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 제공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대표님, 가도 될까요?"

불과 며칠 전 일이다. <스포츠니어스>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 밖에 없었다. 9월 5일과 9일 대한민국 U-22 대표팀은 시리아와 두 차례 친선전을 제주도 서귀포에서 치르기로 했다. 친선경기지만 무게감은 꽤 컸다. 내년 1월 태국에서 개최되는 AFC U-23 챔피언십 본선의 전초전 성격이었다. 이 대회에 출전할 선수들의 옥석을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가릴 가능성이 컸다.

중요했기에 꼭 가야 할 것 같은 취재였다. 이야기를 꺼내자 <스포츠니어스> 김현회 대표는 되물었다. "얼만데?"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저렴합니다." 그렇게 제주도 취재는 확정됐다. 그리고 차근차근 출장 준비를 진행했다.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렌트카를 예약했다. 전지훈련장을 비롯한 주요 취재 장소의 동선도 체크했다. 물론 맛집과 필수 여행 코스까지.

하지만 불과 출발 하루를 앞두고 날벼락이 떨어졌다. 경기가 취소됐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두 차례 예정된 시리아전은 시리아 축구협회의 행정 미숙으로 취소됐다. 선수들의 여권을 제때 갱신하지 않은 탓이다. 모든 티켓은 환불 조치될 예정이고 U-22 대표팀은 파주NFC로 이동해 연습경기 상대를 구할 예정이다. 완벽한 '시리아 노쇼'다. '호날두 노쇼' 사건과 달리 이번에는 중개사도 없다. 전적으로 시리아 축구협회의 책임이다.

문득 지난 날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유벤투스전 당시 <스포츠니어스>의 임형철, 전영민 기자는 취재를 갔다 상당히 당황스럽고 복잡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유벤투스의 지각 대응과 '호날두 노쇼'라는 기상천외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위로의 한 마디 해주지 못할 망정 "앞으로 절대 없을 일 잘 보고 왔네"라고 놀렸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뒤 내가 이렇게 당할 줄이야.

가장 걱정되는 것은 팬들의 상처다. 다른 지역과 달리 제주도는 환경의 특수성이 있다. 제주도에 가기 위해서는 꽤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낭만이 있고 두근거리는 곳이다. 이번에도 많은 팬들이 소중한 시간을 쪼개 제주도행 비행기를 예매했다. 호텔도 렌트카도 예약했다. 이 중에는 오롯이 축구 만을 위해 제주도로 향했을 팬들도 있다. 물론 이미 제주도에 가 있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취소됐다.

생각할 수록 시리아 축구협회의 행정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양 국가의 축구협회가 친선경기를 합의한 것이 6월이다. 3개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가족여행도 이렇게 준비하면 부모님에게 욕 잔뜩 먹는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축구협회가 '여권 갱신 미비'를 이유로 친선경기를 취소한 것은 황당할 뿐이다. 차라리 태풍 링링 때문에 경기가 취소됐다면 이런 황당함은 좀 줄어들었을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도 상당히 머리가 아플 것이다. 티켓 환불도 문제고 그동안 시리아전을 앞두고 해왔던 각종 홍보와 행사 등이 모두 허사로 돌아간 셈이다. 제주도 잔류 대신 파주NFC로 이동을 택한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태풍이 북상하고 있는 가운데 제주도에서 시리아를 대체할 연습 경기 상대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된 김에 '제주도를 휴가 삼아 가서 한라산도 등반하고 예쁜 카페에서 SNS에 올릴 설정샷도 좀 찍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제주도에는 태풍 '링링'이 북상하고 있다. 현재 서귀포는 한때 시간당 100mm 가량 폭우가 내리고 있다. 그래서 다 취소했다. 그나마 저렴했던 만큼 취소 수수료도 저렴했다는 것이 위안 아닌 위안이다. 아직도 내 노트북에는 '제주 태풍 여행 맛집'이 검색 기록에 남아있는데. 이 기분은 오직 나 만의 것은 아닐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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