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산무궁화 제공

[스포츠니어스|아산=조성룡 기자] 나이와 상관 없이 아버지는 아버지다.

26일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2 2019 아산무궁화와 수원FC의 경기에서 양 팀은 한 골씩 주고 받으며 1-1 무승부를 기록, 승점 1점씩 나눠갖는데 만족해야 했다. 수원FC가 치솜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고 아산이 양태렬의 동점골로 균형을 맞췄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날 아산에는 유독 의욕을 불태우는 선수가 있다. 골키퍼 이기현이었다. 올 시즌 자유계약으로 아산에 합류한 이기현은 의경 선수들의 전역 이후 본격적으로 아산의 주전 수문장 자리를 꿰찼다. 박동혁 감독은 수원FC전을 앞두고 이기현에 대해 "준비 과정에서 열심히 해줬기 때문에 선발을 맡겼다"면서 "믿음직한 선수라고 생각한다. 안산그리너스전에서도 잘했고 전남드래곤즈전도 2실점 했지만 많은 선방을 해줬다"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기현이 수원FC전을 유독 신경쓰는 이유는 이날이 이기현의 첫 아산 홈 데뷔전이기 때문이다. 아산에서 이기현이 출전한 두 경기는 모두 원정이었다. 홈 팬에게 이기현이라는 골키퍼가 첫 선을 보이는 날이다. 하지만 이기현이 승부욕을 불태우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여섯 살 난 딸 때문이었다. 이날 이기현의 딸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입장했다. 에스코트로 나선 셈이다.

"아빠랑 여기 같이 들어가는 거야?"

사실 이기현의 이야기를 들으면 두 번 놀란다. 이기현에게 딸이 있다는 것과 그의 딸이 여섯 살이라는 것이다. 이기현은 1993년생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딸을 얻은 셈이다. "제가 좀 이상한 사례라고 해야 하나요, 아니면 독특한 케이스라고 해야 하나요." 이기현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다. 낳은 시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라는 것은 언제나 든든하고 자랑스럽다.

이기현과 그의 딸에게는 설레는 날이었다. 많은 축구선수들이 자녀와 함께 경기장에 입장하는 것을 꿈꾼다.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자녀의 손을 잡는다. 이기현에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딸이 성장하는 동안 이기현은 한 번도 딸과 함께 그라운드에 입장하지 못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출전 기회를 쉽게 잡지 못하기도 했고 어렵게 출전한 경기가 원정이기도 했다. 딸이 당시 너무 어리기도 했다. 2015년 부천FC1995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기현은 이제 갓 K리그 출전 통산 20경기를 넘겼다.

"딸이 굉장히 기대하고 있어요." 경기 전 이기현은 말했다. 이날 이기현의 딸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방문했다. 여섯 살이면 자신의 아버지가 축구선수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나이다.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 축구선수다"라고 자랑도 할 나이다. 이기현은 설명했다. "딸이 축구를 굉장히 좋아해요. 아빠가 선수인 것을 아니까 덩달아 축구를 좋아하더라고요. 항상 그라운드를 밟아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번에 좋은 기회가 되서 딸의 꿈을 이뤄주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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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직전 입장을 기다리면서 딸은 '아빠' 이기현에게 물었다. "아빠랑 같이 들어가는 거야?" 천진난만한 질문이지만 이기현에게는 이보다 더 벅찬 순간이 없었다. "그래도 작은 것이지만 뭔가 하나의 소원이자 목표를 이룬 것 같아서 뭉클했습니다." 여섯 살 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뛰는 경기를 경기장에서 직접 봤다. "그 동안 딸은 제가 나오지 않아도 골키퍼만 나오면 '아빠 나온다'라고 좋아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딸에게 제가 직접 뛰는 경기를 보여준 것이죠."

정신 없었던 이기현, 천진난만한 딸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 절대 골 먹히면 안됩니다." 이기현은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기현의 각오는 전반 14분 만에 깨지고 말았다. 상대 수원FC 치솜이 환상적인 돌파에 이은 슈팅으로 골을 기록했다. 이기현이 쉽게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슈팅이 김기영의 몸을 맞고 굴절되는 불운까지 겹쳤다. 그나마 전반 34분 양태렬의 코너킥이 그대로 동점골이 된 것은 다행이었다.

"정말 큰일났다고 생각했죠. 대량 실점을 할 것 같은 상황이었어요.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더라고요." 이기현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래도 첫 실점 이후 정신을 바짝 차렸다. 몇 차례 수원FC의 위협적인 슈팅을 선방하며 제 몫을 다했다.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평범한 뜬공을 제대로 잡지 못해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기현은 90분 동안 1실점으로 막아내며 팀의 1-1 무승부에 공헌했다.

경기가 끝나고 이기현은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 중에는 그의 딸도 있었다. 딸은 아버지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더니 또다시 천진난만한 질문을 던졌다. "저 언니들도 축구하는 거야?" 아산 유니폼을 입은 치어리더를 보고 던진 말이었다. "제 딸이 저와 심하게 많이 닮았어요. 노래를 못부르는데 노래 부르는 걸 참 좋아하고 굉장히 활동적입니다. 제 피 그대로 물려받았어요."

배고팠기 때문에 더욱 간절했던 딸과의 추억

누구에게는 자녀와 손을 잡고 그라운드에 입장하는 것이 사소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기현에게는 너무나도 남다른 순간이었다. 특히 이기현은 배고픈 시절을 겪었다. 2016년 경남FC에서 뛰던 이기현은 여름 이적시장 때 방출됐다. 그리고 6개월 동안 무적 신세를 겪었다. 다행히 이후 제주유나이티드에 입단해 계속해서 프로 생활을 이어갔지만 이기현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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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기가 있었을 때 '운동을 그만할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시 마음을 잡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부모님의 영향도 있지만 딸이 너무나 눈에 밟혔어요. 그래도 제가 축구선수인데 딸에게 뭔가 멋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운동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이번에 딸과 함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입장한 것이 제게는 더욱 남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앞으로 더 잘해서 더 큰 경기에 나설 때도 딸과 함께 손잡고 입장하고 싶습니다."

이기현은 90분 간 치열한 경기가 끝나면 축구선수의 삶에서 벗어난다. 바로 아빠로 변신한다. 육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경기 후 <스포츠니어스>와 만났을 때도 이기현은 "남들은 쉬지만 저는 이제 딸을 돌봐야 합니다. 쉬는 시간이 없어요"라고 살짝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퇴근했을 때 딸이 저를 보면 막 뛰어와서 안아주면 정말 제게는 딸이 있는 것 자체가 큰 힘입니다"라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누군가는 축구선수의 삶이 화려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축구선수의 삶은 때로는 평범할 때도 많다. 이기현 또한 아산의 선수지만 동시에 한 딸의 아버지다. 그렇기에 이기현은 이를 악물고 또 악물었다. 이날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에는 4,077명의 관중이 왔다. 하지만 이기현은 그 중 단 한 명의 관중에게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할 딸의 첫 번째 '아빠 경기 직관'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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