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동건 “전북-울산 강해졌어도 수원 자부심이 있다”


[스포츠니어스|수원=전영민 기자] 최근 수원삼성 팬들에게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가 있다. 바로 주전 수문장 노동건이다. 노동건은 지난 2014년 수원에 입단해 올해로 프로에서 여섯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잦은 실수로 인해 팬들의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지난 2017년 포항스틸러스로 1년간 임대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올 시즌 노동건은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수원의 골문을 지키고 있다. <스포츠니어스>는 프로 입성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노동건을 26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수원삼성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반갑다. 점심은 먹었나?
오늘 선수단 단체 회식이 있었다. 덕분에 맛있는 걸 먹고 오는 길이다.

뭘 먹었나?
장어를 먹고 왔다.

그래서 타가트가 SNS에 장어 굽는 사진을 올린 것인가. 이곳에 오면서 봤다.
원래 장어 회식을 할 때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소고기를 주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외국인 선수들도 장어를 먹어서 좀 놀랐다. 오늘은 회식을 꽤 오랜만에 한 것 같다. 선배들이 개별적으로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 밥을 사주는 일은 종종 있지만 선수단 단체 회식은 간만에 한 것 같다.

당신도 후배들에게 지갑을 잘 여는 편인가?
종종 사준다. 나도 이제는 선배니까 후배들을 챙기려고 한다. (염)기훈이 형이나 (홍)철이 형이 동생들에게 밥을 많이 사주는 편인데 나 역시 이제 그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갑을 열 나이가 된 것 같다. 어느새 당신 나이도 29살이다.
사실 K리그 전체 선수들을 놓고 봤을 땐 중간 정도 되는 나이다. 그런데 우리 팀에선 내가 다섯 번째다. 기훈이 형, (양)상민이 형, (김)다솔이 형, 밑에 철이 형, 그리고 다음이 나다. 작년에는 (박)종우 형, (조)원희 형이 있었는데 두 형이 팀을 떠나며 올해는 얼떨결에 고참이 되었다. 이제는 지갑을 열어야 할 시기다.

골키퍼는 전성기가 30살부터라고 하는데 유독 올해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나도 느낀다. 올해가 프로 6년 차인데 그간 힘든 시즌이 많았다. 작년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실점이 적지 않았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좋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만 아직 만족할 단계는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괜찮은 모습을 보이다 보니 이제 욕심이 생기더라.

무슨 욕심인가.
대표팀 욕심도 있긴 하다. 하지만 K리그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다. 대구FC (조)현우가 나와 나이가 같다. 현우가 올 시즌에 나보다 클린시트 경기가 두 경기 더 많다. 큰 차이는 아니다. 좀 더 정신을 차려서 클린시트 부분에서 현우를 제치고 싶다. 또 연말 시상식에도 참가해보고 싶다. 이렇게 욕심이 생기니까 지칠만한 시기에도 지치지 않고 의욕이 더 불타오르는 것 같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안 그래도 작년 시상식장에서 홍철이 혼자 시상식에 와서 외롭다고 말하는 것을 봤다.
내가 철이 형이랑 룸메이트다. 거기에 아파트도 같은 아파트에 산다. 심지어 옆 동이다. 연말 시상식에 철이 형이랑 같이 가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철이 형 혼자 시상식에 가면 쓸쓸하지 않나. 전북, 울산 선수들은 시상식에 단체로 간다. 올해는 나도 시상식에 가보고 싶다. 가서 참가에만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상도 받아보고 싶다.

올 시즌엔 확실히 표정도 좋아 보인다.
올해는 정말 뿌듯하다. 이 기분을 오래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도 “말을 능청스럽게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인터뷰를 많이 하고 싶다. 사실 그전에는 언론과 팬들 앞에 나설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올해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또 인터뷰에서 내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말하다 보니 팬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확실히 최근에 인터뷰를 많이 해서 그런지 답변에 막힘이 없다.
나 스스로도 놀란다. 올 시즌 대구와 첫 맞대결을 펼쳤을 때 내가 운 좋게 몇 번의 선방을 하고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그렇게 경기장을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많은 기자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더라. 그래서 나는 기자분들에게 “왜 나를 인터뷰하시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곳이 프로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또 ‘내가 축구를 더 잘해야 하는 이유가 생겼구나’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그전에는 믹스드존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나?
기자분들이 말을 걸지 않더라. 다른 선수들이 인터뷰를 하고 있으면 ‘아 그런가 보구나’ 하고 말았다. 나는 조용히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편이었다.

이번 시즌 경기력도 좋지만 작년 경기력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요한 경기들에서는 신화용에 밀려 벤치에 머물렀다. 아쉽지는 않았나?
솔직히 좀 아쉽긴 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와 FA컵 예선전은 내가 다 뛰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포항에서 임대를 마치고 온 후라 서정원 감독님께 신뢰를 많이 못 드린 것 같다. 선수 기용은 전적으로 감독님의 권한이다. 못 뛴 것은 아쉽지만 감독님의 선택이기에 따랐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과 FA컵 준결승전에서 ‘한 번은 뛰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운재 코치님도 “네가 뛰었어도 참 좋았을 텐데”라고 장난스럽게 얘기하셨다. 그래도 올해 기회가 다시 왔다. FA컵 준결승에 올랐으니 작년에 못 보여드린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FA컵에 나서서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고 싶다.

FA컵 우승에 대한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솔직하게 말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팀들이 FA컵 4강에 올라왔다. 물론 그래서 오히려 더 부담이 되는 면도 있다. 원래 패배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FA컵 상대 팀들을 보면 더더욱 패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FA컵을 준비해야 될 것 같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힘든 시간이 많았다. 포항 임대 시절도 그런 면에서 많은 도움이 됐나?
포항 때는 내 자신이 정말 바닥을 찍은 상황이었다. 포항 임대를 가기 전 2016년에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1,2년차 때도 힘들었지만 3년 차 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때는 (정)성룡이 형이 일본으로 떠나며 내가 수원 입단 후 처음으로 등번호 1번을 달게 된 시기였다. 그런데 경기에 나갈 때마다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FA컵도 준결승은 내가 뛰었는데 결승 때는 (양)형모가 출전했다.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이후에 포항으로 갑작스레 임대를 가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선 구단에 섭섭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포항에 가서는 심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포항 선수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 속에 ‘어차피 조금 있다가 갈 선수’라는 인식도 있는 것 같았다. 선수들과 친해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몇몇 선수들이 잘 챙겨줘서 다행히 버틸 수 있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런데 힘들게 포항 임대를 마치고 오니 수원에는 신화용이 있었다.
포항 임대를 다녀온 후에는 정말 독해졌다. 돌아와서 화용이 형이 있었지만 ‘올해 안되면 축구화 벗어던질 생각으로 해보자’라고 되뇌며 축구를 했다. 포항 시절에는 ‘축구를 그만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작년에 수원에 돌아와서 ‘축구가 정말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이)운재 ‘쌤’을 만나며 그런 부분을 느꼈다. ‘아 축구가 이렇게 재밌던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또 축구를 좋아해서 시작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때의 경험들이 지금의 노동건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력을 보면 김포에 위치한 통진고등학교 출신이다. 그런데 당신이 수원 유스팀인 매탄고 출신이라고 착각하는 팬들이 많은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시흥에서 살았다. 중학교는 서울로 갔고 고등학교는 김포 통진고등학교를 나왔다. 대학교는 고려대학교를 가며 다시 서울로 갔다. 사실 고대 시절 수원 팀 훈련에 중간 중간 들어온 적이 많았다. 2013년도에 그랬다. 알다시피 대학교 4학년 때는 수업이 별로 없지 않나. 서정원 감독님도 내게 “팀 훈련에 미리 합류해서 많이 배워봐라”라고 말씀하셨다. 감독님의 배려 덕에 입단은 2014년에 했지만 그 이전부터 형들과 많이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매탄고 출신은 아니지만 나는 수원이 정말 자랑스럽다. 요즘은 전북, 울산이 강해졌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니 홈 관중들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원정 팬은 우리 수원이 전북, 울산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굉장히 많은 원정 팬들이 함께 해주신다. 또 삼성이란 기업 역시 세계 최고의 기업 아닌가. 이런 이유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우리가 지금의 부진에도 낙담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난 수원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삼성은 세계 최고 기업이고 우리 팬들은 K리그 최고다. 다른 팀 팬들이 수원을 욕하면 기분이 나쁘다. 우리를 무시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 경기장에서도 다른 팀 선수들이 우리 팀 선수들을 건드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다 보니 경기장에서도 더 액션이 강해진 것 같다.

명준재를 향해 뛰어갈 때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그때는 내가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그전에 (구)자룡이가 퇴장을 당해서 나까지 빠지면 우리 팀이 9명이 되는 상황이었다. 순간적으로 ‘얘가 이걸 노리고 나한테 거칠게 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또 심판도 그 상황에서 준재에게 퇴장을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흥분했던 것 같다.

명준재와 화해는 잘했나?
그날 충돌하긴 했지만 준재와 내가 고려대 선후배 사이다. 지금 와서 말하자면 그때는 너무 흥분해서 내가 달려간 사람이 준재인지도 몰랐다. 내가 준재랑 나쁜 사이가 아니다. 4학년 때 내가 주장을 하고 있을 당시에 준재가 신입생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끝나고 생각해 보니 ‘대학교 때 내가 너무 많이 심부름을 시켜서 준재가 그랬나’라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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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절에 명준재한테 못된 짓을 좀 했나 보다.
준재가 까마득한 후배다. 뭐 하늘과 땅 차이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학교 시절에는 내가 주장이다 보니 1학년들에게 지시를 많이 하고 그런 것은 있었다. 내가 운동장에서 파이팅이 많은 편이다. 운동장이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한다고 주장으로서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고대를 졸업하고 나니 후배들이 그러더라. “무서웠다”고 말이다.

정말 억울했다. 주장임에도 소위 말하는 ‘집합’도 시키지 않았다. ‘착한 일을 해도 무섭게 느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가 잔소리가 많은 타입의 선배였던거 같긴 하더라. 그런데 준재는 나와 같은 방을 쓰지 않아서 잔소리나 심부름을 많이 시키진 않았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준재한테 대학교 시절 못된 짓을 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 점은 명준재의 이야기도 들어봐야할 것 같다. 그런데 확실히 당신이 선배라 그런지 명준재는 아무 대응 없이 조용히 있더라.
준재는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무고사가 끼어들어 나한테 한국어로 욕을 했다. 깜짝 놀랐다.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내게 욕을 했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외국인한테 한국어로 욕을 먹으니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났던 상황이지만 무고사한테 한국 욕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준재한테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 연락을 했다. 다른 선수들에게 연락처를 알아내서 내가 연락을 했다. 준재와는 같은 고대 출신이기에 먼 사이가 아니다. 고대 출신 선수들끼리는 쉬는 날이나 시즌이 끝나고 나서 같이 밥도 먹고 공도 차고 하며 아직까지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그 당시엔 준재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저 형이 왜 저러는 거지’라고 말이다. 다행히 철이 형이 중간에서 잘 말려줬다. 철이 형이 아니었으면 분명 사후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또 경기 끝나고 철이 형이 재밌게 인터뷰를 하며 유쾌하게 상황을 정리해주셨다.

평소에 철이 형과 룸메이트고 아파트도 같다 보니 밥도 자주 먹고 차도 종종 마신다. 요즘에는 ‘배틀 그라운드’도 함께 자주 한다. 철이 형이 좀 세게 밀쳐서 당황하긴 했지만 끝나고 “고맙다”고 했다. 철이 형 덕분에 옐로카드로 끝났지 안 그랬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

홍철-노동건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홍철과 굉장히 각별한 사이인 것 같다. 홍철도 당신에게 지갑을 아끼지 않는 편인가?
밥은 다 철이 형이 산다. 그래서 미안해서라도 내가 커피라도 사기 위해 노력한다. 철이 형은 밥 사는 것뿐 아니라 후배들에게 옆에서 좋은 말을 해주고 후배들의 사소한 점도 챙기는 정말 따뜻한 형이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역시 ‘국대’는 다르다.

이제는 철이 형과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아는 사이가 됐다. 서로가 표정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안다. 철이 형은 정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또 우리나라 국가대표다. 수원이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자존심이 상해한다. 겉보기에는 악동 같고 꾀도 잘 부릴 것 같은 사람이지만 동생들을 잘 챙기고 의리가 넘치는 형이다. 후배들을 먼저 생각해주고 좋은 말을 해준다. 옛날에 다가가기 힘들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좋은 형이라는 것을 느낀다.

후배들한테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런데 경기 중에 보면 선배들한테도 거침없이 소리를 지르던데?
수비진에 철이 형 외에도 (양)상민이 형이 있다. 하지만 상민이 형도 딱딱한 형이 아니다. 나와 장난도 치고 한다. 수비수는 아니지만 기훈이 형도 있다. 형들과 의논할 것은 의논하고 소통할 것은 소통한다. 때로 경기 중에는 흥분을 해서 언쟁을 벌이지만 끝나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렇다고 해도 가끔은 심할 정도로 선배들을 꾸짖던데?
옛날에는 형들한테 소리치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했다. 일단 내가 자신감이 없었다. 내가 해야 되는 것조차 제대로 못했는데 다른 선수들에게 소리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화용이 형, 이운재 코치님, (김)병지 삼촌까지. 다들 수비수들에게 많이 소리치는 스타일이지 않나. (정)성룡이 형도 안 한 게 아니다. 옛날에는 형들을 보며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골키퍼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얘기를 해줘야지 선수들이 경기 중 의식이 깬다. 좀 선을 넘는 경우가 있었으면 경기 끝나고 형들한테 “죄송합니다”라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 형들도 “괜찮다”고 답한다. 일단 무조건 내가 먼저 가서 “죄송하다”고 한다. 가끔은 형들이 “그때 큰소리로 애들을 정신차리게 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물론 올 시즌에 한 번은 기훈이 형한테 너무 큰소리를 쳐서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경기 끝나고 그 장면을 보는데 ‘내가 형한테 저렇게 했구나’라면서 놀랐다. 그런데 수원의 첫 번째 골키퍼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 내 뒤에 엄청난 서포터스가 버티고 있는데 그만한 무게를 견디려면 그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행히 선배들이 쿨한 것 같다.
기훈이 형도 그날 내가 화를 내니까 멋쩍게 “어… 미안해”라고 하더라. 그래서 웃으면서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또 다행히 그날 경기도 이겼다. 최근에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훈이 형이 부상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나는 기훈이 형이랑 최대한 오래 뛰고 싶다.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기훈이 형이랑 같이 뛰었다”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엄청난 선수지 않나.

이런 점들을 생각하면 수원에서 뛴다는 자부심이 더욱 느껴진다. 이런 대단한 선수들이랑 한솥밥을 먹었다는 것 자체가 선수로서 자부심을 느껴도 되는 일이 아닐까 한다.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팀이다. 모르고 왔어도 자부심이 저절로 생기는 팀이 이 팀이다.

잔소리 대상이 선배와 후배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 팀 주장이 기훈이 형이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기훈이 형은 너무 착한 형이다. 내가 봤을 땐 ‘축구계의 예수님’이다. 그래서 ‘기훈이 형이 그런 성격이니 내가 악동 역할을 맡아야겠다’고 느꼈다. 철이 형이랑 같이 이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훈이 형 말고도 우리 팀엔 유독 순한 선수들이 많다. 그래서 항상 어린 선수들한테 말한다. “경기장에서 꾀를 부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다른 팀 선수들을 보면 얄밉고 잔꾀가 많은, 정말 때리고 싶은 선수들이 많다. 물론 경기장에서 상대 선수를 잡아일으켜주고 멋있는 행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시간을 끌고 팀을 위하는 영악한 면모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게 바로 남들 한테는 꾀로 보일 수 있지만 우리 팀에는 도움이 되는 행동이다. 일단 경기에서 이겨야지 기분 좋게 다른 팀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 지면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자존심 상한다. 그래서 내가 이런 행동을 앞장서서 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경고 누적 징계를 받았다. 우리 선수들이 호흡하라고 시간을 벌었던 행동이 이렇게 됐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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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을 위한 행동이지만 그렇게 하면 안티가 생길 수도 있다.
괜찮다. 수원 팬들이 이런 행동을 원한다는데 해야 하지 않겠나. 수원 팬들한테 잘 보여야 한다. 물론 이런 행동을 했을 때 다른 팀 팬들에게는 욕을 먹을 수 있다. 그래도 내가 멋있는 경기를 펼치면 다른 팀 팬들도 내게 반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도 연극을 봤을 때 배우가 좋은 연기를 선보이면 정말 감동하지 않나. 나도 타 팀 팬들을 그렇게 만들겠다. 내가 좋은 모습을 보이면 타 팀 팬들도 내게 반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제일 우선은 수원 팬들한테 잘 보이는 것이다. 그게 첫 번째다.

당신의 잔소리 기질은 훈련소에서도 이어졌던 것 같다.
무슨 소리인가.

사실 내 친구의 친구가 당신과 훈련소에서 같은 분대를 썼다고 하더라. 그런데 당신이 본인을 너무 부렸다고 분통을 터뜨린 것을 전해들었다.
내가 말인가? 우리 분대가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았다. 35살 형님도 계셨다. 한 명 젊은 친구가 있었긴 했는데 음… 누군지 알 것 같다.

갑자기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 고려대 시절 모습이 나오는 건가?
내가 원래 잔소리가 좀 많은 편이다. 특히 깨끗하게 지내는 스타일이다. 쓰레기는 빨리 버려야 하고 물건 같은 경우도 반드시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나는 훈련소에서 각을 잡는 게 정말 좋았다. 난 각을 진짜 제대로 잡었다. 먹을 것과 낮잠이 부족한 부분은 힘들었지만 깔끔해야 하고 각을 중요시하는 군대의 특성은 나와 잘 맞았다.

나는 단지 “빨리 쓰레기 치우고 이불 제대로 정리하라”라고 말했을 뿐이다. 군대는 단체 생활이지 않나. 나만 정리를 끝낸다고 해서 검사에서 통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야, 배게가 좀 삐뚤어진 것 같다”라고 말했던 건 있다.

정말 그렇게 착하게 지적만 한 건가?
무섭게는 하지 않았다. 물론 내 덩치가 크니까 무서워 보였을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
그렇진 않다. 원래 내가 목소리가 큰 편이다. 지금도 라커룸에서 수건이 제때 없으면 옆에 있는 후배에게 잔소리를 한다.

그게 누군가?
(이)상민이다. 내 라커룸 바로 옆 자리가 상민이와 (고)승범이다. 그런데 상민이가 가끔 깜빡하고 수건을 갖다 놓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상민이에게 한마디를 한다.

너무 깨끗한 스타일이라 룸메이트인 홍철이 참 피곤해 할 것 같다.
철이 형은 깔끔한 스타일이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깔끔하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그래도 선배한테 잔소리를 하겠나. 차라리 내가 치우지 형들한테 잔소리를 하는 경우는 없다. 대신 형들 물건을 치우며 후배들에게 “선배들 거는 내가 치운다”라고 한마디 보태기는 한다.

후배들이 참 부담스러울 것 같다. 잔소리를 하는 고참이라면 데얀도 있지 않나. 굳이 왜 나서나.
데얀은 잔소리라기보다는 투정이다.

팀에서 제일 형인데 너무한 것 아닌가.
그래도 데얀은 정말 쿨한 선수다. 경기 중에는 강하게 말해도 경기가 끝나면 뒤끝이 전혀 없다. 경기장 일은 경기장 안에서 끝낸다.

팀 내에서 강한 캐릭터라면 이임생 감독도 있지 않나.
전혀 그렇지 않다. 한 번은 간식을 먹다가 감독님에게 붙잡혀서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감독님은 소통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이다. 감독님께서는 항상 “지도자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하는데 감독님의 행동을 보면 ‘말씀을 정말로 실천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숙소 생활 역시 자유로운 편이다. 생활 면에서 전혀 터치가 없으시다. 다른 팀들은 훈련을 두 시간씩 길게 하는 팀들도 있다. 물론 가끔 분위기가 안 좋고 연패를 할 때는 우리도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팀은 훈련 시간이 길지 않다. 나 같은 경우에는 주로 이임생 감독님보다 김봉수 코치님과 훈련을 한다. 감독님과는 전술 훈련 때만 같이 한다. 감독님과 많이 마주치지는 않는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그래도 이임생 감독이 화를 내면 무섭지 않나? 올 시즌 개막전때 보여줬던 “뭐가 무서워서 자꾸 뒤로 가”라는 외침은 정말 무서웠다.
그렇다. 감독님도 목청이 작으신 분이 아니다. 목소리가 굵으시다. 화를 내시면 확실히 무섭다. 이임생 감독님께는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전에는 내게 ‘두 번째 골키퍼’라는 꼬리표가 달라붙었다. 그런데 감독님과 함께 하며 조금씩 그런 걸 떼어가고 있다. 내가 빛을 볼 수 있게 해준 감독님이다. 실점을 최대한 막아내는 것이 감독님께 보답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무실점을 하면 ‘감독님께 선물을 드렸다’는 생각에 더욱 뿌듯하다. 그렇기에 무실점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것도 있다.

계절도 벌써 여름을 지나 가을이다. 올 시즌 목표는 어떻게 되나
솔직히 말하면 현재 우리 팀이 중위권에서도 턱걸이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위권 팀에 덜미를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목표는 상위스플릿이다. 물론 우승권 다툼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4위권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위권 싸움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FA컵을 우승하고 싶은 마음 역시 당연하다. 사실 시즌이 끝나고 어느 정도 팀 성적이 좋으면 다른 팀 선수들을 만났을 때도 당당하다. 우리는 지금 더 내려갈 곳이 없다. 위를 보며 욕심을 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서 위로 올라가야 한다.

수원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앞으로 타 팀 이적은 없는 것인가?
이미 포항으로 임대를 갔다 온 경험이 있기에 원클럽맨은 힘들다. 대신 수원 팬들에게 ‘수원하면 떠오르는 골키퍼’로 이름을 남기고 싶다. 물론 이운재 코치님의 벽을 뛰어넘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그 다음으로는 성룡이 형과 화용이 형이 있다. 쉽진 않겠지만 이운재 코치님처럼 수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골키퍼로 남는 게 바람이다.

우리가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으로 리그 2위를 차지했을 때 평균 관중수가 FC서울보다 많았다. 최근에는 참 아쉽다. 팬들에게 매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 팬들이 경기장에 오셨는데 승리하지 못했을 때 더욱 죄송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좀 더 응원을 해주시면 책임감을 갖고 뛰어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다는 것이다. 욕을 하고 싶으시더라도 차라리 경기장에 와서 궂은 소리를 해주시면 좋겠다.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

노동건은 수원 입단 전 수원과는 그 어떠한 인연도 없었던 선수였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노동건은 수원 생각밖에 없는, 수원을 위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악역 역할까지 자처하는 ‘수원만 생각하는 선수’였다. 그리고 노동건은 수원의 ‘자존심’을 이야기했다. 과거 포항 시절 축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던 그는 이제 빅버드의 전설을 목표로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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