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이승우는 변한 게 없다, 우리 기대가 컸을 뿐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이승우가 벨기에 이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승우는 벨기에 구단인 신트-트라위던과 협상을 위해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우가 벨기에 1부리그에서 2019-20시즌 1승 1무 3패로 리그 12위를 기록 중인 무명 구단(?)으로 이적한다는 소식에 국내 여론은 좋지 않다. 이승우의 기량에 대한 재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바르셀로나를 거쳐 헬라스 베로나로 이적했던 이승우가 벨기에 중위권 팀으로 이적하게 된다면 거듭되는 추락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우가 메시가 되길 바랐던 사람들
그러면서 이승우의 과거와 현재 기량, 여기에 그의 인성과 평소 행동, 가족까지도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바르셀로나 유소년 시절부터 벨기에 중위권 팀 이적을 앞둔 지금까지 이승우는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달라진 건 우리의 시선일 뿐이다. 이승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저 이승우는 자신의 축구를 했을 뿐이다. 그를 어마어마한 선수라고 한껏 치켜 세우며 기대치를 올려놓은 것도 우리고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것도 우리다. 선수가 기량을 인정받지 못하면 하부리그, 하위팀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 여기에는 누구의 ‘잘못’이란 게 없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뛰던 이 ‘꼬맹이’ 이승우를 리오넬 메시처럼 될 것이라고 잔뜩 기대한 건 우리다. 이승우를 폄하하려는 의미가 아니라 바르셀로나에는 ‘제2의 메시’를 꿈꾸는 유소년들이 수도 없이 많다. 이승우도 그런 기대주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물론 이 중에서 대성공을 거두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이 10대 초반의 어린 선수를 향한 기대, 아니 욕심은 너무 컸다. 이제 막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는 어린 선수가 ‘바르셀로나’라는 축구계에선 최고의 타이틀을 달고 있으니 그저 이 타이틀 하나에 다들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이 칼럼은 절대 이승우를 폄하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냉정히 보자는 것이다. 중계도 이뤄지지 않아 그의 경기력이 어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근 6~7년을 ‘바르셀로나 유망주’라는 이유로 그에게 대단히 기대했다. 나는 당시 “유소년 선수들의 미래는 모른다. 흥분하지 말고 더 지켜보자”는 칼럼을 썼다가 테러에 가까운 반응을 얻기도 했다. 다들 ‘바르셀로나’라는 타이틀 하나로 곧 이승우가 메시처럼 성인 팀에서 대단한 활약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당시 신중론을 폈다가는 이승우를 응원하지 않는 ‘매국노’ 취급을 받았다. 우리는 애써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을 ‘바르셀로나’라고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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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괄호병’ 소설의 주인공이 돼 줘
오랜 만에 과거 활발했던 축구 커뮤니티 ‘알싸’에 들어가 축구팬들의 예전 글을 뒤적여 봤다. 2011년 글을 보니 누군가 이승우를 비롯한 10대 유망주들을 쭉 나열하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 이승우는 곧 성인 팀에 올라가 최고의 팀에서 주전 공격수로 활약할 것이라고 예측, 아니 기대했다. 그때 이승우와 함께 언급된 이들이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팀 김우홍과 볼프스부르크 유소년 팀 박정빈, 바야돌리드 유소년 팀 김재민,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 장결희, 풀럼 유소년 팀 서명원, 상파울리 유소년 팀 김병연, 알메리아 유소년 팀 김영규 등이었다. 이 선수들을 포메이션별로 쭉 나열해 놓고 괄호 안에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풀럼을 써놓고 흐뭇해 했다. 이 글 뿐 아니라 당시 게시물들을 뒤져보면 비슷한 내용의 글들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 중 성인 무대에 제대로 안착한 이들은 없다. 그나마 서명원이 K리그에서도 반짝 활약을 한 뒤 재기를 노리고 있을 뿐이다. 이 선수들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들은 거액을 들여 해외로 나가 꿈을 키우다가 좌절했을 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잘못이 있다면 이 어린 선수들의 당시 유소년 소속팀 이름에 대단히 흡족해하며 소설을 쓴 사람들에게 있지 않을까. 이승우가 바르셀로나 주전 공격수가 되고 김우홍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며 대표팀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상, 아니 기대가 가장 큰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여기에 선수가 무슨 죄가 있는가. 그들은 실패하고 싶어서 했는가.

나는 이걸 ‘괄호병’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어린 유소년 선수들의 이름 바로 옆 괄호에 적힌 유소년 팀 이름에 열광하는 병이다. 다들 바르셀로나에 취하고 레알 마드리드에 취했다. 처방전은 따로 없고 재발 확률이 대단히 높다. 이 유소년이 자신의 소설 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또 다른 유소년 선수에게로 그 기대를 옮겨간다. 아마도 웨스트햄 유소년 팀에서 뛰던 이산에 대한 기대에서 시작했던 게 그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산이 실패하면 임규혁에게로 넘어가고 임규혁도 기대 만큼 못 크니 또 다른 이들에게로 그 기대가 넘어갔다. 이런 이들에게 ‘바르셀로나 유소년’ 선수는 소설을 쓰기에 딱 좋은 인물이었다. 이승우는 그렇게 10대 초반부터 소설의 주인공이 됐다.

베로나 이승우
ⓒ헬라스베로나

이승우는 변한 게 없다, 우리 기대가 컸을 뿐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뛰던 어린 이승우도 이승우고 벨기에 중위권 팀을 알아보고 있는 지금의 이승우도 이승우다. 실력이 퇴보해서 그가 추락하고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의 어린 선수를 마음껏 부풀려 기대해 놓고 원하는 만큼 크지 못하니 선수의 기량을 탓한다. 이승우가 그 사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서 기량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히 큰 사고를 쳐 심리적으로 흔들린 것도 아니다. 나름대로 노력했고 성장해 왔지만 ‘괄호병’ 환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뿐이다. ‘괄호병’에 걸린 사람들은 이제 이승우가 아닌 발렌시아라는 ‘괄호’가 있어 보이는 이강인에게로 옮겨가면 그뿐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바르셀로나에서 헬라스 베로나를 거쳐 신트-트라위던으로 향하는 그와 달리 20대 초반의 무명 선수가 벨기에 무대로 진출했다면 우리는 그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까. 20대 초반의 선수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벨기에 무대로 진출하는데 우리가 성에 차지 않아하는 건 ‘괄호병’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팬들은 ‘괄호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론은 이걸 쪽쪽 빨아먹고 버리면 그 뿐이다. 그래서 17세의 이강인이 마치 곧 ‘월클’이 될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이들도 불편하다. 물론 그가 ‘월클’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비난의 화살이 또 선수 본인에게 갈까봐 걱정이 앞선다.

나는 이승우가 다시 한 번 마음껏 날아오르길 기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승우의 사례를 통해 ‘괄호병’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오히려 한국 축구에 해가 되는지는 꼭 이야기하고 싶다. 이승우가 무슨 잘못을 했나. 그의 기량이 퇴보했나. 단지 ‘바르셀로나 괄호 놀이’를 하고 싶은 이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 아닐까. 이제 이 ‘괄호’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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