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김신욱 활용법, 그리고 우리가 낀 색안경

이 모습은 골 장면보다 더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김신욱이 골키퍼와 공을 같이 골대에 넣었다. 김신욱은 10일 투르크메니스탄 아시가바트의 코페트다그 스타디움에서 킥오프한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과 원정 경기 후반 종료 직전 문전 상황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 냈다. 이용이 올린 크로스를 그대로 머리로 받아 넣었지만 골키퍼를 밀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김신욱은 경합 과정에서 골키퍼를 그대로 몸으로 밀며 헤딩했고 골키퍼와 공은 골문 안으로 들어갔지만 결국 파울이 선언됐다.

‘뻥축구’? 재미와 실속은 다른 문제
이 장면은 승패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2-0으로 앞선 한국은 결국 경기를 그대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이 대단히 인상 깊었다. 이런 위협적인 공격수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건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에 대한 직접적인 지적이라기보다는 축구계 풍토를 말하려는 거다. 지금껏 가만히 돌이켜 보니 우리는 신체적 능력이 우월한 선수를 활용한 전술 자체에 대한 적지 않은 거부감이 있었다. ‘패스 축구’가 더 가치 있다는 색안경을 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반문하고 싶다. 장신 공격수를 쓰면 정말 명장이 될 수 없을까. 장신 공격수를 활용한 축구는 정말 ‘티키타카’ 보다 하찮은 것일까.

점유율 축구, 패스 축구를 해야 명장 같다. 이건 꼭 한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마찬가지다. 피터 크라우치나 니콜라 지기치 같은 장신 공격수를 활용한 감독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전술 없이 선수의 신체 조건에 기대 결과를 얻어내려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싶다. 키 큰 공격수를 전방에 박아놓고 ‘롱볼’ 축구를 해도 뭐 어떤가. 결과만 잘 나오면 된다. 짧게 짧게 패스를 통해 눈이 돌아가는 조직력을 선보여도, 단순하지만 긴 패스 한 방에 상대를 위협해도 똑같은 축구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 골은 짧은 패스를 연이어 하면서 대단한 조직력으로 완성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신체 조건이 좋은 선수를 안 쓸 이유가 없다. 농구를 예로 들어보자. 김신욱 같은 신체 조건이 좋은 선수를 쓰지 않고 자꾸 점유율 축구, 패스 축구를 하려고 하는 건 농구 경기에서 슈팅 가드와 포인트 가드로 다섯 명을 채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재간 있는 선수 다섯 명으로 농구 팀을 구성해 현란한 개인기와 조직력으로 무장하는 게 훨씬 더 우월한 농구일까. 230cm짜리 센터에게 공을 투입해 멋 없는 슛으로 싱겁게 득점해도 똑같은 득점이다. 위협적인 건 무조건 빠르게, 짧게 패스하고 점유율이 높다고만 되는 건 아니다. 물론 재미면에서는 신체 조건이 월등한 선수가 활약하는 것보다는 오밀조밀하고 빠른 플레이가 더 낫긴 하다. 이걸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뭐 투르크메니스탄전을 대표팀 경기라 의무감으로 봤지 재미로 봤나.

김신욱 카드는 아시아에서 대단히 위협적일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김신욱을 안 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축구는 골을 더 많이 넣어야 이기는 경기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축구는 ‘땅따먹기’의 성격이 강하다. 패스를 통해 우리 진영에서 상대 진영으로 공을 보낸다. 중간에 끊기면 그 자리에서부터 다시 공을 빼앗아 와 다시 전진해야 한다. 우리가 많은 땅을 차지하면 골을 넣을 수 있는 확률이 커진다.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는 건 그래도 공을 길게, 멀리 띄우는 것보다는 가까운 곳으로 보내는 게 그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공을 멀리 보내는데도 그 공이 우리 소유가 될 수 있는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면 어떨까. 우리는 그만큼의 땅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 ‘롱볼’ 축구가 폄하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안 돼서 못하는 거면 이해하는데 이게 가능한데도 안 하는 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대부분의 감독은 신체 조건이 우월한 공격수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이런 ‘롱볼’ 축구는 구닥다리라고 여긴다.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한 많은 감독은 경기에서 지고 있는 막판에 급하게 키 큰 선수를 전방에 세워놓고 ‘롱볼 축구’라는 걸 스스로도 부끄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런 축구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런저런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급하게 공격을 하려는 이 전술이 달갑지는 않지만 애초에 확실한 콘셉트를 정한 축구라면 장신 공격수를 활용한 경기가 뭐 어떤가.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신 스트라이커 우성용과 황연석이 그리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축구에서는 너무 키 큰 공격수들을 박하게 대하는 것 같다.

굳이 김신욱과 같은 좋은 카드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벤투 감독이 김신욱을 더 자주 활용하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 장신 공격수를 활용하는 축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으면 한다. 투르크메니스탄전 후반 막판 보여준 김신욱의 모습은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비록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아시아권에서 김신욱은 대단히 무서운 공격수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 일본 대표팀에는 이런 선수가 없어서 못 쓴다. 일본에 이런 선수가 선발로 나서서 전방을 헤집고 다닌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좋은 자원을 후반 막판에 활용하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황의조와 김신욱의 공존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김신욱 카드를 후반에 잠깐만 쓰는 건 아쉽다.

김신욱이 있다는 건 상대에게 상당한 부담이다. ⓒ대한축구협회

쉽게 경기하는 것도 능력이다
‘아시아용’이라는 건 비하에 가까운 표현이다. 세계 무대에서 통하지는 않는 선수가 아시아 무대에서만 잘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시아용’도 분명히 위협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아시아를 뚫어야 월드컵에 갈 수 있다. 투르크메니스탄과 북한, 레바논, 스리랑카를 이기고 월드컵 3차예선에서는 일본과 이란, 호주 같은 팀을 이겨야 세계 무대로 간다. 진짜 아시아에서 통하는 선수가 누구인지에 대해 한 번 고민해 보자. 더군다나 우리는 아시아 예선에서 수비적인 팀을 상대로 공격을 풀어나가야 한다. 의미 없이 후방에서 공을 돌리며 패스 길을 계속 찾는 건 ‘티키타카’가 아닌 ‘뒷키타카’가 될 수도 있다. 김신욱을 활용하면 오히려 다른 공격수들에게도 뒷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

김신욱은 아시아 무대에서는 대단히 위협적인 옵션이다. 또한 우리가 자꾸 ‘패스 축구>롱볼 축구’라는 색안경을 끼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돌아보자. 우리 골문에서 상대 골문까지 패스 30번을 해 넣어도 1점이고 긴 패스 한 번에 헤딩으로 넣어도 1점이다. 장신 공격수도 분명히 재평가 받았으면 한다. 쉽게 쉽게 경기를 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우리도 한 ‘뚝배기’ 해보자. 꼭 김신욱에게 헤딩만 바라는 게 아니다. 그는 등지고 발로 플레이하는 것도 일품이다. 이렇게 버텨만 주면 이는 아시아에서 상대팀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김신욱은 아시아에서 충분히 통할 만한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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