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수원 서정원 전 감독, “여행 다니고 공부하며 재충전 중”

서정원 감독을 만나 수원에서 사퇴한 이후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지난 18일 낮,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수원삼성을 6년이나 이끌었던 서정원 감독이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얼굴은 더 좋아졌고 피부는 검게 그을려 있었다. “요새 유튜브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하필이면 이날 수원삼성은 화성FC와의 FA컵 4강 1차전을 앞두고 있었다. 이 인터뷰는 이날 밤 수원삼성의 패배와 이임생 감독의 사퇴 암시 발언이 있기 전에 한 인터뷰였다는 점을 미리 언급하고 싶다.

현직 감독을 흔들기 위한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 이 인터뷰는 추석 연휴 이전에 미리 계획돼 있었고 일정 조율 끝에 18일에 진행됐다. 서정원 감독은 “오늘 일정이 있어서 화성으로 경기를 보러 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으로는 수원을 응원하고 있다. 수원이 우승할 것”이라고 말한 뒤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서정원 감독과의 대화 내용을 공개한다. 그는 여전히 수원에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수원을 떠났을 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서정원 감독은 현역 은퇴 이후 첫 휴식을 즐기고 있다. 그는 수원에서 감독으로만 6년의 세월을 보냈다. ⓒ프로축구연맹

얼굴이 더 좋아졌다.
다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감독직을 내려놓고 물러서 있으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오랜 만의 인터뷰인 것 같다. 그 동안 언론에 잘 안 나왔다.
많은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다 정중히 고사했다. 오랜 만에 이런 인터뷰에 임한다. 오랜 만에 이렇게 얼굴을 보니 나도 반갑다.

고맙다. 요새 어떻게 지냈나.
2007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곧바로 지도자를 시작해 지난 해까지 계속 일을 했다. 몇 개월도 쉰 적이 없었다. 나에게 휴식이 필요한 시기였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살았다. 유럽에 두 달 동안 가 있었다.

유럽 어디 어디에 갔나.
영국하고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지에 다녀왔다.

그건 여행이 아니라 축구 연수 아닌가. 어째 다녀온 나라들이 딱 축구 연수 느낌이 난다.
여행 겸 축구 관람이 목적이었다. 내가 감독을 하면서 축구를 보는 것과 쉬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다니면 축구를 보는 건 달랐다. 유럽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수들도 만나서 식사도 하고 왔다. 유럽에서 돌아온 뒤에는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여행을 즐기는 삶이 참 부럽다.
현역 은퇴 후 처음으로 맞는 휴식이다.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동의한다. 오랜 만에 푹 쉬고 있는 것 같다.
여행을 마친 뒤에는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현재까지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동양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다. 역사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유명한 분들이 스토리를 듣는 것도 좋다. 리더십에 관한 강의도 많다. 나는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고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배울 게 참 많더라. 동양인문학과 축구 감독은 연관성이 없는 분야가 아니었다. ‘아, 이런 분들은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구나’라는 게 도움도 많이 된다.

감독에서 학생이 된 건가.
그런 셈이다. 요즘에는 아마추어 축구 동아리 학생들을 지도하는 유튜브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쉬니까 더 바쁜 것 같다. 벌써 9월이다. 지난 달에 감독을 그만둔 것 같은데 벌써 9월이 됐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다.

그는 여전히 옛 제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이제 술도 좀 즐기고 인스턴트 음식도 좀 즐기나. 현역 생활 때는 물론이고 감독 시절에도 몸에 좋지 않은 건 일절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지금도 비슷한 것 같다. 술과 담배, 커피, 탄산음료, 인스턴트 음식 등을 멀리하는 게 나에게는 습관이 됐다. 얼마 전에 수원삼성 제자들이 집으로 찾아와 밥을 같이 먹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감독님이 이거 먹지 말라고 했는데”라면서 오히려 제자들이 먼저 이야기하더라. “이건 안 좋으니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이제는 웃으면서 식사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됐다.

나는 술과 담배, 커피, 탄산음료, 인스턴트 음식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건 정말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운동하는 선수들이 요즘 들어 더 음식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요새는 인스턴트 음식이 너무 잘 나오는데 그런 걸 우리 선수들이 아무 생각 없이 “맛있는 데 좀 먹자”고 생각하면서 즐겨먹으면 안 좋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현역 시절에 어느 정도로 몸 관리를 했는지 말해달라.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말하면 정말 싫어한다. “나 때는 말이야” 이런 말 하면 안 된다. 몸 관리가 정말 중요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먹힌다. “우리가 운동하는데 있어서 이런 음식은 안 좋다”고 잘 설명해야 한다. 이런 게 쌓이고 쌓이면 운동선수로 롱런할 수 있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또 한 수 배워간다. 요새도 K리그와 수원삼성 경기는 꾸준히 챙겨보는 편인가.
그렇다. K리그도 꾸준히 보고 있고 특히나 다른 팀보다는 수원을 항상 챙긴다. 제자들한테 항상 연락이 오니까 팀이 돌아가는 상황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수원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는 편인데 경기장에는 잘 가지 않는다. 수원 홈 경기는 지난 달에 딱 한 번 갔고 최근 성남과의 원정 경기도 한 번 찾아갔다. 그 외에는 대부분 텔레비전으로 경기를 봤다.

수원 경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애정이 있던 팀이고 지금도 응원하는 팀이다. 내가 감독을 했을 당시 선수들이 그대로 뛰고 있다. 이제는 편하게 경기를 보자고 생각했다가도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긴 하더라.

수원 이야기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것 같다.
맞다. 지금 이임생 감독이 열심히 최선을 다해 팀을 운영하고 있다. 현직 감독이 있는데 내가 팀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이임생 감독을 보면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전임 감독으로서 괜히 미안하기도 하다.

서정원 감독은 6년 간의 수원 감독 생활을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프로축구연맹

당신은 팀을 떠났지만 여전히 수원 선수들이 지금도 당신을 따르고 있다. 집에도 자주 찾아온다고 들었다.
정이 많이 들었고 여전히 끈끈하다. 나도 선수들을 존중해줬고 선수들도 나에게 늘 존중을 표현해줬다. 요즘도 수원 제자들에게 연락이 자주 온다. 누구 한 명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수들이 연락을 해와 안부를 묻는다.

수원 선수들 SNS를 보면 당신의 집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자주 올라온다. 행복해 보이더라.
꼭 선수들이 한 번 왔다가 가면 홍철이 SNS로 “감독님, 왜 꼭 제가 대표팀에 있을 때만 모이는 거에요?”라고 한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꼭 홍철이 안 오더라. 그래서 그 다음 번에도 선수들이 집으로 다 모일 때 보니 홍철이 또 없어서 물어보니 또 대표팀에 가 있었다. 가만 보니 수원 경기 스케줄이 없어서 제자들에게 저녁 식사 초대를 할 때는 대부분이 A매치 휴식기였다. 그때만 선수들이 모였으니 대표팀에 가 있는 홍철이 올 수가 없고 단체 사진에도 늘 없다. 홍철이 그런 사진을 보면 “왜 꼭 나 없을 때만 애들 불러요”라고 뭐라고 한다.

감독직에서 물러났는데도 제자들이 단체로 꾸준히 찾아오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더 고맙다. 특히나 은퇴한 애들이나 고참들이 때 되면 항상 연락도 해오고 찾아오기도 한다. (조)원희부터 해서 (이)용래, (정)성룡이, (정)대세 이런 애들이 빠지지 않고 나를 챙겨준다. J리그 시즌이 끝나면 일본에서도 선수들이 단체로 놀러 온다. 이렇게 쉬고 있을 때 제자들이 자주 찾아오고 하는 게 너무 고맙다.

하지만 이게 수원 현 감독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뭔가 전직 대통령이 정치하는 느낌이다.
그것 때문에 대단히 조심스럽다. 선수들이 집으로 놀러와도 팀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않는다. 만나면 사람 대 사람으로만 이야기한다. 오히려 이임생 감독이 한 번씩 “우리 선수들한테 이야기 좀 해주세요”라고 하기도 한다. 힘들 때 이런 것도 가끔 공유하기도 하는데 이건 내가 조심해야 한다. 현 감독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그런데 밖에서 만나도 될 걸 왜 집으로 초대하나. 집에 손님이 오면 불편하다.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니고 제자들이 열 명씩 당신의 집을 방문하더라. 식사 대접하는 것도 일이다.
그냥 나가서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우리 아내가 집으로 초대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도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려면 집에서 맛있는 걸 만들어 주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고 아내가 이야기한다. 내가 현역 때부터 몸 관리 때문에 음식에 철두철미해 아내는 이때부터 음식의 중요성을 잘 안다. 유럽에서 생활할 때부터 아내도 많이 느꼈다. 그래서 이제는 열 명이 넘는 선수들이 놀러 와도 혼자 척척 요리를 한다.

아내가 요리를 할 때 당신은 놀고 있나.
무슨 소린가. 나도 열심히 돕는다. 요새 그렇게 안 하면 큰일 난다. 나도 정말 많이 도와준다.

서정원 감독은 온화한 리더십으로 수원을 이끌었다. ⓒ프로축구연맹

당신을 따르는 선수들이 정말 많다. 인성이 훌륭한 건 축구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나도 당신을 존경한다. 하지만 지도 스타일이 너무 온화하다는 지적도 있다.
아마 바깥에서는 100%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축구 전문가들이나 해설위원들도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와 같이 했던 선수들은 잘 알 거다. 평소에는 선수들을 잘 대해주지만 훈련장과 경기장에서는 모든 걸 쏟아내고 집중하라고 다그친다. 온화해 보여도 축구에서 만큼은 선수들을 힘들게 했다. ‘가르치는 스킬’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고 지금도 고민 중이다. 팀에는 선수가 한 명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선수를 각자의 눈높이에서 성격도 맞춰 이끌어야 한다. 나는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여긴다. 선수들을 야단치고 하면 금방 고치고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이건 사탕발림이다.

지도 철학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달라. 당신의 지도 철학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온화하면서도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게 힘든 길이긴 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도 없이 이야기했던 크라머 감독의 영향이기도 하다. 온화한 건 맞지만 선수를 이해하게끔 하기 위한 나만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바깥에서 볼 때는 내가 제자들에게 한 없이 온화하게 대하는 것 같지만 훈련할 때는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한다.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온도차가 있다.

이제는 이 이야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수원 시절 경기 막판 실점이 잦아지면서 ‘세오타임’이라는 좋지 않은 별명도 붙었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말일 것이다. 그런 ‘타임’이 여러 번 있었는데 코치진과 당연히 손을 보려고 노력했다. ‘왜 이렇게 됐느냐’는 분석도 하고 선수들과 미팅도 하고 영상도 수 없이 돌려봤다. 데이터 분석도 끊임 없이 했다. 팬들은 단순히 “왜 저 팀은 저래?”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물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안에서는 우리도 끊임 없이 연구했고 민감하게 칼을 댔다.

분석을 통해 왜 ‘세오타임’이 벌어지는지 찾았나.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우리가 다른 팀에 비해 경기가 많긴 했다. FA컵과 K리그, AFC 챔피언스리그를 계속 치러야 했다. 선수들의 체력이 뚝 덜어진 상황에서 로테이션 없이 경기에 임해야 했다. 경기에 많이 나가는 선수들은 연속으로 열 경기씩 뛰었고 그렇다고 중요한 경기가 연속적으로 있는데 쉴 수도 없었다. 이런 게 계속 누적되다보니 후반 막판에 실점하는 일이 많았다.

선수들도 스트레스가 심했을 것 같다.
안 되는 부분은 훈련을 통해 극복하려고 했고 정신적으로도 마지막에 좀 더 집중하자고 주문했는데 그러면 또 선수들이 얼마나 부담이 될까 고민도 많았다. 하나부터 열 가지의 이유를 가지고 ‘처방을 어떻게 해야하나’, ‘어떤 게 옳은 처방인가’ 수도 없이 생각했다. 그런데도 안 되니 정말 힘들긴 했지만 지도자는 이러면서 또 배우는 것 같다. 힘들수록 얻는 건 분명히 있다.

그 중 가장 아쉬운 실점을 꼽아본다면.
정말 많은데 그 중에서도 특히 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가시마 앤틀러스전이 가장 아쉬웠다. 1차전 원정에서 2-3으로 패한 뒤 홈에서 경기를 했는데 우리가 3-1까지 앞섰다. 딱 세 번째 골이 들어가는 순간 경기장 전체가 흥분했다. 벤치부터 관중, 선수까지 다 흥분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 명확해 진 게 있다. ‘선수들이 너무 흥분했다’는 걸 직감했다. 아마 그 때 영상이 있으면 찾아봐도 좋다. 나는 세 번째 득점 이후 화가 났다. 선수들을 하나 하나 불러다가 “절대 흥분하지마”, “냉정하게 해야 돼”, “차갑게 경기 해”라고 주문했다. 애들이 붕 떠 있는 게 보였고 그러다 결국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두 골을 내주면서 합계 점수 5-6으로 탈락했다. 상대팀 골이 들어가는데 미치겠더라. 그 경기는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쉽다. 더 냉정했어야 한다.

염기훈과 손을 맞잡고 있는 서정원 감독의 모습. ⓒ프로축구연맹

당신이 수원삼성 감독으로 있을 때 FC서울의 데얀 영입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그 과정을 말해줄 수 있을까.
우리가 외국인 선수에게 쓸 수 있는 금액이 많으면 선수를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하지만 수원은 그 예산이 팍 줄었다. 작은 범위에서 선수를 찾아야 한다. 20~30만 달러에 데려오려면 정말 쉽지 않다. 전문가인데 우리도 보면 딱 안다. ‘저 선수 잘한다’ 싶어서 “몸값이 얼마냐”고 하면 “500만 달러다”라고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주 작은 범위에서 한정된 돈으로 외국인 선수를 찾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그래도 검증이 됐는데 약간은 기량이 떨어진 선수들 쪽으로 찾아야 했다.

그러다 데얀을 찾게 된 건가.
그런 쪽으로 포커스를 뒀다. 대표적인 예가 정대세다. 예전에는 잘 했는데 살짝 기량이 떨어진 선수, 그리고 이적료는 없는 선수를 찾아야 했다. 처음 대세를 데리고 올 때는 말도 많았다. “안 된다”, “이미 죽은 선수다”라는 반응이었다. 조나탄도 그랬다. “걔 브라질 갔는데 경기에도 못 나오더라”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의 폭이 좁았다. 일단 골을 잘 넣는 선수였다면 ‘오케이’를 했다. 데얀도 마찬가지다. 나이는 많고 말도 많은데 골을 넣을 줄 알았다. 워낙 예산이 적으니 다른 핸디캡은 당연히 안고 가야한다. 그런 핸디캡은 함께 시즌을 준비하면서 내가 해소해야 한다.

‘부자 구단’이었던 수원삼성도 많이 힘이 빠진 것 같다. 수원삼성이 이런 상황이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 선수들을 다시 다독여서 폭발하게 만드는 게 내 역할이다. 자극도 많이 주고 미팅도 많이 했다. 손이 많이 가는 선수들이다. 성격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틱틱 대는 애, 소심한 애… 천차만별이다. 소심한 성격은 뭐라고 하면 더 못한다. 이런 선수들이 생각보다 무척 많다. 자극을 줘 기량을 폭발시켜야 하는 선수들도 있다.

데얀이 FC서울 출신이라는 부담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서울 출신이라는 건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데얀이 수원으로 굉장히 오고 싶어했다. 나한테도 “수원에 가고 싶다”는 의욕을 보여줬었다.

데얀이 황선홍 감독을 싫어해서 그런 거 아닌가. 그 영향도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도 어찌 보면 동기유발이다. 사실 그때 울산을 비롯한 몇 개 구단에서도 데얀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안다. 그런데 데얀이 우리를 택했다. 나에게는 고마운 선수다.

당신은 수원삼성과 안양LG의 라이벌 구도에 불을 지핀 선수였고 데얀은 수원삼성과 FC서울의 구도를 더 뜨겁게 만든 선수가 됐다.
맞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많지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 데얀도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내가 처음에 그랬지만 안에는 속 사정이 많다.

당신이 그 라이벌전의 1번이었다면 데얀은 역사의 두 번째 페이지다.
그러면 3번은 누가 될까.

3번은 모르겠고 1.5번은 이상호 아닐까.
인생사는 참 모르는 거다.

서정원 감독은 6년 간의 수원 감독 생활을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 ⓒ프로축구연맹

지난 해 8월 수원삼성 감독직을 내려 놓겠다고 선언했지만 두 달 만에 복귀했다. 이런 일이 프로에서는 흔치 않다.
내가 생각해도 몇 개월 만에 사퇴를 번복하고 팀에 돌아오는 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구단주께서 나를 좋게 보셨고 1년에 몇 번씩 진지한 대화도 나눴다. 나에 대한 믿음이 강했고 내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도 계속 나를 잡으셨다. 전화를 계속 주셨고 (염)기훈이를 비롯한 선수들도 집에 여러 번 찾아왔다. “같이하자”고 했는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돌아간다고 했었다. 구단주한테는 계속 전화가 오고 선수들은 계속 집에 찾아오는데 미치겠는 거다. 나는 그만두겠다고 하고 나왔는데 더 불편해진 거다.

하지만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돌아간다는 마음을 접고 팀에 복귀했다.
그때 정말 힘들었다. 이건 감독을 그만둬도 더 힘든 거다. 팀에 복귀하면 그림이 이상해진다는 걸 누가 모르겠나. 어린 애도 그건 다 안다. 하지만 그런 걸 다 알면서도 복귀하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아니,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자꾸 주변에서 “수원삼성이 다 와해됐다”는 소리도 하더라. 그 상황에서 아내도 힘들어했다. 나는 안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자꾸 주변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니 아내도 힘들었다. 지인들에게 자문도 많이 구했고 결국 10월에 복귀했다. 그때도 딱 이번 시즌까지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돌아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
다 선수들 때문이다. 여러 번 나를 찾아왔다. 구단주는 계속 전화를 했다. 그런 높은 위치에 있는 분이 계속 연락을 주신다는 건 쉽지 않은 일 아닌가. 이런 상황이 펼쳐지니 “팀이 갈 데까지 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당시 내부 상황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미치겠는 거다. 내가 복귀해서 그 선수들과 훈련장에서 다시 훈련하는 건 진짜 상상해 본 적도 없는데 상황이 자꾸 내몰렸다. 이미 언론과 팬들에게는 사퇴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바꾸고 모든 걸 감수하면서 팀에 돌아가야 했다.

복귀하던 그 때를 기억하나.
복귀하고 첫 훈련할 때 기억이 생생하다. 훈련장에 딱 가니 선수들이 나를 보고 환호해줬다. 그래서 ‘아 내가 여기에 다시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선수들이 환호하고 박수쳐 줄 때 가장 큰 힘을 얻었다.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더라. ‘내가 왜 이 선수들을 떠난다고 했을까’ 생각을 들기도 했고 ‘나한테 온 상처를 왜 선수들에게도 줘야 했을까’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팀에 돌아가 약속대로 두 달 뒤인 지난 해 12월 완전히 사퇴하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복귀하면서 내가 팀과 다시 잘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에 돌아가야 했다. 이 애들하고 같이 가자고만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도 많았고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생각했나 싶었다. 내가 부족한 게 많아 선수들이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부족해서 팀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 건가 생각도 많았다. 이렇게 미안한 감정 뿐이었는데 그런데 내가 다른 팀에 가기 위해 사퇴했다는 말도 나왔다. 내가 그 상황에서 다른 팀 제의를 받는다고 어떻게 가겠나. 나는 그때는 어떤 팀의 제안이 와도 못한다고 했다. 그게 맞는 거고 내 마음도 그랬다.

만약에 K리그나 AFC 챔피언스리그, FA컵 중 하나를 우승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당신이 팀에 남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우승을 했어도 달라진 건 없을 것이다. 시즌이 끝나면 떠나겠다는 생각이 100%였다. 어떤 성과가 나와도 나는 그만둔다는 완고한 생각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선수단을 장악할 수 있을지도 밖에서 보면 의문이기는 했다.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잠시 복귀하면서도 “겨울까지만 하겠다”고 강조를 많이 했다. 그런데도 구단주께서는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달라. 나가면 안 된다”고 하셨다. 선수들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내가 먼저 한시적인 감독이라는 걸 강조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복귀하는 건 솔직히 맞지 않는 상황이다. 물론 당시에도 팀에 대한 애착은 강했다. 감독으로만 6년을 함께한 팀인데 그런 감정이 없을 수가 없다. 다만 내가 떠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늘 잘 되기를 바라는 팀이고 나를 기다려 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늘 있다. 팬들도 나를 예우해 주셨는데 거기에 보답을 못하면 내가 나오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감독 사퇴를 선언했다가 선수들의 만류로 두 달 만에 복귀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프로축구연맹

수원에서 사퇴한 이후에는 J리그 진출설이 나왔다. 사간 토스로 간다는 보도까지 나왔었다.
나도 그때 깜짝 놀랐다. 제안이 오는 팀은 많이 있었다. 그 팀 말고 다른 외국 팀에서도 제안이 많았는데 그때는 내가 정말 새롭게 팀을 맞는다는 건 단 1%의 마음도 없었다. 수원에서 나와서 정말 쉬고 싶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내가 이 상황에서 수원 감독을 그만두고 어떻게 다른 팀으로 가겠나. 제안이 올 때마다 “도저히 지금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내가 이렇게 지쳐 있는데 어떤 팀에 가면 그 팀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당시에는 새 팀을 맡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다 거절했다. 유럽에서 여행 중일 때도 연락이 온 팀도 있다.

J리그 말고 중국 팀도 있었나.
일본도 있고 중국도 있었다. 동남아 팀도 있었다.

국내 팀은 없었나.
있었다.

왜 이렇게 사퇴하겠다는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을까.
내가 선수들에게 영향과 도움을 많이 받는다. 내가 잘해서 팀들이 나를 원하는 게 아니라 다른 팀에 가 있는 수원 출신 선수들이 구단에 내 이야기를 잘 해주는 것 같다. 그런 루트를 통해 구단에서 정보를 접하고 제안을 해온다. 선수들이 나를 좋게 평가해 줬다.

선수들에게 잘 해준 게 이런 큰 그림 때문이었나.
뭐 그런 거까지는 아니었다. 내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게 많았다. 그런 마음으로 이 선수들도 현역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늘 옳은 쪽으로 가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하는 일에 있어서 선택은 간단하다. 우리들 마음 속에는 딱 두 가지 길이 존재한다. 옳게 가는가, 옳지 않게 가는가다. 선수에게는 “운동해”와 “아픈 데 좀 쉬자”는 두 개의 갈등이 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다. 그런데 몸은 좀 고생해도 나는 이럴 때 기준은 간단하다. 옳은 쪽을 택해야 마음이 편하다. “아픈 데 좀 쉬면서 하자”는 쪽을 택하면 몸은 쉬어도 마음이 얼마나 찝찝한가. 단순한 이야기지만 이런 쪽으로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수원삼성을 진짜로 떠날 때는 어떤 마음이었나. 홀가분했나. 아쉬웠나.
아쉬움이 컸다. 무엇보다도 나는 수원에서 내가 있는 걸 다 쏟아서 제대로 된 팀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우리 상황은 좋지 않은데 그 이상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최대한 효과를 내야 했고 나는 우리 유스 시스템을 보란 듯이 정착시키고 싶었다. 유스 출신 선수 중에 1년에 2~3명씩은 꼭 프로 선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원삼성의 유소년 틀은 그래도 내가 많이 만들어 놓지 않았나 생각은 한다. 유스 출신으로 대학에 가 있는 애들도 한 20명 싹 소집해서 연습 경기 시키고 관찰해 다시 끌어 올렸다. (김)종우 같은 애가 그런 데서 나온 거다. 하지만 그걸 다 완성하고 나오지 못한 건 지금도 아쉽다.

서정원 감독은 때로는 조심스럽게, 때로는 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스포츠니어스

유스 시스템의 ‘완성’이라는 게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 있었다. 나는 언젠가 우리나라 최초로 유스 출신 11명을 선발로 내세우는 걸 꿈꿨다. 당장은 안 되지만 하나 하나씩 만들어 나가면 언젠가는 유스 출신으로 베스트11을 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김)건희부터 (권)창훈이까지 그렇게 시작을 했고 6년 동안 감독으로 있으면서 조금씩 만들어 나갔다고 생각한다. 수원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걸 놓고 나와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나를 아껴준 팬들에게도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나.
수원을 떠난 지 이제 9개월이 넘었다. 곧 1년이 된다. 내가 정말 ‘축구 감독은 안 해야겠다. 행정 일을 해야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한 번 더 감독을 해보고 싶다. 기회가 잘 맞으면 내년부터도 할 수 있다. 운 좋게 빨리 새로운 팀을 찾을 수도 있고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이제부터는 조금씩 준비를 하려고 한다. 나를 원하는 팀이라면 국내건 국외건 크게 상관은 없지만 수원을 상대하는 국내 팀 감독이 된다면 대단히 어색할 것 같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은 해외로 나가볼까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서정원 감독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수원삼성과 이임생 감독에 대한 질문에는 대단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최대한 예의를 갖췄고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수원 시절 선수들 이야기가 나오니 눈빛이 변했다. 그가 수원 시절 느꼈던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다. 그는 두 달 만에 수원에 복귀해 다시 처음으로 훈련장에 간 이야기를 꺼내며 살짝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가 왜 선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서정원 감독은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이 느껴졌고 그 누구보다도 수원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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