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안양 김형열 감독이 공격수를 뛰게 하는 방법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스포츠니어스|안산=조성룡 기자] “이게 다 방법이 있지.”

15일 안산 와~스타디움. 안산그리너스와 FC안양의 하나원큐 K리그2 2019 경기가 열렸다. 안양에 굉장히 중요한 승부였다. 이 경기 전까지 안양은 승점 41점으로 4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 안산은 승점 42점, 공교롭게도 승점 1점 차 3위였다. 마지막 4라운드를 남겨놓은 시점에서 두 팀은 3위 자리를 놓고 싸워야 했다. 평소 경기에 대한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던 김형열 감독도 이번 경기만큼은 “중요한 경기”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래도 안양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추석 전부터 김 감독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래도 우리 이제 다 돌아와.” 안양은 몇 경기 동안 정상적인 선수 운용이 어려웠다. 팔라시오스가 부상을 당했고 최호정 등이 퇴장 징계로 빠졌다. 선수 층이 비교적 얇은 안양의 입장에서는 한 명이 아쉬웠다. 이는 곧 결과로 나왔다. 안양은 주춤했다. 그 사이에 안산이 조용하게 치고 올라와 3위 자리를 차지했다.

안양과 안산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안산은 빈치씽코와 황태현 등이 빠져 고민이었다. 반면 안양은 김 감독이 말한 주축 선수가 모두 돌아왔다. 하지만 안양의 선발 명단에는 한 명이 빠져있었다. 팔라시오스였다. 김 감독의 선택은 팔라시오스 대신 모재현이었다. 무언가 안양의 숨겨진 전략인 것일까? 이에 대해 묻자 김 감독은 특유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한 마디 던졌다. “사실 별 거 없어.”

팔라시오스를 ‘조커’로 활용하는 김 감독의 심리전
이야기는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팔라시오스는 김형열 감독과 면담을 가졌다. 그는 감독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이번 안산전에는 선발부터 뛰지 않고 교체로 뛰고 싶다”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김 감독은 흠칫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팔라시오스를 교체 카드로 활용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오매불망 팔라시오스의 복귀를 기다렸지만 김 감독은 몇 분 더 인내하기로 결정했다. 다 이유가 있었다.

김 감독은 안산의 전력을 면밀히 분석했고 이렇게 평가를 내렸다. “공수 전환이 정말 빠른 팀이다. 공격을 할 때도 숫자가 많고 수비를 할 때도 숫자가 많다.” 김 감독이 세운 전략은 ‘빈 틈’을 찾는 것이었다. “90분 내내 안산이 그렇게 뛴다면 정말 대단한 팀이다. 그런 팀이라면 우리는 100% 진다. 하지만 안산 선수들도 체력적인 부담이 있다. 분명 공수 전환 과정에서 체력 저하로 인한 빈 틈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그 때를 노린다.” 그 순간 팔라시오스를 투입하겠다는 이야기다.

다시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자. 김 감독은 팔라시오스의 이야기를 듣고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왜?” 팔라시오스는 자신의 상황을 말했다. “이렇게 거친 K리그 수비수들과 전반부터 충돌한다면 후반전에는 부상 부위가 다시 아파서 뛰지 못할 것 같다.” 반은 진심이고 반은 꾀병일 수 있는 이야기였다. 팔라시오스는 U-22 대표팀과의 연습경기 등 안산전을 앞두고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고 있었다. 몸 상태에 별 문제는 없었다. 일단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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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순간 한 가지 묘수를 생각했다. ‘이렇게 된 김에 에이스의 부담감을 좀 심어주자.’ 그래서 그는 팔라시오스 옆의 통역에게 말했다. “코칭스태프와 의무팀 다 불러와.” 스태프들이 오자 김 감독은 화를 냈다. “시간이 이렇게 많았는데 팔라시오스가 아직까지 제대로 뛰지도 못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치료 제대로 한 거야?” 김 감독의 불호령에 스태프들은 깜짝 놀랐다. “죄송합니다.” 냉랭한 분위기에 팔라시오스도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화를 낸 김 감독은 “네가 말한 대로 교체 명단에 넣겠다”라고 말한 뒤 팔라시오스를 돌려보냈다. 평소 온화한 모습의 감독을 봤던 팔라시오스에게는 제대로 긴장했을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것이 모두 연기였다는 것을. 이 이야기를 하며 김 감독은 껄껄 웃었다. “그만큼 팔라시오스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해줬으니 정말 열심히 뛸 것이다. 팔라시오스도 ‘내가 더 열심히 뛰겠다’라고 하더라.”

신뢰로 힘 실어준 안양의 ‘광주대 커넥션’
팔라시오스가 빠진 안양의 공격 선발 명단은 모재현과 조규성으로 꾸려졌다. 알렉스도 있었다. 김 감독은 팔라시오스가 없는 공격진을 조규성과 모재현 투톱에 알렉스가 2선에 위치하는 형태로 꾸렸다. 알렉스는 큰 걱정이 없었다. 측면에서도 2선에서도 알렉스는 제 몫을 하고 있었다. 고민거리는 모재현과 조규성이었다. 아무래도 팔라시오스와 호흡을 맞추던 조규성에게는 모재현이 어색할 수 있었다. 모재현 또한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지만 더 분발이 필요했다.

김 감독은 팔라시오스와 달리 두 어린 선수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짧고 굵게 이야기했다. “둘이서 한 번 알아서 해봐. 대학교 다닐 때처럼 뛰어봐.” 과거 모재현과 조규성은 광주대에서 함께 뛰었던 적 있다. 당시 모재현은 광주대의 에이스였고 조규성은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꿀 때였다. 특히 김 감독은 모재현을 신경쓰고 있었다. “모재현은 분명 팔라시오스에게 없는 것을 갖고 있다. 공 간수 능력이다.”

하지만 모재현은 안양에 입단한 이후 3경기에 출전해 아직까지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그래도 김 감독은 모재현을 계속해서 신뢰하고 있었다. 그가 살아나야 안양에는 또다른 공격 옵션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안양의 공격진은 강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선수들이라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서 모재현이 필요하다. 김 감독은 농담 삼아 귀띔했다. “대학교 때는 (모)재현이가 더 잘했다니까?”

김 감독은 모재현과 조규성에게는 팔라시오스처럼 딱히 불호령을 내리거나 동기부여를 주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팔라시오스 덕분이었다. 팔라시오스가 벤치에 앉아있다는 것 하나 만으로 두 선수에게는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팔라시오스가 잘하는 것은 다들 알아. 후반전에 교체 투입될 것도 다들 알 거야. 교체되는 사람이 자신이 되지 않으려면 선발 공격수들이 정말 죽기살기로 뛰어야지. 알렉스도 마찬가지야. 나는 전략대로 교체할 생각이지만 선수들에게는 일종의 동기부여지. 선발이 잘하면 팔라시오스도 뛰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를 거야.”

딱 하나 빼고 다 맞아 떨어진 김형열 감독의 작전
뚜껑을 열어보니 김 감독의 동기부여 작전은 제대로 들어맞았다. 조규성과 모재현은 전반전부터 몸을 아끼지 않고 수비수들과 경합했다. 조규성과 함께 투톱으로 나선 모재현의 존재감도 제법 드러났다. 결국 이는 골로 이어졌다. 전반 30분과 34분 조규성은 연달아 골을 넣었다. 전반 43분에는 알렉스도 골을 넣으며 제 몫을 했다. 이 골을 도운 것은 공교롭게도 모재현이었다. 안양의 공격진들이 전반전 45분 동안 맹활약한 셈이다.

김 감독의 머리는 아플 수 밖에 없었다. 공격수들이 워낙 잘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후반 9분 팔라시오스가 교체 투입됐다. 그는 모재현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경기장 밖으로 나오는 모재현에게 김 감독은 격려와 악수로 위로했다. 김 감독은 모재현에 대해 “공 관리를 정말 잘했다. 빌드업도 잘했다”면서 “정말 열심히 해줬는데 근육에 약간 이상이 생겨서 바로 바꿔줬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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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시오스도 종횡무진 활약했다. 공수를 오가며 쉴 새 없이 뛰었다. 특유의 폭발적인 스피드와 기술은 여전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격포인트가 없다는 것이었다. 팔라시오스는 몇 차례 위협적인 기회를 맞이했지만 골로 연결하지 못했다. 팔라시오스가 골맛까지 봤다면 안양의 공격진은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2% 부족하지만 어쨌든 김 감독의 노림수는 적중했다. 안양은 안산을 3-1로 꺾고 승점 3점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경기 후에도 김 감독은 공격진들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런 선수들의 감독이라 행복하다”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단 팔라시오스에 대해서는 농담을 던지며 껄껄 웃었다. “팔라시오스가 고개를 못들고 있더라. 90분 뛸 거 3~40분만 뛰게 해줬는데 골을 못넣어서 지금 울상이다. 하하. 팔라시오스도 자신의 특기를 잘 보여줬다. 득점만 했으면 팔라시오스도 행복했을 것이다. 본인 역시 욕심을 많이 부렸는데 골을 못넣었다. 아마 걱정이 많을 거다.”

팔라시오스가 돌아오고 여기에 모재현이 가세하면서 안양은 좀 더 다양한 공격 옵션을 확보했다. 하지만 최적의 조합을 찾고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심어주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안양의 공격은 단조로워 보여도 쉽게 막을 수 없다. 여기에는 여우와도 같은 김형열 감독의 ‘밀당’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여우같은 감독의 조련술에 선수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승점 3점을 가져왔다. 3위 탈환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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