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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전영민 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이 조지아전에서 황희찬을 윙백으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실험을 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5일(한국시간) 터키 이스탄불 바샥셰히르 파티흐 테림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지아와의 A매치 친선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거뒀다. 대표팀은 황의조가 두 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했지만 전반 39분과 후반 44분 아나니제와 빌리타이아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아쉽게 승리에 실패했다.

이날 벤투 감독은 조지아를 맞아 황희찬을 오른쪽 윙백으로 기용하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황희찬은 후반 16분 이동경과 교체되기 전까지 약 60분간 경기장을 누볐으나 2% 아쉬운 모습만을 남긴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최근 황희찬은 소속팀 잘츠부르크에서 놀라운 활약을 선보이고 있었다. 황희찬은 이번 시즌 개막 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여섯 경기에서 4골 7도움을 기록하며 유럽 진출 후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황희찬을 공격진이 아닌 오른쪽 윙백 자리에 기용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단조로웠던 공격 작업, 실패로 끝난 2019 아시안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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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의 최대 고민은 밀집수비 격파였다. 수비 라인부터 이어지는 철저한 빌드업 플레이를 추구하는 벤투 감독은 대표팀 감독 부임 후 수비 지향적인 팀을 상대하는데 곤욕을 치르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19 아시안컵이었다. 당시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중국을 만났다. 대표팀은 수비 라인을 올려 맞불을 놓은 중국에는 2-0 완승을 거뒀다. 하지만 선수비 후역습의 방식을 택한 필리핀과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는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필리핀과 키르기스스탄은 대표팀을 상대로 수비 라인을 최대한 내리는 이른바 '텐백' 전술을 가동했다. 하지만 두 팀을 상대로 벤투 감독은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실패했다. 선수들의 플레이는 정적이었고 위협적이지 않았다. 골문 앞에 버스를 세운 상대 수비수들을 끌어내기 위해 무언가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지만 대표팀의 플레이는 단조로웠다.

좌우 윙백들은 높은 위치까지 전진해 계속해서 크로스를 올렸다. 하지만 이미 최소 세 명에서 최대 다섯 명의 상대 수비수들이 우리 공격수들을 감싸고 있었기에 의미있는 공격 작업이 나오지 못했다. 윙백이 상대 진영 높은 곳까지 전진해 공격 작업을 도출하는 것이 벤투 축구의 핵심이었지만 윙백들이 공을 잡은 후에는 그저 의미없는 크로스만이 반복됐다.

오히려 좌우 윙백들이 전진하자 상대는 역습 상황에서 우리의 측면 뒷공간을 노렸다. 다행히 김민재와 김영권이 탄탄한 수비력을 보였기에 망정이지 이들이 아니었으면 조별리그에서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또한 필리핀과 키르기스스탄의 공격력이 수준 이하였던 점도 대표팀의 조별리그 3연승에 한몫했다.

토너먼트에 진출한 대표팀은 16강에서 바레인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고 8강에서 개최국 카타르와 격돌했다. 하지만 카타르를 상대로도 대표팀의 플레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선발로 나섰던 김진수와 이용은 벤투 감독의 지시대로 열심히 공격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상대 공격진 높은 위치에서 계속해서 여러 번의 크로스를 올렸다. 그러나 이미 카타르는 이를 간파하고 있었고 너무나도 쉽게 대표팀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용과 김진수는 공격진에서 공을 잡고 어떠한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듯했다. 그렇다면 윙백이 공을 잡은 다음 기타 선수들을 이용한 세부적인 전술이 필요했지만 이마저도 전무했다. 결국 혼란에 빠진 두 선수는 제공권보다는 수비 뒷공간 침투, 스피드 등에 장점이 있는 황의조를 상대로 의미 없는 크로스만을 반복했다.

단조로운 플레이를 선보인 대가는 패배였다. 대표팀은 후반 33분 하템에게 선제 결승골을 허용하며 카타르에 0-1 패배를 당했다.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바레인을 상대로는 답답한 경기력으로도 어떻게든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한 단계 높은 전력을 자랑하는 카타르에는 이 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

이처럼 악몽으로 끝난 아시안컵 이후 벤투 감독은 많은 교훈을 얻었다. 벤투 감독은 대부분의 아시아 약팀들이 한국을 상대로는 수비 라인을 내린 극단적인 수비 전술을 취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이러한 수비 지향적인 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조로운 공격 작업이 아닌 새로운 옵션이 필요하다고 봤다.

밀집 수비 격파 위한 벤투의 새로운 옵션 '황희찬 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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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벤투 감독이 조지아전에서 황희찬을 윙백으로 기용한 것은 아시아 약팀들을 대비로 한 새로운 시도임이 분명해 보였다. 벤투 감독은 황희찬을 오른쪽 윙백으로 기용하는 비대칭 윙백 전술을 통해 공격 작업 시 황희찬과 기타 공격수들의 호흡을 기대했다. 이렇듯 벤투 감독은 당장의 조지아전이 아니라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만날 약체 팀들을 내다봤다.

황희찬은 확실한 장단점을 갖춘 선수다. 일부 팬들은 지나치게 직선적이고 투박한 황희찬의 플레이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오뚝이 같은 플레이 스타일은 그간 대표팀에 많은 성과를 가져다주곤 했다. 힘과 스피드를 겸비한 황희찬의 직선적인 플레이는 대표팀이 답답한 흐름에 직면했던 여러 상황들에서 활력소 같은 역할을 했다. 기술적인 선수를 선호하는 벤투 감독이지만 황희찬만큼은 벤투 감독의 선택을 계속해 받았다.

물론 조지아전에서 황희찬이 보여준 모습은 기대 이하였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황희찬은 매우 혼란스러운듯했다. 벤투 감독이 황희찬에게 기대했던 공격수들과의 호흡과 그의 전매특허인 시원한 돌파는 전무했다. 본래 투박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그의 단점만이 엿보일 뿐이었다.

수비 상황에서는 더욱 심각했다. 황희찬은 대표팀의 수비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다. 황희찬은 본래 수비 상황 시 지능적인 수비보다는 활동량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약점을 커버하는 선수다. 하지만 윙백 자리는 조금 더 영리하고 기다리는 수비가 필요한 포지션이다. 결국 윙백 자리에 선 황희찬은 수비 상황에서 위치 선정, 수비 복귀, 일대일 수비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황희찬이 흔들리자 대표팀의 수비 역시 무너졌다. 전반전 스리백의 오른쪽 중앙 수비수로 나선 박지수는 여러 차례 상대 공격수들과 일대일로 맞붙는 상황을 겪었다. 황희찬이 대표팀의 수비 시 제대로 된 위치에 있지 못했기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결국 박지수는 전반 종료 후 김영권과 교체되어 경기장을 떠났다.

기대 이하였던 황희찬의 윙백 투입,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긍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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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조지아전 황희찬의 윙백 투입은 2% 아쉬운 결과만을 남겼다. 그러나 이 실험이 의미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간 새로운 시도에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벤투 감독은 우리를 상대로 수비적인 전술을 취할 것이 자명한 아시아 약팀들을 대비해 '황희찬 윙백'이라는 파격적인 실험을 했다. 물론 결과는 아쉬웠다. 하지만 고집을 꺾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는 벤투 감독과 코치진의 변화가 엿보였다는 점에서, 또 벤투 감독이 대표팀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벤투 감독의 '황희찬 윙백 기용'은 그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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