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잔류’ 아닌 ‘생존’이라고 부르자

인천유나이티드
인천이 한 건 '잔류'일까 '생존'일까. ⓒ인천유나이티드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며칠 전 메쟈리그 루헨진, 아니 메이저리그 류현진 경기를 틀어놓고 일을 하고 있는데 해설위원이 말한다. “왜 요쉐는 방어율이라는 말을 안 쓰고 평균자책점이라는 용어를 쓰는지 아쉐요?” 평소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지만 이 해설위원의 말을 들으니 수긍이 갔다. 방어율은 말 그대로 방어하는 능력을 수치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높을수록 좋아야 한다는 게 이 해설위원의 말이었다. ‘방어율이 0점대’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도 논리에 맞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해설위원은 방어율이라는 말 대신 평균자책점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 듣는다면 ‘뭐 그런 단어 하나를 가지고 유난을 떠느냐’고 할 수도 있다. 잘 던지고 잘 쳐야 하는 야구에서 방어율을 평균 자책점으로 하나 바꿔 부른다고 그 경기의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용어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써야 그 내용이 전달된다. ‘센터링’ 대신 ‘크로스’라는 말을 처음 썼을 때도, ‘세트플레이’ 대신 ‘세트피스’를 썼을 때도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어느새 금방 입에 붙는다. 이렇게 잘못된 용어, 더 제대로 된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용어가 있다면 지적하고 수정해야 한다. 그게 스포츠를 다루는 언론의 자세이기도 하다.

요즘 K리그는 승격과 강등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나 마음에 자꾸 걸리는 용어가 있다. 바로 ‘잔류’다. 1부리그에서 2부리그로 떨어지지 않고 살아남는 걸 우리는 흔히 ‘잔류’라고 부른다. 언론에서도 ‘경남과 제주, 인천 중 잔류할 수 있는 팀은 어디인가’라는 보도를 내놓는다. 몇 년 간 2부리그로 떨어지지 않은 인천은 ‘잔류왕’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서서히 ‘잔류 DNA’가 살아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승강제가 생긴 뒤 지속적으로 들어온 단어라 우리는 이 ‘잔류’를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사장놈 눈치 보여서 퇴근도 못하는 이런 게 ‘잔류’다. ⓒ스포츠니어스

하지만 ‘잔류’는 이 상황에 별로 맞는 용어가 아니다. ‘잔류’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뒤쳐져 남을 때 주로 쓰는 단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잔류’를 ‘뒤에 처져 남아 있음’을 뜻한다면서 ‘남음’으로 순화해서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의원이 탈당을 하는 상황에 그는 잔류를 선언했다’, ‘미처 월남을 하지 못하였던 사람들과 후퇴하지 못한 국군의 잔류 부대원들은 산으로 들어가 게릴라를 조직하였다’ 등의 예시를 들었다. ‘잔류’는 자신의 의지로 살아남았다는 의미보다는 피동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1부리그에서 살아남는 게 ‘잔류’는 아니다.

2부리그로 강등이 되고 싶은데 다른 경쟁팀들이 너무나도 못해 의지와 상관없이 1부리그에 남으면 그게 ‘잔류’ 아닐까. 나는 어제 부천-수원FC전 취재를 갔다가 기자회견이 끝나고도 마지막까지 기자실에 남아 있었다. 그게 ‘잔류’다. 한 번 만난 모임에서 어색하게 ‘단톡방’을 만들었는데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에 쌓이는 300개의 메시지를 의미 없이 보고만 있는 게 ‘잔류’다. ‘잔류’의 의미를 정확히 생각해 보면 ‘잔류왕’과 ‘잔류DNA’, ‘잔류 경쟁’ 같은 말이 다소 민망하기도 하다. ‘잔류’를 놓고 경쟁한다는 게 따지고 보면 굉장히 웃긴 일 아닌가. 제발 이 어색한 ‘단톡방’에서 나가고 싶은 데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도록 경쟁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K리그에서의 살아남기 위한 이 치열한 경쟁은 ‘잔류’ 대신 ‘생존’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생존’은 ‘살아 있음’ 또는 ‘살아남음’을 뜻한다고 돼 있다. 이게 딱 1부리그에서 계속 뛰고 싶은 팀을 위해 필요한 적절한 단어 아닐까. “XX이 K리그1 ‘잔류’에 성공했습니다”보다는 “XX이 K리그1 ‘생존’에 성공했습니다”가 더 올바른 표현이다. ‘잔류’와 ‘생존’은 엄연히 그 의미가 다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생존’의 예를 들며 ‘실종자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다’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 오염’ 등을 소개했다. ‘잔류’가 ‘뒤에 처져 남아 있음’을 뜻하는데 비해 ‘생존’은 정말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살아남음’을 적절히 표현한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이 단어 하나에는 많은 의미가 담겼다. K리그1에서 버티기 위해 펼치즌 처절한 싸움을 ‘잔류’가 아닌 ‘생존’이라고 불러야 그 가치가 더 빛날 것 같다. 처음부터 이 단어는 잘못 쓰여졌고 이제라도 바꿔 부르는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 나는 지난 주말 추석을 맞아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그런데 그날 새벽 3시까지 취하지 않고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로서 ‘생존’과 ‘잔류’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취하지 않고 ‘생존’했는데 이걸 ‘잔류’라고 표현한다면 내 간에 미안한 일이다. 이제부터 ‘잔류’와 ‘생존’을 정확히 구분해서 쓰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 올 시즌 K리그1에서는 또 어떤 팀이 ‘생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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