’면서 호들갑을 떤다. 그것 마저 웃긴다”라고 껄껄 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주장 정다솜의 바람은 소박하다. 정식 동아리가 되는 것이다. 아주대의 동아리는 가등록 동아리, 준동아리, 정식 동아리의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맨차는 아직 준동아리다. 그래서 장비를 보관할 동아리 방도 따로 없다. 운동장 사용 시간도 여유롭게 확보하기 어려워 항상 밤에 훈련을 한다. 정다솜은 말했다. “낮에 동료들을 보는 것이 정말 오랜만이다.” 그러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낮에 보니 더 못생겼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번 2019 K리그 퀸컵에서 아주대는 가장 공을 못찬 팀이었다. 하지만 제일 흥겨운 팀이었다. 그들은 아마 당분간은 계속해서 질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해서 땀을 흘리고 대회에 출전할 것이다.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질 것을 뻔히 알면서 꿋꿋하게 대회에 나선다. 이유를 묻자 ‘현답’이 돌아온다. “져도 우리는 웃잖아요. 너무 못해서 웃기고 대패한 것도 웃기고 이러면서 대회 나가는 것도 웃겨요. 그렇게 다같이 축구하면서 웃어요.”

문득 승부의 세계에 둘러싸여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래, 축구는 원래 이러려고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축구의 승부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승리는 곧 축구의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축구를 보고 축구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를 까먹고 있었다. 우리는 축구가 ‘재밌어서’ 즐긴다. 아주대 맨차는 밑바닥에서부터 ‘맨땅에 헤딩’을 하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들이 일깨워주는 축구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wisdragon@sports-g.com

이 기사의 단축 URL은 https://www.sports-g.com/wodbj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